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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공생 혹은 공멸···감염균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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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공생 혹은 공멸···감염균의 진화

2020.02.01 06:00
중국 허베이성 우한시에 위치한 화중과기대학 동제의학원(Tongji Medical College of HUST)에서 폐렴  확산을 막기 위해 구성된 의료진들의 모습이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허베이성 우한시에 위치한 화중과기대학 동제의학원(Tongji Medical College of HUST)에서 폐렴 확산을 막기 위해 구성된 의료진들의 모습이다. 신화/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하지만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주기적인 바이러스 유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처음 신석기 혁명이 일어난 무렵 세계 인구는 약 400만 명이었다. 1만 년 전이다. 그런데 약 5000년 전 세계 인구는 500만 명이었다. 오천 년 동안 고작 백만 명 늘어났다. 바로 감염병 때문이다. 


농경과 목축은 정착 생활을 가능하게 했고, 여자는 이전보다 자주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아기를 업고 먼 길을 다닐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을 하던 구석기 시대에 비해서 두 배 이상의 자식을 낳았지만, 주기적인 감염병 대유행은 어렵게 이루어 낸 인구 증가를 모조리 원점을 돌릴 만큼 강력했다. 수천 년이 흘러서야 병원균 레퍼토리가 증가하고,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가지게 되면서 인구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감염병 대유행은 인구를 줄이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잠시 호들갑을 떨다가 사라질 것인가? 그러기에는 이미 사망자가 백 명이 넘었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이어질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신종 감염균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영역을 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단 터무니없는 예측이라는 점을 마음에 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의학적 가설을 적용하여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한번 만들어 보자. 


병원체와 인간의 공생 혹은 공멸

 

감염균이 가진 병원성은 양날의 검이다. 병원성, 즉 독성이 너무 심하면 숙주가 죄다 죽어버린다. 숙주가 없으면 병원균도 죽는다. 반대로 숙주는 점점 저항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적응한다. 그래서 병원균은 점점 독성이 약해지고 숙주, 즉 인간은 점점 저항력이 강해진다. 감염의 진화에 관한 가장 전통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가설에 따르면 병원균은 점점 숙주와 공생하는 방향으로 적응한다. 이를 이른바 병원성 균형 이론이라고 한다. 병원체는 낮은 병원성을 향해 진화하고, 숙주는 면역성을 향해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주혈흡충이나 클라미디아 폐렴균, 장내 상재균 등을 보면 인간과 기생충은 반목과 상호 공격의 시대를 끝내고 협력의 악수를 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심지어 ‘약간의 감염은 유익하다’라는 식의 자연주의적 유사과학을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수두로 파티를 하는 것이다. 알레르기도 줄이고, 저항력을 키우고, 자연과 더불어… 이런 식의 스토리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만약 이러한 진화적 가설이 옳다면 감염균은 병원성을 최대한 줄이고, 대신 만성적인 기침과 가래, 설사를 지속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자신의 복제물은 끊임없이 다른 숙주로 옮길 수 있고, 기존의 숙주로 최대한 살려놓는 전략이다. 아마 숙주가 더욱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도록 도울 것이다. 그래야 감염균도 오래도록 널리 널리 퍼질 수 있으니까. 상식에 반하는 주장인데도 제법 오랫동안 통용되었다. 물론 이런 식의 공진화 가설이 잘 들어맞는 사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전염병 대부분은 이러한 모델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 


숙주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면서도, 즉 독성이 심해 곧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 병을 일으키면서도 감염균이 널리 퍼지며 자신의 적합도를 높일 수 있는 네 가지 진화적 전략이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매개 동물 의존성 감염

 

감염균이 숙주의 건강에 무관심한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매개 동물 의존성 감염병이다. 쥐 벼룩이 옮기는 페스트, 모기가 옮기는 뇌염, 진드기가 옮기는 쓰쓰가무시병 등이다. 병원체를 보유한 곤충이나 동물이 단순한 전달자의 역할만 하는 경우(기계적 전파)부터 매개체의 체내에서 증식을 통해 인체 감염으로 이어지는 경우(생물학적 전파)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기계적 전파에 의한 감염병은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살모넬라증, 이질, 결핵, 페스트, 나병이 대표적이고, 생물학적 전파에 의한 감염병은 뇌염, 황열병, 발진티푸스, 유행성 재귀열, 뎅기열, 발진열, 사상충증, 말라리아, 아프리카 수면병, 홍반 열, 쓰쓰가무시병 등이 대표적이다. 


