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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큰 걸음]"포니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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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큰 걸음]"포니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형"

2020.04.09 18:28

자동차전문가 이충구 현대차 전 사장

 

국내 첫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2019년 12월 18일 서울 강남구 KAIST 도곡캠퍼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자동차 전문가로서는 처음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된 그는 ″개인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과 함께 한 동료 후배들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국내 첫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2019년 12월 18일 서울 강남구 KAIST 도곡캠퍼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자동차 전문가로서는 처음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된 그는 "개인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과 함께 한 동료 후배들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포니 프로젝트는 아직 진행형입니다. 1975년 탄생한 ‘포니1’은 한국의 첫 자동차 모델이라는 기록 외에도 각종 신화를 낳았습니다. 1986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첫 해 17만 대를 팔면서 큰 성공을 거뒀지요. 덕분에 한국은 손꼽히는 자동차 생산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동차 선진국 미국과 유럽 시장의 문턱은 여전히 높아요.”


2019년 12월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KAIST 도곡캠퍼스 과학기술유공자 라운지에서 만난 ‘포니’ 개발의 주역 이충구 한국자동차공학한림원 회장(74·현대자동차 전 사장)은 ‘한국 산업화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로 꼽는 포니 개발이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수준의 ‘성공’에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동차입국'을 이룬 것은 뿌듯한 일이지만 아직 만족할 수 없다는 자동차 장인의 결기가 느껴졌다.   


포니 개발은 한국 산업사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다. 자동차에 관한 한 불모지였던 한국은 포니 개발을 필두로 빠르게 세계적 자동차 생산국 대열에 접어들었다. 지금은 브라질과 인도 등의 선전으로 순위가 내렸지만, 한때는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량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 때문에, 2019년 한국공학한림원은 포니 개발을 한국 산업화의 결정적 장면 100개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동아일보 역시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국내 주요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 근대 산업화를 이끈 대표적 성과로 포니 개발을 꼽았다.

 

1975년 이탈리아 모델실에서 ‘포니’와 함께한 이충구 전 사장. 동아사이언스 자료사진
1975년 이탈리아 모델실에서 ‘포니’와 함께한 이충구 전 사장. 동아사이언스DB

이 전 사장은 2019년 1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선정한 ‘과학기술유공자’에 자동차 전문가로는 처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故) 김시중 전 과학기술처 장관, 고 김정식 대덕전자 전 회장, 자원학자 고 박동길 인하대 명예교수 등 12명과 함께 과학기술 분야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50년 전만 해도 자동차 산업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한국을 세계적 강국으로 이끈 신호탄인 포니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이후 설계책임자로 주요한 자동차 개발을 진두지휘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모두 자동차 산업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한국을 불과 40여 년 만에 자동차 분야의 세계적 강국으로 이끈 공을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전 사장은 “살아남으려면 자동차 선진국이자 법규가 까다로운 미국, 독일, 일본에서 선전해야 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기업도, 독일 폭스바겐도 미국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수출도 하고 있고 선전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다. 포니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과학기술 유공자 선정은 한 개인이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이 인정을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며 “자동차 산업을 일으키는데 힘써온 다른 숨은 주역들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자동차 생산 불모지 한국에서 차량 국산화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기적’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었다. 1960년대만 해도 국내엔 자동차 산업이라고 부를 만한 기반이 없었다. 그 역시 처음부터 ‘준비된 인재’는 아니었다. 방앗간집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계에 매료돼 서울대 공대에 진학한 그였지만, 서울대에 처음으로 개설된 공업교육과 자동차공학전공에서조차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이 전공 1회 입학생인 그는 교재도, 실습장비도 없어 청계천에서 구한 미국 자동차회사의 매뉴얼을 탐독하며 겨우 공부에 대한 갈증을 풀어야 했다. 하지만 자동차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강렬했고, 196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당시 한국의 자동차 기업은 둘뿐이었고, 미국 포드나 도요타 등 외산 자동차를 조립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판자로 바람만 겨우 막은 건물에서 하루 몇 대 생산하는 게 전부였다. 이 전 사장은 “당시 공장이 세워진 땅이 좋지 않아 홍수가 나서 공장이 물에 잠기는 일도 일어났다”며 “공장들은 물난리가 날 때면 부품을 다시 풀어 물에 씻어 다시 조립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고 회상했다. 자동차에 사소한 고장이 나도 필요한 철판을 가공할 설계도가 없었고, 설령 외국에서 설계도를 구해와도 이를 해석해 가공할 인력도 없었다.

