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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작은 과학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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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작은 과학이 아름답다

2020.01.03 13:53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큰 규모의 실험실은 젊은 과학자의 훈련에는 안 좋은 환경일 수 있습니다. 박사후연구원과 박사학위 과정 학생은 마치 공장의 노동자처럼 취급받기 일쑤죠… 게다가 큰 실험실은 연구비를 낭비하기 십상입니다. 투입된 연구비당 연구생산량을 계산한다면 더더욱 그렇죠."

- 브루스 알버트 '성장의 제한: 생물학에선 작은 과학이 좋은 과학입니다' 중에서⁠

 

빅랩의 전설


현대과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거대화된 연구실이다. 물리학은 유립입자물리연구소(CERN)로 대변되는 거대화된 가속기를 중심으로, 물리학자와 공학자가 거대한 수백명의 팀을 이뤄 일하는 거대과학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생물학은 인간유전체계획(게놈프로젝트)을 기점으로, 작게는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는 전세계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연구팀이 만들어졌다. 이런 변화는 과학자들이 풀어야만 하는 자연의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나타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별 실험실의 규모가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고 실험실의 규모와 연구자의 능력이 동일시되는 흐름도 나타났다.

 

탁월한 과학자가 큰 규모의 실험실을 운영하는 걸 막을 이유는 없다. 실제로 의생명과학분야에서는 지난 수 십년간 박사후연구원과 학위과정 학생 수 십명에서 백 여명을 이끄는 초거대 실험실들이 소위 '빅랩(big lab)'이라 불리며 유행을 주도해왔고, 그 실험실에서 훈련받은 이들이 대학이나 연구소에 더 잘 자리를 잡으며 일종의 폐쇄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거대화된 실험실이 전체 과학계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이런 형태의 실험실을 장려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더 작고 다양한 실험실을

 

미국립보건원(NIH)은 전세계 의생명과학자들에게 일종의 표준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20세기 의생명과학을 중심으로 미국이 전세계 과학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의생명과학분야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NIH의 정책들은 직간접적으로 전세계 국가의 과학정책에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NIH의 상향식 연구비 R01은 미국에서 연구하는 의생명과학자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연구비 체계로, 이 연구비 체계의 효율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2007년에서 2010년까지 수행된 이 연구에서 2938명의 연구책임자를 14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그들이 받은 연구비의 수준과 그들이 출판한 논문의 영향력 지수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매년 약 7억원의 연구비를 받는 그룹이 논문의 양과 질 모두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이 지레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런 결과가 실제로 측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국가들에서 연구비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소수의 규모가 큰 실험실들이 등장했을 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심증으로만 거대규모의 실험실은 효율이 낮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생명과학계에 박사후연구원은 무조건 큰 실험실로 가야한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교수로 성공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큰 실험실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큰 실험실에서 홈런이 자주 나오는건 사실이지만, 홈런을 칠 기회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실험실을 선택할 때 사이즈보다는 연구의 방향과 목표를 생각하라는 원칙을 조언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성공하는 과학자들은 대부분 큰 실험실 출신이다. 그건 과학계가 연구비와 논문으로 양극화되었고, 그 구조가 고착화되어가는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NIH와 비슷한 연구결과가 캐나다의 NSERC과 CIHR 연구비와 논문출판의 상관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캐나다는 NSERC이라는 연구비 집행기관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연구기관에서 주는 Discovery 그랜트는 일종의 기본연구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캐나다에도 NIH와 비슷한 기관인 CIHR이 있는데, CIHR은 기초과학보다는 의학과 연관된 분야를 지원하며 NSERC보다 더 큰 연구비 규모를 집행한다. 이 연구에서는 NSERC만 가진 연구책임자들과 NSERC에 더해 CIHR연구비까지 받은 이들을 교차비교해서 논문의 양과 질을 비교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일정 규모를 넘어가게 되면, 연구비의 규모는 연구의 영향력과는 부정적인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과학적 영향력이 있는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연구단의 연구비 규모를 늘릴게 아니라 연구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2015년의 연구결과는 아주 구체적으로 의생명과학분야의 이상적인 실험실 규모를 알려준다⁠. 영국의 연구책임자들을 대상으로 수행된 이 연구에서, 연구원과 학생의 숫자가 일정한 규모를 넘어가면 영향력 있는 논문 출판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연구진은 398명의 영국 의생명과학 연구책임자를 대상으로 연구실의 규모와 지난 5년간 논문의 양과 질을 교차비교했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박사후 연구원 한 명을 고용하면 5년간 약 3.5 편의 논문을 출판할 수 있고, 박사과정 한 명은 약 1 편의 논문을 출판할 수 있다. 즉, 박사후연구원 1명이 박사과정 학생의 3배 정도의 논문을 출판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박사후연구원과 학위과정생이 출판하는 논문의 숫자가 전체 실험실 규모가 10명을 넘어가면 더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향력 있는 연구를 출판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연구실의 규모는 10명에서 15명 사이였다⁠. 가장 이상적인 연구실은 박사후연구원을 주축으로 구성된 10여명 안팍의 효율적인 네트워크라는 의미다⁠.

