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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때이른 혁명, 프리프린트의 탄생과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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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때이른 혁명, 프리프린트의 탄생과 좌절

2020.04.09 15:00
동아사이언스DB

과학지식은 보편적이다. 대부분 영어로 쓰이는 과학논문들은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교환되어야만 한다. 대부분의 논문을 국제적인 학술지를 통해 교환해야 하는 과학기술인들은, 언제나 국제적인 경쟁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또한 국제적인 협업의 환경에서 일한다. 과학기술계에서 출판된 논문은 10년만 지나도 낡은 것이 되어버리며, 따라서 현대과학계의 정보교환은 신속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분야의 연구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통적인 논문심사과정의 느린 속도는 이런 과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해법이 바로 ‘프리프린트(preprint)' 혹은 ‘출판전 논문’이라 부르는 형태로 학술지 심사 전의 논문을 지정된 정보공유플랫폼을 통해 미리 공유하는 방법이다. 이미 물리학과 수학 그리고 전산과학에서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출판전 논문 공유 플랫폼은, 최근 생겨난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와 피어제이(PeerJ) 등의 플랫폼을 통해 의생물학에도 급속히 확산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부터 영국의 물리학자 존 데스먼드 버날 등은 과학자들의 논문을 모든 도서관에 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이 의견은 진지하게 학회에서 고려됐지만 전후의 상황에서 버날의 제안은 과학자 사회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잊혀졌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1961년 미국에서, 출판전 논문을 통해 과학자들의 자발적인 지식공유를 꿈꿨던 과학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이른 실험은 결국 실패했지만, 출판전 논문이 과학계에 자리를 잡는 씨앗을 제공했다. 그들의 이름은 미국립보건원(NIH)의 일부 과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정보교환그룹(Information Exchange Group·IEG)이다. ( 프리프린트에 대한 쉬운설명 ☞ https://www.statnews.com/2016/05/27/preprint-biology-bioxriv/)


의생물학 정보교환그룹의 탄생


1961년 NIH의 연구처장이었던 에렛 앨브리튼은 위스콘신대 의대의 생화학자 데이비드 그린과 듀크대의 생화학자 필립 핸들러와 함께 정보공유그룹의 개념을 설계한다. 앨브리튼이 고안했던 정보교환그룹은 일종의 실험이었는데, 그는 특정연구분야들의 자연사, 즉 살아 있는 역사를 구축하고 싶어했다. 정보교환그룹은 비슷한 연구분야의 연구자들이 어떤 형태의 의견이라도 NIH로 보내면, 이를 해당 분야의 모두와 교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우편배송 서비스 비슷한 개념이고, 여기에 드는 모든 비용은 NIH가 부담하는 구조였다. 첫 시작은 해당 분야를 선도하는 연구책임자들 간의 멤버십으로 이루어졌고, 이후 대학원생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확장되었다⁠. 

 

정보교환그룹에서 교환되는 문서를 '메모'라고 불렀고, 이 메모는 승인 없이 논문에 인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메모의 존재는 해당 연구자의 아이디어에 선취권을 보장할 수 있었다. 정보교환그룹의 회원들은 과학계에 비공식적인 형태의 정보들이 빠르게 공유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이런 과학 지식의 빠른 공유가 전통적인 출판의 느린 속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앨브리튼은 각각의 메모 앞장에 ‘우편으로 국제적 회의를 지속합시다’라고 썼다. 정보교환그룹은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비공식적 지식공유의 원시적 플랫폼이었다.

 

IEG의 급격한 성장을 보여주는 그래프. 출처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Archive
IEG의 급격한 성장을 보여주는 그래프. 출처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Archive

20세기 초중반 과학자들은 자발적으로 정보교환그룹과 비슷한 시도를 해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전자공학연구소에서는 비공식 기술 보고서들을 기관내에서 공유하고 있었고, 미국 화학회의 페트로륨 분과에서도 출판전 논문을 공개회람하고 있었다.

 

초파리 연구공동체는 '초파리정보서비스(Drosophila Information Service)'라는 이름으로 모두에게 비공식적 정보들을 공유했고, 물리학의 경우 연구소의 도서관을 통해 비공식 문서들을 회람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앨브리튼이 만든 정보교환그룹은 좀 더 큰 야망을 품고 있었다. 정보교환그룹의 꿈은 해당분야의 연구자들 중 정보구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정보교환그룹으로 전송된 메모를 전달하고자 했다. 회원수가 적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1965년이 되면 46개국의 3663명의 연구자들에게 2561개의 메모가 전달되어야 했고 종이로는 100만장이 넘는 우편물이 발송됐다. 정보교환그룹은 인터넷이 일상화되기 전에 시작됐고 너무 이른 시작은 한계가 됐다. 충분한 기술력이 보장되지 않은 시기에 지나치게 이상적인 실험이 시작됐던 것이다.