 

고유모델을 만들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는 “포장도로가 드문 당시 한국에서는 자동차가 고장도 자주 났다”며 “특히 부품을 연결하는 철판이 깨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체 설계가 아니니 이 간단한 것도 스스로 수리할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외국에서 설계 도면을 받아와도 국내에는 도면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도면의 설계를 철판에 가공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우리 스스로 만든 고유모델이라고 판단하고 개발 임무를 내렸다. 


1970년대 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150달러 안팎이던 시절이었다. 2018년 GNI인 3만 3434달러와 비교하면 200분의 1이 채 안 됐다. 포드, 제너럴모터스, 르노 등 내로라하는 선진국 자동차 회사를 찾아갔지만 ‘턱도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일본 미쓰비시자동차로부터 뒷바퀴 힘으로 달리는 후륜구동엔진과 변속기, 조향장치 등 차량의 뼈대를 이루는 섀시 기술을 구입하기로 하면서 국산모델 개발에 시동이 걸렸다.


이 전 사장은 “그때까지도 고유모델이 뭔지 몰랐다”며 “어쨌든 뼈대 만드는 기술은 확보한 상태니 당시 차체 디자인 전문 회사(카로체리아)인 이탈디자인에 의뢰해 디자인을 확정했다”고 말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1975년 포니 1호차가 출고됐다. 이듬해엔 1976년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수출에도 나섰다. 한국은 그렇게 세계 9번째 고유 모델 보유국이 됐다.

 

현대자동차가 처음 자체 개발한 소형차용 엔진인 알파엔진이다. 이 엔진을 개발하면서 차체만이 아닌 엔진 등 주요부품까지 국산화한 진정한 고유모델이 개발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가 처음 자체 개발한 소형차용 엔진인 알파엔진이다. 이 엔진을 개발하면서 차체만이 아닌 엔진 등 주요부품까지 국산화한 진정한 고유모델이 개발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 제공

그는 “하지만 포니를 수출을 한 나라들은 자동차 역사가 일천한 나라들 일색이었고,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는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포니 프로젝트가 진짜 성공하려면 미국과 유럽, 일본 같은 자동차 초강대국에서의 성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까다로운 미국 시장이 목표였다. 이 전 사장은 까다로운 미국 시장을 목표로 여러 번 ‘승부수’를 던졌다. 후륜구동 대신 당시 자동차 업계의 주류였던 전륜구동 엔진을 사용한 포니엑셀을 1985년 선보였고, 이 차로 1986년 처음으로 미국 시장을 두드려 그 해에만 17만 대를 파는 돌풍을 일으켰다. 

 

