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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확률컴퓨터는 양자컴퓨터 짝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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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확률컴퓨터는 양자컴퓨터 짝퉁일까

2019.11.05 16:59
구글 제공
구글 제공

최근 구글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자체 개발한 양자컴퓨터 프로세서를 구동해 최초로 ‘양자우월성’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미국 MIT의 윌리엄 올리버 교수는 학술지 ‘네이처’ 10월 24일자에 논문과 함께 실린 해설에서 이 업적을 1903년 라이트 형제의 최초 동력비행 성공에 비유하며 높이 평가했다. 3년 전 구글의 AI 알파고 충격이 생생한 필자로서는 이번 연구가 양자컴퓨터의 전환점이라고 자평하는 구글의 자신감에 감히 토를 달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대중이 느끼는 충격은 알파고가 바둑 일인자 이세돌은 꺾었을 때와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친다. 현존하는 가장 성능이 좋은 슈퍼컴퓨터가 1만 년이 걸릴 계산을 불과 200초 만에 해냈다는 놀라운 성과임에도 난수 생성이라는 주제가 영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에 양자 컴퓨터가 큰 수의 인수분해라는, 역시 기존 컴퓨터로는 풀기 어려운 계산을 200초 만에 해냈다면 그 충격은 알파고를 훨씬 뛰어넘었을 것이다. 오늘날 대표적인 암호체계인 RSA 암호가 두 큰 소수의 곱으로 이뤄진 수를 공개키로 쓰고 있다. 이런 수를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현존 컴퓨터로는 의미 있는 시간 내에 인수분해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무려 617자릿수인 RSA-2048로 두 소수의 곱이다. RSA-2048의 인수분해에 성공하는 연구팀에 2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지만 아직까지 난공불락이다. 양자컴퓨터가 인수분해에 성공해 ‘양자우월성’이 입증한다면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무려 617자릿수인 RSA-2048로 두 소수의 곱이다. RSA-2048의 인수분해에 성공하는 연구팀에 2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지만 아직까지 난공불락이다. 양자컴퓨터가 인수분해에 성공해 ‘양자우월성’이 입증한다면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양자컴퓨터로 6자릿수 인수분해 성공

 

이번에 난수 생성에 쓰인 시커모어 프로세서는 54큐비트로 이뤄져 있다. 이 정도 성능의 양자컴퓨터로는 인수분해에서 양자 우월성은 꿈 같은 얘기다. 

 

미국 퍼듀대 연구자들은 지난해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양자 컴퓨터 D-웨이브를 써서 94큐비트로 6자릿수인 ‘376289’를 인수분해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659×571). 

 

논문에서 저자들은 이 방식으로 232자릿수인 RSA-768을 인수분해하려면 14만7456큐비트의 양자 프로세서가 개발돼야 한다고 추측했다. 참고로 지난 2009년 디지털컴퓨터가 2년 동안 작동한 끝에 이 수의 인수분해에 성공했다(암호를 풀었다). 

 

다만 양자 컴퓨터도 작동 방식이 여러 가지라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의 경우 대략 4000큐비트로 이뤄진 프로세서가 개발되면 무려 617자릿수인 RSA-2048을 인수분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수를 인수분해하는데 2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있지만 아직 답을 내놓은 컴퓨터는 없다. 따라서 양자컴퓨터가 이 일을 해낸다면 인수분해에서도 양자우월성이 실현됐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제쯤 이 일이 가능할까. 양자컴퓨터의 전망을 밝게 보는 사람들은 10년쯤 걸릴 것이라고 말하지만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수십 년 내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인만이 예측한 또 다른 확률적 방식

 

1981년 물리학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에서 양자컴퓨터와 확률컴퓨터의 개념을 제안한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1965년 노벨상 수상 무렵의 모습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1981년 물리학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에서 양자컴퓨터와 확률컴퓨터의 개념을 제안한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1965년 노벨상 수상 무렵의 모습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그런데 최근 양자컴퓨터가 아닌 다른 새로운 컴퓨터로 이 과제에 도전하겠다는 과학자들이 있다. 일본 토호쿠대와 미국 퍼듀대 공동 연구팀은 자기터널접합 소자를 비트로 하는 자칭 ‘확률컴퓨터(stochastic computer)’로 인수분해 연산에 성공했다고 ‘네이처’ 9월 19일자에 발표했다. 이들은 8비트 프로세서로 3자릿수인 ‘945’가 ‘63×15’임을 보였다. 

