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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미스터 트롯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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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미스터 트롯의 뇌과학

2020.04.14 15:30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선천성 실음악증(amusia)을 겪는 사람들 대부분이 음악 지각에는 심각한 장애를 보이면서 말소리 지각과 패턴은 정상인과 다름없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말소리와 음악은 과연 그렇게 다른 것일까? - 올리버 색스 《뮤지코필리아》에서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TV조선 '미스터 트롯'  참가자 정동원이 부른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에서

 

열세 살 소년(정동원)이 무대에 등장하더니 색소폰 끈을 어깨에 두른다. 그리고 멋들어지게 전주를 연주하더니 나훈아의 명곡 ‘사랑은 눈물의 씨앗’(1969년 발표)을 구슬프게 부른다. ‘미스터트롯’이 장안의 화제라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일까 궁금해서 봤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뒤 경연이 끝날 때까지 챙겨보면서 어느새 트롯 감상이 취미가 됐다.

 

미스터트롯에서 불린 노래 가운데 다수는 필자가 어릴 때와 젊었을 때 나온 것들이라 귀에 낯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당시는 물론 최근까지도 트롯을 일부러 들은 적은 없던 필자가 뒤늦게 트롯의 맛에 빠졌으니 모를 일이다. 유튜브에서 미스터트롯에 나온 노래의 원곡을 듣고 그 가수의 다른 노래들을 듣는 식이다.

 

도대체 트롯의 무엇이 이토록 필자를 매료시킨 걸까 생각하다 다른 노래 장르에 비해 가사의 비중이 커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많은 트롯 곡에서 멜로디는 주연인 가사의 감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조연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인지 듣기에도 편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야 트롯의 참맛을 알게 된 건 가사가 담고 있는 희로애락의 사연이 과거 나의 비슷한 경험을 연상시키며 가슴에 와닿기 때문 아닐까. 

 

사실 필자는 음악 감상을 거의 하지 않는데, 책을 보거나 글을 쓸 때 가끔 클래식이나 재즈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는 정도다. 그런데 대신 트롯을 들으려니 일에 집중할 수 없어 따로 시간을 내 듣고 있다. 예술성에서 클래식이나 재즈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던 트롯이 오히려 감상자의 온전한 ‘헌신’을 요구하는 셈이다.

 

가사는 언어이므로 트롯을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으면 책 읽기나 글쓰기 같은 언어 중심 작업이 방해를 받는 것 같다. 다른 장르의 노래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면 가사가 없는 클래식이나 재즈는 잔잔하게 흐르는 한 오히려 작업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좌뇌는 단어 우뇌는 멜로디 처리

 

좌뇌의 청각피질(녹색~빨강 부분)과 우뇌의 청각피질(노랑~파랑 부분)을 비교해보면 좌뇌의 청각피질, 특히 회백질의 부피가 좀 더 큼을 알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언어를 구사하게 되면서 말소리의 구성 요소인 음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시간 분해능이 높아지며 처리해야 할 정보량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지과학 경향’ 제공
좌뇌의 청각피질(녹색~빨강 부분)과 우뇌의 청각피질(노랑~파랑 부분)을 비교해보면 좌뇌의 청각피질, 특히 백색질의 부피가 좀 더 큼을 알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언어를 구사하게 되면서 말소리의 구성 요소인 음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시간 분해능이 높아지며 처리해야 할 정보량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지과학 경향’ 제공

