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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성범죄에 단호한 시민사회를 위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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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성범죄에 단호한 시민사회를 위한 교육

2020.04.11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생산하고 거래한 운영자 중 10대 남자 청소년들이 상당수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초등학생 때부터 운영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면서도 한편 이는 여러 범죄 중 여성 혐오와 성범죄에 유독 관대한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부터 유난히 성범죄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책임론이 등장했다. 피해자의 몸가짐이 정숙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가해를 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며 온 사회가 남성 가해자의 입장에 이입해왔다. 어떻게 봐도 잘못인 것 같으면 그때는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 실수로’ 그랬다며 똑같이 앞날이 창창한 청년인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앞날을 걱정해왔다. 


남성은 성욕을 절제할 수 없고 본능에 휘둘리는 존재라 성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다고 하는 동시에 막상 성범죄가 일어나면 ‘여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며 가해 남성이 성범죄를 저질렀을 리가 없다고 두둔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남성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설사 남성이 성범죄를 저질러도 사실상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어 오히려 여성이 어릴 때부터 조심해야 한다고 교육해왔다. 여자 아이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몸가짐을 조심하고, 남성 전반을 의심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남성을 거절하면 김치녀가 되고 남성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그건 여성의 잘못이라는 교육을 해왔다. 


성범죄나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의 가해자 다수는 남성이고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인 상황임에도 오직 여성에게만 주의의 의무를 지우는 것이다.  사회에서 남자 아이들은 성범죄는 ‘여자가 조심해야 할 일이고 네 문제가 아니다’, ‘남자라면 실수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성범죄를 저질러도 어차피 벌금이나 집행유예만 받는다’는 식의 메시지를 받아왔다. 사회는 남자 아이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러도 온 세상이 너는 평범하고 창창한 남성일 뿐이라며 감싸줄 것이라며 성범죄를 편안하게 여기도록 만든 셈이다.


유구한 여성 혐오 및 남성 우월주의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 성범죄에까지 관대한 나라에서는 당연히 성범죄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나라에서 성범죄가 이른 나이에서부터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수많은 연구들에 따르면 성폭력을 예측하는 요인들로 성차별적 문화, 여성에 대한 성적 도구화, 이들을 용인하는 강간 문화(rape culture)가 꼽힌다. 예컨데 성차별적이거나 성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을 한 정치인들(성폭력 전과를 당당하게 책에 쓴 사람들이 있다)이 계속해서 떳떳하게 활동하는 것이 성폭력을 용인하는 강간문화의 한 예다. 남성들이 성매매를 하고 불법촬영물을 찾아보고 공유하고 또 단톡방에서 성희롱을 일삼으며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일상적으로 하는 것, 그러고서도 처벌과 죄책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 모두 강간 문화의 일환이다. 이렇게 성범죄가 널리 용인되는 사회에서는 약 1000명의 성폭력범 중 994명이 아무런 처벌 받지 않고 살아간다는 보고가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진짜 성범죄의 ‘원인’을 제거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분명 적어도 한번쯤 이런 문화에 동참하거나 방조했음에도 성범죄의 진짜 원흉인 성차별, 여성에 대한 성적 도구화를 바로잡자고 나서는 사람은 적고 진짜 문제를 바라보길 거부하거나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발뺌을 하는 사람만 많다. 


성범죄 발생 장소 1위는 ‘집’이고 성폭력의 80%가 지인이 저지른다. 친밀함과 신뢰를 이용한 범죄인만큼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닐뿐 아니라 누군가는 운이 좋아 피했다고 해도 다음 사람이 피해자가 될뿐 피해는 분명 발생한다. 그런데도 부모들도 딸들에게만 가해하지 말라가 아니라 잘 피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다행히도 성범죄를 피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성범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임을 깨달은 사회들이 있다. 케냐가 대표적인 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케냐에는 남자아이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진실한 순간(Your Moment of Truth)'이라는 이름의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한다. 앤서니 응잔기루라는 이름의 활동가는 여성을 대하는 남성들의 태도와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남성 청소년과 남성들이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해결책도 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첫번째로 변화하는 남성들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를 위해 남자아이들에게 여성이 성적 접근에 대해 ‘노(no)’라는 의사를 표시한다면 그것은 정말 거부한다는 뜻이며 좋으면서 싫다고 한다는 식의 자의적 해석을 멈출 것,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고 있다면 성적 접촉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 여성의 의사를 존중하고 선을 넘지 말며 상대의 약점을 잡아 내 맘대로 해도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또 여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괴롭히거나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다른 남성 동료로부터 멀어지고 하지 말라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가르치는 등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할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실제로 이런 교육의 효과는 대단하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청소년에게 발생하는 성폭력 비율이 51%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폭력 사건을 목격할 때 가해자에게 돌을 던지거나 소리를 쳐서 다른 사람들을 부르는 방식으로 범죄를 방조하지 않고 적극 개입하는 비율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를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의 진짜 원인을 고치는 것이다. 미국 역시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성교육과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법, 제3자로서 부적절한 상황에서 개입하는 법을 반복해서 가르친다. 부적절한 상황을 목격했을 때 어른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방법, 유용한 연락처, 피해자를 지지하고 돕는 법 등도 중요하게 다룬다. 한국에서도 이런 교육이 널리 도입되길 바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0대 남자아이들은 가정보다는 온오프라인에서 동료 남성들의 행동을 보고 남성성을 배운다. 가정 교육 못지 않게 일반 성인 남성들의 바른 행실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아래 교육 영상이 안보인다면 ☞ https://youtu.be/IrZS8Aekqfw 

 

 ※참고자료 
BBC. (2018). Teaching boys that 'real men' would stop rape. https://www.bbc.com/news/education-43466365
https://www.nytimes.com/2018/06/12/opinion/a-worldwide-teaching-program-to-stop-rape.html
Keller, J., Mboya, B. O., Sinclair, J., Githua, O. W., Mulinge, M., Bergholz, L., ... & Kapphahn, C. (2017). A 6-week school curriculum improves boys’ attitudes and behaviors related to gender-based violence in Kenya. Journal of Interpersonal Violence, 32, 535-557.
Planned Parenthood. (2016).  New National Survey from Planned Parenthood Shows Need to Educate Young People on Consent and Sexual Assault. https://www.plannedparenthood.org/about-us/newsroom/press-releases/new-national-survey-from-planned-parenthood-shows-need-to-educate-young-people-on-consent-and-sexual-assault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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