 

확률컴퓨터의 작동 개념은 양자컴퓨터와 비슷한데 아직 성능은 못 미친다(양자컴퓨터는 6자릿수 인수분해에 성공했으므로). 이래저래 양자컴퓨터의 짝퉁으로 보인다. 물론 연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논문을 게재한 ‘네이처’도 사설까지 동원해 이들의 성과를 추켜세우며 정부나 기업이 양자컴퓨터 연구만 지원하지 말고 확률컴퓨터에도 관심을 보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도대체 확률컴퓨터란 무엇일까.

 

이야기는 1981년 미국 MIT에서 개최된 ‘제1회 물리학과 계산에 관한 컨퍼런스’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자전기역학 연구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컴퓨터를 이용한 물리학 시뮬레이션’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0과 1 이진수를 기반으로 하는 고전적(디지털) 컴퓨터로는 양자 세계를 제대로 시뮬레이션할 수 없다며 양자비트(훗날 큐비트로 불림)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파인만은 양자역학의 확률적 행동을 모방할 수 있는 고전적 컴퓨터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38년이 지난 지금 양자컴퓨터가 첫 동력비행에 성공했고(양자우월성 성취) 양자컴퓨터를 모방한 확률컴퓨터가 처음 구현된 것이다.

 

확률컴퓨터는 나노자석 하나가 비트를 이룬다. 그런데 이게 하드드라이브에 쓰이는 기존의 자석 비트와는 좀 다르다. 기존의 자석 비트는 극성(전자 스핀의 모임)의 상태에 따라 우리가 익숙한 트렌지스터의 전자 비트와 마찬가지로 0 또는 1의 값을 지정받는다. 반면 나노자석 비트는 극성이 정해져 있지 않고 0으로 존재할 확률과 1로 존재할 확률이 공존하는 상태다. 이는 전자 하나의 스핀 값을 비트로 하는 양자컴퓨터에서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다만 양자 스핀은 동시에 존재하지만 나노자석 극성은 밀리초 단위로 바뀌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자기터널접합(magnetic tunnel junction)’ 소자를 나노미터 크기로 작게 만들어 나노자석을 구현했다. 자기터널접합 소자는 강자성체 두 층 사이에 부도체 층이 있는 샌드위치 구조다. 강자성체 한 층은 영구자석처럼 극성이 고정돼 있고 다른 층은 연결된 트랜지스터의 전류 방향에 따라 극성이 바뀐다. 이때 두 강자성체의 극성이 같으면 낮은 저항값을, 다르면 높은 저항값을 보인다. 이 현상을 이용한 비휘발성(전원을 껐을 때도 유지되는)  메모리가 바로 M램(MRAM)이다.

 

M램에서는 정보를 안정하게 지니고 있어야 하므로 트랜지스터에 연결된 강자성체 층의 극성이 외부 신호(전류 방향)의 변화가 없을 때 바뀌면 안 된다. 그런데 소자를 작게 만들면 열적 잡음(thermal noise)으로도 극성이 바뀌게 된다. 그 결과 비트의 값이 정해져 있지 않게 되고 따라서 저자들은 이를 ‘확률적 비트(probabilistic bit)’로 불리는 피비트(p-bit)라고 부른다. 

 

컴퓨터에 쓰이는 네 가지 비트. 맨 왼쪽은 트랜지스터의 전자 비트로 게이트에 쌓인 전하에 따라 0 또는 1이 할당된다. 다음은 전형적인 자기 비트로 극성(자기 모멘트)에 따라 0 또는 1이 할당된다. 다음은 확률 자기 비트(피비트)로 극성이 확률적으로 바뀌면서 지정한는 값도 0과 1 사이를 오간다. 맨 오른쪽은 큐비트로 단일 전자의 두 스핀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며(중첩) 옆 전자의 스핀 상태와 묶여 있다(얽힘). 네이처 제공
컴퓨터에 쓰이는 네 가지 비트. 맨 왼쪽은 트랜지스터의 전자 비트로 게이트에 쌓인 전하에 따라 0 또는 1이 할당된다. 다음은 전형적인 자기 비트로 극성(자기 모멘트)에 따라 0 또는 1이 할당된다. 다음은 확률 자기 비트(피비트)로 극성이 확률적으로 바뀌면서 지정한는 값도 0과 1 사이를 오간다. 맨 오른쪽은 큐비트로 단일 전자의 두 스핀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며(중첩) 옆 전자의 스핀 상태와 묶여 있다(얽힘). 네이처 제공

 

계산에 드는 에너지 크게 줄어

 

확률컴퓨터는 0과 1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피비트가 신경네트워크의 원리에서 영감을 받은 원리에 따라 다른 피비트와 상호작용하면서 계산을 수행한다. 확률컴퓨터가 인수분해 같은 최적화 문제는 푸는 작동 방식은 양자컴퓨터의 단열양자계산(adiabatic quantum computing)과 비슷하다. 

