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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과학]마블링이 전부가 아닌, 소고기 맛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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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과학]마블링이 전부가 아닌, 소고기 맛의 비밀

2020.02.14 11:53
 

‘고기 위에 내린 눈꽃’이라 불리는 근내지방도(마블링)는 오랫동안 고기의 품질을 평가하는 최우선 기준으로 활용됐다. 소고기는 마블링이 대리석 무늬처럼 고기 전체에 촘촘히 퍼져 있어야만 최상등급인 투플러스(1++)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2019년 12월 이 기준이 확 바뀌었다. 탕, 구이, 찜, 다양한 명절음식에 들어가는 고기맛의 비밀을 풀어봤다. 

 

2019년 12월 1일 소고기 등급 판정 기준 개정안이 시행됐다. 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1++, 1+등급의 근내지방도(마블링) 기준이다. 기존에는 1++, 1+등급을 받기 위해선 마블링이 각각 17%, 13% 이상이어야 했지만 이제는 각각 15.6%, 12.3% 이상이면 같은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이 낮아졌다. 과연 마블링이 주는 맛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그토록 마블링에 열광했던 걸까? 

 

마블링이 주는 맛의 정체

 

호주의 한 업체가 개발한 고기 품질 측정기. 물성에 따라 레이저가 반사되는 정도를 측정해 전단력, 질긴 정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Jordy Kitschke 제공
호주의 한 업체가 개발한 고기 품질 측정기. 물성에 따라 레이저가 반사되는 정도를 측정해 전단력, 질긴 정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Jordy Kitschke 제공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기본 맛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감칠맛 등 5가지다. 고기에 들어있는 환원당, 아미노산, 지방산, 핵산 등의 성분은 이 5가지 미각 수용체를 자극한다. 특히 고기 속 글루탐산과 구아노신일인산(GMP), 이노신일인산(IMP)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감칠맛을 높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마블링이 주는 맛의 차이를 설명하긴 어렵다. 혹자는 ‘지방맛’을 주장한다.

2011년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은 미각으로 지방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미뢰의 CD36 수용체 발현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밝히며 인간이 느끼는 6번째 맛으로 지방맛을 제안했다. doi: 10.1194/jlr.M021873 하지만 이후 여러 관능검사(제품의 품질을 인간의 오감으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검사 참가자의 대부분이 지방맛을 느끼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마블링이 고기의 풍미, 조직감, 다즙성에 고루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맛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설명한다. 먼저 풍미에 대해 살펴보자.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굽기다.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고기에 포함된 많은 성분이 변성되기 때문이다. 


지방을 구성하는 지방산은 열에 의해 분해되며 다양한 종류의 휘발성 풍미성분을 만들어낸다. 풍미는 보통 후각에 의해 유발된다. 알데히드, 알코올 등 지방산에서 유래한 휘발성유기화합물이 고기 특유의 풍미를 만들어낸다. 


지방이 고기의 풍미를 높이기는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다. 설국환 국립축산과학원 농업연구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국내 돼지고기 등급에 따른 휘발성 풍미성분의 종류를 연구해 국제학술지 ‘아세아-태평양축산학회지’ 2019년 9월호에 발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상등급인 1+등급의 돼지고기(등지방두께 17~25mm)를 구울 때 주로 과일향을 내는 알데히드 계열과 버섯향을 내는 알코올류 휘발성풍미물질이 많이 나왔고, 가장 낮은 2등급 돼지고기(등지방두께 15mm 미만)는 구웠을 때 양파와 유사한 향을 내는 황화합물의 함량이 높았다. doi: 10.5713/ajas.18.0965


그밖에 지방은 고기의 씹는 맛 즉, 조직감과 다즙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지방은 가열되면 액체 상태로 녹아 고기에서 빠져나간다. 그 결과 지방이 있던 근육 조직 사이에 공간이 생겨, 고기를 씹을 때 연하다는 느낌을 준다. 또 지방은 섭취했을 때 침 분비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지방이 많은 고기를 먹으면 고기에 실제로 포함된 수분이 많지 않더라도 고기가 촉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콜라겐, 산성도도 고기맛 좌우해

 

산성도가 낮은 고기(왼쪽)는 정상고기(가운데)보다 수분이 많이 빠져나온다. 반면, 산성도가 높으면(오른쪽) 고기 내 수분이 많아 물컹한 느낌을 준다. Foloyd Mckeith 제공
산성도가 낮은 고기(왼쪽)는 정상고기(가운데)보다 수분이 많이 빠져나온다. 반면, 산성도가 높으면(오른쪽) 고기 내 수분이 많아 물컹한 느낌을 준다. Foloyd Mckeith 제공

새로운 소고기 등급 판정 기준에서는 마블링 외 다른 평가 항목(육색, 지방색, 조직감, 성숙도 등)이 등급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 과거에는 마블링으로 예비 등급을 정한 뒤, 육색과 지방색, 조직감, 성숙도 등에서 결격 항목이 있으면 등급을 낮췄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항목들도 개별적으로 평가해 그중 최하위 등급을 고기의 최종 등급으로 정한다. 마블링이 아무리 좋아도 다른 평가 항목에서 낮은 등급을 받으면 최종 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조직감은 앞서 설명한 지방 성분 외에도 콜라겐과 지방산 함량의 영향을 받는다. 구조단백질의 일종인 콜라겐은 고기의 근원섬유에 비해 인장강도가 100배 가량 높다. 따라서 콜라겐의 함량이 높은 고기는 상대적으로 질기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고기에 포함된 지방산의 종류도 조직감에 영향을 미친다. 지방산은 불포화지방산과 포화지방산으로 나눌 수 있다.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기는 부드럽다는 느낌을 준다. 반대로 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은 고기는 씹을 때 더 쫄깃하다. 


그밖에 고기의 산성도(pH)도 고기 맛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조철훈 서울대 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는 “아미노산은 산성도에 따라 다른 전하를 띠는데, 이것이 고기의 수분 함유량에 영향을 미친다”며 “고기의 적정 산성도인 pH5.4~5.8을 벗어나면 아미노산이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 전하를 띠며 서로 응집하게 되고, 그 결과 수분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적어지거나 많아져 수분 함유량이 정상치를 벗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설 농업연구사는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조직감이 곧 연도(부드러운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연도와 다즙성 등 다양한 물리적 성질이 함께 작용한다”며 “고기의 다양한 물리적 성질, 수분을 유지하려는 성질 등을 측정해야 조직감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육색과 지방색은 다른 평가 기준에 비해 맛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조 교수는 “육색은 고기에 포함된 미오글로빈 함량, 지방색은 근내지방에 포함된 카로티노이드 색소 등에 의해 결정된다”며 “이 같은 성분들은 미각을 포함해 맛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맛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인 만큼 육색이나 지방색이 심리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설에는 새로운 소고기 등급 판정 기준이 부여된 고기를 구매하게 된다. 마블링의 가중치가 줄어든 만큼 식탁에서 느끼는 1++, 1+등급 갈비찜 맛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소비자들이 기존과 같은 품질의 소고기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당분간은 고기 등급과 근내지방도를 둘 다 표시하도록 했다. 입맛 섬세한 소비자들에게는 선택지가 더욱 넓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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