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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살로 이어지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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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살로 이어지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2019.11.30 12:0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떠나보낸 한 해였다. 여전히 가해자는 잘 살아가지만 피해자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밀려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범죄 피해의 생존자들을 지지하고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성폭력이나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등의 트라우마가 자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만약 주변 사람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나라도 먼저 눈치채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고나면 흔히 그 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겼다고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은 아니며 PTSD는 다음의 증상을 동반한다.

 

1) 충격적인 사건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눈 앞에 재현되거나 머리 속에서 불현듯 떠오른다. 사건에 대한 악몽을 반복해서 꾸기도 한다.

 

2) 해당 사건과 관련이 있거나 그 일을 떠오르게 만드는 자극들로부터 도피하게 된다. 또는 감정적으로 무감각하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마비 상태가 되기도 한다,

 

3) 과각성상태를 보이기도 해서 주의 집중이 힘들고 작은 인기척에도 화들짝 놀라거나 계속해서 안절부절한 상태를 보인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심리학자 마리아 파나지오티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사건이 충격적인 정도가 심하고 지속된 기간이 길며 오래 전보다 최근에 일어났을수록 더 높은 확률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나며 남성보다 여성이 약 두 배 정도 더 높은 비율로 PTSD를 경험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자연재해, 목숨이 위험했던 다양한 사건 사고 중에서도 성폭력, 신체적 학대,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더 높은 확률로 PTSD를 동반하는 경향을 보인다. 

 

많은 PTSD 환자들이 분노와 불안, 소외감, 죄책감, 불신 같은 부정적 감정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다른 정신질환을 앓을 확률 또한 높은 편이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환자들의 약 29%가 자살 행동을 보이는데 PTSD 환자들은 이 수치보다도 더 높은 약 57%가 자살 행동을 보인다. 

 

PTSD를 겪는데는 과거의 상처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성적, 신체적 학대를 겪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이후 PTSD를 더 많이 겪고 자살 행동 또한 더 많이 보였다는 연구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과거력이 없어도 PTSD는 여전히 자살 시도와 관련을 보였다고 한다. 

 

이제 다 끝이라는 느낌

 

심리적으로는 더 이상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든가 앞으로 뭘 위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미감, 방향감각 상실이 PTSD환자들의 자살 시도와 관련을 보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자살은 지금의 괴로움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시급히 탈출하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PTSD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탈출하고 싶은 마음과 여전히 할 게 남아 있다는 마음이 계속해서 싸우는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이 때 희망이나 긍정적인 신호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계속 싸워도 고통만 심해질 뿐 더 나아질 것이 없다는 좌절과 무기력이 자살 시도를 불러올 수 있다고 한다. 

 

일례로 한 연구(Ami et al., 1999)에 의하면 문제 해결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모으며 대안을 살피는 능력의 상실, 이 일이 생각보다 싸워서 이겨볼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거나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일의 심각성을 낮게 생각해보는 능력의 상실, 이게 아니더라도 다른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며 대안을 고려해볼 상황적 능력적 여유가 없는 것 등이 PTSD환자들의 자살시도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속시원하게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웃는 얼굴을 하는 등 자신의 괴로움을 감추는 감정의 억압 또한 자살 시도와 큰 관련을 보였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느낌 또는 실제 그런 상황, 새로운 위험을 계속해서 감지하고 몸을 사려야 하는 상황, 속마음을 꾹 감춰야만 하는 상황 등이 자살 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너도 뭔가 잘못한 게 있었을 거라며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비난하는 사회, 피해자 비난하기와 물어뜯기에 함께 가세하는 언론, 소위 ‘진정한 피해자’답게 항상 처신이 올바라야 하고 절대 감정적이어서는 안 되며 힘들다는 소리를 하거나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는 사람들의 시선 모두가 피해자를 사지로 내모는 원흉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등의 기타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술, 약물 중독 등을 보이는 경우 자살 시도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은 결국 외로워서 죽는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살아가지만 이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진 느낌을 받게 되면 그 때가 바로 세상을 등지는 순간이라고. 미약하지만 내가 너의 미래에 동참하겠다고 함께 걸어가겠다고 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피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진다면 안타까운 선택을 조금이나마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참고자료 

-Amir, M., Kaplan, Z., Efroni, R., & Kotler, M. (1999). Suicide risk and coping styles in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atients. Psychotherapy and Psychosomatics, 68, 76-81.

-Panagioti, M., Gooding, P., & Tarrier, N. (2009).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nd suicidal behavior: A narrative review. Clinical Psychology Review, 29, 471-482.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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