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껌만 씹어도 배부른 이유' 찾았다

통합검색

'껌만 씹어도 배부른 이유' 찾았다

2020.04.09 00:00
처음으로 소화기의 물리적 자극을 모니터링하는 뇌 신경세포를 발견한 주요 연구자들이 실험쥐를 사이에 두고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교신저자인 김성연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제1저자인 허규량, 김민유, 김동윤 연구원이다. 윤신영 기자
처음으로 소화기의 물리적 자극을 모니터링하는 뇌 신경세포를 발견한 주요 연구자들이 실험쥐를 사이에 두고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교신저자인 김성연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제1저자인 허규량, 김민유, 김동윤 연구원이다. 윤신영 기자ashilla@donga.com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생리학자들은 동물의 소화관에 구멍을 내서 물이 위에서 새어나가게 하거나 위에 풍선을 넣고 바람을 불어넣어 부풀린 뒤 먹이를 먹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생리학자들이 재미로 이런 실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이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섭식 과정이었다. 이들 학자들은 포만감이나 갈증 해소가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지 밝히고 싶어했다. 소화기에 구멍을 낸 동물에게 물을 먹이면 실제로는 몸이 물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데도 동물은 일시적으로 갈증을 느끼지 않았다. 풍선을 위에 넣고 부풀려도 역시 배고픔이나 갈증을 느끼지 않았다.

 

생리학자들은 소화기에 물이 흐를 때 감지되는 '화학적 자극'과 소화기의 팽만감이라는 ‘물리적 자극’이 뇌로 하여금 배고픔이나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갖게 한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물리적 자극은 껌을 씹거나 가글만 해도 식욕과 갈증을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것처럼 일상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풍선 실험을 응용해 '위풍선술'이라는 식욕 제어 시술법이 2015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나 회로는 최근까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 연구자들이 포만감의 비밀을 밝힐 신경세포를 찾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맛과 같이 몸 안의 화학 센서(수용체)를 자극해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과정과 신경회로는 널리 밝혀져 있었지만, 물리적 자극을 담당하는 신경세포의 실체가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서울대 화학부 김성연 교수와 김동윤, 허규량, 김민유 연구원은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때 발생하는 소화기 내부의 물리적 자극을 담당하는 뇌 속 ‘관문’ 역할의 신경세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8일 공개했다.


연구팀은 2017년 따뜻한 온도 감각을 전달하는 뇌 신경세포를 연구하기 위해 쥐를 이용해 다양한 감각 신호가 들어가는 후뇌 부완핵의 신경세포를 연구했다. 후뇌는 목 부근의 뇌 부위다. 부완핵은 맛 과 통증, 온도 등의 감각 정보가 거쳐 간다고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어 최근 주목 받는 부위다. 그런데 우연히 이 영역을 자극한 쥐들이 물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 대신 분유나 먹이를 줘도 결과는 똑같았다. 연구팀은 이곳의 신경세포가 배고픔이나 갈증 해소에 관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다양한 어떤 상황에서 이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는지 실험으로 확인했다. 


연구 결과 실제로 섭취하는 음식이나 음료의 종류나 성분, 온도와 관련없이 ‘무엇인가 섭취한다’는 사실만으로 부완핵의 특정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쥐는 포만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먹을 때 발생한 물리적 자극이 포만감의 원인이며 부완핵의 신경세포는 이를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연구팀이 실험쥐를 손에 들어 보여주고 있다. 윤신영 기자
연구팀이 실험쥐를 손에 들어 보여주고 있다. 윤신영 기자

실제로 막대 모양의 탐침을 이용해 혀나 식도, 위 등을 자극해도, 위풍선술을 이용해 위장을 부풀려도 이 신경세포의 활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신경세포의 전기 활성을 빛의 세기로 변환시켜 측정하는 기술을 이용해 이 신경세포 집단의 활동을 확인했다. 또 고해상도 현미경 영상 기술인 이광자현미경을 이용해 세포 하나하나의 활성까지 확인해 이 부위의 신경세포들이 입과 위 등 다양한 소화기의 물리적 자극이 모이는 뇌 속 관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팀은 신경세포를 빛으로 자극해 활성화시키는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이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식욕이 크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대로 이 세포의 활성을 억제하자 병적인 과식이나 과음 현상이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소화기의 물리적 자극을 받아들이는 뇌 속 신경의 ‘실체’를 처음 확인한 연구다. 김 교수는 “후뇌와 말단 신경은 생존과 관련된 기능을 담당하는 원시적 뇌 영역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 기본적인 신경망이 수행하는 섭식과 관련된 과정도 제대로 모르는 게 현실”이라며 “소화기에서 이 신호를 받아들이는 신경이 무엇인지, 이 신호가 어느 경로로 부완핵에 가고 부완핵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중추인 시상하부로는 어떻게 가 섭식 행동을 억제하는지, 배고픔 등 욕구와는 어떻게 경쟁하는지 등 모든 내용이 앞으로 풀어야 할 새로운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야 생리학의 오랜 난제를 풀 첫 실마리를 찾았을 뿐”이라며 “후속연구를 통해 인간의 기본 욕구이자 생존에 필수적인 식욕이 조절되는 과정을 밝혀 나가겠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가 쌓이면 섭식 행동을 조절하는 신경회로와 유전자를 발굴해 비만과 당뇨 등 대사 질환과 섭식질환을 치료할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그림이다. 입과 식도, 위 등에서 감지된 음식물이 닿는 느낌이나 팽창하는 느낌 등 물리적 자극은 밝혀지거나 밝혀지지 않은 신경회로를 따라 각각 전달돼 후뇌의 고립로핵(NTS)를 거쳐 부완핵(PB)에 모인다. 이곳에 있는 프로다이놀핀 유전자 발현 신경세포(pdyn)가 이 과정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번에 새로 밝혀진 신경세포다. 이렇게 모인 신호는 다시 어떤 경로를 거쳐 시상하부의 뇌실곁핵(PVH)로 이동해 식욕을 억제하는 등 섭식행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많은 과정이 밝혀져야 한다. 네이처 제공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그림이다. 입과 식도, 위 등에서 감지된 음식물이 닿는 느낌이나 팽창하는 느낌 등 물리적 자극은 밝혀지거나 밝혀지지 않은 신경회로를 따라 각각 전달돼 후뇌의 고립로핵(NTS)를 거쳐 부완핵(PB)에 모인다. 이곳에 있는 프로다이놀핀 유전자 발현 신경세포(pdyn)가 이 과정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번에 새로 밝혀진 신경세포다. 이렇게 모인 신호는 다시 어떤 경로를 거쳐 시상하부의 뇌실곁핵(PVH)로 이동해 식욕을 억제하는 등 섭식행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많은 과정이 밝혀져야 한다. 네이처 제공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4 + 5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