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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GMO 황금쌀, 20년 만에 빛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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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GMO 황금쌀, 20년 만에 빛을 볼까

2019.12.03 14:00
보통 쌀(앞)과 달리 황금쌀(뒤)은 베타카로틴을 함유하고 있어 노란색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보통 쌀(앞)과 달리 황금쌀(뒤)은 베타카로틴을 함유하고 있어 노란색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황금쌀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뭘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았다면 난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잉고 포트리쿠스, 황금쌀을 만든 식물유전학자

 

다양한 유전자변형 식품 중 일부는 공공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식량을 생산해내야 하는 쉽지 않은 목표 달성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유전자변형 작물의 장점을 따로따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 피터 싱어, ‘더 나은 세상’에서

 

지난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큰 혜택을 받은 항기생충 의약품을 개발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상의 절반은 전통 약초인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분리해낸 중국의 투유유 교수가 받았고 나머지 절반은 감염된 사람을 실명에 이르게 하는 사상충증 치료제 이버멕틴을 개발한 윌리엄 캠벨과 기초연구를 한 오무라 사토시가 나눠 가졌다. 그런데 이버멕틴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꽤 감동적이다.

 

이버멕틴은 원래 동물 기생충 치료제로 개발된 것으로 제약사 머크에게 큰 수익을 안겨줬다. 그런데 캠벨은 이버멕틴을 사람 사상충증 치료제로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를 입증하는 데이터를 내놓으면서 분란을 일으켰다. 머크 이사진은 어차피 돈도 안 되는데 만에 하나 부작용이라도 나면 동물시장까지 흔들린다며 격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연구 담당 부사장 로이 바겔로스는 캠벨이 제안한 프로젝트를 승인했고 서아프리카 주민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대성공을 거뒀다. 매개체인 흑파리의 서식지인 강 인근 주민들은 사상충에 감염돼 각막염으로 고생하다 결국 실명하게 되는 비극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다가 알약 하나의 기적에 환호했다.

 

1987년 10월 21일, 이제 사장이 된 바겔로스는 약값을 지원해줄 기관을 찾지 못하자 단독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사람에게 신약을 무료로 나눠주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 결과 머크는 1987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 멕티잔(이버멕틴 인간의약품 제품명) 무료 공급으로 2억 달러(약 2300억 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물론 그의 결단 덕분에 실명을 숙명으로 기다려온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고 캠벨과 오무라는 노벨상을 받았다.

 

학술지 ‘사이언스’ 11월 22일자에 실린 한 기사를 보며 문득 위의 이버멕틴 비하인드 스토리가 떠올랐다. 기사는 황금쌀이 개발된 지 거의 20년 된 만에 방글라데시에서 재배 허가를 받기 직전에 있다는 내용이다. 원래는 11월 15일까지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심사위원 8명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자기 죽어 다소 지연되고 있다고 한다.

 

허가가 나면 내년 한 해 동안 넓은 지역에서 현장 재배 시험을 한 뒤 2021년부터 농민들에게 씨가 공급될 예정이다. 황금쌀은 비타민A의 전구체(프로비타민A)인 베타카로틴이 함유된 쌀로, 만성 영양부족으로 어린이 21%가 비타민A 결핍인 방글라데시 같은 곳에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매년 50만 명 시력 잃고 100만 명 목숨 잃어

 

비타민A 섭취량을 보여주는 지도로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비타민A 결핍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빨간색). 위키피디아 제공
비타민A 섭취량을 보여주는 지도로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비타민A 결핍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빨간색). 위키피디아 제공

비타민A가 부족하면 밤에 잘 안 보이는 야맹증에 걸린다는 것은 다들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2005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세계 122개 나라에서 어린이 1억 9000만 명과 임산부 1900만 명이 비타민A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다.

 

그런데 만성적으로 결핍이 이어지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야맹증이나 각막연화증이 심해져 결국 실명에 이르는 사람의 수가 매년 50만 명이나 되고 이들 대다수는 5세 이하 어린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절반은 1년 이내에 사망한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비타민A는 시력뿐 아니라 면역력 등 몸의 여러 생리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비타민A 결핍이 직간접 원인이 돼 사망하는 사람이 매년 100만 명에 이른다. 

