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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집단면역 이론과 개학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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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집단면역 이론과 개학 연기

2020.04.01 15:15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민관합동의 중앙임상위원회가 지난 23일 ‘집단면역(herd immunity)’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비정한 과학 이론이라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인구의 60%가 감염을 통해 면역력을 획득해야만 코로나19가 종식된다는 이론은 아무리 과학적이라고 해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30만 명 이상의 참혹한 희생을 치러야 하는 모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방역을 최대한 가동해서 감염과 전파를 최소화하겠다는 애매모호한 정책만 믿을 수도 없다. 당장 경제가 무너지고 있고 개학과 종교집회도 무한정 미뤄둘 수 없는 상황이다.

 

재생산 지수를 낮추는 방역 대책

 

집단면역은 1923년 영국 맨체스터대의 윌리엄 화이트 토플리 교수와 그레이험 윌슨 교수가 장염균(Bacillus enteritidis)을 이용한 쥐 실험에서 처음 확인한 과학적 사실이다. 많은 수의 개체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개체들이 면역력을 갖게 되면, 집단에서 더 이상의 감염 확산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개체가 면역력을 갖지 않더라도 감염병이 종식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몹시 반가운 과학적 발견이다. 집단면역 이론은 예방 백신의 효용성을 입증해주는 소중한 과학 이론이기도 하다.


집단면역이 나타나는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병원체의 입장에서는 면역력을 가진 개체의 비율이 늘어나면 감염이 가능한 새로운 숙주를 찾는 일이 어려워진다. 감염자가 집단 내에서 새로운 감염을 일으키는 재생산 지수가 줄어들게 된다는 뜻이다. 만약 면역력을 가진 개체가 늘어나서 재생산 지수가 1보다 작아지면 확률적으로 더 이상 새로운 감염이 발생하지 않게 되고, 결국 감염은 종식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 과학 이론이 보건 당국과 언론에 의해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이론적 개념’으로 매도되어 버렸다. 한 사람의 감염자가 평균 2.5명을 감염시켜서 재생산 지수가 2.5인 경우에는 집단의 60%가 면역력을 가져야만 집단면역이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는 중앙임상위원회의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 문제였다. 실제로 감염이 되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렸다. 치명율이 1%만 돼도 30만 명이 희생된다.


그렇다고 과학적으로 확인된 집단면역 이론을 무작정 거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집단면역이론을 방역 정책의 구체적인 방향을 찾는 나침반으로 활용해야 한다. 집단면역 효과가 나타나는 한계치는 재생산 지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재생산 지수가 줄어들면 집단면역 효과가 나타나는 한계치도 내려간다. 만약 재생산 지수가 현재 우리의 수준인 1.01이 되면 집단면역 한계치가 1%로 낮아진다. 현재의 방역 대책을 계속한다면 50만 명이 감염되어야만 종식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여전히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훨씬 더 강력한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재생산 지수를 줄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차단·봉쇄 정책이 가장 일반적이다. 공중보건의료 체계가 충분하지 않은 중국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보건의료 환경이 훨씬 좋은 미국과 유럽이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이동제한과 외출금지도 차단·봉쇄 정책이다. 물론 심각한 경제·사회적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단순한 여행제한만으로도 재생산 지수를 2.35에서 1.05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에 우한 코로나(코로나19) 감염증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자국민에 한국행 자제를 권고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국내에 우한 코로나(코로나19) 감염증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자국민에 한국행 자제를 권고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신속진단과 적극적 격리에 의존하는 ‘한국형 과학방역’도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하루 900명 이상으로 치솟았던 신규 감염자가 1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개학 연기와 온라인 예배와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차단·봉쇄를 거부한 우리가 재생산 지수를 1.01까지 떨어뜨릴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값싸고 신속한 ‘진단 키트’ 덕분이었다. 


외부 감염원의 유입을 차단하는 입국제한도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효과적인 재생산 지수 줄이기 대책이다. 겨울철에는 모기 방충망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입국제한은 공중보건의료 체계가 부실한 국가의 투박한 정책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현재 우리가 해외 유입을 완전히 차단해버리면 재생산 지수를 1.005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물론 우리 국민의 입국까지 차단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중앙임상위원회가 집단면역을 언급한 것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사회적 논란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여당이 개학과 종교집회 허용이라는 도박을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앞으로 엄격한 금지 정책에 대한 반발은 더욱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학교 문을 닫아거는 정책도 한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금지 정책을 완화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


개학과 종교집회 허용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의 완화를 뜻하고, 필연적으로 재생산 지수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집단면역 이론을 이용하면 우리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를 정량적이고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과학적 근거를 공유한 사회적 합의가 훨씬 더 큰 설득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중앙임상위원회의 의도였다.


실제로 개학과 종교집회 허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박하게 필요하다. 어린 학생들에게 의사협회도 권고하지 않는 면 마스크 2장을 주고, 학교와 교사들에게 감염 차단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교육부의 초라한 ‘학교방역 가이드라인’으로는 개학이 불가능하다. 미래를 위해 학교 문을 열어야 한다면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부담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공포’

 

전 세계가 극단적인 공포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이나 중국과 교류가 많았던 한국·이란·이탈리아의 고통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즐기면서 느긋했던 미국과 유럽이 뒤늦게 허둥거리면서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있다. 물론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파악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의 재생산 지수는 2.35이고, 평균 치명률은 4.71%에 이른다. 10년 전의 신종플루 팬데믹의 재생산 지수는 1.46, 치명률 0.03%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신종플루의 상황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전 세계적으로 7억 명에서 14억 명이 감염되었고, 사망자가 57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반부와 남반부를 오가는 독감(인플루엔자)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매년 최대 500만 명이 감염되고, 최대 50만 명이 사망한다. 지난 겨울 미국의 독감 감염자는 3600만 명이 넘었고, 그 중 2만2000명이 사망했다. 


그렇다고 전 세계의 하늘 길이 뚝 끊어져 버리고, 거의 모든 국가가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선진국들이 이동중지와 외출금지 명령을 쏟아내지는 않았다. 극도의 공포에 떨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정치·사회·경제적 변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화합과 통합을 지향하던 세계화를 거부하고, 갈등과 분열의 각자도생을 강조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로 표출되고 있다. 의료현장에 필요한 개인용 보호장구조차 공급해주지 못하는 미국과 유럽의 정치적 리더십도 절망적이다. 재빠르게 개발한 진단 키트로 근근이 견뎌내고 있는 우리의 현실도 안심할 수는 없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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