 

정보교환그룹에서 가장 먼저 활성화된 주제는 산화 인산화와 전자전달계를 다루는 생화학자들의 메모였다. 처음엔 32명으로 시작된 그룹은 4년 후엔 386명으로 증가했다. 이 그룹의 좌장이었던 데이빗 그린은 비공식 정보들의 교환으로 “해당 분야의 중요한 발전 과정을 연대기순으로 모두가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강조했다. 데이빗 그린이 정보교환그룹의 장점으로 지적한 것 중 하나는 바로 편향적인 논문심사자를 만나는 위험을 배제함으로써, 학술지 편집자에게 무시당했던 이들에게 탈출구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개된 플랫폼을 통한 의견의 교환과 토론이 질 낮은 메모들의 난장판이 될 것 같지만, 오히려 지속적인 비공식적 심사과정 덕분에 일정 수준의 메모의 질이 유지될 수 있다. 

 

1961년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으로 이미 세계적인 과학자가 된 프랜시스 크릭은 앨브리튼의 초대 메일을 받고 강력한 거부의사를 보낸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크릭이지만 그는 과학자들간의 출판전 논문 공유가 왜 과학의 빠르고 건강한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1963년 앨브리튼은 당시 유전학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시드니 브레너와 자크 모노 에게도 정보교환그룹 초청장을 보냈지만 브레너 역시 크릭과 같은 이유로 초청을 거절한다.

 

하지만 생물학의 다양한 주제들로 정보교환그룹들이 생겨나면서, 1966년이 되면 제임스 왓슨과 마샬 니렌버그를 좌장으로 한 핵산과 유전자코드 정보교환그룹 IEG7이 시작된다⁠. 유전자코드는 당시 젊은 생물학자들에게 유행하던 주제였고, 이 그룹에만 110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면서 결국 크릭과 브레너도 망설임을 거두고 정보교환그룹의 회원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 그룹에서 크릭은 그의 유명한 '코돈-안티코돈'의 가설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교환된 메모의 80% 이상이 논문으로 나왔고 이 국제적 교환에는 냉전으로 서방의 적대국이던 공산주의 국가의 과학자들도 상당수 참여했다.

 

알브리톤이 프랜시스 크릭에게 보낸 편지. 출처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Archive
알브리톤이 프랜시스 크릭에게 보낸 편지. 출처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Archive

혁신을 방해하는 세력들


1960년대에는 국가의 지원으로 과학자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다양한 거대학술출판사들이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바로 이 시기에 거대학술지의 수익모델이 자리잡는데, 그건 바로 각 연구소와 대학의 도서관으로부터 구독료를 받는 방식이었다. 이 시기엔 과학자들의 숫자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빠른 과학지식의 정보교환이 중요한 화두로 대두됐다.

 

과학자들의 연구는 속도전의 양상을 띠고 있었지만 학술지의 논문심사는 여전히 거북이 같았다. 바로 거대학술지들이 수익의 창출을 위해 심사위원과 편집자들에게 무료봉사를 강요하던 관행과 비공개 논문심사라는 낡은 습관 때문이다. 도서관 사서들과 과학사가들은 과학자들이 모두 정보교환그룹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핵물리학자들은 출판전 논문의 공유를 위한 플랫폼을 기획하고 실천해나갔고 물리학 정보 교환소(Physics Information Exchange·PIE)가 만들어졌다. PIE는 출판전 논문을 회원이 아니라 각 도서관에 송부한다는 점에서 IEG와 다를 뿐 당시 전세계의 선도적 과학자들은 모두 출판전 논문교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직접 실천해나갔다.

 

이렇게 급속히 성장해나가던 출판전 논문 공유의 혁신은, 상업적 출판사들과 학회들에 의해 공격당하기 시작한다. 1966년 미국 면역학회는 이미 자신들의 학회지인 면역학회지(Journal of Immunology)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IEG의 면역학그룹에 모인 600여명의 면역학자들이 비공식적인 메모를 주고받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선언을 한다. 면역학회의 논리는 IEG가 주고받는 메모가 출판전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과 거의 동일하며 이는 학술지를 필요없게 만들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것이었다. 미국면역학회는 투표를 통해 IEG의 면역학그룹이었던  IGE5는 폐기되어야만 한다고 결론내린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이 기회에 아예 정보교환그룹을 박살내기로 했다. 사설을 통해 핵물리학자들의 정보교환그룹인 PIE를 “극악하고, 계도되지 않은 열정으로 과학자 사회가 위험해 처해있다”라며 매도했다.  네이처가 정말 폐기하고 싶었던건 IEG였고 계속되는 사설을 통해 IEG가 학술정보사업을 방해하며 결국은 예산낭비일 뿐이라고 공격한다. 네이처는 사설에서 IEG의 메모가 “접근불가능하고, 비영구적이고, 문법적 오류로 가득하고, 메모의 수준이 모두 다르며, 제대로된 심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과학자 사회에 해를 끼친다고 주장했다. 공익재단도 아닌 상업출판사인 네이처는 자신들을 비롯한 전통적 학술지만이 철저한 심사를 통한 논문을 제공하므로 과학자들은 전통적인 학술지에만 논문을 낼 것을 권유한다고 썼다. 

