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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금 대신 약을 만든 파라켈수스, 연금술의 새 장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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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금 대신 약을 만든 파라켈수스, 연금술의 새 장 열다

2020.03.05 14:00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연금술이라고 하면 흔히 중세와 중세의 연금술사가 떠오른다. 하지만 연금술 연원은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의 야금술에까지 연줄이 닿는다. 야금술이란 광석에서 금속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바빌로니아의 야금술은 기원전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미 금, 은 구리, 납, 철 등을 다루었다.


 연금술은 물론 납이나 구리 같은 흔한 금속으로부터 금, 은 같은 귀금속을 만드는 기술이다. 범위를 좀 더 넓히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리게 하는 영약을 만드는 것도 연금술사들의 목적이었다. 동양의 장생불로초와 거의 똑같다. 금과 영약 제조를 한꺼번에 가능하게 하는 마스터키가 있었으니 바로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다. 현자의 돌은 형상변화의 능력을 지닌 신비한 돌이다. 한편 금이나 영약에만 매달리는 것은 연금술을 너무 세속적으로만 받아들인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 정신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인데 이를 비유적으로 금속의 형상변화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연금술의 이론적인 ‘원흉’은 이미 소개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 즉 흙, 물, 불, 공기가 각각 가진 성질이 바뀌면 한 원소가 다른 원소로 변환된다. 언제나 느끼는 사실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는 시대를 앞서서 너무나 똑똑했다는 점이다. 근대적인 화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연금술은 한 마디로 사이비 유사과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쨌든 구리나 납으로 금을 만들지 못했으니 연금술은 실패한 프로젝트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원소 개념에서 보자면 원소의 변환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 방법과 내용이 달라졌을 뿐이다. 영생을 보장하는 영약은 화학보다는 생물학 분야에서 좀 더 기다리며 기대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20세기 화학의 일부를 미리 소개하자면, 그 유명한 마리 퀴리의 딸인 이렌 졸리오-퀴리는 남편인 프레데릭 졸리오-퀴리와 함께 알루미늄에 알파입자를 쏘아 새로운 방사성 원소(방사성 인)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공로로 1935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알루미늄을 인으로 바꾸었으니 이렌 부부가 한 일이 바로 연금술이다. 실제로 노벨화학상 위원회 의장 팔머 교수는 1935년 12월10일 노벨상 시상식 연설에서 “마침내 연금술사들의 오랜 꿈이 실현되었다.”고 이들의 업적을 치하했다.

 

아주 최근에 물리학자들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우주에도 연금술사들이 있다. 두 개의 중성자별이 충돌 병합할 때 금이나 백금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지는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허블우주망원경으로 두 중성자별의 충돌 현상을 관측했다. 화살표 부분에서 강력한 에너지 분출 현상(킬로노바)이 보인다(2013년 6월에 촬영).
허블우주망원경으로 두 중성자별의 충돌 현상을 관측했다. 화살표 부분에서 강력한 에너지 분출 현상(킬로노바)이 보인다(2013년 6월에 촬영). 그 과정에서 다량의 금과 백금, 우라늄 등의 중금속이 생성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연금술이 완전히 엉터리라거나 모든 게 사기라고 치부하는 것이 아주 옳은 말은 아닌 셈이다. 


연금술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선배는 따로 있었다. 이슬람 세계의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이 그 주인공이다. 이슬람 과학에서도 소개했듯이 자비르는 황과 수은의 적절한 조합으로 어떤 금속이든 (금을 포함해서) 만들 수 있다는 황-수은설을 주창했다. 자비르는 이슬람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자비르는 약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는 우마이야 왕조에서 아바스 왕조로 세력이 교체되는 시기였다. 자비르의 부친은 페르시아 지역에서 새로이 떠오르는 바르마크 가문과 동맹을 맺었고 결국 새 왕조 건설에 공헌하게 된다.


연금술 자체가 신비주의의 일종이므로 연금술사들이 여타의 신비주의나 마법 등에 관심이 많았다. 자비르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설에 따르면 자비르는 인공의 생명체를 창조하려고 했었다. 이 전통이 훗날 유럽의 파우스트 전설이나 프랑켄슈타인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의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흐름을 수피즘이라고 한다. 수피즘은 외형적인 율법이나 의례보다 금욕주의적인 인간 내면의 변화로 알라와의 합일에 다가갈 수 있다는 신비주의 교리이다. 수피즘의 어원은 양모의 아랍어인 수프이다. 초기 수도자들이 양털옷을 입고 금욕주의적인 고행을 한 데서 유래했다. 인공의 생명체를 만들려는 자비르의 시도도 수피즘의 신비주의적 은유로 해석하기도 한다. 자비르의 신비주의는 자신의 저작에서 암호화 내지 기호화된 표현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자비르가 이단으로 몰리는 걸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여기서 유래한 단어가 ‘gibberish’이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횡설수설”이라는 뜻이다. 

