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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블록체인은 과학을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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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블록체인은 과학을 구원할 수 있을까

2020.03.12 14: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블록체인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해커그룹의 대응이며, 중앙집권화된 금융시스템을 탈중앙화하면서도 신뢰를 보장할 수 있게 설계된 기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물론 번영을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한 번 전하고자 하는 바는 램프의 기술 요정이 병에서 튀어나왔고, 익명의 개인이나 사람들이 인간사에서 이 불확실한 때에 우리가 그를 소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또 한 번의 도전과 기존의 질서와 경제의 시설망을 다시 짜고 세계의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를 해결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죠. 우리가 해결하고자 한다면요.” -돈 탭스콧, TED 강연에서⁠

 

사토시 나카모토의 백서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상의 인물이 《비트코인: 개인대 개인간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백서를 인터넷에 발표했다. 백서의 초록은 이렇게 시작했다.

 

“순수하게 개인 대 개인간에 이루어지는 전자 화폐가 있다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직접 전달되는 온라인 결제가 가능해질 것이다. 전자 서명이 이 문제에 대한 부분적인 해법을 제공하지만,이중지불을 막기 위해 여전히 신뢰받는 제3자가 필요하다면, 개인간 거래의 이점은 사라진다. 이 논문은 개인 대 개인 네트워크를 사용해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안한다. 이 네트워크는 거래를 해싱해 타임스탬프를 찍어서 해시 기반 작업증명을 연결한 사슬로 만들고, 작업증명을 모두 다 재수행하지 않고서는 변경할 수 없는 기록을 생성할 수 있다. 가장 긴 사슬은 목격된 사건의 순서를 증명할 뿐아니라, 그것이 가장 광대한 CPU 파워 풀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한다. CPU(중앙처리장치) 파워 과반을 통제하는 노드가 네트워크를 공격하기 위해 협력하지 않는 한, 이들은 가장 긴 사슬을 만들어내며 공격자를 압도할 것이다. 이 네트워크는 최소한의 구조로 기능한다. 메시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퍼져나가고, 노드는 의사에 따라 네트워크를 떠나거나, 최장의 작업증명 사슬을 그들이 없는 사이에 벌어진 일의 증거로 채택해 재합류할 수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논문의 첫장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논문의 첫장

2008년 세계는 금융위기로 큰 위기를 맞았다. 금융자본주의의 시스템의 모순이 초래한 불평등은 전세계 99%의 삶을 침공했다. 2011년이 되면 월가점령시위가 시작되고 2013년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으로 금융자본주의에 내재한 필연적인 불안정성을 논증한다. 2008년 금융위기라는 충격에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대응한건 해커그룹이었다. 사토시 나카모토로 대변되는 블록체인의 설계자들은 금융자본주의가 잠식해왔던 화폐 시스템을 통째로 바꾸려는 급진적인 도전을 제안한다. 그건 바로 중앙집권화된 국가로부터 권리를 양도 받은 중앙은행, 그들로부터 화폐를 분리시키자는 생각이었다.


신뢰공학의 탄생


기술적으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블록체인은 거래자 간의 신뢰 문제를 해결하는 완전히 새로운 수단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개인들의 집합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거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신뢰가 경제활동을 비롯한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가 매일 은행 신용카드를 통해 무언가를 구매할 때, 중고품 거래사이트에서 누군가와 거래를 진행할 때 실감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신뢰할 수 없다면, 거래는 불가능하다. 인류는 자본주의가 탄생한 이후부터 거래의 신뢰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 왔고, 거래 중 가장 중요한 자본이 거래되는 경우 중앙집권화된 은행 시스템을 이용해 신뢰를 제공하는 방식에 정착했다. 경제 활동 이외에도 당사자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공증 시스템은 흔하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중앙집권화된 공증시스템을 평범한 참여자 사이에서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탈중앙화된 신뢰 제공 기술이다.