 

네이처가 IEG와 PIE 등의 프리프린트 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익명으로 쓴 장문의 사설. 네이처 제공
네이처가 IEG와 PIE 등의 프리프린트 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익명으로 쓴 장문의 사설. 네이처 제공

전통적 학술지만이 연구논문의 질을 보장할 수 있게 만든다는 논리다. 네이처는 IEG의 모든 장점을 싸잡아 힐난했고 상업학술지인 자신들과는 달리 공공기관인 NIH가 학술지 시장을 교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네이처의 사설은 NIH에서 혁명적인 정보교환그룹을 만든 70세의 에렛 앨브리튼의 모든 노력을 평가절하했다. NIH가 앨브리튼의 정보교환그룹에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차라리 학술지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 과학자 사회에 도움을 주는 방법이라고 비꼬았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편집자 필립 애벌슨도 IEG가 정부 보조로 급조된 허울좋은 상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아무리 과학출판의 비효율성에 과학자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해도 IEG는 과학계의 규율을 어기는 시도이며 과학논문의 무결성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정보교환그룹에 적대적인건 단지 네이처나 사이언스처럼 사업에 피해를 받는 상업적 출판사만이 아니었다. 학회에서 전문학술지를 출판하는 편집자들도 학회 회원들이 IEG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회칙을 변경했다. IEG에서 회람된 메모는 자신들의 학술지에 게재할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를 학회 회원들에게 보낸 것이다. 

 

IEG를 통해 공유된 메모가 논문으로 출판될 수 없다면 과학자들은 주저하게 될 것이 틀림 없었다. NIH는 곧 IEG에 사용되던 앨브리튼의 펀딩을 종료했다. 네이처에 투고된 IEG를 옹호하는 편지의 대부분은 출판되지 않았다. 그렇게 정보교환그룹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네이처는 “비밀 회동 대학이 끝장났다”라는 사설을 썼다.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은 “교양있는 과학자들은 누구도 IEG를 응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설을 내기도 했다.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의견교환을 원했던 앨브리튼과 그린의 꿈은 과학자들의 지식이 폐쇄된 자신들의 가두리 양식장에서만 교환되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거대상업출판사들과 이런 비공식적이고 자유로운 정보의 교환이 자신들의 학술지의 권위에 흠집을 낼 것이라고 두려워한 보수적인 과학자 사회의 학술지 편집자들에 의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젠 누구나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의 상업적 학술지가 창조한 과학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다는걸 알고 있다. 만약 이들의 꿈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상업적 학술지들의 횡포에 신음하는 현재의 과학계를 보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과학자 사회는 과학계를 완전히 비가역적으로 바꾸어놓았을지도 모를 혁신에 눈을 감았다. 출판전 논문이 과학자사회에 다시 돌아오는 1991년까지⁠ 과학계는 상업적 거대 출판사들이 만든 생태계에서 논문 출판의 혁신을 멈추고 신음해야 했다.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프리프린트는 이제 학술출판의 새로운 규범이 되었다. 수많은 학술주제와 국가별 프리프린트 서버가 탄생중이다. 출처 트위터@CScienceEditors
프리프린트는 이제 학술출판의 새로운 규범이 되었다. 수많은 학술주제와 국가별 프리프린트 서버가 탄생중이다. 출처 트위터@CScienceEditors

 

