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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환자를 진짜 죽이는 것은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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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환자를 진짜 죽이는 것은 차별

2020.02.15 06:00
지난 2015년 7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심폐소생술(CPR)에 참여했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가 완치한 간호사가 인사를 건네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2015년 7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 심폐소생술(CPR)에 참여한 뒤 메르스에 감염됐다가 완치한 간호사가 인사를 건네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환자를 진짜로 죽이는 것은 병이 아니라 차별이다” 넬슨 만델라가 했던 말이다.

 

혐오라는 감정은 인간을 각종 감염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데 특화된 감정으로 알려져 있다. 혐오감은 주로 상한 음식, 형태가 변한 음식이나 사람, 토사물이나 배설물 등 더러워 보이는 대상을 향해 나타난다. 나아가 임산부처럼 면역력이 떨어져 있거나 성격적으로 비위가 약하고 역겨움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의 경우 낯선 음식이나 낯선 사람 등에 대해서도 막연한 혐오감을 느끼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학자들은 혐오감을 '행동적 면역 체계'라고 부른다. 병원체가 들어오고 나서 반응하는 신체적 면역 체계와 다르게 병원균과의 접촉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식으로 감염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자극으로부터 혐오감을 느끼고 몸을 피하는 것은 생존에 적응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낯설거나 병에 취약해 보이는 타인에 대한 차별과 공격성 표출로도 이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신종 전염병이 등장해 공포와 역겨움 민감성이 높아지는 시기에 정작 문제의 원흉인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감염의 매개체가 될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해외에서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 대해 같은 화장실을 쓰지 않으려 하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지 않으려고 하는 등의 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나와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화기를 통해 감염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나와의 통화를 거부했습니다 

-"It feels like I'm the dirtiest person in the world.": Exploring the experiences of healthcare providers who survived MERS-CoV in Saudi Arabia

 

 

보균자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사람을 차별하곤 하는데 실제로 병에 걸린 사람이라면? 안타깝지만 가장 약하고 두렵고 따라서 가장 많이 보호받아야 하는 환자들에 대한 배척과 차별은 상상을 초월한다. 2015년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당시에도 환자들에 대한 차별은 심각했다. 항상 그렇듯 감염된 환자들의 다수가 병과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 및 병원 스탭들이었는데 이들의 경험담을 담은 보고서가 나왔다(Almutairi et al., 2018). 

 

연구자들은 2015년 당시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감염되었고 회복된 생존자 7명(필리핀 사람 3명,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 2명, 미국인 1명, 한국인 1명)을 대상으로 감염 당시와 회복 이후에 대해 인터뷰를 실시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당시 매우 두려웠고 병원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치료에 임했다고 보고했다. ‘환자를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케어한 것’이 이들이 생각한 감염의 가장 큰 이유로 뽑혔다. 


또한 병에 걸렸을 때에도 다수가 심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보고했다. 의료 관계자라 병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었던 것만큼 더 최악의 상황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고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 구체적으로 상상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병 앞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이 있듯 의료진도 사람이요 병에 걸리고 나면 병과 외로이 싸우는 한 명의 환자인 것이다. 

 

제가 전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또 다수가 '차별' 경험에 대해 상세히 보고했다. 한 생존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무시 받는 것도 고통이다. 나를 향한 편견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그게 아프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무지함도 놀라울 정도였다. 행정적인 이유로 나와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화기를 통해 감염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나와의 통화를 거부했다”

 

또 다른 생존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곁에 오기를 거부했고 병이 다 나은 다음에도 노골적으로 자신을 피했다고 진술했다.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언급했다. 친했던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집 근처를 지나가는 것이 뻔히 보였는데도 아직 회사라고 거짓말을 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이 외에도 다수가 이런 차별을 통해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존감이 꺾이는 경험을 했다고 보고했다. 


이와 반대로 감염 당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은 사람의 경우 되려 삶의 의미감이 높아진 경향이 나타났다. 한 환자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병에 걸리고서 많이 울었는데 아파서 운 적은 없다.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에 감동해서 울었다. 거짓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신경써준 사람들이 있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홍콩에서 사스(SARS·중증호흡기증후군)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된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벌였다. 회복 후에서 지속적인 심리적 트라우마를 갖게 된 사람(극복하지 못한 사람), 병에 걸렸을 때부터 트라우마를 겪지 않았던 사람들, 트라우마를 겪었다가 극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트라우마를 아예 겪지 않은 사람과 트라우마를 겪었으나 빨리 극복한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한 편이었던 것보다도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를 잘 받은 사람들인 것으로 나타났다(Bonanno et al., 2008). 

 

병이 지나간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몸의 상처가 나아도 마음의 상처가 계속되는 한 환자들은 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같은 병을 앓았어도 따듯한 보살핌을 받았던 사람들은 이후의 삶을 씩씩하게 이어나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차가운 배척을 받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심리적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스스로도 자신의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보고하는 경향을 보였다.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의료진이나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픈 사람을 보듬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지금 가장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따듯한 응원을 보내보자. 

 

참고자료

-Almutairi, A. F., Adlan, A. A., Balkhy, H. H., Abbas, O. A., & Clark, A. M. (2018). “It feels like I’m the dirtiest person in the world.”: Exploring the experiences of healthcare providers who survived MERS-CoV in Saudi Arabia. Journal of Infection and Public Health, 11, 187-191.
-Bonanno, G. A., Ho, S. M. Y., Chan, J. C. K., Kwong, R. S. Y., Cheung, C. K. Y., Wong, C. P. Y., & ong, V. C. W. (2008). Psychological resilience and dysfunction among hospitalized survivors of the -SARS epidemic in Hong Kong: A latent class approach. Health Psychology, 27(5), 659–667. https://doi.org/10.1037/0278-6133.27.5.65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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