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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의 닥터스]"늘어나는 의료분쟁, 한국형 의료감정 가이드라인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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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의 닥터스]"늘어나는 의료분쟁, 한국형 의료감정 가이드라인 나와야"

2020.01.09 18:30
8일 서울시 성동구에 있는 한양대병원 본관에서 만난 백광흠 대한의료감정학회장(한양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에게 의료감정이 무엇인지, 어떤 전문가들이 의료감정을 하는지, 의료감정의 한계는 무엇인지 물었다. 이정아 기자
8일 서울시 성동구에 있는 한양대병원 본관에서 만난 백광흠 대한의료감정학회장(한양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에게 의료감정이 무엇인지, 어떤 전문가들이 의료감정을 하는지, 의료감정의 한계는 무엇인지 물었다. 이정아 기자

 

30대 A씨는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기 위해 매일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A씨 가족은 회사를 상대로 산재를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A씨의 회사는 A씨에게 평소 고혈압 등 지병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40대 B씨는 맹장염으로 C병원에 입원해 복강경 수술을 받게 됐다. 하지만 전신마취 도중 구토증세가 나타나 결국 수술도 받기 전에 사망했다. B씨 가족은 C병원이 이상 증세가 나타났을 때 시간을 끌었다며 의료사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C병원 측은 응급처치를 했으나 구토량이 너무 많아 환자를 살리기 힘들었다고 주장했다. 

 

최근 의료사고와 의료분쟁이 많아지면서 객관적인 의료 증거를 찾아내는 의료감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소송에서 병원과 환자, 보험회사와 피보험자 등 여러 관계 사이의 의학적인 시비를 가리기 위해 제3자이자 각 분야 전문의인 의료감정위원이 환자의 상태와 진료 데이터 등을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8일 서울시 성동구에 있는 한양대병원 본관에서 백광흠 대한의료감정학회장(한양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을 만났다. 대한의료감정학회는 의료감정에 대해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학회로, 회원 대부분이 의료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양대 의대를 졸업한 백 회장은 주로 척추디스크와 협착증을 치료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다. 그는 오랜 경력을 토대로 관련 의료소송이나 장애판정에 대한 의료감정을 해왔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 후 허리디스크를 호소하는 환자에 대해, 디스크가 사고 때문인지 또는 원래 갖고 있던 지병인지, 노화로 인한 것인지 판정한다. 

 

지난해 14일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열린 대한의료감정학회 학술대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 백 회장에게 의료감정이 무엇인지, 어떤 전문가들이 의료감정을 하는지, 의료감정의 한계는 무엇인지 물었다. 

 

의료감정은 어떤 사람들이 언제 하는가 
 
의료감정은 의료 행위에 의해 발생한 법적 문제에 대해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주로 의료소송과 장애판정에 대한 감정이 많다. 의료소송 시에는 환자가 치료를 제대로 받았는지 잘못 받았는지 의료 과오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또는 의료사고가 아닐 경우 어떤 환자가 치료 후 장애가 발생했을 때, 장애의 심각성에 대해 소송과 보상을 받기 위한 평가로 의료감정이 진행된다. 이외에도 사고를 당한 환자에게 보상금을 책정할 때 사고로 인한 장애가 얼마나 심각한지 판단하거나, 뇌사자 등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남은 수명(생존연한)이 얼마나 되는지 판단하는 등 여러 사례에서 의료감정이 필요하다.

 

의료사고에 대한 판단은 법원에서 재판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판사는 의료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의학적 지식을 충분히 가진 전문가가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법원에서 의료감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문 의료감정위원에게 의뢰한다. 환자의 주치의 등 해당 사건사고와 전혀 관련이 없는 제3자, 해당 질병 분야의 전문의가 의료감정위원으로 선출된다. 현재 법원에 등록된 의료감정 위원은 총 58명이 있다. 대개 자기 분야에서 임상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 의료감정에 대해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들이 의료감정위원으로 지원한다. 대부분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전문의들이다. 

