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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오래된 면역계 친구는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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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오래된 면역계 친구는 누가 있을까

2020.01.04 06:00
위염과 위궤양, 위암 등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인 헬리코박터 균. 파스퇴르연구소 제공
위염과 위궤양, 위암 등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인 헬리코박터 균. 파스퇴르연구소 제공

오랜 친구 가설에 의하면 인간은 다양한 미생물과 중생물(macrobe)이 공생적 관계를 맺고 만들어진 통생명체(holobionts)다. 이러한 공생적 관계가 5억 년을 넘도록 이루어졌고, 다양한 구성 성분을 조정하는 역할을 면역계가 담당한다. 이러한 주장에 의하면 면역계는 외부의 침입에 대한 방어 기전이 아니라 적절한 공생을 위한 조절 기구다. 예를 들어 인간의 위장은 약 2kg의 세균총을 포함하고 있다. 혈액 내 작은 분자의 30%는 미생물이 만든 대사물이라는 것이다. 


최근 오랜 친구 가설은 부모나 가족과 공유하는 환경을 통해 얻는 미생물무리(microbiota), 자연환경의 포자나 유기체, 연충이나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등 오래되고 치명적이지 않은 감염을 모두 친구로 ‘쳐주고’ 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오랜 친구를 하나하나 다시 만나보자.

 

면역계의 진화


면역계는 초기 진핵생물이 진화할 무렵에 같이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미생물의 침입을 인식하는 패턴 인식 수용체(Pattern-recognition receptors, PRRs)가 나타났다. 예를 들면 Toll 유사 수용체(Toll-like receptor, TLRs), NOD 유사 수용체(nucleotide-binding oligomerisation domain-like receptors, nLRs), 청소 수용체(scavenger receptor) 등이다. 이러한 패턴 인식 수용체는 무척추동물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지만 별로 유연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척추동물이 진화하면서 유전적 복잡성을 최소한으로 증가시키면서도 다양한 수용체 레퍼토리를 만드는 적응적 면역계가 나타났다. 트랜십 유전자(Transib)의 트랜스포손이 약 5억 년 전에 원시적인 유악하문(Gnathostomata)에 속하는 척추동물에서 진화했다. 재조합효소에 의해서 여러 부분이 새로 배열되고, 전체 게놈이 여러 번 중복되면서 다양한 항체와 B 세포 수용체(BCRs), T 세포 수용체(TCRs)를 지시할 수 있었다. 트랜스포손은 재조합 활성화 유전자(recombination-activating genes, RAGs)로 나아가면서 림프구 발달 과정에 적절한 BCR이나 TCR을 만들도록 진화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수없이 많은 외부 항원에 대해 항체를 만들려면 수없이 많은 유전자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수많은 항체에 관한 정보를 유전자가 전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생식세포계열 이론(germline theory)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 몸에는 유전자가 많아야 23000개밖에 되지 않는다. 모든 유전자를 항체 합성을 위해 할당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일단 기본적인 단백질이 합성된 후 체세포계열에서 여러 단백질로 변이를 일으킨다는 체세포 변이 이론(somatic mutation theory)가 대두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둘 다 아니었다. 놀랍게도 여러 종류의 유전자가 재조합을 이루면서 수많은 단백질을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설명해보자. 항체는 면역글로불린이라는 단백질로 만들어지는데, 항체의 말단은 두 개의 항원 결합 분절(antigen binding fragment, Fab)이 있다. 각 Fab는 L 사슬(경쇄)과 H 사슬(중쇄)이 황화결합을 통해 붙어있고, 이러한 구조 중 중쇄 부분이 경첩 영역에서 구부러지면서 중쇄의 결정 분절(Fragment crystallizable region, Fc)로 이어지는데, 동일한 두 개의 구조가 다시 두 개의 황화결합을 통해 서로 붙는다. Fab는 백 개가 조금 넘는 아미노산으로 구성되는데, 각각 가변부(variable region, V)와 불변부(constant region, C)로 나뉜다. 항원에 달라붙는 끝부분이 가변부다. 항체의 경쇄의 C 부분은 모두 동일한 아미노산 서열을 가진다. H 사슬의 C 부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V 부위는 항체마다 다르다. 


