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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인간은 어떻게 잠의 세계로 이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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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인간은 어떻게 잠의 세계로 이끌릴까

2020.02.11 15:52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파레토 법칙’은 흔히 80대 20 법칙으로 불린다. 원래는 ‘20%의 사람이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부의 분배에 대한 개념인데 묘하게도 다른 많은 영역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20%의 직원이 전체 일의 80%를 한다’는 식이다.

 

지난달 ‘생체리듬의 과학’이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파레토의 법칙이 떠올랐다. 우리가 투입할 수 있는 역량의 20%만 신경 써도 얻을 수 있는 건강 이익 최댓값의 80%까지는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체리듬에 맞는 생활습관을 들이면 힘든 운동이나 다이어트, 보약 챙겨 먹기 등을 하지 않아도 대체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생체리듬 분야의 권위자인 미국 소크생물학연구소의 사친 판다 박사로 오늘날 만연한 만성질환은 대부분 생체시계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결과라며 튼튼한 생체리듬을 유지할 수 있는 ‘간단한’ 습관 4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수면과 시간제한 식사법, 운동, 적절한 햇빛 노출이다. 이들 습관은 시작할 때가 좀 힘들지 곧 익숙해진다. 우리 몸에 새겨진 자연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제한 식사법(하루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 기간을 12시간 이상 유지)이나 운동과 햇빛 노출(산책을 하면 동시에 충족된다)은 결국 제대로 잠을 잘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잠을 잘 자면 건강의 80%는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다.

 

지난 1월 한글판이 출간된 미국 소크생물학연구소 사친 판다 박사의 ‘생체리듬의 과학’. 일주리듬(자전)에 맞는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생활습관을 들이면 대부분의 만성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최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교보문고 제공
지난 1월 한글판이 출간된 미국 소크생물학연구소 사친 판다 박사의 ‘생체리듬의 과학’. 일주리듬(자전)에 맞는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생활습관을 들이면 대부분의 만성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최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교보문고 제공

 

저녁형 인간은 없다

 

필자는 평소 이 주제에 관심이 많고 글의 소재로 여러 번 다뤘음에도 책에는 새로운 통찰을 주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외출할 때 습관적으로 선글라스를 끼는 건 생체시계를 혼란시킨다. 안 그래도 주로 실내에서 생활해 눈에 들어오는 빛의 세기가 충분하지 않은데 바깥에서도 선글라스로 빛을 차단하면 기준 생체시계인 시교차상핵(SCN)이 혼란을 느낀다는 것이다. 

눈을 보호한다는 청색광 차단 안경도 주의를 요한다. 하루 종일 쓰면 역시 시교차상핵이 내내 밤이라고 해석해 갈피를 잡지 못한다. 뇌는 빛에 포함된 파란색 파장을 감지해 낮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색광 차단 안경은 저녁과 밤에만 써야 한다.

 

필자가 가장 놀란 건 과학상식으로 알고 있던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이 엉터리라는 얘기였다. 판다 박사는 대중매체 때문에 이런 잘못된 개념이 널리 퍼졌다며 ‘진짜’ 새벽형 인간 같은 드문 유전적 변이를 지닌 경우를 빼면 거의 모두 아침형 인간이라고 설명했다. 저녁형 인간은 습관이 그렇게 든 결과일 뿐이라는 말이다.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처럼 인공조명이 없는 오지에서 몸을 쓰며 생활하다 보면 며칠 안 가 다들 아침형 인간이 된다고 덧붙였다.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자’는 말이 있듯이 낮에 왕성하게 활동하고 저녁에 차분하게 하루를 정리해야 밤에 쉽게 잠들 수 있다는 말이다. 피로의 지표인 아데노신 축적, 수면을 촉진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 등 수면을 유도하는 여러 신호가 같은 시간대에 강해지는 리듬을 타기 때문이다. 

 

근육 움직임 능동적으로 억제해

 

플리커 제공
플리커 제공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1월 24일자에는 이런 신호들을 통합해 잠으로 이끄는 신경 네트워크의 허브를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잠이 드는데 관여하는 신경 네트워크는 이미 다 알려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핵심이 이제야 밝혀졌다는 게 의아해 논문과 같은 호에 실린 해설을 읽어봤다.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 분자세포생물학과 양 단 교수팀이 주도했고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백세범 교수팀의 세 명도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 연구결과로 입면 신경 네트워크의 완성도가 높아졌을뿐 아니라 기존 수면 이론의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잠이 들면 비렘(NREM)수면을 거쳐 렘(REM, 빠른 안구 운동)수면으로 넘어가고 이 주기가 몇 차례 반복된 뒤 깬다. 

 

렘수면 때는 골격근이 마비되는 현상인 무기력(atonia)이 일어난다. 꿈을 꾸기 때문에 몸이 따라 움직이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근육 움직임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이 구축돼 있다. 물론 호흡과 심장 박동, 안구 움직임에 관여하는 근육은 제외된다. 