 

2003년에는 의료감정위원들이 대부분 속한 대한의료감정학회가 생겼다. 학회에서는 의료감정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신경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신경과, 내과, 산업의학과, 정신과, 비뇨기과 전문의 총 266명과 간호사 등 183명 속해 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의료감정과 장애판정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해 훨씬 나은 의료감정 평가 방법을 만들고 있다. 학회에서는 의료감정과 장애판정에 대한 일정 교육을 수료해 충분한 지식을 쌓았다고 판단되는 전문의에게 대한의료감정학회 인증의 자격을 주고 있다. 

 

국내에서는 의료감정위원이 결정되기까지 2~3년을 기다릴 만큼 오래 걸린다고 들었다. 의료감정을 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기 때문인가

 

첫 번째로 국내 의료감정위원 수가 부족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의료감정위원은 의료감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선출되고, 주로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전문의가 많다. 의료사고나 장애판정에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선 오랜 임상 경험과 의료감정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분야에서는 수술 치료가 많은 만큼 전문의들이 항상 바쁘다. 환자를 보는 업무 외에 의료감정 등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다. 의료감정을 하려면 환자를 직접 만나 문진하거나 상태를 살피고, 진단서나 진단 데이터를 보고, 필요하면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재촬영하기도 한다. 그만큼 시간과 비용, 인력이 많이 든다. 

 

또 의료감정이 필요한 사건 사고들은 대부분 까다롭다. 병원과 환자, 보험회사와 피보험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의료소송까지 진행된 건들이지 않나. 아주 복잡한 경우에는 감정 결과가 수십 페이지짜리 리포트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들이는 노고에 비해 의료감정위원이 받는 비용은 매우 적다. 현실적으로 의료감정위원을 하려는 전문의가 적은 이유다. 

 

현실적으로 의료감정위원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떤 전문의들이 의료감정위원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은가

 

의료감정은 의사가 사회에서 해야 할 의무 중에 하나다. 의료소송에 대한 결과가 재판 중에 확정된다 하더라도 판사는 의료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명확한 판정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임상 경력이 풍부한 전문의가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의사들이 의료감정을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 전으로 몸을 회복할 수 없는 데다가 그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받을 수 없으니 무척 억울하고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의료감정이 업무 외의 힘든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장차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본다. 평생 수술을 해온 외과의사가 65세 정년퇴임을 한 후 어느 병원에서 계속 수술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간의 풍부한 임상 경력을 바탕으로 의료감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감정에 대한 기준이 잘 정비돼야 한다.

 

올해부터 대한의료감정학회장을 맡았다. 국내 의료감정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최근 의료분쟁원과 의료감정원이 설립돼 의료사고 감정에 대한 필요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해(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생긴 영구적인 노동력 상실 상태) 판단에 대한 경험과 의학적 지식은 향후 추가적 발전이 필요하다.

 

그 중 가장 필요한 것이 '한국형 장해평가 가이드라인' 제정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의료감정시 ‘맥브라이드 장해평가법’을 따르고 있다. 1936년 당시 미국 오클라호마의대 정형외과 교수였던 얼 맥브라이드가 만든 노동력상실평가방법이다. 장해의 부위와 종류, 정도, 환자의 연령 등에 따라 노동력 상실율을 280여 개 계수에 따라 정밀하고 세분하게 평가하는 방법이다. 초판이 나온 뒤 몇 번 개정을 거쳐 1963년 최종판이 나왔다. 문제는 2020년인 지금도 이 최종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의학기술이 발달한 것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져 보완이나 개정이 필요하다. 

 

또 맥브라이드는 정형외과 전문의이기 때문에 이 방법이 정형외과 장해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뤘지만, 신경외과나 정신과에 등 다른 분야 장해에 대해서는 미흡한 점이 많고 전문가 간에도 견해 차이가 심하다는 것도 문제다. 의료사건사고에 대해 일관적으로 감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에는 미국의학협회에서 새로운 장해평가(AMA)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한의사협회가 새로운 장해평가(KAMA)를 만들었으나 전문의와 보험회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이 각기 달라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올해 대한의료감정학회에서는 국내 의료 실정에 맞게 한국형 장해평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목표다. 각 분야 전문의들과 보험회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서로 협력하고 합의가 된 장애평가를 완성시킬 계획이다. 또 그간 장해평가에 대한 개선점을 찾아 의료감정 교과서도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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