 

자비르가 신비주의에만 빠져 황과 수은으로 금만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연금술사라고 하면 괴짜 마법술사의 이미지가 강한데, 자비르는 ‘아랍 화학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근대과학의 토대와 연결되는 업적도 많이 남겼다. 특히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증류기, 저울 등도 만들었다. 정밀한 저울은 화학반응 전후의 물질의 양을 측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장비로서 정밀한 정량화학이 확립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다. 자비르는 또한 염산, 질산, 왕수 등도 발견했고 알칼리라는 단어와 개념도 도입했다.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 위키피디아 제공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  실험을 강조하고 과학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알칼리(alkali), 알코올(alcohol), 연금술(alchemy) 등의 용어들은 모두 아랍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이다. ‘알(al)’은 아랍어의 정관사이다. 실험을 대하는 자비르의 태도는 다음 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화학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자신이 직접 실제로 연구와 실험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질적 연구나 실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전문적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실험을 통해 지식을 얻도록 하라. 과학자란 자료의 풍부함에 기뻐할 게 아니라 오직 실험 방법이 우수할 때만이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자비르는 일생에 걸쳐 200권이 넘는 책을 썼다. 왕조의 후원을 받으며 눈부신 업적을 남긴 자비르였으나 말년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가택에 연금되었다가 생을 마쳤다. 자비르의 명성이 워낙 자자해서 훗날 14세기 유럽에서는 게버(Geber)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중세 유럽의 교회는 연금술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연금술이 중세 유럽에 소개된 계기는 다른 이슬람 문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12세기 르네상스 때의 대규모 번역작업이었다.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의 톨레도 지역을 기독교가 장악하면서 엄청난 양의 이슬람 문명이 중세 유럽으로 흘러들었다. 이 과정에서 라틴어로의 번역은 필수였다. 어쨌든 연금술은 동양으로 치면 도술이나 마법에 가까운 전통이어서 아무래도 유일신 종교와 궁합이 잘 맞지는 않아 보인다. 실제 14세기의 교황 요한 22세는 교령으로 연금술을 금지했고 샤르 5세는 연금술 관련 기구의 소유를 금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형상 변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금을 만들고 싶은 욕망을 모두 억누를 수는 없었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연금술사를 꼽으라면 16세기에 활동한 파라켈수스(1493~1541)를 빼놓을 수 없다. “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뭔지 아세요? 기말고사 시험문제에 파라켈수스의 본명을 쓰라고 내는 겁니다. 문제를 받아보는 순간 여러분은 뜨악 하시겠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저의 마음은 얼마나 즐거울까요?”

 

실없는 내 농담에 학생들도 웃어준다. 물론 아쉽게도 나는 아직까지 이 문제를 내 본 적이 없다. 언젠가 기말고사 채점을 하는데, 사람 이름을 묻는 단답형 문제(아주 쉬운 문제였다)에 정답을 쓰지 못한 학생이 파라켈수스의 본명을 정확하게 적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설명을 달았다. 정답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데 왜 파라켈수스의 본명만 또렷하게 머릿속을 맴도는 걸까요. 오답에도 불구하고 순간 나는 온전한 점수를 주고 싶었다. 


내가 이런 농담을 한 속뜻은 이렇게 열심히 외워야만 알 수 있는, 아주 디테일한 사항들은 시험문제로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입 밖으로 이렇게 말을 해도 미덥지 못한지 채점을 하다 보면 답안지를 받자마자 구석에 열심히 공부한 세부사항을 몇 자 적어 놓은 학생들이 꽤 있다. 나도 학창시절에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이런 답안지를 볼 때마다 은근히 반갑다. 

 

 파라켈수스(1493~1541). 그의 본명은 필리푸스 아우레올루스 테오프라스투스 봄바스투스 폰 호헨하임(Philippus Aureolus Theophrastus Bombastus von Hohenheim)으로 꽤 길다. 나는 수업시간에 항상 이렇게 긴 이름을 다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악담하기를 즐긴다. 위키피디아 제공
 파라켈수스(1493~1541). 그의 본명은 필리푸스 아우레올루스 테오프라스투스 봄바스투스 폰 호헨하임(Philippus Aureolus Theophrastus Bombastus von Hohenheim)으로 꽤 길다. 나는 수업시간에 항상 이렇게 긴 이름을 다 보여주며 학생들에게 악담하기를 즐긴다. 위키피디아 제공

파라켈수스가 당대 가장 위대한 연금술사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가 연금술의 새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다른 연금술사들이 금을 찾아 헤맬 때 파라켈수스는 ‘약’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파라켈수스는 연금술사이면서 의학자였다. 의학자가 약을 만든 게 뭐 그리 대단할까 싶은데, 파라켈수스는 그 선배들처럼 약초로 약을 만든 게 아니라 합성화합물로 광물성 약을 제조했다. 그래서 파라켈수스를 의약화학이나 치료화학, 또는 독극물학의 선구자로 평가한다.


