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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반도체 산학연 세계 최고 수준. 연구 다양성 부족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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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반도체 산학연 세계 최고 수준. 연구 다양성 부족이 문제"

2019.11.18 19:18
SK하이닉스가 개발한 CTF 기반 96단 512Gb 4D 낸드플래시는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올해 반도체 분야 최신 성과로 꼽혔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음. 한국공학한림원-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가 개발한 CTF 기반 96단 512Gb 4D 낸드플래시는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올해 반도체 분야 최신 성과로 꼽혔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음. 한국공학한림원-SK하이닉스 제공

한국 반도체 산업과 학계는 미국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연구 분야의 다양성이 아직 부족하다는 학계 및 산업계의 지적이 나왔다.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지능형반도체, 시스템반도체 외에도 아날로그 반도체와 유무선 통신, 실리콘 광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그런데 특정 인기 분야에만 정부 지원이 몰리면서 다른 분야에서는 장기적인 인재양성 등에 문제가 생기는 등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 연구를 강화하고 연구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이나 대학에 무료로 팹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현실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도체 분야에선 대표적인 국제학회로 꼽히는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 참여하는 한국측 전문가들은 이달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ISSCC 2020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반도체 분야의 최신 연구개발(R&D) 동향을 발표했다. 


ISSCC는 1954년 설립된 반도체 집적회로 및 시스템 분야 학회로 매년 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최된다. 25개국 30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며, 60%의 참가자가 산업계일 정도로 실용적인 연구가 활발히 발표된다. 내년 2월 16~2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인공지능(AI) 시대를 강화하는 집적회로’를 주제로 개최된다. 양자컴퓨터칩, 3차원 집적 실리콘 광학 등 새로운 기기와 AI, 머신러닝, 사물인터넷, 유무선 통신 등 12개 분야의 반도체 및 회로 기술이 다수 공개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의 대표적 산업계-학계 연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반도체 분야의 편중을 걱정했다. 최재혁 KAIST 교수는 “ISSCC에만 12개 분야가 있고, 다른 분야 연구자끼리는 서로의 연구에 대해 자세히 모를 정도로 차이가 큰데, 5세대(5G) 이동통신, AI 등 특정 부분에 정부 지원금이 몰리는 일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AI를 하려 해도 디지털 회로 아날로그 회로 등 기반이 돼야 하는 연구 주제가 많은데 이름에 AI가 없어서 선정이 잘 안 되는 일이 생기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4월 발표한 시스템반도체 지원 계획에 대해서는 입장이 갈렸다. 우선 기업은 대체로 정부의 지원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다. 정우경 삼성전자 PL은 “기업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연구를 하는 조직”이라며 “따라서 연구가 필요한데 (연구비가 없어) 연구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학계는 “큰 틀에서 인력양성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좀더 분야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이 이져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병섭 포스텍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파이가 커지는 만큼 정부의 지능형반도체 사은 분명 학계에 도움이 된다”며 “다만 상향식 연구주제 제안이 적은 한국 특성상 특정 주제에 논문이 몰리다 보니 학문 다양성이 제한되는데 이 부분이 개선되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논문 수로 결과를 평가하는 한국 특성상 논문이 잘 안 나오는 분야는 점차 경쟁력을 잃는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유선통신을 다루는 와이어라인 분야의 경우 한국이 강했던 분야인데, 오래 연구해야 겨우 논문 한 편이 나오다 보니 지원이 줄었고 지금은 한국에서 이 분야가 크게 위축됐다. 실리콘 광학 등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국제고체회로학회 2020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이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참석자들이 학회 개요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슈윤섕 ISSCC사무총장(대만 미디어텍 연구원), 다카미야 마코토 회장(일본 도쿄대 교수), 엄용 삼성전자 수석이다. 윤신영 기자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국제고체회로학회 2020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이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참석자들이 학회 개요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슈윤섕 ISSCC사무총장(대만 미디어텍 연구원), 다카미야 마코토 회장(일본 도쿄대 교수), 엄용 삼성전자 수석이다. 윤신영 기자

