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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 성분 종이로 만든 스스로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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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 성분 종이로 만든 스스로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 나왔다

2020.04.07 04:00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팀이 꽃가루를 가공해 종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실험실에서 만든 꽃가루 종이지만,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인쇄한 결과(왼쪽), 일반 종이에 인쇄한 것에 버금가는 인쇄 품질을 보여줬다. 조남준 교수 제공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팀이 꽃가루를 가공해 종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실험실에서 만든 꽃가루 종이지만,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인쇄한 결과(왼쪽), 일반 종이에 인쇄한 것에 버금가는 인쇄 품질을 보여줬다. 조남준 교수 제공

꽃가루는 동물로 치면 정자에 해당하는 생식세포를 멀리 전달하기 위한 식물의 기관이다. 생식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가볍고 견고한 특성이 있어 재료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약물을 담아 전달하는 약물전달체와 하수 속 오염물질을 흡수, 흡착하는 정화 소재가 연구되고 있는 가운데, 이 재료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고 스스로 움직이는 부드러운 무관절 로봇(소프트로봇)용 구동기까지 만드는 데 성공했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와 송주하 교수, 황영규 연구원팀은 해바라기 등 꽃의 꽃가루를 가공해 부드러운 묵 형태의 소재(겔)를 만들고, 이를 건조시켜 종이를 만드는 데 성공해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6일자(현지시간)에 발표했다. 연구에는 재료과학자인 수브라 수레시 난양공대 총장도 참여했다.


연구팀은 이전부터 꽃가루를 재료로 활용하는 연구를 이끈 선도 연구자 그룹이다. 이미 꽃가루로 하수 정화용 소재, 약물전달용 소재를 만드는 연구를 했다. 지난달에는 딱딱한 꽃가루를 염기성 용액에서 오래 배양하는 방법으로 내부 구성 물질 일부를 바꿔 소재를 부드럽게 바꾸는 신기술을 개발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꽃가루 종이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부드럽게 바꾼 꽃가루에 수산화칼륨 수용액을 넣고 80도의 열을 가해 최대 12시간 배양했다. 이렇게 만든 부드러운 꽃가루는 서로 뭉쳐져 마치 묵과 같은 상태가 된다. 연구팀은 이 겔을 건조시켰다. 그 결과 마치 나무의 섬유질인 펄프가 엉겨 종이가 되듯, 꽃가루가 스스로 길게 엉겨(자가조립) 종이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꽃가루 종이를 만드는 과정이다. 꽃가루를 채취해 모은 뒤 수산화칼륨 수용액을 넣고 80도의 온도를 가하며 배양한다(위). 이렇게 만들면 겔 형태가 되는데(왼쪽 아래), 이를 건조시켜 얇게 만들면 종이가 된다. PNAS 제공
꽃가루 종이를 만드는 과정이다. 꽃가루를 채취해 모은 뒤 수산화칼륨 수용액을 넣고 80도의 온도를 가하며 배양한다(위). 이렇게 만들면 겔 형태가 되는데(왼쪽 아래), 이를 건조시켜 얇게 만들면 종이가 된다. PNAS 제공

이렇게 만든 종이는 제조 조건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지녔다. 공기 중에 노출시키면 투명한 종이가 됐고, 노출시키지 않으면 거울처럼 불투명한 종이가 됐다. 색 인쇄도 자유로워서, 그림을 인쇄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특히 두께와 표면 거칠기를 조절하면 이 종이가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해 크게 늘어나거나 수축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람 손바닥 위에만 올려도 습기를 머금어서 면적이 최대 1.9배까지 커졌다. 종이 중 습기를 머금은 면은 급격히 늘어나지만 반대 면은 늘어나지 않아, 종이는 전체적으로 마치 오징어를 구울 때처럼 동그렇게 오그라들었다. 이를 다시 건조한 곳에 놓으면 반듯하게 펴졌다. 

 

조남준 난양공대 교수(왼쪽)과 수브라 수레시 난양공대 총장이 꽃가루로 만든 다양한 재료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난양공대 제공
조남준 난양공대 교수(왼쪽)과 수브라 수레시 난양공대 총장이 꽃가루로 만든 다양한 재료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난양공대 제공

조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습기에 민감하고 조정이 가능한 구동기 역할을 할 수 있는 꽃가루 종이를 만들었다”며 “저비용으로 고도로 조정이 가능한 재료로 다양한 작동에 응용할 수 있다. 소프트로봇과 에너지 발전기, 센서 등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재료도 식물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습기에 반응하는 동작도 식물에 영감을 받았다. 연구팀은 “이 과정은 (목련과 비슷한 식물인) 미첼리아 꽃이 습도에 따라 펴고 지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식물은 근육이 없어도 습도에 반응해 꽃잎을 오므리고 펼치는데, 이 과정을 자연의 재료를 활용해 흉내낸 것이다. 따로 근육이나 모터 등이 필요 없어 작고 가벼운 소프트로봇 등에 응용하기 좋다.

 

●과거에도 습기로 움직이는 구동기는 연구됐어...자연 재료 꽃가루로는 처음


과거에도 식물에 영감을 받아 저절로 오므리고 펴지는 동작을 모사한 구동기는 연구된 적이 있다. 다만 주로 인공 고분자 물질을 사용했다. 김호영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팀은 2018년 1월, 식물인 제라늄 씨앗이 습도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마치 가사처럼 땅 속을 파고드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길이 2.5cm의 로봇 ‘하이그로봇’을 개발해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했다(아래 사진).

 

김호영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2018년 자신이 개발한 습기만으로 움직이는 하이그로봇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습기만으로 구동하는 구동기를 고분자를 바탕으로 완성해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했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팀의 2020년 연구는 자연의 재료인 꽃가루를 이용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윤신영 기자
김호영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2018년 자신이 개발한 습기만으로 움직이는 '하이그로봇'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습기만으로 구동하는 구동기를 고분자를 바탕으로 완성해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했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팀의 2020년 연구는 자연의 재료인 꽃가루를 이용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윤신영 기자

제라늄 씨앗은 셀룰로오스와 펙틴이라는 두 재료로 구성돼 있어서 습도에 따른 팽창률이 각기 달라 이를 통해 움직임을 구현했다. 김 교수는 폴리이미드와 폴리에틸렌옥사이드 등 흡습 성능이 다른 두 물질을 얇은 판으로 만들어 이어 붙여 오므리고 펴지는 반복 동작을 흉내냈다. 김 교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자연을 일부러 흉내 내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하면서도 성능이 좋은 연구 대상을 찾다 보면 그곳에 항상 자연이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과거에는 이 같은 동작을 주로 복합 재료를 사용해 흉내냈다”며 “이번 연구는 자연의 재료인 꽃가루 종이만 이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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