※참고자료
-C Albritton to FHC Crick, 27 January 1961. CSHL Archives Repository, SB/11/1/1/43. http://libgallery.
cshl.edu/archive/files/1539b09ef1f1623de2858425cda02583.jpg
-FHC Crick to EC Albritton, 7 February 1961. CSHL Archives Repository, SB/1/1/1/42/. http://libgallery. cshl.edu/archive/files/fac7e07201d825219d962376b162aa48.jpg
-EC Albritton to FHC Crick, 20 February 1961. CSHL Archives Repository, SB/11/1/1/41. http://
libgallery.cshl.edu/archive/files/356241a82bf91daba21a1529f4355fe8.jpg
-https://www.editage.co.kr/insights/the-role-of-preprints-in-research-dissemination
- Wykle, S. S. (2014). Enclaves of anarchy: Preprint sharing, 1940‐1990. Proceedings of the American Society for Information Science and Technology, 51(1), 1-10.
-비슷한 시기에 미국심리학회 APA에서도 프리프린트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다음 논문들을 참고할 것. Griffith, B. C. (1969). Reports of 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s Project on Scientific Information Exchange in Psychology, volume 3 (NSF Grant GN-547). Washington, D.C.: APA, NSF Office of Science Information Service. 
-Griffith, B. & Miller, J. A. (1970). Networks of informal communication among scientifically productive scientists. In Communication among scientists and engineers. C. E. Nelson and D. K. Pollock (Eds.), Lexington, MA: Heath Lexington Books.
-프리프린트에 대한 쉬운 설명 https://www.statnews.com/2016/05/27/preprint-biology-bioxriv/
-'의생물학 정보교환그룹의 탄생' 부분은 Cobb, M. (2017). The prehistory of biology preprints: A forgotten experiment from the 1960s. PLoS biology, 15(11). 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이 논문과 함께 Confrey, E. A. (1996). The information exchange groups experiment. Publishing Research Quarterly, 12(3), 37-39. 의 1996년 논문은 잊혀질 뻔한 IEG의역사를 잘 조명한 글이다. Till, J. E. (2001). Predecessors of preprint servers. Learned publishing, 14(1), 7-13. 틸의 논문도 참고할 만 하다.
-IEG의 급격한 성장을 보여주는 그래프. Credit: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Archive. IEG, Information Exchange Group. https://doi.org/10.1371/journal.pbio.2003995.g003
-Green, D. E. (1965). Information Exchange Group No. 1. Science (New York, N.Y.), 148(3677), 1543. https://doi.org/10.1126/science.148.3677.1543-b
-IEG6는 면역학 그룹이었고, 인터페론을 치료제로 개발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다음 책에 IEG6가 그 과정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Pieters, T. (2005). Interferon: The science and selling of a miracle drug (Vol. 21). Routledge.
-FHC Crick to EV Albritton, 21 May 1965, Wellcome Library Archive, PPCRI/D/1/1/1. https:// wellcomelibrary.org/item/b18188965
-앨브리튼이 프랜시스 크릭에게 보낸 편지.  Credit: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Archive. https://doi.org/10.1371/journal.pbio.2003995.g002
-De Reuck A, Knight J. Communication in science: documentation and automation. London: Churchill;
1967.
-Dray S. Information Exchange Group No. 5. Science. 1966; 153:694–695.
-Anonymous. Unpublished literature. Nature. 1966; 211:333–334.
-네이처가 IEG와 PIE 등의 프리프린트 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익명으로 쓴 장문의 사설. Preprints Galore. Nature 211, 897–898 (1966). https://doi.org/10.1038/211897a0
-https://arxiv.org/ 가 재등장하는 시기가 1991년이다. 과학계는 이 당연한 시스템을 위해 무려 25년을 낭비했던 셈이다.
-1940년대부터 지속된 프리프린트 공유를 위한 과학자들의 역사를 일별하려면 다음의 논문들을 참고하길 바란다. 

Cobb, M. (2017). The prehistory of biology preprints: A forgotten experiment from the 1960s. PLoS biology, 15(11)

Wykle, S. S. (2014). Enclaves of anarchy: Preprint sharing, 1940‐1990. Proceedings of the American Society for Information Science and Technology, 51(1), 1-10.

Confrey, E. A. (1996). The information exchange groups experiment. Publishing Research Quarterly, 12(3), 37-39. 의 1996

Till, J. E. (2001). Predecessors of preprint servers. Learned publishing, 14(1), 7-13.

Sever, R., Roeder, T., Hindle, S., Sussman, L., Black, K. J., Argentine, J., ... & Inglis, J. R. (2019). bioRxiv: the preprint server for biology. BioRxiv, 833400.

Roes, H. (1996). Electronic journals: A short history and recent developments. Trabajo presentado en International Summer School on the Digital Library, Tilburg, Holanda. Consultado el, 15.

Carriveau Jr, K. L. (2001). A brief history of e-prints and the opportunities they open for science librarians. Science & Technology Libraries, 20(2-3), 73-82.

Tennant, J., Bauin, S., James, S., & Kant, J. (2018). The evolving preprint landscape: Introductory report for the Knowledge Exchange working group on preprints.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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