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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하나 못 띄우던 한국 '위성 개발 강국'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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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하나 못 띄우던 한국 '위성 개발 강국' 만들다

2019.11.04 03:00
1992년 한국의 첫 국적 위성 ′우리별 1호′를 시험하고 있는 KAIST인공위성연구소(당시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이제는 빛바랜 작은 사진으로만 남은 이 때의 시행착오가 오늘날 한국을 인공위성 강국으로 만들었다. KAIST 인공위성연구소 제공
1992년 한국의 첫 국적 위성 '우리별 1호'를 시험하고 있는 KAIST인공위성연구소(당시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이제는 빛바랜 작은 사진으로만 남은 이 때의 시행착오가 오늘날 한국을 인공위성 강국으로 만들었다. KAIST 인공위성연구소 제공

“지금 벤처기업이 스마트폰을 만든다고 해보세요. 30년 전 한국이 처음 인공위성을 만들던 때가 딱 그랬습니다. 아무리 소형 위성이라도 전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은데, 그걸 인력양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영국 서리대에 간 학부생 9명이 다 해야 했어요. 아마 우리를 보낸 인공위성연구센터(현 KAIST 인공위성연구소)에서도 기대는 안 했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가 한국 위성 개발의 최일선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배우려 노력했고, 마침내 3년 뒤인 1992년 우리나라 첫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별 1호를 개발했던 주역 중 한 명인 김형신 충남대 컴퓨터융합학부 교수는 지금도 종종 30년 전 일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작은 깡통 위성 하나 만들어 띄우지 못하던 한국이 3년 만에 첫 국적위성을 띄우게 된 극적인 순간은 세대를 넘어 학생들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김 교수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연구개발 정신을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우리별 위성 개발을 주도하며 한국 인공위성 연구와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성장한 KAIST 인공위성연구소(SaTReC)가 개소 30주년을 맞았다. 연구소는 1989년 개소 직후 곧바로 서리대와 국제공동연구협약을 맺고 전기전자, 물리학, 통신, 제어, 회로 등의 전공 학생 9명을 두 해에 걸쳐 파견해 위성 선진국의 기술을 배우게 했다. 이 작전은 3년 만에 우리별 1호 개발로 결실을 맺으며 한국은 세계 22번째 위성 보유국으로 발돋움했다. 만년 꼴찌 야구팀이 9회 말 부활을 예고하는 만루홈런을 친 것 만큼 극적인 사건이다. 

 

1년여 뒤인 1993년 같은 연구진은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우리별 2호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6년 뒤인 1999년에는 드디어 설계부터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세계적 성능의 고유 위성인 우리별 3호를 완성했다. 5명의 연구자가 빈손으로 영국에 간지 10년 만의 성과였다. 이후 연구소는 6기의 소형 위성을 더 개발하면서 한국 위성 개발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지금도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한 영상레이더 시스템을 장착한 차세대소형위성 2호를 2022년 발사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인공위성연구소는 한국 우주개발 인력 양성의 중추기도 했다. 권세진 소장은 30일 대전 유성구 KAIST에서 개최된 30주년 기념식에서 “그간 배출된 200여명의 고급인력은 현재 학계, 출연연구소, 산업체, 정부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KAIST와 인공위성연구소에 따르면, 이 가운데 학생을 제외한 직원은 총 108명으로, 이들 가운데 48명은 산업체와 창업의 길로, 13명은 후학을 기르는 국내외 대학 등 학계로 갔다. 연구소로 간 사람도 23명 있다. 

 

이들의 사연은 각양각색이다. 외국의 대형 위성기업으로 진출해 위성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이은 사람도 있고, 우주기업을 창업한 사람도 다수다. 연구소 재직 시절 자세제어팀에서 근무했던 이성호 드림스페이스월드 대표는 “위성 제어 기술 연구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2010년 드론 및 초소형위성(큐브샛) 개발 기업을 창업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연구소와 기업이 각자의 영역에서 기술을 개발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리대에 파견 갔던 학생과 연구소 직원들이 주축이 돼 1999년 설립한 위성기술기업 쎄트렉아이는 세계 소형위성 제작 시장의 최강자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한국 소형위성의 요람인 KAIST 인공위성연구소의 역사를 정리했다. KAIST 인공위성연구소 제공
한국 소형위성의 요람인 KAIST 인공위성연구소의 역사를 정리했다. KAIST 인공위성연구소 제공

연구소 출신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위성 개발이 가진 특유의 문화 때문이다. 연구소에서 원격탐사 연구를 맡았던 이정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가스분석표준센터 책임연구원은 “위성에는 가장 가볍고 멀리 봐야 하며 민감도가 높은 최첨단 장비가 실리다보니 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지상 장비를 연구하면서 오히려 적응을 해야할 정도”라고 말했다. 첨단 위성기술 개발 경험이 이후 연구 경력에 큰 자산이었다는 것이다.

 

김형신 교수도 “위성 프로젝트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철저한 개발 과정을 거친다”며 “이런 경험이 여러 사람을 각자의 영역에서 치열하게 활약하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위성연구소도 최근 새로운 흐름에 맞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우주개발 흐름이 변했고, 한국도 30년 전처럼 우주 후진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대희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아직 국내는 우주에서 수행하는 과학 연구가 부족하다"며 “인공위성연구소는 소형위성을 이용해 과학연구를 지원하고 우주를 탐사할 역량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이정순 책임연구원은 “영리기관이 아닌 학교 소속 연구소라는 장점을 살려 대단위 국가사업 등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시도를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간이역'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호 대표도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주요 주립대에 연구센터를 열어 각각 특화된 연구를 하고 있다"며 "KAIST의 인공위성연구소가 이런 연구로 롤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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