 

즉 인수분해를 하고자 하는 어떤 수의 두 인수를 변수(X와 Y)로 하는 에너지 함수를 만든 뒤 함수의 에너지가 최소가 될 때 두 변수의 값이 바로 정답이다. 피비트들이 신경네트워크로 계산을 한 결과는 확정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주어진다. 이는 피비트의 사이비 중첩성(0과 1 사이를 밀리초 수준의 빠른 주기로 오가지만 양자상태의 중첩성은 아님)에 기인한다.

 

연구자들은 자기터널접합 소자와 이에 연결된 트랜지스터를 하나의 피비트로 한 8피비트짜리 회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숫자를 입력해 인수분해를 제대로 하는지 확인했다. 예를 들어  35(=XY)의 경우 4피비트만 써서 계산했고 막대그래프로 표현된 결과를 보면 X와 Y가 5와 7 또는 7과 5일 때 확률이 가장 높다(순서는 관계가 없으므로 같은 결과다). 이게 답이라는 말이다.  

 

161은 6피비트를 써서 계산했고 확률 그래프에서 ‘23×7’의 막대가 가장 길다(확률이 가장 높다). 끝으로 945는 8피비트로 계산한 결과 ‘63×15’의 확률이 가장 높았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확률컴퓨터의 개념이 실제 작동한 걸 보여줬다”며 이번 연구의 의미를 자평했다.

 

그런데 양자컴퓨터가 이미 한참 앞서가고 있는 마당에 굳이 확률컴퓨터를 개발할 필요가 있을까. 이에 대해 미국 인텔의 연구원 드미트리 니코노프는 ‘네이처’ 같은 호에 실린 해설에서 몇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먼저 기존 M램을 만드는 과정을 약간 바꾸면 되므로 피비트 수를 늘린 나노자석 칩을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다. 반면 양자컴퓨터의 칩은 큐비트 수를 늘리기가 꽤 어려울 것이다.

다음으로 양자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양자 교란을 막기 위해 절대 0도(-273.15℃)에 가까운 극저온을 유지해야 하는 반면 확률컴퓨터는 상온에서 작동한다. 한 세대 뒤에도 개인 양자컴퓨터가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개인 확률컴퓨터는 존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8피비트로 945를 인수분해한 것 자체도 에너지의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디지털 컴퓨터로는 트렌지스터가 1000개 이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이처’에 실린 사설에 따르면 확률컴퓨터의 연산에 드는 에너지가 디지털컴퓨터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전체 전력 사용량에서 데이터 관리에 드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빅데이터 시대에서 확률컴퓨터 또는 피비트 회로가 결합한 디지털컴퓨터가 등장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양자컴퓨터는 연산 자체만 보면 에너지가 훨씬 덜 들겠지만 극저온을 유지하는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상용화가 되더라도 ‘양자우월성’이 확실한 ‘고급’ 계산 분야로 적용범위가 국한될 것이다.  

 

확률컴퓨터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왼쪽은 8피비트로 이뤄진 회로로 위에 네 개, 아래 네 개의 확률자기터널접합(stochastic MTJ) 소자로 이뤄져 있다. 오른쪽은 4피비트로 숫자 35를 인수분해한 결과를 확률 그래프로 나타낸 값이다. 위는 피비트 사이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이고 아래는 연결해 계산한 결과로 (7, 5)와 (5, 7)의 확률이 가장 높다. 네이처 제공
왼쪽은 8피비트로 이뤄진 회로로 위에 네 개, 아래 네 개의 확률자기터널접합(stochastic MTJ) 소자로 이뤄져 있다. 오른쪽은 4피비트로 숫자 35를 인수분해한 결과를 확률 그래프로 나타낸 값이다. 위는 피비트 사이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이고 아래는 연결해 계산한 결과로 (7, 5)와 (5, 7)의 확률이 가장 높다. 네이처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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