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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원 두 곳과 국제 협력연구 파국 이끈 1년…남은 건 "한국은 원더랜드"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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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원 두 곳과 국제 협력연구 파국 이끈 1년…남은 건 "한국은 원더랜드"이미지

2019.11.27 07:04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방사광가속기 고등광원(ALS) 내부의 모습을 찍었다. 이곳과 연동된 연구장비 이용 대금은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신성철 KAIST 총장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다. 최근 이 장비이용대금 지급이 일방적으로 보류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공 LBNL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방사광가속기 고등광원(ALS) 내부의 모습을 찍었다. 이곳과 연동된 연구장비 이용 대금은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신성철 KAIST 총장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다. 최근 이 장비이용대금 지급이 일방적으로 보류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공 LBNL

신성철 KAIST 총장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미국 연구기관에 보내지 않아도 될 돈을 송금하고 현지 제자를 편법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지 26일로 꼭 1년이 흘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감사관실(감사관 손승현)은 혐의 입증을 자신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감사관실은 올해 초부터 검찰 조사가 시작된 만큼 검찰 조사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검찰은 연말이 다 되도록 적극적인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볼 때 입증이 불가능한 사안이었거나 감사 자체가 무리수였던 것이 아니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사태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 연구센터에는 정부가 약속한 연구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미국 연구기관에 협력연구를 위해 보내기로 예정한 연구비도 송금도 보류된 상태여서 사실상 협력 연구는 중단됐다.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연구와 협력 중단이 장기화하면 현재까지 해놓은 연구가 후퇴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미국측 연구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조치에 의문을 표하며 이성적이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이상한 나라(wonderland)’라로 불리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전언도 있다. 오랜 노력으로 구축해 온 국제 협력연구가 물거품이 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과학계에선 사실상 국제협력 연구 사업 1개와 KAIST와 DGIST 등 2개 과기원을 파국으로 이끈 이번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연착륙시킬 ‘출구전략’을 세우고 사태 장기화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26일 과학계와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신 총장을 둘러싼 제자 불법 지원을 비롯한 각종 의혹에 관한 검찰 조사는 사태 시작 1년이 되는 이날까지 완결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의 핵심인 신 총장은 검찰 소환도 이뤄지지 않았고, 미국 쪽 연구기관인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에 소속된 신 총장의 제자에 대한 조사도 올 여름 약식 조사를 끝으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 DGIST 교수들은 일부 소환된 일은 있지만, 이마저도 최근에는 잠잠하다.


사태가 1년 넘게 장기화되면서 과학계에선 조속히 사태를 마무리지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된 사람과 기관의 활동이 위축되고 정상적인 연구가 제약 받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먼저 대외적으로 한국 과학이 입은 손실이 뼈아프다. 협력 연구 대상으로서의 신뢰성을 일부 잃었다는 평가다. 관련 분야의 한 전문가는 “미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국을 ‘이상한 나라(wonderland)’라고 부르고 있다”며 “사실 관계 확인 없이 언론 보도가 먼저 나오는 등 결론을 먼저 정해 놓은 듯한 ‘이성적이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니 신뢰하지 못 하겠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DGIST는 과기정통부의 지시로 LBNL로 가던 장비이용대금을 더 이상 지급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보류한 게 대표적이다. 국제 협력에서 큰 결례라는 평가다. 한 전문가는 “LBNL은 장비 이용시간을 사전에 기록해 둔 일정표에서 독점이용시간을 삭제하는 행위마저 계약 파기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남겨두고 기다릴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반면 한국 정부는 구체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계약된 이용대금 지급을  보류했고, 그렇다고 계약을 파기하지도 않은 채 지금에 이르고 있어 미국이 몹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일관되지 않은 한국 정부의 대응이 더해지면서 사태가 더 악화됐다는 반응이다. 과학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감사관실은 사태 초기인 지난 해 말 LBNL이 “계약에 문제없다”고 공식 발표하자 “기관간 계약을 문제 삼은 적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계약을 문제 삼으며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상대 기관인 LBNL이나 미국 에너지부(DOE)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LBNL에 근무하고 있는 연구자 개인을 대상으로 탐문을 시도하다 LBNL 법무팀의 제지를 받는 등 전문가답지 못한 면도 여러 차례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논란의 대상이 된 LBNL X선 광학센터의 X-1 현미경은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7년에 걸친 협력연구가 사실상 백지 상태가 됐다. 계약에 따라 DGIST 등 한국연구자가 전체의 50%까지 확보했던 독점이용시간은 현재 무용지물이다. 시간 배정은 아직 명목상 남아 있지만, 이는 아직 공식 계약 파기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LBNL이 취소를 보류하고 있기 때문일 뿐, 실제 이용은 되지 않고 있다. 연구자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장비 이용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 연구자만이 LBNL에 일반 사용자 장비사용시간(general user time)을 요청해 3~5일씩 짧게 배정되는 이용시간을 확보해 근근이 연구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활발히 연구하던 미래 소자인 스핀자성체 등 관련 연구도 최근 크게 위축된 상태다.


가장 큰 고통은 현장의 연구자들이 겪고 있다. 사태가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1년이나 질질 끌면서 관련 연구센터와 연구자들은 하나 둘 고사 직전 상태를 맞고 있다. DGIST-LBNL GRDC는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지급받기로 한 사업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사태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보니, 연구재단은 사업을 취소하지도 못하고 사업비를 정상지급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무한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센터의 연구자들은 다른 연구비 과제도 줄줄이 끊기며 연구비 ‘절벽’을 맞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다른 과제로 연구자들의 인건비를 근근이 지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조만간 재원이 바닥날 것으로 보인다. 뚜렷한 혐의도 입증되지 않았는데 지나치게 가혹한 상태로 연구자를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학계에서는 1년을 맞은 이번 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리고 종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자 누구든 절차를 준수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근거를 바탕으로 사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의혹이 제기됐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사실을 밝혀 시비를 가리는 게 옳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11월 25일 밤 일부 언론을 통해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어 과기정통부 감사관실의 검찰고발과 KAIST 이사회에 대한 직무정지요청안 제출이 잇따라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초 신 총장이 직접 해명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미국 기관인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가 “계약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 및 과기정통부 장관 등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밝히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후 과학계의 비판 성명이 이어지고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한국 과학계가 항의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사태를 보도하며 과학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말 KAIST 이사회는 신 총장의 직무정지안에 대해 유보 결정을 내렸고, 사태는 빠르게 소강 상태에 접어들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말~올해 초만 해도 검찰 조사가 시작된 만큼 빠르게 시시비비가 가려져 사태가 안정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강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검찰은 일부 참고인 조사만 직간접적으로 한 채 아직까지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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