 

물론 비타민A 보충제를 먹으면 이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실제 유니세프 등 여러 기관에서 보급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대부분 사회 인프라가 부실해 지속적인 관리가 잘 안 된다. 당근이나 호박고구마 같이 베타카로틴(프로비타민A)이 풍부한 음식을 자주 먹게 하자는 제안도 있지만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런 걸 꾸준히 챙겨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사회였다면 애초에 비타민A 결핍이 만연하는 사태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주목한 게 쌀이다. 비타민A 결핍이 심각한 세 지역 가운데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쌀이 주식으로, 섭취하는 전체 칼로리의 1/3~2/3를 차지하고 있다. 좀 과장하면 간신히 밥만 먹고 산다는 말이다. 쌀의 배젖에는 베타카로틴이 들어있지 않지만 유전자변형(DNA재조합) 기술로 베타카로틴을 함유한 쌀을 만들 수만 있다면 이들 지역의 비타민A 결핍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1990년대 스위스와 독일의 공동연구자들은 베타카로틴을 함유한 쌀을 만들기 위해 생합성 과정에 필요한 효소 유전자(빨간색)를 선별해 벼의 게놈에 집어넣을 DNA 조각을 만들었다. 실험결과 쌀의 배젖에는 라이코펜을 베타카로틴으로 바꿔주는 효소가 존재해 lcy(lycopene cyclase) 유전자는 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90년대 스위스와 독일의 공동연구자들은 베타카로틴을 함유한 쌀을 만들기 위해 생합성 과정에 필요한 효소 유전자(빨간색)를 선별해 벼의 게놈에 집어넣을 DNA 조각을 만들었다. 실험결과 쌀의 배젖에는 라이코펜을 베타카로틴으로 바꿔주는 효소가 존재해 lcy(lycopene cyclase) 유전자는 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9년 만에 황금쌀 개발 성공

 

1990년 스위스 연방공대의 식물유전학자 잉고 포트리쿠스 교수는 DNA재조합 방법으로 쌀의 배젓에서 베타카로틴이 만들어지는 유전자변형 벼를 만든다는 구상을 하고 박사과정 학생인 페터 부르크하르트에게 학위논문 프로젝트로 맡겼다. 그러나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없었고 모든 걸 떠맡은 부르크하르트는 고민 끝에 수선화 전문가인 독일 프라이부크대 페터 바이에르 교수를 찾아갔다. 바이에르는 수선화 꽃잎의 노란색을 부여하는 베타카로틴의 생합성 경로를 규명한 세포생물학자다.

 

황금쌀에 흥미를 느낀 바이에르가 부르크하르트의 지도교수를 맡기로 하면서 프로젝트가 커지자 포트리쿠스도 연구비를 따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돈이 꽤 많이 드는 연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거대 식품회사 네슬레를 찾아갔지만 거절당해 의기소침하던 부르크하르트는 1993년 바이에르와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록펠러 재단의 문을 두드렸고 마침내 연구비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1999년 황금쌀을 개발한 주역인 잉고 포트리쿠스(왼쪽) 교수와 페터 바이에르 교수가 2004년 미국 루이지에나주립대 황금쌀 야외 재배 시험 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작 황금쌀이 필요한 지역에서는 허가가 나지 않아 미국에서 최초로 야외 실험을 진행했다. 황금쌀인도주의위원회 제공
1999년 황금쌀을 개발한 주역인 잉고 포트리쿠스(왼쪽) 교수와 페터 바이에르 교수가 2004년 미국 루이지에나주립대 황금쌀 야외 재배 시험 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작 황금쌀이 필요한 지역에서는 허가가 나지 않아 미국에서 최초로 야외 실험을 진행했다. 황금쌀인도주의위원회 제공

이렇게 해서 베타카로틴을 만드는 수선화의 유전자를 벼에 도입해 배젖에서 발현하게 만드는, 당시 기술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실험이 시작됐다. 

