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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마감을 잘 지키려면 자잘한 계획을 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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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마감을 잘 지키려면 자잘한 계획을 세우라

2020.01.11 06:00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문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니다. 뻔히 알고 있지만 이런 저런 유혹에 걸려 넘어져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착실하게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한 가지 방법은 예컨대 설거지를 오늘밤 9시까지는 해놓겠다는 식으로 작은 일에도 데드라인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크고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일, 예컨대 세 달 정도의 소요 시간이 예상되는 일인 경우 문제가 좀 더 복잡하다. 세 달이 절대 빨리 가지 않을 것만 같은 착각으로 마감이 다가오고 있다는 실감이 좀처럼 크게 다가오지 않고, 그 때 되면 그 때의 내가 알아서 하고 있을 거라는 자아분리가 일어난다. 나에게 일어날 일이지만 나에게 일어날 일이 아닌 것처럼 여기는 사이 정신차려보면 당장 다음주가 마감이고 나는 또 다시 패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듀크대 심리학과 댄 애리얼리 교수에 따르면 효과적인 데드라인의 비밀은 그 ‘간격’에 있다. 


애리얼리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근무할 당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지막 수업일까지 3개의 리포트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때 한 조건의 학생들에게는 정해진 마감일을 주었다. 또 다른 조건의 학생들에게는 스스로 알아서 데드라인을 정하고 하나씩 내든 마지막에 한 번에 내든 알아서 제출하도록 했다. 다만 데드라인을 한 번 정하면 바꿀 수 없도록 했고 스스로 정한 데드라인보다 제출이 늦는 경우 점수에 불이익을 주었다(정해진 데드라인의 경우에도 동일). 그러고 나서 학기 말에 어떤 조건의 학생들이 더 과제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는지 살펴보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3주 동안 세 개의 과제(주어진 글에서 잘못된 문법, 맞춤법 찾기)를 완성하도록 하고 정해진 마감일을 주거나 학생이 스스로 마감을 정해서 과제를 제출하도록 했다. 


그 결과 우선 정해진 마감일이면서 마감 간격이 ‘균등(주어진 기간의 초반과 중반, 후반에 각각 하나씩 제출)’한 상황에서 가장 학생들의 수행 성적이 좋았고 기한을 어긴 빈도도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정해진 마감일이면서 수업 마지막날 모든 과제를 ‘한꺼번에’ 제출하도록 했을 때가 가장 성적도 나쁘고 객관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경우임에도 학생들이 과제에 쏟은 시간도 가장 적으며 기한을 넘겨 페널티를 받은 빈도도 제일 많았다. 학생들 스스로 마감을 정하게 한 경우는 성적과 기한 준수 정도가 이 둘의 중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학생들이 스스로 마감을 정했을 때에도 마감을 균등하게 정한 학생들은 정해진 균등한 마감일을 받았던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의 좋은 성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스스로 마감을 정했지만 마지막 날 모든 과제를 한꺼번에 제출하기로 계획했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성적도 나빴고 마감도 잘 지키지 못했다. 큰 마감일을 띡 하나 정해놓는 것으로는 마감일을 정하는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안타깝게도 우리 인간은 미래 예측에 매우 서툴다.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일을 계획할 때에도 삶의 수많은 다른 요소들 또는 방해물(술 약속, 집안일, 몸져 누움, 다른 급한 일이 생김 등)을 생각하지 않고 이 세상에는 나와 이 일만 있다는 아주 단순한 가정 하에 앞길이 직선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방해물이 없는 완벽한 조건에서 일을 진행한다면 일주일이면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곧바로 현실적인 계획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뭐든지 ‘금방’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이내 현실 속에서 각종 방해물들을 겪으면서 이 일이 절대 금방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고 ‘예상치 못하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이 늦어졌다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수많은 과제들 사이에서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부터 전쟁이다. 따라서 계획을 세운다면 구체적으로 당장 오늘 또는 내일 이 일에 할애할 시간을 비워 두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일을 계획할 시간, 아이디어를 구상할 시간, 자료를 찾아볼 시간, 1차 드래프트 작성 시간, 오류를 살펴볼 시간, 2차 드래프트 작성 시간 등 일의 단계를 나누어 각각의 데드라인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단계를 나누지 않고 ‘다 한꺼번에 처리하지 뭐’라고 하는 것은 계획이라고 볼 수 없다. 


일을 자잘하게 나누는 것은 커다랗고 추상적이게만 느껴지던 일을 비교적 간단하고 쉽게, 실천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예컨대 ‘책을 쓴다’고 하면 밑도 끝도 없는 과제로 느껴지지만 ①큰 주제를 정한다  ② 목차 1번을 정한다 ③ 목차 1번의 인트로를 쓴다 등의 순서로 나눠보면 조금 더 할 만한 일이 되는 것이다. 


원대하고 큰 계획을 세우고 똑같이 큰 데드라인을 하나 딱 정하는 것보다 촘촘하고 자잘한 계획과 데드라인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 기억해보자. 

 

 

참고자료

Ariely, D., & Wertenbroch, K. (2002). Procrastination, deadlines, and performance: Self-control by precommitment. Psychological Science, 13, 219-22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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