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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우등생일수록 근시 많다는 이야기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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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우등생일수록 근시 많다는 이야기 사실일까

2019.11.09 09:00
브라이언홀든안과연구소 제공
브라이언홀든안과연구소 제공

주변을 돌아보면 온통 안경을 쓴 사람이다. 안경을 쓰지 않은 사람도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부분은 근시다. 현대 사회의 당연한 현상 같지만, 진화적으로 보면 이상야릇한 일이다. 수렵채집사회라면 멀리 있는 먹잇감을 찾고, 무서운 포식자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수 킬로미터 밖의 딸기 나무를 찾아내고, 멀리 있는 매력적인 이성을 남보다 먼저 발견하는 것도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근시를 앓고 있다니, 도대체 안경점 외에는 무엇이 좋은 것일까? 

 

어린 시절에 혼나 본 경험이 있다면, ‘근시는 책이나 텔레비전을 너무 들여다봐서 생긴 것’이라고 믿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과 담을 쌓고 산 영희도, 커다란 텔레비전을 멀리서 시청하는 철수도 모두 근시다. 왜 현대인은 먼 곳을 잘 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먼 곳을 보지 못하는 인류

 

전 세계 인구의 22%가 근시다. 약 15억 명이다. 네팔은 1%에 불과하지만, 동아시아 일부 지역은 절반을 훌쩍 넘는다. 한국은 근시 ‘선진국’이다. 주변을 돌아보자. 안경을 쓰지 않는 친구를 찾아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용케 찾아내도 ‘사실 콘택트렌즈를 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을지도 모른다. 2018년 한 역학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근시 유병률은 90%에 달했다(20세 기준). 

 

보통 시력은 0.3, 1.2 식으로 표현한다. 말 그대로 ‘보는 힘’이다. 예를 들어 0.5의 시력을 가진 사람은 난시일 수도 있고, 근시일 수도 있고, 원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근시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근시는 빛의 초점이 망막 앞에 맺히는 상태를 말한다. 안축이 늘어나서 생기는 현상이다. 가까운 곳은 괜찮은데, 먼 곳은 흐리게 보인다. 초점이 정확하게 망막에 맺혀야 또렷하게 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오목렌즈를 사용하여 초점을 뒤로 좀 옮겨주어야 한다. 디옵터는 렌즈의 볼록한 정도, 정확하게 말하면 굴절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1 디옵터를 가진 렌즈는 1m 앞에 초점을 맺는다. +2디옵터는 50cm 앞이다. 근시는 초점이 가깝게 맺히는 증상이므로 마이너스 디옵터를 가진 렌즈로 교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근시인 사람들이 ‘내 눈은 마이너스라는데’라고 알고 있다. 

 

근시는 수정체나 각막 혹은 안축의 문제지만 결국 망막에도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넓은 망막에 빛이 퍼진 상태로 도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망막이 점점 얇아지고 변성이 일어난다. 경도 근시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고도 근시에서는 자칫하면 망막이 찢어지거나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고도 근시라면 안경점에서 말없이 안경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반드시 안과 검진을 권유하므로 안경사의 조언을 따르도록 하자. 

 

근시의 원인 

 

원래 눈에 달린 렌즈, 즉 수정체는 유연하다. 디옵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가까운 곳도 보고 먼 곳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근시인 사람은 렌즈가 ‘굳어’ 버린 것일까? 

 

근시를 앓는 수렵채집인은 아마 큰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맛있는 토끼인지 무서운 뱀인지 코를 가져다 대야 알 수 있다면 오래 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먼 곳에 있는 먹잇감을 찾고, 호랑이를 피해야 한다. 매력적인 이성도 남보다 얼른 찾아야 한다. 계곡과 절벽을 누비며 돌아다녀야 하는데, 먼 곳을 잘 보지 못한다면 큰일이다. 

 

현대 의학이야말로 근대 사회가 이룬 커다란 개가 중에 하나다. 그런데 15억명이 앓는 근시의 원인을 모른다니 고개가 절로 갸웃거린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근시의 원인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일단 원인 이야기가 나오면 첫머리에 나오는 것이 유전. 근시는 분명 유전성이 있다. 그러니 부모님 양쪽이 근시라면 아마 높은 확률로 근시가 될 운명이다. 오히려 근시가 아니라면 출생의 비밀을 의심해봐야 할지도. 실제로 근시와 관련된 유전자가 십여 개 발견되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유전자는 아직 찾지 못했다. 아마 여러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저주받은 근시의 핏줄’이라고 얼버무릴 것은 아니다. 수렵채집인은 근시가 아주 적지만, 산업화한 삶의 방식으로 바뀌면서 근시가 갑자기 늘어났다. 단 한 세대 만에 유전적 변화가 일어날 리는 없다. 유전적인 요인은 근시 일부만을 설명할 수 있다. 

 

유전 이야기 다음에 늘 등장하는 환경설이다. 가까운 것을 열심히 보다가 근시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발달 과정에 자극을 받으면 근시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 '망막 탈 초점 가설'라고 한다. 책을 멀리 두고 보라고 부모님이 잔소리하시는 이유다. 하지만 명확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다. 안경 썼다고 모두 우등생이 아닌 것처럼, 책을 별로 안 봐도 눈이 나쁜 사람은 많다. 공부라도 잘하면 덜 억울할 텐데 말이다. 

