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고통을 통해 평온을 얻는다

통합검색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고통을 통해 평온을 얻는다

2020.02.08 06:00

 

플리커 제공
플리커 제공

취미로 마라톤을 뛰는 지인이 있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사실 잘 움직이지 않는 나로서는 자기 고문에 가까워 보이는 행동을 취미로 갖는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느날 그에게 힘들지 않냐고, 그렇게 힘든 걸 어떻게 즐기냐고 물었다. 그러자 물론 힘든데 너무 힘들어서 다른 걱정이나 생각을 못 하니까 마음이 차분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신체적 고통 속에서 마음이 산뜻해짐을 느낀다는 것이다. 


고통을 통해 평온을 얻는다는 것이 언뜻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신체적 고통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긴장할 때마다 손톱을 바짝 물어 뜯거나 입술을 깨무는 것, 고통스러운 마사지를 받으면서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 찬물 마시기, 땀 빼기, 엄청 매운 음식을 들이붓기 같이 온건한 신체적 자극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하는 행동들은 매우 흔히 나타난다. 자해 행위 역시 겉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부정적 정서나 사고들을 잠시 멈추는 응급 조치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애슐리 두카스 미국 월드트레이드센터 헬스프로그램 임상심리학자 연구팀이 최근 학술지 ‘정서’지에 공개한 연구에 의하면 이런 신체적 고통들이 일상생활에 광범위하게 사용될 뿐 아니라 실제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부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자극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 일반적인 마음 다스리기를 하거나 아니면 불편한 신체적 자극들을 사용하도록 했다. 일반적인 마음 다스리기에는 방금 본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거나(주의 돌리기) 방금 이미지가 사실 그렇게 불편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 수 있다고 재해석해보는 것이 있었다. 신체적 고통으로는 강하거나 약한 전기 자극 받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생각보다 많은, 약 67%의 참가자들이 적어도 한 번 강한 전기자극을 선택했고 약 98%가 적어도 한 번 약한 전기자극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참가자들이 느끼는 부정적 정서를 측정한 결과 신체적 고통이 일반적인 마음 다스리기 전략과 비슷한 수준으로 정서를 효과적으로 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사람들에게 방에서 홀로 책을 읽지도, 잠을 자지도, 핸드폰을 보지도 않는 상태로 있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신에게 전기 자극을 주도록 했다. 그 결과 가만히 있는 시간 동안 약 60%의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 전기 자극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결과들을 통해 사람들은 심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신체적 고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라고 결론지었다. 


신체적 고통이 마음의 고통을 잠시나마 지우는 효과는 마라톤을 하는 지인의 경우처럼, 강렬한 자극을 통해 다른 감정과 생각들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듀크대학의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는 그의 책 <자아의 저주>에서 신체적 고통들이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내면의 목소리를 잠시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연구자들에 의하면 신체적 고통은 당장 마음의 상처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므로 먼 미래에 대한 걱정 같은 추상적인 문제보다 지금 여기에 의식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많은 불안과 우울이 밑도 끝도 없는 상상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단지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한정시키는 것 만으로 기분이 많이 나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명상이나 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기분을 향상시킨다. 또 고통을 느끼면 몸에서 빨리 이를 상쇄하기 위한 신경전달물질들을 분비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기분이 나아지는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온건한 수준의 신체적 자극이야 크게 걱정할 건 없지만 이것이 자신에게 심각한 해를 입히는 수준이 되면 문제가 된다. 연구자들은 하지만 고통 자체를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서 조절 전략이므로 부끄러워하지 말고 다만 이런 행동이 심해진다면 지체없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당부했다. 

 

※참고자료

Doukas, A. M., D’Andrea, W. M., Gregory, W. E., Joachim, B., Lee, K. A., Robinson, G., Freed, S. J., Khedari-DePierro, V., Pfeffer, K. A., Todman, M., & Siegle, G. J. (2019, September 5). Hurts so good: Pain as an emotion regulation strategy. Emotion. Advance online publication.
http://dx.doi.org/10.1037/emo0000656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8 + 6 = 새로고침
###
    * 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에는 실명확인 과정을 거쳐야 댓글을 게시하실수 있습니다..
    * 실명 확인 및 실명 등록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 (2020. 4. 2 ~ 2020. 4. 14) 동안에만 제공됩니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