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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N수학]"수학과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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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N수학]"수학과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2019.12.07 06:00

매듭의 마술사 김윤철

 

매듭은 아침에 집을 나서기 신발끈을 묶는데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는데도 사용된다. 눈을 돌리는 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매듭은 사실 굉장히 수학적인 존재다. 수학의 중요 연구 대상이면서도 기하학적으로 아름다운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김윤철 작가는 아름다운 매듭의 구조를 살린 조형물 '크로마'를 만들었다.  거대한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어폰 줄이 엉켜있는 것 같은 모습의 '크로마'는 아름다운 매듭의 매력을 잘 살린 작품이다. 크로마는 6개의 세잎매듭이 겹친 형태로, 매듭은 18개나 된다.  
 

김 작가는 크로마의 구조를 설계하는 데에만 네 달이 걸렸다. 18개의 매듭이 겹치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보일 수 있도록 각도를 계산하고 수정하는 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 거대한 조형물은 약 300개의 서로 다른 셀로 이뤄져 있다. 각 셀에는 젤리같이 물컹한 ‘하이드로젤’이라는 물질이 들어있다. 틀어진 각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하이드로젤에 가해지는 힘도 달라 300여 개의 셀이 모두 다른 색을 낸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이 나오기까지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이 필요했다. 크로마는 ‘세잎매듭’이라는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이름처럼 세잎클로버를 닮은 세잎매듭은 ‘매듭 이론’에서 아주 중요한 구조이다. 

 

매듭 이론에서는 수학적으로 같은 매듭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매듭을 자르지 않고 조금씩 움직여서 다른 매듭을 만들 수 있으면 길이나 모양이 달라도 같은 매듭으로 보인다. 매듭이 오른쪽으로 꼬인 오른쪽 세잎매듭과 왼쪽으로 꼬여있는 왼쪽 세잎매듭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서로 다른 매듭이다. 

 

김 작가의 드로잉 노트에는 열심히 각도를 계산한 흔적이 보인다. 매듭이 18개면 나올 수 있는 매듭의 형태는 대략 수백 만 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매번  각도를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썬’으로 매듭의 개수에 따른 모든 형태를 보여주는 ‘매듭 제네레이터’를 제작했다. 이를 이용해 매듭의 모양을 보고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선택한 뒤, 매듭을 구성하는 셀의 각도를 일일히 계산했다고 했다. 수천 번의 계산 끝에 탄생한 셈이다.  . 

 

김 작가의 작품 중에는 샹들리에처럼 생긴 작품이 있다. 우주의 신호를 보여주는 ‘임펄스’라는 작품이다. 임펄스는 27개의 굵은 관과 얇은 관들로 이뤄져 있다. 바로 옆에 안테나처럼 생긴 작품 ‘아르고스’에서 신호를 받으면 펌프가 작동하며 관 속의 액체가 움직이는 식이다. 


아르고스는 실제로 우주의 신호를 찾는 안테나로, 총 82개의 ‘가이거-뮐러 튜브’로 이뤄져 있다. 가이거-뮐러 튜브는 1900년대 초 독일의 물리학자 한스 가이어와 발트 뮐러가 개발한 방사선 측정기다. 우주에서 태양이나 천체가 폭발하면 여러 입자와 강한 전파가 나오는데, 이를 ‘우주선’이라고 부른다. 우주선이 지구의 대기와 만나면서 에너지가 작아진 입자들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진다. 가이거-뮐러 튜브는 이 입자들을 모두 측정하는 기계다. 아르고스의 튜브들은 반짝반짝하고 빛난다.


하지만 튜브가 반짝할 때마다 아르고스가 신호를 보내는 건 아니다. 아르고스는 수많은 입자 중에서 ‘뮤온’이라는 입자를 검출할 때만 임펄스로 신호를 보낸다. 뮤온이 아주 특별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뮤온은 병원에서 많이 보는 X선과 같은 방사선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X선은 튜브를 만나면 바로 사라지지만, 뮤온은 튜브를 적어도 5개는 통과할 수 있다. 튜브 5개가 동시에 반응하면, 뮤온이 통과했다고 보고 임펄스로 신호를 보내는 식이다. 

 

뮤온 입자는 지구에서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는 입자이다. 작품속 액체의 움직임은 모두 우주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외계인과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수학과 예술은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김윤철 작가는 2016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과학과 예술의 융합에 공헌한 작가에게 주는 '콜라이드상'을 받았다.  김 작가는 “수학과 예술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이 둘을 융합하기 위해서는 수학자와 예술가가 서로의 학문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Q. CERN에서의 일과는 무엇이었나


CERN은 오랫동안 이론적으로만 증명됐던 힉스 입자를 검출한 세계적인 연구소다. 힉스 입자를 검출한 대형강입자가속기(LHC)를 보는 게 제 주된 일과다. 둘레가 27km나 되는 원형 터널인 LHC는 기계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마치 하나의 작품같다. LHC를 앞에 두고 저와 친하게 지냈던 헬가 팀코 박사와 대화한 시간도 무척 재미있었다. 전 팀코 박사를 포함해 여러 과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영감을 받아 아르고스와 임펄스를 구상했다.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LHC 앞에서, 우주에서 날아온 입자를 검출하고 이것이 지구에 파장을 일으키는 작품을 떠올렸다.

 

Q. 2015년부터 3년 동안 고등과학원에서 초학제 연구책임자로 일했다. 


고등과학원에서는 창의적인 연구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학문 사이에 협력을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초학제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매터리얼리티 연구단에 있었다. 당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토론을 자주 했다. 수학자, 물리학자는 물론 시인, 철학자, 건축가, 심지어 한의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무한은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수학자의 관점과 철학자의 관점을 동시에 들었던 시간은 저에게 매우 소중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예술가로서 세계관이 매우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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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동아 12월호, [수학미술관] 매듭의 마술사 김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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