 

전명산은 블록체인을 ‘신뢰공학의 탄생’이라고 불렀다⁠5. 그의 말처럼 블록체인은 제 3자를 통해 신뢰가 보증되어야 하는 모든 거래 혹은 참여자 간의 상호작용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이다. 따라서 계주가 도망쳐서 사기를 당하기 쉬운 계모임부터, 은행 거래와 투표에 필요한 본인 인증까지, 어디에나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 가능하다. 블록체인은 변호사나 공증기관 없이 모든 거래에 신뢰를 부여할 수 있다. 중앙집권화된 기존의 신뢰 시스템은 참여자들의 거래 내역을 숨기는 방식으로 안전을 확보했고, 따라서 해킹의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신뢰 시스템은 나의 거래 내역을 네트워크의 모두에게 공개함으로서 안전을 확보한다.

 

몇년 전 비트코인 투자열풍으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진 적이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각종 암호화폐에 투자했고 재산을 탕진했다. 암호 화폐는 블록체인의 응용이며, 거래 기록을 영구적으로 위변조 불가능하도록 유지하는 인센티브다. 따라서 암호 화폐와 블록체인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암호 화폐는 조금씩 다른 기술을 사용하는 암호화폐일 뿐이다. 수많은 암호 화폐가 등장했고, 사기꾼들도 많이 몰려들어 얼마간 블록체인에 나쁜 이미지가 씌워졌지만, 블록체인은 다양한 응용을 통해 향후 몇십 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기술이며, 세상을 비가역적으로 완벽하게 바꾸어 놓을 기술이기도 하다⁠. TED에서 '블록체인이 돈과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던 돈 탭스콧은 블록체인이 사회적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혁명적 도구라고 말했다. 부의 창출을 민주화하고, 경제활동에 사람들을 더 많이 참여시키고 공정한 보상을 제공하는 일에 블록체인이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참여자간의 거래에 신뢰를 제공하는 탈중앙화된 기술이다. 101blockchains 제공
블록체인은 참여자간의 거래에 신뢰를 제공하는 탈중앙화된 기술이다. 101blockchains 제공

낡은 학술출판의 결함과 블록체인

 

블록체인이 참여자 간의 신뢰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논문의 심사 과정에서 불거지는 신뢰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미 살펴봤듯이, 과학논문의 출판은 300년이나 된 낡은 시스템이며 여러가지 결함이 존재한다⁠. 그런 결함 중에 현장의 연구자들을 갈 수록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익명성 속에 숨어 있는 심사위원의 문제다. 현재의 논문 심사 시스템은 보통 3명의 심사위원이 익명으로 논문을 심사하고 이를 편집자가 수집해서 승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심사자가 익명성을 보장해 공정한 심사를 유도하려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이제 익명성은 심사자의 주관적 개입이 극대화되는 폐해로 나타난다.

 

