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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촌평] 학문 다양성 지탱하는 '두뇌한국'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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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촌평] 학문 다양성 지탱하는 '두뇌한국'을 기대하며

2020.02.09 14:00
윤신영 기자
윤신영 기자

지난달 교육부가 대학원생 지원 사업인 4단계 두뇌한국21(BK21) 사업의 기본계획을 공개한 직후 일부 공학 분야에 비상이 걸렸다. 건축, 자원공학, 원자력, 조선, 항공우주 등 공학계열은 이공계 전공자에게는 익숙한 전공으로 통한다. 대부분 국가 기간 산업과 관련이 있는 뼈대 학문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놀랍게도 4단계 사업 발표를 하면서 이들이 따로 지원할 독립적인 BK21 사업 분야가 없다고 했다. 당시 4단계 기본계획의 ‘세부 분야별 교육연구단 수 및 지원 상한액’ 자료에 따르면, 전기전자공학은 전국에서 총 13개의 교육연구단 또는 팀을 선정하도록 했다. 기계공학과 화학공학, 의학은 10개, 재료는 9개, 컴퓨터와 건설은 각각 6개, 응용생명공학은 5개, 농수산은 4개 교육연구단 또는 팀이 선정된다.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생물은 10개, 물리, 화학은 9개, 수학은 6개, 지구과학은 5개 교육연구단과 팀이 선정될 예정이었다. 이 숫자는 2월 6일 최종 확정된 계획에서 연구단 수를 늘린 수학과 의학을 제외하고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하지만 건축, 자원공학, 원자력, 조선, 항공우주, 산업공학 등 6개 분야는 이렇게 따로 설정된 분야가 없었다. ‘기타중점’이라는 하나의 분야에 몰려 있었다. 이 분야에는 치의, 한의, 수의, 통계, 간호, 보건, 체육 등 공학과 관련이 적은 분야도 다수 속해 있었다. 한 마디로 남은 학과를 다 그러모은 정체불명의 분류인 셈이다.


‘마이너’ 취급에 해당 학과들은 ‘뿔이 났다.’ 무시당해서만이 아니다. 12개 기타중점 분야에서 12개 교육연구단이 선정되지만, 신청 학과가 적을 경우에는 다른 분야와 묶어서 경쟁할 가능성 때문에 최악의 경우 전국에서 한 개의 교육연구단도 선정되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해서였다. BK21은 대학원생 지원과 인재 유치 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인 만큼, 각 분야 전문가들은 예민했다. 


실제로 12월 말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개최된 BK21 관련 간담회에서는 교수들의 질의응답 절반 가까이가 기타중점의 부당함에 대한 문제제기일 정도였다. 이들은 학문이 고사 상태에 이르고 전체 학문의 균형 발전을 해칠 가능성을 우려했다. 대한건축학회 등이 1월 3일 주최한 ‘건축분야 전문인력육성에 관한 긴급 토론회’도 마찬가지였다. 건축 전문가들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 한국 GDP의 17%를 차지할 만큼 건설 산업의 비중이 크다”며 “이대로라면 건축 분야 대학원생 대다수는 지원 폭이 없거나 타 분야보다 좁아지게 돼 전문인력 양성 등에 위험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기타중점에 묶인 전공들이 기존 BK21 사업에 참여했던 비중 등을 고려한 결과라고 항변한다. 또 기존 BK21 사업의 연장선인 미래인재 양성사업 외에 ‘혁신인재 양성사업’을 추가해 사실상 예산을 크게 늘렸고, 여기에 스마트시티 등의 융복합 분야가 있어 기타중점에 속한 공학 분야도 참여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혁신인재 양성사업은 “혁신성장 선도 시산업분야의 경쟁력 제고 및 사회 문제 해결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별도 예산으로 마련한 사업이다. 예산 규모는 기존의 BK21을 잇는 ‘미래인재 양성사업’의 절반 정도다.


교육부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미래인재 양성사업과 혁신인재 양성사업의 분야 면면을 보면 지나치게 정보기술(IT)과 최근 유행 분야에 치중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드론, 스마트공장처럼 학문 분야라기보다는 하나의 세부 분과에 가까워 보이는 분야도 많다. 기존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응용 학문을 지원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BK21이 대학원생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대학 학과가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타중점 분야 학과를 중심으로 “IT 분야 교수라도 급히 추가해 학과를 급조하라는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온 것도 이해가 간다.


다행히 6일 발표된 교육부의 확정 계회에 따르면 약간의 절충은 이뤄진 느낌이다. 기타중점이라는 말을 없애고 ‘중점응용1,2’를 신설했다. 여기에 기타중점에 속해 있던 분야를 공학과 비공학 분야로 나눠 각각 따로 분류했다. 선정도 각각 하도록 했고 선정되는 교육연구단 수도 다소 늘려 적어도 하나의 분야에서 한 개 이상의 연구단은 선정될 수 있도록 했다. 


교육부의 고민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미래인재양성사업의 교육연구단 수를 늘리는 데 필요한 예산은 증액이 불가능했고, 혁신인재양성사업은 별도 예산이라 직접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다른 분야로 배정됐던 예산을 조금씩 줄이는 ‘십시일반’으로 해결했다. 확정된 ‘세부 분야별 교육연구단(팀) 수 및 지원 상한액’ 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기존 분야에서 교육연구단의 지원 상한액이 1월 안에 비해 1억 원씩 줄여 중점응용 분야의 연구단 수를 늘렸음을 알 수 있다.


이미 4단계 BK21의 계획이 확정됐으므로 사업이 마무리되는 2027년까지는 사업을 안정적으로, 또 최대한의 효율을 내도록 잘 운영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분야별 편중’이 심한 국내의 학계 분위기와, 그 편중을 부추기는 정부의 지원 방식을 되돌아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6일 개최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기자간담회에서도 전문가들은 “한국은 주력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그 의존도를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경로의존성’이 심하다” “20년째 주력 수출상품이 변하지 않아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에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래를 내다보며 인재와 분야에 투자하는 BK21 사업도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


당장 유망해 보이는 분야를 집중 지원하고 키워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산업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다만 이런 마음이 다양한 학문의 고른 발전을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유행과 상관 없는 뿌리 분야가 소외되는 일은 정부가 강조하는 융복합 분야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마트시티나 드론 분야에 정작 건축이나 항공 분야 인재가 가지 않는다면, 그 분야가 과연 오래 서 있을 수 있을까. 사상누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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