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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비행기 타는 게 부끄러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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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비행기 타는 게 부끄러운 사람들

2020.01.29 17:16
우한폐렴 사태가 본격적으로 외부에 알려진 뒤 불과 1~2주 사이에 세계 17개 나라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해외여행 급증으로 지역 풍토병이 순식간에 지구촌의 팬데믹으로 바뀔 수 있는 위험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동아사이언스DB/ 자료 Novel Coronavirus (2019-nCoV) Cases, provided by JHU CSSE
우한폐렴 사태가 본격적으로 외부에 알려진 뒤 불과 1~2주 사이에 세계 17개 나라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해외여행 급증으로 지역 풍토병이 순식간에 지구촌의 팬데믹으로 바뀔 수 있는 위험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동아사이언스DB/ 자료 Novel Coronavirus (2019-nCoV) Cases, provided by JHU CSSE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통제의 범위를 넘어선 것 같고 이제 관심은 세계적인 확산 여부다. 이미 17개 나라에서 환자가 발생했고 일본과 독일에서는 지역사회의 2차 감염자까지 나왔다. 자칫 지구촌의 대재앙이 될까 걱정된다.

 

사실 이번 사태가 나기 전까지 필자는 우한이라는 도시 자체를 몰랐는데, 1100만 명으로 서울보다도 인구가 많은 대도시라는 걸 알고 좀 놀랐다. 그렇다 보니 국제적인 인적 교류 규모도 커 지난달 30부터 노선이 중단된 22일까지 24일 동안 우한에서 우리나라로 온 사람이 6430명이나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발생 국가와 환자 수를 표시한 지도를 보면 우한에서 시작한 화살표들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 뻗어 있다. 문득 ‘해외여행만 아니라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남(중국)의 이야기일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대 들어 급증하고 있는 해외여행은 옛날이라면 지역 풍토병이었을 전염성 질환이 순식간에 지구촌 팬데믹으로 격상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태는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는 최초의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2009년 신종플루의 경우 독감바이러스 자체가 워낙 감염력이 크므로 각국 보건당국이 처음부터 확산을 기정사실로 보고 대응했다.

 

이번 사태가 지나간 뒤에도 인류는 끊임없이 비슷한 위협에 시달릴 것이고 전염병의 확산 위험성은 더 커질지도 모른다. 병원체의 주요 전파 경로인 해외여행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4% 차지

 

상업비행 건수가 연 5% 내외로 가파르게 늘고 있어 2050년에는 현재의 3배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비행기 여행이 급증해 세계에서 성장이 빠른 공항 30곳 가운데 12곳이 중국과 인도에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중국 베이징 다싱공항의 전경으로 2022년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 제공
상업비행 건수가 연 5% 내외로 가파르게 늘고 있어 2050년에는 현재의 3배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비행기 여행이 급증해 세계에서 성장이 빠른 공항 30곳 가운데 12곳이 중국과 인도에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중국 베이징 다싱공항의 전경으로 2022년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 제공

지난해 9월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지구촌의 비행 건수는 3900만 회에 이르고 탑승객이 40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게다가 증가율이 연간 5% 수준으로 2050년에는 지금의 3배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비행기 여행이 급증하면서 전염병 확산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지구 환경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비행기는 엄청난 에너지(연료)가 들어가는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상업비행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9억1800만 톤으로 추정돼 전체 배출량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81%인 7억4700만 톤이 여객기에서 나머지 19%가 화물기에서 나온다. 여객기 이산화탄소 배출의 40%를 국내선이 60%를 국제선이 차지한다. 

 

국가별로는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한 미국이 24%로 단연 1위다. 미국 사람은 세계 평균보다 비행기를 6배나 많이 타는 셈이다. 그다음이 중국으로 13%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18%이므로 1인당 배출량은 아직 세계 평균에 못 미치지만, 국내외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어 조만간 세계 평균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중국인 해외 여행자 수가 17년 사이 2000만 명에서 1억6800만 명으로 8배 이상 늘었다!). 이어서 영국, 일본, 독일 순으로 비행기를 많이 타는데, 10위까지 목록에서 다행히 우리나라는 보이지 않는다.

 

스웨덴은 비행기 여행 줄어

 

꼭 필요하지 않은 비행기 여행은 자제하자는 ‘비행 부끄러움(flygskam)’ 개념이 확산되면서 스웨덴은 2019년 비행기 탑승자 수가 전년에 비해 4% 줄었다. emotionalgranularity.com 제공
꼭 필요하지 않은 비행기 여행은 자제하자는 ‘비행 부끄러움(flygskam)’ 개념이 확산되면서 스웨덴은 2019년 비행기 탑승자 수가 전년에 비해 4% 줄었다. emotionalgranularity.com 제공

이처럼 비행기 여행 급증이 세계적인 추세임에도 한 나라는 오히려 줄어들어 시선을 끌고 있다. 바로 스웨덴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계기로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새삼 깨달은 스웨덴에서는 꼭 필요하지 않은 비행기 여행은 자제하자는 ‘비행 부끄러움(flight shame. 스웨덴어로 flygskam)’ 개념이 등장해 사람들이 이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9년 비행기 탑승자 수가 전년에 비해 4% 감소했다. 특히 기차로 대체할 수 있는 국내선의 경우 9%나 줄었다(국제선은 2% 감소).