 

여기서 간단하게 베타카로틴의 생합성 경로를 알아보자. 출발 물질은 탄소 20개로 이뤄진 GGPP라는 분자로 식물에 널리 분포하고 쌀의 배젖에도 있다. GGPP 두 분자가 합쳐져 파이토엔(phytoene)이라는 탄소 40개짜리 분자가 되고 구조가 약간 바뀌어 라이코펜(lycopene. 토마토에 많이 들어 있는 붉은색 색소)이 되고 최종적으로 베타카로틴(β-carotene)으로 바뀐다. 이 과정에는 여러 효소가 관여하는데 쌀의 배젖에서는 이 효소들의 유전자가 발현하지 않기 때문에 생합성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1993년 연구자들은 GGPP 두 분자를 파이토엔으로 바꾸는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를 지정한 수선화의 psy 유전자를 벼의 배아에 넣었다. 이때 포인트는 수선화의 psy 유전자가 쌀의 배젖에서만 발현될 수 있게 유도하는 프로모터 영역(Gt1 p)을 psy 유전자 앞에 붙이는 것이다. 수선화의 psy 유전자가 성공적으로 도입된 벼에서 얻은 쌀을 분석한 결과 파이토엔이 존재했다. 생합성 반응이 제대로 일어났다는 말이다. 이 연구결과는 1997년 학술지 ‘식물저널’에 발표돼 주목을 받았다.

 

연구자들은 다음 단계로 배젖에서 라이코펜까지 합성하는 벼와 베타카로틴까지 합성하는 벼를 만들기로 했다. 수선화에서 파이토엔은 두 단계를 거쳐 라이코펜으로 바뀌고 각각에 다른 효소가 관여한다. 그런데 에르위니아(학명 Erwinia uredovora)라는 박테리아의 CrtⅠ 효소가 두 반응을 촉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연구자들은 대신 CrtⅠ 유전자를 쓰기로 했다. 배젖에서 라이코펜까지 합성하려면 수선화의 psy 유전자와 에르위니아의 CrtⅠ 유전자를 넣어줘야 한다.

한편 라이코펜을 베타카로틴을 바꾸는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는 수선화의 lcy 유전자가 지정하고 있다. 따라서 배젖에서 베타카로틴까지 합성하려면 수선화의 psy 유전자와 lcy 유전자, 에르위니아의 CrtⅠ 유전자를 넣어야 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두 작업이 끝났고 이제 벼가 익을 날만 기다리면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 무색인 파이토엔과는 달리 라이코펜은 빨간색이고 베타카로틴은 노랑~주황색이기 때문에 분석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결과는 둘 다 성공이었는데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유전자 두 개가 들어간 쌀은 빨간색이 아니라 노란색으로 라이코펜이 아니라 베타카로틴이 들어있었다. 쌀의 배젖에는 라이코펜을 베타카로틴으로 바꿔주는 효소가 존재해 lcy 유전자를 넣어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얻은 벼(훗날 GR0.0으로 명명) 가운데 쌀의 카로티노이드(베타카로틴 및 구조가 비슷한 분자들) 함량이 가장 높은 건 배젖 1g 당 1.6㎍(마이크로그램. 1㎍은 100만 분의 1g)으로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쌀의 배젖에서 베타카로틴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성과였고 논문은 이듬해 1월 14일자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황금쌀 개발로 잉고 포트리쿠스는 유명인사가 됐고 2000년 5월 31일자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 뒤 개선 연구는 거대 농업 기업 신젠타(Sungenta)에서 맡기로 했다. 베타카로틴 함량을 더 높인 벼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비타민A 결핍에서 벗어나게 해줄 날도 머지않은 듯했다.

 

실제 신젠타의 연구자들은 2004년 수선화 대신 옥수수의 psy 유전자를 써서 카로티노이드 함량을 무려 23배나 높인 벼(GR2로 명명)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결과를 담은 논문은 이듬해 학술지 ‘네이처 생명공학’에 실렸다. 

 

2004년 신젠타의 연구자들은 수선화 대신 옥수수의 psy 유전자를 도입해 카로티노이드 함량을 23배나 높인 황금쌀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1999년 황금쌀(가운데)은 노란색인 반면 2004년 황금쌀은 주황색이다(오른쪽). ‘네이처 생명공학’ 제공
2004년 신젠타의 연구자들은 수선화 대신 옥수수의 psy 유전자를 도입해 카로티노이드 함량을 23배나 높인 황금쌀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1999년 황금쌀(가운데)은 노란색인 반면 2004년 황금쌀은 주황색이다(오른쪽). ‘네이처 생명공학’ 제공

 

 GR2의 쌀에는 카로티노이드가 꽤 들어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경우 75그램만 먹어도 하루 권장량을 섭취할 수 있다. 아이들이 밥을 주식으로 하는 식사에서 대략 쌀 60그램을 먹는다고 하니 한두 끼면 충분하다. 