 

혹시 체구가 커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굶주리던 시절을 벗어나 몸이 점점 커지니까 안 축이 길어졌다는 주장인데, 흔히 '체구 증가 가설'이라고 한다. 환경의 개선이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결과를 유발했다는 일종의 불일치 가설이다. 

 

불일치 가설이 가장 많다. 가까운 곳을 너무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것을 보지 못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즉 산도 보고, 바다도 보고, 벌레도 보면서 여러 자극에 노출되어야 하는데, 현대 사회는 그런 자극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눈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야외에서는 빛을 많이 받는데,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빛 유발성 도파민 분비가 감소하고 눈 성장을 억제하는 도파민이 감소하므로 안축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실내 작업 가설'이라고 한다. 정반대로 눈은 낮에 자라고 밤에는 성장을 쉬는데, 낮밤이 따로 없는 환경이 눈을 쉬지 못하게 한다는 가설도 있다. 

 

근시는 우등생

 

안경 썼다고 우등생은 분명 아니지만, 상당수의 우등생은 안경을 쓰는 것 같다. 오랜 과거 시험의 전통이 있는 한국 등 동아시아 사회의 근시가 유독 높은 것도 수상하고, 유대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두 배나 근시가 많은 것도 이상하다. 혹시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근시는 정시나 원시에 비해서 높은 지능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연구에서 거의 일관된 결과를 보여주는데, 근시와 높은 지능은 ‘인과 관계의 방향성’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양의 상관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상식적으로 근시가 높은 지능의 원인일 것 같지는 않지만. 

 

몇 가지 가설이 있다. 일단 눈이 너무 쑥쑥 자라면 근시가 온다. 그런데 눈은 일종의 뇌 신경이다. 따라서 눈의 성장과 뇌의 성장이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혹은 어린 시절에 책을 많이 읽으면, 눈도 나빠지고 지능도 높아진다. 근시와 지능은 서로 관련성이 없지만, 공통 원인을 가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지능이 높은 아이는 어린 시절에 책을 좋아한다. 가까운 곳에서 책을 보니 근시가 온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가설도 있다. 근시는 원시에 비해서 가까운 곳을 볼 때 수정체의 조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지능 검사를 할 때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상위 효과로 설명하는 흥미로운 주장이 있다. 이른바 눈-뇌 유전자(EBG)라는 것이 있는데, 높은 지능과 근시를 모두 유발하는 단일 유전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렵채집사회의 환경은 근시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으므로, 높은 지능의 이득만을 누릴 수 있었다. 현대 사회의 환경이 바뀌면서 근시를 억제하는 환경이 사라져서 근시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EBG가 뭔지는 모른다. 그냥 그런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수준의 가설이다. 

 

 

점점 늘어나는 근시

 

아기는 원시로 태어나서 점점 정시로 바뀐다. 아마 우리 조상도 대부분 정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근시가 폭증하고 있다. 현재도 15억 명이지만, 2050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근시를 앓을 것으로 보인다. 안경 회사 주식을 사둔다면 큰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근시가 늘어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안경을 쓰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인류가 진보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발이 없으면 맨땅을 걷지도 못하고, 성냥이 없으면 불도 붙이지 못하고, 돌도끼로 사냥도 못 한다고 해서 우리의 선조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류는 환경 변화에 적응해왔고, 다만 현대 사회의 환경 변화는 ‘인간 스스로’ 일으킨 측면이 강하다는 것뿐이다.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주장이 하나 있다. 눈 위에는 전전두엽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마에 있는 뇌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서 이마 뇌가 크게 발달해있다. 앞짱구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추리, 공감 등을 담당한다. 도덕과 가치 판단에 깊게 관여하는데, 놀랍게도 전전두엽은 상당 부분을 잘라내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다만 우울증을 앓거나 행동 억제가 안 되고, 도덕이나 윤리 등의 판단력을 잃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전두엽의 크기가 증가하면서 눈을 위아래로 눌러 안축이 길어진 것일까? 입증할 방법이 없는 ‘그냥 그랬다는 이야기’식의 주장이지만, 뭔가 와닿는 면이 있다. 현대인은 근시를 앓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더 심해질 것이다. 멀리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근시의 원인이 실내에서 공부를 너무 해서 그런 것이든, 책을 너무 봐서 그런 것이든 역설적으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멀리’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물리적 시각의 손해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지혜를 통해 얻는 정신적 시각의 이익이 훨씬 크다. 아무리 근시가 늘어나도 ‘눈먼 자들의 도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 편 미리보기 I 옷의 진화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근시는 역설적으로 안경의 진화를 낳았다. 만약 안경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근시도 이렇게 늘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생존의 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안경과 근시가 공진화한 것이다. 최초의 안경은 그리스, 로마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지만 아마 본격적인 근시 교정용 안경은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13세기 경부터 안경을 쓴 초상화가 등장하곤 한다. 긴 진화사에 비하면 아주 최근의 일이다. 

 

비슷한 일은 이전에도 여러 번 일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체모의 감소와 옷의 진화다. 만약 옷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체모가 이렇게 감소하지 못했을 것이다. 겨울에 죄다 얼어죽었을 것이다. 더운 지방이라면 괜찮지만, 고위도 지방이라면 곤란하다. 옷을 입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옷은 언제 등장했을까? 인류 최초로 옷을 입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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