파라켈수스는 그때까지 유럽 의학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이슬람의 위대한 학자 이븐 시나(980~1037)가 쓴 《의학정전》을 불사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 따위 책은 개나 줘 버려, 이런 셈이다. 이븐 시나는 따로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슬람의 아리스토텔레스로 불리는 사람이다. 《의학정전》은 17세기까지 유럽의학의 기본서였다. 이븐 시나의 의학도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에서 로마 시절의 갈레노스로 이어지는 전통과 맞닿아 기본적으로 4체액설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여기에 차갑고 덥고 건조하고 습한 한열조습에 따른 체질을 강조했다.

 

파라켈수스는 4원소설을 깨고 염(소금)의 원리, 황의 원리, 수은의 원리로 구성된 3원리설을 주창했다. 염은 4원소 중의 흙, 황은 불, 수은은 물에 해당한다. 한편 황과 수은은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 황-수은설에서 즐겨 썼던 소재니까 파라켈수스는 그때까지 유럽에 통용되던 여러 요소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조합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3원리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자신이 말했던 광물성 합성화합물인 ’의약품’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연금술과 근대화학, 의학과 화학의 연결점이 생긴다.  


파라켈수스의 3원리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탈이 나서 설사를 계속하는 환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설사는 세 원리 중 유동적인 수은의 원리에 가깝다. 이런 환자에게 수은의 원리가 많이 들어가 있는 약을 처방하면 안 된다. 안정적이고 고형적인 성질을 가진 염의 원리가 충만한 약을 써야 한다.


마찬가지로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는 황의 원리를 멀리해야 할 것이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파라켈수스의 처방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하던 여인에게 수은 함유 구토제를 두 번 먹였더니 길이가 2m나 되는 테니암(Theniam)이라는 기생충을 토하고 나았다.” (수은의 원리)


“18세 소년이 이를 뽑고 세 달 후, 이 뽑은 자리에 검은 물집이 생겼는데, 매일 황산을 발라주었더니 물집이 사라지고 새 이가 났다.” (황의 원리)


“수년간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던 사람을 두개골을 열어 치료했다. 뇌떨림은 이 방법과 함께 바질즙에 소금 기름을 넣어 마시게 함으로써 치료하였다.” (염의 원리)

 

내가 아주 어린 시절에는 가끔 동네 시장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엉터리 약품을 파는 돌팔이 약장사들이 있었다. 그런 약장사들의 단골메뉴는 뱀이나 곰 등에서 추출했다는 명약이었는데, 정체불명의 만병통치약도 있었다. 파라켈수스는 말하자면 그런 분들의 원조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래도 그 시절에 두개골까지 열고 수술했다니, 당대의 대단한 의사임은 분명했던 모양이다. 

 

※참고자료

-엄재국, 이광, 홍영석, 《서양 중심의 세계과학사》, 자유아카데미.
-W. Palmær, Award ceremony speech(The Nobel Prize in Chemistry 1935), 10.Dec. 1935;
https://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1935/ceremony-speech/
-Abbott, B. P.; et al. (LIGO, Virgo and other collaborations) (October 2017). "Multi-messenger Observations of a Binary Neutron Star Merger", The Astrophysical Journal. 848 (2): L12. arXiv:1710.05833.

-Abbott, B. P.; et al. (LIGO Scientific Collaboration & Virgo Collaboration) (October 2017). "GW170817: Observation of Gravitational Waves from a Binary Neutron Star Inspiral", Physical Review Letters. 119 (16): 161101. arXiv:1710.05832.

-마이클 모건, 《잃어버린 역사, 이슬람》(김소희 옮김),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최효재, 신길조, 이븐 시나를 중심으로 고찰한 이슬람 의학의 이해, 대한한방내과학회지 제36권 3호(2015년 9월).
-이동주, '이슬람 신비주의'로 알려진 '수피즘'이란 무엇인가, 기독일보(2016.1.17.); https://vo.la/OZuw
-고인석, 《과학의 지형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아서 그린버그, 《화학사-연금술에서부터 현대 분자과학까지》(김유향 외 공역), 자유아카데미.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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