 

일단 가능성을 확인하자 연구자들은 다음 단계로 GR2와 각 지역에서 재배되는 품종을 교배해 쌀이 베타카로틴을 만드는 특성을 넘겨주는 과정을 진행했다. GR2는 주로 동북아시아에서 재배되는 아종인 자포니카에 속하는 품종으로 황금쌀이 필요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기후는 재배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곳에서 주로 재배하는 다른 아종인 인디카 벼가 베타카로틴을 만들게 바꿔줘야 한다.

 

사실 어떤 품종의 한 특성을 다른 품종에 옮기는 과정은 전통적인 육종법으로 여교잡(backcross)라고 부른다. 첫 교배로 나온 잡종은 게놈이 반씩 섞인 상태이기 때문에 원하는 특성 이외의 여러 특성도 발현돼 기존 품종의 정체성을 잃는다. 


그런데 1대 잡종에 재배 품종을 교배해 원하는 특성을 지닌 개체를 선별하면 게놈의 4분의 3이 재배 품종의 것인 개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세대를 거칠 때마다 도입된 품종의 게놈이 절반씩 희석되므로 6세대에서는 1%대(1/64)가 되고 8세대에는 1/256에 불과하다. 원하는 특성만 남은 사실상 재배종을 얻는 셈이다. 벼의 경우 아열대 지역에서는 이 과정에 3년 정도가 걸린다.
  
그렇다면 2019년이 아니라 2009년 황금쌀이 보급된다는 뉴스가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환경단체의 반대와 정부의 망설임

 

미국의 과학저술가 에드 레지스는 지난 10월 출간한 책 ‘황금쌀: GMO 슈퍼푸드의 위태로운 탄생)’에서 수많은 우여곡절로 점철된 황금쌀 개발의 역사를 기록했다. 강석기 제공
미국의 과학저술가 에드 레지스는 지난 10월 출간한 책 ‘황금쌀: GMO 슈퍼푸드의 위태로운 탄생)’에서 수많은 우여곡절로 점철된 황금쌀 개발의 역사를 기록했다. 강석기 제공

미국의 과학저술가 에드 레지스는 지난 10월 출간한 책 ‘Golden rice: the imperiled birth of GMO superfood(황금쌀: GMO 슈퍼푸드의 위태로운 탄생)’에서 그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린피스를 비롯한 환경단체의 집요한 방해와 비타민A 결핍인 나라 정부의 결단력 부재가 황금쌀의 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황금쌀 개발이 이처럼 늘어진 가장 주된 이유는 해당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다. 실험실 차원의 연구와 미국에서의 야외 연구까지는 잘 진행됐지만 정작 황금쌀이 필요한 지역에서의 야외 재배와 여교잡 실험이 번번이 정부 규제에 막혀 진행되지 못하거나 허용된 규모가 너무 작아 연구의 진척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비타민A 결핍 만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 황금쌀 도입에 이들 정부가 망설이는 이유는 이런 정책을 주도적으로 펼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GMO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목소리가 큰 것도 이들 정부를 위축시키는 한 요인이다. 안 그래도 정세가 불안정한 데 괜히 사회불안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9년 황금쌀 개발 발표 이후 지금까지 줄기차게 반대의 선봉에 선 단체가 그린피스다. 그린피스는 모든 GMO에 반대하고 있지만 황금쌀에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다. 처음 황금쌀이 나왔을 때 그린피스는 베타카로틴 함량이 너무 낮아 의미가 없다며 반대했다. 그런데 2004년 베타카로틴 함량을 23배 높인 황금쌀이 개발되자 이번엔 또 너무 높아 위험하다며 반대에 나섰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1999년 개발된 황금쌀(GR0.0)의 의미는 유전자 도입으로 쌀의 배젖에서 베타카로틴이 만들어짐을 보여준 ‘개념 증명’에 있고 2004년 개발된 황금쌀(GR2)은 실제 적용할 수 있는 함량을 구현한 데 의미가 있다며 적절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그린피스는 황금쌀이 GMO 업계의 총아라고 맹공하지만 이 역시 논리가 맞지 않는다. GR0.0을 개발한 스위스와 독일의 공동연구자들로부터 후속 연구를 물려받은 신젠타의 경우 이런 비난이 높아지자 베타카로틴 함량을 크게 높인 황금쌀(GR2) 개발을 끝낸 직후인 2004년 10월 16일 “황금쌀 관련 상업적 이익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면서 “모든 권리를 ‘황금쌀인도주의위원회(GRHB)’에 넘긴다”고 발표했다. 다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면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그 뒤 황금쌀 개발 관련 연구비 대부분은 록펠러 재단과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같은 비영리 단체에서 지원받고 있다. 이들의 관심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막을 수 있는’ 실명과 사망을 ‘막을 수 있게’ 도와주는 데 있을 뿐이다.