V 부분이 다양한 항원에 반응하는 항체의 결합 부위라고 할 수 있는데, 세 종류의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각각 가변(variable), 다양(diversity), 연결(joining) 유전자 조각이 림프구 발달 단계에서 재조합을 일으켜 만들어진다. 이를 VDJ 재조합 (VDJ recombination)이라고 한다. 


V 유전자가 약 40개, D 유전자가 약 25개, J 유전자가 약 10개다. 긴 DNA 사슬에서 적당한 부분을 묶고, 아르테미스 단백질(artemis)이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버린 후 DNA 연결 효소(DNA ligase)가 이어 붙이는 것이다. 조합의 숫자는 약 일만 개로 늘어난다. 그런데 V 부분은 경쇄와 중쇄가 있다. 경쇄는 D 유전자가 관여하지 않지만, 그래도 수백 개 정도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일부 중쇄도 D 유전자를 빼는 방법으로 더 많은 다양성을 만든다. 게다가 아르테미스 단백질이 자른 후, 새로 붙이는 과정에서 말단 디옥시뉴클레오티딜 전이효소(Terminal Deoxynucleotidyl Transferase, TdT)가 개입하여 염기를 몇 개 더 넣어주면서 더 높은 수준의 다양성을 확보한다. 


V 부분에는 세 종류의 상보성 결정 영역(Complementarity-determining regions, CDRs)이 존재하는데, 항원 결합부위에는 경쇄 하나, 중쇄 하나가 있으므로 총 여섯 개의 CDRs가 존재한다. 하나의 항체는 두 개의 항원 수용체를 가지므로 각 항체는 총 12개의 CDRs를 가지는 셈이다. 가장 변이가 많이 존재하는 영역이 CDR3인데, 앞서 말한 RAG 단백질에 의해서 무작위 배열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다양성을 무한정 증가시킬 수 있다. T 세포 수용체도 이와 비슷하다.  

 

검열의 진화: 흉선


이렇게 엄청난 수준의 다양성은 수많은 외부 물질에 대한 면역성을 확보시켜 준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다양할수록 실수도 자주 생기기 마련이다. 일단 표적 항원이 없는 쓸모없는 항체가 생길 수 있다. 괜한 낭비다. 또한 자기 몸을 공격하는 자가 면역이 생길 수도 있다. 척추동물은 처음부터 신중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하지 않고, 왕창 만든 후에 적절하게 조절하는 방식을 택했다. 


바로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 흉선이다. 넥타이가 위치하는 가슴 부분에 흉골이라는 뼈가 있다. 양쪽 갈비뼈를 잇는 뼈다. 이 흉골 바로 뒤에 위치하는 나비 모양의 기관이다. 가슴샘이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가슴 가운데 있으므로 영혼이나 생명, 분노와 관련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리스어로 Thymus의 어원은 투모스(thumos)다. 분노, 심장, 영혼, 소망, 생명을 뜻하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 흉선은 어린 시절에 크게 발달했다가 어른이 되면 작아진다. 사춘기 무렵에는 30~40g에 이를 정도로 커지지만, 나이가 들면 그냥 지방으로 바뀐다. 70세가 되면 6g 정도로 작아진다. 이러한 흉선은 모든 유악하문 척추동물이 가지고 있다. 유악하문이란 척추동물아문 중에서 무악상강(Agnatha)를 제외한 모든 동물을 말한다. 무악상강, 즉 턱이 없는 무악류란 칠성장어와 같은 원시적인 동물을 말한다. 상어 등의 연골어류, 그 외 모든 경골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를 모두 포함한다. 