 

이상적인 규모의 생물학실험실은 10여명으로 구성된다.  Research groups: How big should they be? / PeerJ 제공
이상적인 규모의 생물학실험실은 10여명으로 구성된다.  Research groups: How big should they be? / PeerJ 제공

과학계를 연구하는 과학적 방법


모든 과학계가 생물학계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전세계 과학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세계 과학자의 절반 이상을 포함하는 의생명과학계의 현실을 무시하고 과학기술정책을 구상할 수는 없다. 생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생물학에서는 큰 실험실보다 작은 실험실이 더 효율적이고, 생물학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작고 다양한 실험실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구도를 부추긴 결과로 나타난 과학계의 연구비 공황과 학위공장으로 인해 등장한 수많은 박사학위자들의 존재로 인해 의생명과학계는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와 비정규직 박사후연구원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불공정한 구조를 고착화시켜왔다.

 

의생명과학계로 대변되는 과학계의 현실은 분명 비참하다. 연구비 경쟁으로 피가 마르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는 현실 속에서 연구자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 수록 과학기술정책은 더 차분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장미빛 희망이 아니라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정치적 변동에 의해 좌우되는 과학기술정책이 아니라 근거에 기반한 과학적 방법을 통해 정책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근거기반정책은 과학계에 가장 어울리는 정책 패러다임이다.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과 과학관료들은 누구보다 더 과학적인 방식으로 과학계가 처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의생명과학 연구의 영향력은 가장 탁월한 한 두명의 과학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몇십명의 과학자에게 백억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식은 과학적 혁신과 가장 동떨어진 낡은 패러다임이다. 연구실의 규모를 줄이고 기본연구비를 통해 최대한 다양한 연구들을 지원하고 그런 연구들이 긴밀하게 네트워크를 통해 공조할 수 있게 만드는 일, 그게 한국의 생물학이 장기적으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과학계 연구의 과학적 방법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과학계 연구의 과학적 방법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참고자료
-Alberts BM (1985) Limits to growth: In biology, small science is good science. Cell 41: 337–338
-Wadman, M. (2010). Study says middle sized labs do best.
-연구실의 규모와 과학적 성과 사이의 관계를 조사해보면, 중간 규모의 실험실이 가장 효율이 높았다.
-https://www.nature.com/articles/468356a

-Woolston C (2015) Bigger is not better when it comes to lab size. Nature 518: 141
-Woolston, C. (2017). Postdocs: Big lab, small lab?. Nature, 549(7673), 553-555.
-현실적인 조언은 나의 글 “대학원에 가려거든”을 참고할 것,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66886.html
-Fortin JM, Currie DJ (2013) Big science vs. little science: how scientific impact scales with funding. PLoS One 8: e65263
-Cook, I., Grange, S., & Eyre-Walker, A. (2015). Research groups: How big should they be?. PeerJ, 3, e989.
-Alberts BM (1985) Limits to growth: In biology, small science is good science. Cell 41: 337–338
-Lane, J. (2010). Let's make science metrics more scientific. Nature, 464(7288), 488.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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