막상 미국에 진출해 성공을 거뒀지만 이후 쏟아지는 까다로운 미국 소비자들의 불평과 드러나는 문제점들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불만은 인테리어 도장부터 주행능력, 승차감까지 다양했다. 이 전 사장은 “처음 듣는 문제들이 너무 많아 직접 발로 뛰어 찾아다니며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체가 도로 사이 이음새를 거치며 메뚜기가 뛰듯 일렁이며 달리는 현상, 미세한 인테리어 도장의 차이, 의자의 불편함 등 온갖 문제가 쏟아졌다”며 “미국 소비자의 이런 반응은 첫 미국 성공 이후 약 10년간 미국시장에서 침체에 빠지는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사용하던 미쓰비시의 전륜구동 엔진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전륜구동 엔진을 자체 개발했다. 이 전 사장은 “수천억 원의 비용을 추가로 들여야 하는 큰 결심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투자는 결실을 맺었고, 1994~1995년 한국은 차체부터 섀시까지 전부 자체 개발한 명실상부한 진짜 고유모델인 ‘엑센트’와 ‘아반떼’를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그는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자동차인 에쿠스까지 거의 모든 라인업을 구축하는 데 관여했다. 
이 전 사장은 제품 개발과 품질 개선을 우선시한 엔지니어이자, 연구하는 기업인이었다. 그가 대리 시절 이탈리아에 머물며 배워온 기술과 노하우를 기록한 노트는 일명 ‘이 대리 노트’로 불리며 수없는 동료, 후배들에게 개발 지침서가 됐다. 이 전 사장은 “사장이 되어서도 매년 노트를 썼는데 이상하게 아직도 이 대리 노트로 불리고 있다. 이제는 ‘이충구 노트’로 불러달라”며 웃었다.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포니1의 모습. 국내 첫 고유모델인 포니의 개발로 한국 자동차 산업도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포니1의 모습. 국내 첫 고유모델인 포니의 개발로 한국 자동차 산업도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이 전 사장은 “지금도 포니부터 에쿠스까지 엔지니어들을 괴롭게 하던 문제들이 일일이 기억난다”고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차량으로 쓰인 최초의 국산 중형차 스텔라의 화려함,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를 싣고 방북하는 데 썼던 트럭, 경차 천국 일본과 경쟁할 마음으로 개발한 아토스, 고 정주영 회장의 장례차 등이 그의 손을 직접 거치거나 지휘 아래 만들어졌다. 그는 “전문가는 차에 딱 타보면 그 회사의 기술력을 안다”며 “작은 결함도 없애기 위해 수없이 자동차를 타며 개선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이 전 사장은 성공이니 신화라는 말을 경계했다. 이 전 사장은 “자동차 산업이 살아남으려면 최종적으로는 자동차 선진국이자 법규가 까다로운 미국, 독일, 일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포니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한 것도 그런 뜻이 담겼다. 

 

최고기술책임자(CTO)이자 사장으로서 현장에서 수많은 자동차의 개발을 진두지휘한 리더십의 비결을 묻자 “그냥 자동차에 미쳐 일만 했을 뿐, 리더로서는 부족했다”며 겸손해 했다. 그는 재직시절 신입사원에게 강조하던 세 가지 덕목을 소개했다. 


“첫째, 모른다고 이야기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아는 걸 안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신뢰는 이 때 생깁니다. 둘째, 잘못에는 ‘나의 실수(마이 미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 잘못인지 애매하면 무조건 자신의 실수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자신의 실수입니다. 자동차는 조금만 실수해도 큰 손실이 쌓이는데, 이런 태도를 통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동네 배구에서도 이런 자세를 지닌 팀이 이깁니다. 마지막으로 설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설계는 없습니다. 계속 개선하고 바꿔야 합니다. 그러자면 설득하는 소통이 필수입니다.”

 

그는 “자동차에 미쳐 일만 했을 뿐, 리더로서는 부족했다.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재직시절 한 때 사원들 사이에서 제 별명이 ‘타이거(호랑이)’였던 적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풀어야만 직성이 풀렸거든요. 완벽주의가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리더로서 완벽주의는 감점요인이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리더로서 부족했을지도 몰라요.”


그가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 “하지만, 리더이기 이전에 저는 엔지니어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엔지니어에게는 완벽주의가 필요합니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그 완벽주의 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겁니다.”


“포니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 말이 다시 한 번 그의 말에 겹쳤다.

 

국내 첫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18일 서울 강남구 KAIST 도곡캠퍼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자동차 전문가로서는 처음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된 그는 ″개인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과 함께 한 동료 후배들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ashilla@donga.com
국내 첫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18일 서울 강남구 KAIST 도곡캠퍼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자동차 전문가로서는 처음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된 그는 "개인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과 함께 한 동료 후배들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ashilla@donga.com

○이충구 전 현대차 사장은

1945년 충북 영동출생

1967년 서울대 공업교육과 졸업

1969~1993년 현대자동차 개발부

1993~1999년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 부사장

1994년 3.1문화상

2000년 금탑산업훈장

2001~2003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2010년 대한민국 100대 기술주역 선정(한국공학한림원)

2012~2016년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원 지능형자동차플랫폼센터장

2014년~ 한국자동차공학한림원 회장

 

 

관련링크 대한민국과학기술유공자 공식웹사이트 http://www.koreascientists.kr/scient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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