흉선은 피질과 수질로 나눌 수 있다. 피질은 T 림프구를 분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혈액에 의해 도착한 조혈간세포가 CD4 및 CD8이 모두 발현된 T 세포 수용체 표현 흉세포(TCR-expressing double-positive thymocyte)로 분화한다. 그리고 피질 흉선 표피세포(cortical thymic epithelial cells, cTECs)로 알려진 세포 집단에 의해서 DP 흉세포에 제 I형 및 제 II형 주요조직적합성 분자(major histocompatibility molecules)가 제시된다. 이 cTEC는 흔하지 않은 종류의 리소좀 프로테아제를 만들어서 자기 단백질의 여러 펩타이드를 조각내서 만든다. 이러한 펩타이드-MHC 복합체와 친화도가 전혀 없거나 너무 친화도가 높은 DP 흉세포는 제거된다. 낮은 수준의 친화도를 보이는 세포만 이후 CD4 혹은 CD8 중 하나만 양성인 흉세포(single-positive thymocyte)로 분화한다. 그리고 CCR7 단백질이 발현되면서 수질로 이동한다. 


수질에서는 mTECs에 의해서 다시 자기 펩타이드에 노출된다. 이 세포는 자가 면역 조절자(AutoImmune REgulator, Aire)와 아연 집게 전사 인자(zinc finger transcription factor, Fezf2)을 발현한다. AIRE는 21번 염색체 긴 팔에 위치(21q22.3)한 유전자가 지시하는데, 체내의 건강하고 정상적인 단백질을 다시 T 세포에 노출시킨다. 이에 반응하는 세포는 파괴하거나 조절 T세포로 분화시킨다. 만약 AIRE가 제구실을 못하면 자기 몸을 공격하는 T 세포가 나오므로 자가면역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인류의 이동과 면역

 

면역계의 진화는 고생대로 올라가지만, 최근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최근에도 여러 종의 인류가 서로 교배하며 면역능력을 서로 교환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주 오래전 인류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반인이라면 유전자를 제법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다른 유전자와 함께, 인간 백혈구 항원(HLA) 관련 일부 대립유전자가 네안데르탈인인나 데니소반인에게서 건너왔다는 증거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에 도착했을 때, 아마도 새로운 미생물에 대한 저항성이 약했을 것이다. 멀리 여행 가면 감기에 잘 걸리듯이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사랑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아마 몇몇 원시적인 유전자가 TLR6-TLR1-TLR10 클러스터에 들어가면서, 선천 면역을 강화시켰을 수 있다. 특히 TLR10이 TLR2의 중합체를 만들어 항염증 효과를 일으켜 적합도를 향상시켰을 수도 있다. 우리 몸에 남아 있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중 일부는 HIV나 일부 간염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뿐만 아니다. TNFAIP3 유전자는 면역을 조절하는 A20 단백질을 만드는데, 이 단백질은 NF-kB(nuclear factor kappa-light-chain-enhancer of activated B cell) 중개성 염증 반응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유전자의 변이 중 하나가 월리스 선 동쪽의 원주민, 그리고 데니소반인에게서만 발견되었다. 

 

미생물총의 진화


면역계가 장내 정상 세균총과 공진화했다면, 침팬지와 호미닌이 갈라진 이후 각각의 세균총도 따로 분화했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최근 연구에 의하면 침팬지와 인간의 미생물총은 약 530만 년 전에 갈라진 것으로 보인다. 고릴라와는 1560만 년 전이다. 종분화가 일어난 시점과 얼추 맞는다. 


보통 맹장이라고 부르지만, 진짜 이름은 충수돌기인 기관이 있다. 맹장 끝에 붙은 작은 기관인데 종종 염증을 일으켜 잘라내는 부분이다. 마치 남성의 유두처럼 불필요한 흔적 기관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충수돌기의 기능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퇴화가 아니라 오히려 진화했다는 주장이 있다. 세균총을 담아두는 저장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충수염을 앓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조건 잘라낼 이유가 없다. 