 

매년 종자(씨)를 공급해 수익을 보는 다른 GMO 작물과는 달리(농민들이 수확한 씨를 심으면 불법이다) 황금쌀은 현지 농민들에게 처음 한 번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면 끝이다. 그 뒤부터 일반 농작물을 재배할 때처럼 수확한 쌀 일부를 남겨 다음 시즌에 심는 식으로 이어나가면 된다.

 

기존 GMO 작물은 대부분 해충 저항성이나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를 도입해 재배 과정에서 생산자(농민)가 득을 볼 수 있게 한 것인 반면 특정 영양 성분을 강화한 황금쌀은 소비자가 득을 보는 작물이다. 새로운 기술은 득과 실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설사 GMO를 반대하는 입장이더라도 다른 GMO를 놔두고 유독 실보다 득이 큰 황금쌀에만 매달리는 건 이상한 현상이다.

GMO의 상징인 황금쌀을 막지 못하면 둑이 터지듯이 GMO가 지구를 덮는 사태가 올 수 있는 것이라면 이런 모습이 이해가 되지만(물론 동의하는 건 아니다) 이미 광범위한 지역에서 GMO 작물이 재배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GMO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 되길

 

2015년 현재 세계 GMO 작물 재배 면적은 4억4400만 에이커에 이른다. 세계 경작지의 12%에 해당하는 넓이다. 옥수수, 콩, 목화, 카놀라(유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의 경우 옥수수 생산량의 88%가 GMO이고 사탕무는 95%가 GMO다. 1995년 이래 미국인과 캐나다인은 GMO 작물이 포함된 식품을 먹어왔지만 아직까지 부작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반면 혜택은 크다. 인도 농민은 해충을 죽이는 독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들어있는 목화를 재배하면서 살충제 사용량이 41% 줄었고 수확량은 37% 늘었다. 그 결과 수익이 89% 늘었다. 독한 살충제를 뿌리는 일이 줄어 농민들의 건강도 좋아졌다.

 

GMO가 지구를 망친다는 우려와는 달리 20여 년 동안 현장에서 이렇다 할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고 관련 연구 수백 편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2016년 노벨상 수상자 107명은 GMO를 지지한다는 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부정적인 어감이 큰 GMO 대신 ‘정밀농업(precision agricultur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서한의 수신자는 ‘그린피스와 유엔, 각국 정부의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특히 그린피스에게 “황금쌀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그만둬달라”고 호소하며 “얼마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인류에 대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 앞에서 죽어가야 하냐?”고 반문했다.  

 

레지스는 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GMO 관련 논란은 이제 과학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라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의 경우 28개 나라 가운데 17개 나라가 GMO 작물 재배를 금지하고 있지만 사료용으로 매년 3000만 톤이 넘는 GMO 옥수수와 콩을 수입하고 있다. 세계 최대 GMO 작물 소비 지역이라는 말이다. 만일 GMO 작물에 문제가 있었다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실천윤리학자이자 동물해방론자인 미국 프린스턴대의 피터 싱어 교수는 지난 2014년 ‘프로젝트신디케이트(유명 석학들이 중대 사안에 대해 기고하는 사이트)’에 발표한 글 ‘유전자변형 식품을 막아야 하는가’에서 “유전자변형 식품에 대한 일부 환경단체들의 맹목적인 반대는 충성맹세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들 집단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자는 사악한 생명공학 산업과 손을 잡은 배신자 취급을 당하게 된다”며 “하지만 우리는 그런 협소한 이론적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쓰고 있다.

 

싱어는 레지스의 책에 아래와 같이 짧은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부디 황금쌀이 널리 보급돼 많은 사람들이 비타민A 결핍의 비극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이 책 ‘골든 라이스(Golden Rice·황금쌀)’는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가 늘 옳지는 않다는 걸 우리에게 들려주는 윤리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꼭 읽어보기 바란다.”

 

※필자소개

강석기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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