 

독일과 영국에서도 국내선을 없애자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전국에 기차 노선이 거미줄처럼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동에 몇 시간 더 걸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비행기 대신 기차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최근 수년 사이 기후변화가 워낙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과격해 보이는 발상이 어떤 식으로든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예를 들어 비행기 여행에 상당한 탄소세를 물리는 식으로).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효과를 비교한 그래프로 오른쪽은 클로즈업한 상태다. 자녀를 한 명 덜 가지면(have one fewer child) 연간 58.6톤의 CO2e(이산화탄소 환산)를 덜 쓴다. 유럽과 북미를 오가는 비행기 여행을 한 번 줄이면(avoid one round-trip transatlantic flight) CO2e를 1.6톤 절감해 1년 동안 차 없이 사는 것(live car-free)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효과가 있다. 1년 내내 채식을 해서(eat a plant-based diet) 얻는 절감효과는 0.8톤에 불과하다. 위키피디아 제공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효과를 비교한 그래프로 오른쪽은 클로즈업한 상태다. 자녀를 한 명 덜 가지면(have one fewer child) 연간 58.6톤의 CO2e(이산화탄소 환산)를 덜 쓴다. 유럽과 북미를 오가는 비행기 여행을 한 번 줄이면(avoid one round-trip transatlantic flight) CO2e를 1.6톤 절감해 1년 동안 차 없이 사는 것(live car-free)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효과가 있다. 1년 내내 채식을 해서(eat a plant-based diet) 얻는 절감효과는 0.8톤에 불과하다. 위키피디아 제공

가상 학술대회에 열려

 

지난해 11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생체리듬학회 가상 컨퍼런스 현장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 32개 나라에서 450여명이 참여했지만, 대다수는 자기 나라에서 화면으로 발표를 지켜보고 SNS를 통해 토론에 참여했다. Veronika Kallinger/Mediaschool Bayern 제공
지난해 11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생체리듬학회 가상 컨퍼런스 현장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 32개 나라에서 450여명이 참여했지만, 대다수는 자기 나라에서 화면으로 발표를 지켜보고 SNS를 통해 토론에 참여했다. Veronika Kallinger/Mediaschool Bayern 제공

과학자들도 비행기 여행을 자제하자는 움직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학술지 ‘네이처’ 1월 2일자에는 지난해 11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생체시계학회의 컨퍼런스(학술대회) 현장을 소개했다. 대규모 국제 학술대회에는 세계 곳곳에서 수백 명의 과학자가 참석한다. 보통 대학교수들은 1년에 서너 차례 학회 참석차 해외여행을 다니고 초대가 끊이지 않는 저명한 과학자는 학회를 다녀와서도 짐을 풀지 않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과학자들의 연구비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학회 참석 경비에 들어가고 이들이 비행기 여행을 하면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도 엄청나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가 턱밑까지 치고 올라오자 몇몇 과학자들이 이런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학술대회에 ‘화상회의’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유럽생체시계학회 컨퍼런스는 이런 변화를 대규모 학술대회에 적용한 최초의 사례다. 학술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세계 32개 나라에서 관련 연구자들이 대형 화면을 통해 발표를 지켜보고 토론을 가졌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450여 명의 과학자들 가운데 거의 60%가 트위터를 통해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최측은 심리학자까지 불러 가상 학술대회가 기존 학술대회의 이점인 ‘네트워크 구축과 대면 접촉’을 어느 정도까지 대신할 수 있는지 평가하게 했다. 아직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주최측은 가상 컨퍼러스에 만족하면서 앞으로도 가능한 한 해외여행이 필요 없는 학술대회를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가상 학술대회가 점차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불과 한 세대 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여행이 시작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비행 부끄러움’ 같은 개념은 생소할 것이다. 이제 해외여행의 맛을 좀 알 것 같은데 전염병 확산이나 이산화탄소 배출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니 김이 샐 노릇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 후진국으로 악명이 높다. OECD 국가들의 2017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0년 전에 비해 평균 8.7% 감소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유독 24.6%가 증가해 1인당 배출량이 세계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해외여행을 취소하게 돼 속이 상한 사람들은 ‘비행 부끄러움’ 개념을 떠올리면 약간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소개

강석기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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