우리 몸에는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인간의 게놈에는 23000개 정도의 유전자가 있을 뿐이지만, 이러한 미생물의 게놈까지 합치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미생물총과 인간은 공생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리 없다. 미생물총은 자신의 생존에 인간의 몸을 이용하고, 인간도 마찬가지다. 


특히 장내 미생물총은 병원균의 침입을 막는다. 물론 주인을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것이다. 덕분에 인간의 장도 제법 튼튼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최근 장내 미생물총을 메타지노믹스 기법을 이용하여 분석한 연구가 시행되었다. 대부분의 미생물총은 세균이었다. 미생물총은 세균과 고세균, 진핵생물, 바이러스 등으로 구성되는데, 99%가 세균이었다. 이러한 미생물총의 게놈을 모두 합하면 유전자는 300만 개 이상으로 늘어난다. 


미생물총은 유전일까? 환경일까? 모두 답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이란성 쌍둥이보다 미생물총의 일치도가 높다. 쌍둥이는 같은 시기에 태어나 같은 환경에 자라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는 상당 부분 유전에 의한 것이다. 인간의 선천 면역과 획득 면역은 세균총과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조절한다. 낯선 사람에 비해서 가족 사이에 공유도가 높은 것도 일부는 유전의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전부 유전은 아니다. 식생활 등 환경의 영향도 있다. 

 

식단, 요리, 발효, 그리고 면역

 

장내 미생물총은 박테로이데스, 프레보텔라, 루미노코쿠스 등 대략 세 종의 장유형(enterotype)으로 나뉜다. 고기나 지방을 많이 먹으면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가 많고, 식물성 섬유질을 많이 먹으면 프레보텔라(Prevotella)가 많다. 루미노코쿠스가 많은 경우는 첫 번째 경우와 흡사했다. 박테로이데스가 비교적 적은 것만 달랐다. 어떤 것이 더 좋거나 더 나쁜 것은 아니다. 


육식하는 사람과 채식하는 사람의 장내 세균총이 다르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면 식이습관을 바꾸면 장유형도 바뀔까. 약간의 변화는 일어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아마 여러 요인이 같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식이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침팬지는 가끔 고기를 먹지만, 기본적으로 초식동물이다. 아마 인류의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큰 뇌와 육식은 공진화했는데, 육식은 양질의 에너지원이었지만 사냥을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지능이 필요했다. 높은 지능을 보장하는 큰 뇌는 육식을 통해서만 지탱할 수 있었다. 인간은 섭취하는 열량의 약 25%를 뇌가 전용한다. 오메가3 지방산이나 요오드, 철, 아연, 구리, 셀레늄 등도 거대한 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영양소다. 


뇌에 에너지를 많이 할당하기 위해서 다른 기관의 희생을 강요했다. 바로 위장관이다. 인간의 장이 짧은 이유다. 빠르고 신속한 이동 능력과 높은 인지 능력을 위해서 양질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아마 우리 조상은 동물을 잡으면 뇌와 골수, 내장부터 먹었을 것이다. 야생동물의 고기는 지금 기준으로 따지자면 하등육이다. 야생동물의 삶이나 인간의 삶이나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기름진 마블링을 만들 여유는 없다. 우리 조상은 네발짐승뿐 아니라 물고기도 많이 먹고, 조개도 먹었다. 이러한 식이의 변화는 기나진 진화적 시간을 통해서 인간의 장내 세균총을 지금의 조성으로 빚었을 것이다. 


획기적인 변화는 바로 불의 사용이다. 도구라고는 주먹도끼밖에 없던 시절, 인간은 놀랍게도 불을 쓰기 시작했다. 성냥을 잊고 캠핑을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야생에서 불을 피우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나무를 마찰하고, 부싯돌을 사용하면 불을 만들 수 있다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렇게 어려운 인지적 과업이 아주 이른 시기에 달성되었다면, 그럴 만한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바로 화식이다. 