 

반면 비렘수면에서는 뇌가 거의 활동하지 않기 때문에 골격근의 움직임을 능동적으로 억제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기존 입장이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입면 신경 네트워크의 허브가 근육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번에 찾은 입면 신경 네트워크의 허브는 뇌 기저핵의 한 부분인 흑질망상부(SNr)에 있는 특정한 신경세포(뉴런)의 무리다. 기저핵은 대뇌 심부에 위치하는 뉴런이 밀집한 영역으로 운동과 기억, 감정 등 여러 기능에 관여한다.

 

연구자들은 생쥐의 상태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이동하는 상태와 제자리에서 몸을 움직이는 상태, 거의 움직임이 없지만 깨어 있는 상태, 잠든 상태다. 각 상태 및 상태가 바뀔 때 뇌파를 측정해 활동도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정적으로 깨어 있다가 잠든 상태로 넘어갈 때 크게 활성화되고 잠든 상태에서도 활성이 유지되는 뉴런 무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 뒤 다양한 기법으로 기저핵 흑질망상부에 있는 이 뉴런(SNr Gad2+로 명명)이 기존에 알려진 입면 뉴런들이 내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이고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뉴런 및 운동에 관여하는 뉴런을 억제하는 신호를 내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뇌간(brainstem)의 등쪽솔기(DR)과 청반(LC)에 존재하는 각성 뉴런과 시상 운동영역(MThal)의 운동 뉴런을 강하게 억제했다.

 

렘수면에서는 뇌간의 한 부분인 뇌교(pons)에 있는 특정 뉴런이 골격근의 수축을 조절하는 척수의 운동 뉴런을 억제해 근육 무기력을 일으킨다. 둘이 완전히 다른 경로라는 말이다.

 

뇌 기저핵의 흑질망상부(SNr)에 입면 신경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는 뉴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위는 생쥐 뇌의 옆모습으로 SNr 뉴런이 등쪽솔기(DR)과 청반(LC)에 존재하는 각성 뉴런과 시상 운동영역(MThal)의 운동 뉴런을 강하게 억제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가운데는 각 단계의 뇌파 패턴으로 비램수면일 때 수면파로 불리는 델타파가 강함을 알 수 있다. 아래는 비렘수면(컬러)과 렘수면(흑백)의 신경회로 차이를 보여준다. 렘수면에서는 뇌간의 특정 뉴런이 골격근의 수축을 조절하는 척수의 운동 뉴런을 억제해 근육 무기력을 일으킨다. 사이언스 제공
뇌 기저핵의 흑질망상부(SNr)에 입면 신경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는 뉴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위는 생쥐 뇌의 옆모습으로 SNr 뉴런이 등쪽솔기(DR)과 청반(LC)에 존재하는 각성 뉴런과 시상 운동영역(MThal)의 운동 뉴런을 강하게 억제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가운데는 각 단계의 뇌파 패턴으로 비램수면일 때 수면파로 불리는 델타파가 강함을 알 수 있다. 아래는 비렘수면(컬러)과 렘수면(흑백)의 신경회로 차이를 보여준다. 렘수면에서는 뇌간의 특정 뉴런이 골격근의 수축을 조절하는 척수의 운동 뉴런을 억제해 근육 무기력을 일으킨다. 사이언스 제공

 

잠들기 전 의식이 효과가 있는 이유

 

연구자들은 SNr Gad2+ 뉴런이 입면 신경 네트워크의 진정한 허브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 뉴런의 활동을 강화하거나 억제하는 약물을 처리해 효과를 봤다. 그 결과 강화하는 약물을 처리한 생쥐는 정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에서 쉽게 잠이 들었고 억제하는 약물을 처리한 생쥐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동하는 상태이거나 제자리에서 몸을 움직이는 상태에서는 약물로 SNr Gad2+ 뉴런을 활성화시켜도 잠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체 활동이 단계적으로 줄어든 뒤 잠이 드는 것이지 걷거나 밥을 먹다가 갑자기 잠들 수는 없게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어 SNr Gad2+ 뉴런을 활성화시켜도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참고로 이런 장치의 치명적인 결함이 기면증이다. 

 

이번 발견은 기저핵에 대한 기존 인식을 새롭게 했다. 기저핵은 동기와 움직임, 운동 계획 등 주로 각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수년 사이 기저핵의 여러 영역이 입면 과정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번에 입면 신경 네트워크의 허브까지 지니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비록 동물(생쥐)실험 결과이기는 하지만 배양한 사람 세포를 대상으로 한 실험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기 때문에 이런 메커니즘이 사람에서도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불면증을 완화하는 행동요법 가운데 하나가 잠들기 전 의식(절차)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구를 정리한 뒤 화장실을 다녀와 물 한 모금 마시고 잠자리에 드는 식이다. 신체 활동이 단계적으로 줄어들어 한동안 정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가 돼야 SNr Gad2 뉴런의 신호도 먹힌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런 의식이 꽤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소개

강석기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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