학계는 특히 중국의 약진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2020년 20여 편의 논문을 내 대만과 함께 3위권에 올라섰다. 2015년 이후 기복 없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산업계보다 대학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최재혁 교수는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특성화대를 지정해 무료로 팹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몇 년 전부터 지원을 하고 있는데 그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며 “마카오대와 칭화대, 저장대 상해교통대 등 거점대가 2020년 ISSCC에서도 많은 논문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과 지역에서 팹이 가능하도록 하는 정부 지원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도 이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한국은 삼성 등 기업이 팹을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는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도 이런 분야의 지원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섭 교수도 “반도체 기술이 점점 미세공정으로 가면서 측정장비와 공정은 비싸졌는데, 연구비 규모는 달라지지 않았다”며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과 지역의 경쟁력 약화가 반도체와 공학 전반의 경쟁력을 낮출 우려도 제기됐다. 김성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일본이 공학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이제는 미국 한국은 물론 중국 대만보다 ISSCC 논문 제출 수가 적은 등 경쟁력이 낮아졌는데, 한국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우려했다.


최근 반도체 분야는 진입장벽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세계적 실력을 갖춘 대기업과 일부 학계 중심으로 ‘판’이 재편되면서 신규 학교나 중소기업이 명함을 내밀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김병섭 교수는 “한국도 지난해, 올해 논문 편수는 증가하고 있는데 학회에 논문을 낸 기관의 수는 반대로 계속 줄고 있다”며 “논문을 내는 중소기업 수도 줄고 있는데, 모두 전세계적인 경향”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7~8년 전만해도 국내에 좋은 팹리스가 많이 있었지만, 큰 시장의 경쟁 속에서 대부분 인수합병(M&A)됐다. 대기업과 인력 경쟁 등에서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느끼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소기업이 논문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기술 보안 등 다른 이유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익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수석은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만 해도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중소기업의 논문 제출을 보지 못했다”라며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술을 공개했을 때 경쟁사가 가져갈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문가들은 내년 반도체 분야의 기술 이슈를 선정해 소개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대만의 TSMC가 최초로 5nm(나노미터. 1nm는 10억 분의 1m) 선폭 공정을 지니는 S램을 공개한다는 점이 꼽혔다. 이동욱 SK하이닉스 DRAM개발사업부문 수석은 “팹 기업은 인텔과 삼성, TSMC 등 세 곳에 불과한데, TSMC가 S램 기술을 선제적으로 발표하며 기술을 과시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ISSCC에서는 어느 정도 기술력이 있어야 논문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술은 국내에서도 확보된 상태다. 노미정 삼성전자 수석은 “삼성전자 역시 양산 기술을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은 AI와 슈퍼컴퓨터 등 고속연산이 필요한 분야의 핵심 메모리기술인 HBM분야에서 대역폭을 넓힌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미지 분야와 바이오의학 분야에서도 흥미로운 연구가 많이 나올 예정이다. 거리 측정 기능이 있어 3차원 영상을 측정하고 만드는 ToF 센서 분야가 많은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AI나 가상현실(VR) 등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삼성전자와 일본 기업 등의 논문이 많이 제출됐다. 자율주행자동차에 쓰이는 측정용 라이다 기술에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의학 쪽에서는 뇌 신호 측정 등 기술이 많이 공개될 예정이다. 한동안 인기를 얻었던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이나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은 논문 제출은 많았지만 채택은 적거나 제출이 적어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ISSCC 2020에서는 12개의 분과에서 총 202편의 논문이 선정되어 발표될 예정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논문은 총 97편이 선정돼 2015년 이후 처음으로 북미 지역의 논문 수를 추월했다. 한국 논문은 총 35편이 선정돼 국가 기준으로 미국(71편)에 이어 2위를 유지했다. 삼성전자는 13편의 논문이 선정돼 전 세계 기관 순위 1위를 탈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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