2016년 화식과 관련한 간 유전자가 분화한 시점에 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반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갈라지기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화식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아마도 40-5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불을 사용하여 요리를 하면서 세균의 칩입량이 현저하게 줄었다. 면역계도 아마 조금은 더 느슨해졌을 것이다. 아마 최소 6~7개의 유전자가 화식을 하면서 새로 선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곡물을 먹기 시작한 것은 약 3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물론 본격적으로 곡식을 재배한 것은 신석기 이후지만, 그 이전부터 야생 곡물을 먹었을 것이다. 호주 애버리지니는 농사를 짓지 않지만, 야생에 널린 씨앗을 채집하여 먹는다. 그런데 곡물의 영양소는 상당 부분 녹말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 소화가 어렵다. 날곡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는 이유다. 그런데 요리는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었다. 푹 익히면 잘 소화된다. 수십만 년 전 불을 발명하지 않았다면, 수천 년 전 농업 혁명도 없었을 것이다. 


불을 이용한 요리와 나란히 영광의 훈장을 받을 놀라운 발명이 있다. 바로 발효다. 발효는 세균이나 곰팡이, 효모 등에 의한 일종의 부패다. 하지만 그 과정을 잘 조절하면 오히려 더 높은 영양을 얻을 수 있다. 술이나 김치, 사우어크라프트, 어포나 육포 등이 모두 이런 종류다. 발효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영양소를 만들 뿐 아니라, 몸속으로 들어오는 세균총도 더 다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특히 술은 아주 독특한 식량이다. 알코올이 생기는데, 기분을 좋게 만들 뿐 아니라 양질의 영양소다. 술은 최소 9000년 전부터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술을 담은 토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무려 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그 무렵에 진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술병도 술잔도 없었으니 땅에 떨어져 발효된 과일을 먹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하기 이전부터, 우리가 우리가 아니던 시절부터 우리는 술을 마셨다. 물론 술을 너무 마셔도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 적당히 마시자. 

 

 

다음 편 미리 보기 ┃

인간의 면역계는 미생물총과 함께 공진화했다. 육식과 요리, 발효 음식의 진화는 뇌와 인지 능력, 운동 능력의 진화와 더불어 공진화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미생물총과 인간의 게놈, 그리고 다양한 환경 조건이 오케스트라처럼 협연을 펼치며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 그리고 미생물총을 만들었다. 근원부터 따지면 무려 5억 년 전이다. 


장내 세균은 인간과 공생하며 사이좋게 사는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정상적인 세균도 숙주를 공격한다. 반대로 면역력이 너무 세지면, 정상적인 면역계가 자신을 공격한다. 균형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요즘 주목받는 인류의 오랜 친구는 누가 있을까? 친구인지 적인지 애매한 녀석들이다. 사실 이번 편의 주제였는데, 서론이 길어지다가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다음 편에서 인류의 오랜 세 친구,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결핵균, 연충, 말라리아를 꼭 만나보자.

 

 

참고자료

-Enard, D., & Petrov, D. A. (2018). Evidence that RNA viruses drove adaptive introgression between Neanderthals and modern humans. Cell, 175(2), 360-371.
-Oosting, M., Cheng, S. C., Bolscher, J. M., Vestering-Stenger, R., Plantinga, T. S., Verschueren, I. C., ... & Kullberg, B. J. (2014). Human TLR10 is an anti-inflammatory pattern-recognition receptor.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1(42), E4478-E4484.
-Vernot, B., Tucci, S., Kelso, J., Schraiber, J. G., Wolf, A. B., Gittelman, R. M., ... & Scheinfeldt, L. B. (2016). Excavating Neandertal and Denisovan DNA from the genomes of Melanesian individuals. Science, 352(6282), 235-239.
-Simonti, C. N., Vernot, B., Bastarache, L., Bottinger, E., Carrell, D. S., Chisholm, R. L., ... & Li, R. (2016). The phenotypic legacy of admixture between modern humans and Neandertals. Science, 351(6274), 737-741.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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