흔히 사람 간의 직접 감염이 더 위험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진화의학자 폴 이왈드에 따르면 매개 동물 의존성 감염병은 숙주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도록 진화할 수 있다. 감염균 입장에서는 매개 곤충이 접근해도 피하지 못하도록 숙주를 기진맥진하게 하거나 아예 얼른 죽여서 매개 동물에 잡아 먹히도록 하는 쪽이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개체를 경유하는 감염병은 대개 증상이 심각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아마 박쥐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기존의 다양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유래한 것을 보면 신빙성이 높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매개 동물 의존성 감염병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수많은 감염자가 모두 박쥐와 접촉했을 리 만무하다. 아직은 다른 매개 동물이 있다는 주장도 없다. 하지만 만약 매개 동물이 있다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 

 

 

수인성 감염


상당수의 감염병은 물을 통해 전파한다. 대개는 환자의 오염된 분변이 강물 등으로 흘러가고, 이를 다시 마시면서 감염이 일어나는 식이다. 하지만 상수도나 하수도가 아니라 오염된 물로 만든 음식을 통해서 일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콜레라나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세균성 이질 등이 대표적이다. 


콜레라에 걸리면 엄청난 설사를 한다.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죽기도 한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전통적인 감염병인데, 그런데도 병원성이 줄지 않았다. 물을 통해서 급속도로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설사로 인해 숙주가 죽는 일이 있더라도 강물이나 호수에 한 번 퍼지면 대량 감염이 가능하다. 숙주를 희생해서라도 대량 전파를 감행하는 전략을 진화시켰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보도에 의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수인성 감염병은 아니다. 공기를 통한 감염도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복이나 집기를 통한 감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점막을 통한 감염이 일어난다는 보고는 있지만, 숙주를 떠나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하지만 만약 물리적 매개체를 통한 감염이 일어난다면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병원 혹은 의료인 매개

 

과거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현대 사회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매개체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곳이 병원이고, 치료하는 사람이 의료인이다. 그러므로 병원이나 의료인을 통해 전파될 수 있다면 감염균은 병원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할 수 있다. 숙주가 아파야 병원에 갈 것이고, 병원에 가야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 실제로 몇 년 전 메르스 유행은 주로 병원이 허브가 되어 일어났다. 


그렇다고 증상이 있는데, 집에 있으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일단 진단이 되어야 하므로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다. 감염 의심 환자의 감염균 전파를 막을 수 있는 특수 설비를 병원에 갖추어야 하는 이유다. 병원의 의료인에게도 보호 장비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의료인의 건강을 위한 것도 있지만, 대유행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매개성 감염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 간 전염 가능성이 확실시되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병원이나 의료인 매개 감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가장 주의해야 하는 시나리오다. 

장기간 잠복


장기간 잠복이 가능한 감염균이라면 특히 위험하다. 감염균 입장에서는 숙주의 건강을 해쳐도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폴 이왈드는 이를 ‘앉아 기다리기’ 전략이라고 하였다. 이동성을 상실한 숙주 내에서 장기간 기다리면서 다른 숙주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전파, 즉 기침이나 설사 등 증상을 꾀할 필요가 없다. 앉아서 기다리기 전략을 취하는 감염균은 매개체를 경유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병원성을 보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결핵이다. 숙주가 쓰러지거나 심지어 죽더라도, 병원체는 외부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으면서 새로운 숙주가 접근하기를 기다린다. 아직 실체를 잘 모르는 바이러스이므로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앉아 기다리기 전략을 취한다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요인이 관여하지만, 우리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감염 경로나 병원성, 전파력 모두 불확실하다. 그러니 전파 차단을 위한 대책도 전방위적으로 일어난다. 아예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우한시의 한국인 입국도 막아야 한다는 섬뜩한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매개체를 거쳐 전파된다면 광범위한 수준의 격리, 차단은 큰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만약 직접 대인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면 최소한의 격리로도 충분하다. 과도한 전방위적 배제와 차단, 폐쇄 조치는 의증 환자가 증상을 숨기도록 유인하여 질병 전파를 더 부추길 수도 있다. 


바이러스의 전파보다 빠른 것이 바로 유언비어다. 오염 회피의 강박적 심리 모듈은 아주 강력하다. 오랜 진화적 역사를 가진 정신적 기전이다. 그러나 밀집된 도시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현대 사회에서 감염자 차별과 배제의 문화는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려는 의사와 과학자에 대한 전적인 지원과 신뢰다. 


괜한 두려움에 중화요리도 시켜 먹지 않는다고 한다. 터무니없는 불안이지만, 인간이 원래 이렇게 비합리적이다. 그런데도 강력한 본능적 불안을 견디며 감염 환자를 근거리에서 치료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있다. 그들이라고 왜 불안하지 않겠는가? 최전방에서 싸우는 의료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보호 대책, 그리고 무한한 응원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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