특히 익명성 뒤에 숨은 심사자가 합리적이지 않은 심사를 할 경우,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모든 심사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심사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익명성과 비공개 시스템은 불공정한 논문 평가와 더불어 과학출판에 영향을 미치는 과학계 내부의 정치를 구축하게 되고, 수많은 논문들이 게재승인 후에 논문조작 및 재현불가의 이유로 철회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논문심사에 투명성을 제공하기 위해 심사를 공개로 돌리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 체계적으로 자리잡지 못했다⁠9. 논문심사를 공개로 돌렸을 때 발생하는 가장 취약한 부분은, 논문 심사자가 비판적인 내용의 심사요지를 제출했을 때, 혹시나 그로 인해 저자나 다른 연구자들로부터 받을 보복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수의 참가자가 논문을 심사할 수 있다면, 이런 위험으로부터 논문심사자를 보호할 수 있지만,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플랫폼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는 없다. 하지만 최근 블록체인의 응용가능성을 탐색하는 여러 기업과 선구자들은, 블록체인이 바로 과학학술출판이 지닌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사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10. 실제로 사이언스루트와 디지털 사이언스사 등을 비롯해서 국내의 플루토 네트워크 같은 회사들은 블록체인을 이용해 학술출판을 변혁하려는 여러 시도를 수행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학술 정보를 ‘연구자간 협력에 의해 생성, 변경, 활용 및 공유되는 논문 및 기저 데이터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하고 동적인 집합체’로 인식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11. 만약 학술 정보들이 다수의 참가자들에 의해 거래되는 거대한 데이터 생태계라면,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된 기술로 이 거래에 신뢰를 부여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학술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연구자가 연구 결과를 생성하고 다른 연구자와 상호작용할 때마다 공유 인프라에 그 모든 데이터가 저장되고, 개인대개인(P2P) 네트워크상의 모든 참여자가 동일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즉, 블록체인은 첫째 학술정보의 신뢰성을 보장하고, 둘째 소유권 및 추적성을 보장하며, 셋째 다양한 척도를 도입해 연구 업적을 인정하고 보호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타임스탬핑 기술은 과학자의 아이디어와 데이터 등의 연구결과를 공유할 때, 공증의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타임스탬프가 찍힌 기록은 유일하고 모두에게 공유되기 때문에, 소유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부당한 사용, 즉 표절이나 도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블록체인에 등록한 연구 결과들은 임의로 삭제하거나 변경할 수 없으므로, 결론에 맞게 데이터를 수정하는 연구 부정도 불가능하게 된다. 또 암호화를 통해 데이터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 자율적 사용을 추적할 수 있으므로, 데이터에 민감한 의료 및 의약품 사업에서 블록체인은 큰 도약을 가져올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으로 연결된 전세계의 연구자 네트워크는, 네트워크를 통해 컴퓨팅 파워, 데이터, 연구자 등의 자원을 공유해서 ‘연구를 위한 마켓플레이스’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값비싼 장비가 없어서 연구를 할 수 없었던 연구그룹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실험실에 연구를 의뢰할 수 있게 되고, 이런 개방형 공유주의는 과학의 규범을 가속화시켜 과학과 산업 모두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블록체인 기술은 학술논문의 공정한 출판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과학연구 전반에 거대한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다. 학술논문 심사의 폐쇄적 관행과 익명성에 기반한 주관적 평가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심사제도로 바꾸는 건 블록체인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 중 하나일 뿐이다. 바로 위에서 살펴봤듯이, 블록체인은 과학자 공동체의 규범 중 가장 첫번째인 공유주의를 현대에 되살려, 모두가 데이터를 공유하면서도 무한경쟁의 늪에 빠지지 않는 지혜를 제공한다. 또한 새로운 학술정보의 유통망을 제공해서 중앙집권화된 학술지 출판사의 중개 없이 학술정보를 업로드하고 연구자들에게 공유할 수 있게 되며, 블록체인에 영구히 기록되는 활동으로 인해 현재와 같이 논문의 영향력지수 따위를 계산할 필요 없이 업적을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게 된다.

 

블록체인이 만들 새로운 학술 출판 플랫폼은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블록체인은 학술 출판 시장을 완전히 뒤집는 것과 동시에, 과학계를 새롭게 도약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블록체인은 학술 출판 시장을 완전히 뒤집는 것과 동시에, 과학계를 새롭게 도약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참고자료
-돈 스탭콧. 블록체인이 돈과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https://www.ted.com/talks/don_tapscott_how_the_blockchain_is_changing_money_and_business/transcript?language=ko
-Nakamoto, Satoshi.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2008): 28..
-전명산. 투·개표 논란 블록체인으로 묶어볼까. 시사인. 2016 http://m.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5884
-돈 탭스콧은 블록체인이 비가역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완벽하게 바꾸어 놓을 기술이라고 말한다.
-김우재. [김우재의 보통과학자]과학 논문도 변해야 한다.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3647

-김우재.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과학출판의 급진적 변화를 위해.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4265
-eLife 등의 학술지는 저자와 심사자가 동의할 경우 심사과정을 공개한다.
-권용빈, 장경배, 최승주, & 서화정. (2019). 블록체인 기반 공개 논문 심사 시스템. 한국정보통신학회논문지, 23(11), 1462-1470.
-오픈액세스 학술출판 동향과 추진 방안
https://ssc.nst.re.kr/board/view?pageNum=1&rowCnt=10&no1=3&linkId=995&menuId=MENU00319&schType=0&schText=&boardStyle=&categoryId=&continent=&userName=&contents1=&country=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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