학술지 ‘사이언스’ 2월 28일자에는 우리가 노래를 들을 때 뇌에서 노래의 언어 정보와 음악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규명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언어 정보의 핵심인 단어는 좌뇌에서, 음악 정보의 핵심인 멜로디는 우뇌에서 주로 처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노래를 감상할 때 노랫소리라는 하나의 음파를 좌뇌와 우뇌에서 각각 별도의 메커니즘으로 처리한 뒤 그 정보를 종합해 재구성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뇌과학이 발전하기 전 사람들은 뇌가 대칭적으로 좌우가 동등하게 작동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1861년 프랑스 해부학자 피에르 브로카는 뇌졸중으로 좌뇌 전두엽의 특정 영역이 손상된 사람들에서 말을 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는 ‘표현성 실어증’이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반면 우뇌의 해당 영역이 손상됐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뇌 기능의 좌우 비대칭(편측성)이 처음 발견된 순간이다. 그 뒤 좌뇌 측두엽의 특정 영역이 손상되면 말은 멀쩡하게 잘 하는데 내용이 엉망인 ‘유창성 실어증’이 나타난다고 밝혀졌다. 역시 우뇌의 해당 영역이 손상됐을 때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반면 음악을 인식하지 못하는 실음악증은 우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뇌에 뇌졸중이 일어나면 음높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음정 음치가 될 수 있다. 발음이 똑 부러져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하는 아나운서가 예능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를 때 음치인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좌뇌는 우등생 우뇌는 열등생인 결과일 것이다.

 

캐나다 맥길대 연구자들은 하나의 음파에 말소리와 음악 정보를 담고 있는 노래가 뇌에서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밝히기 위해 기발한 실험을 설계했다. 말소리, 단어를 제대로 지각하려면 정보를 짧은 시간 단위로 잘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음과 모음의 재조합이 짧게는 수십 밀리초 간격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 무어냐고’와 ‘사람이 무어냐고’를 구분하려면 ‘랑’과 ‘람’의 받침이 발화(發話)되는 짧은 순간의 소리 차이를 포착해야 한다. 따라서 노래의 시간 분해능이 점차 떨어지게 처리를 하면 어느 시점에서 단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캐나다 연구자들은 무반주 노래를 담은 원래 소리(위 왼쪽)를 두 방향으로 가공해 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분석했다. 즉 시간 분해능을 점차 떨어뜨려 단어를 구분하지 못할 때(가로 방향. temporal degradation)와 주파수 분해능을 점차 떨어뜨려 멜로디를 구분하지 못할 때(세로 방향. spectral degradation) 뇌 활동의 변화를 측정했다. 사이언스 제공
캐나다 연구자들은 무반주 노래를 담은 원래 소리(위 왼쪽)를 두 방향으로 가공해 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분석했다. 즉 시간 분해능을 점차 떨어뜨려 단어를 구분하지 못할 때(가로 방향. temporal degradation)와 주파수 분해능을 점차 떨어뜨려 멜로디를 구분하지 못할 때(세로 방향. spectral degradation) 뇌 활동의 변화를 측정했다. 사이언스 제공

한편 음악을 듣는다는 건 멜로디(선율)의 변화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지각되는 음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중심인 과정이다. 멜로디의 지각에는 음높이(주파수) 사이의 상대적인 간격에 해당하는 음정이 중요하다. 경연 참가자가 한참 노래를 부르다 한 음의 높이를 반 키만 삐끗해도 심사하는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리는 이유다. 따라서 노래의 주파수 분해능이 점차 떨어지게 처리를 하면 어느 시점에서 멜로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보통 음높이의 변화는 수백 밀리초 단위에서 일어나므로 시간 분해능이 떨어져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10가지 가사와 10가지 멜로디를 조합한, 짧은 소절의 100가지 노래(무반주)를 녹음한 뒤 각각 5단계에 걸쳐 시간 분해능과 주파수 분해능을 떨어뜨린 버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단계에서 노래 쌍을 비교해 차이를 느끼는가 여부를 판단하게 했다. 예를 들어 가사는 다르고 멜로디가 같은 노래의 원본을 비교하면 둘 사이에 가사가 다르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지만, 시간 분해능이 떨어지며 가사의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 둘을 구분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테스트를 하며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의 활동을 측정해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시간 분해능이 떨어져 단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되는 과정에서 좌뇌 측두엽 청각피질의 특정 영역(A4)의 활동성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우뇌의 해당 영역은 별 차이가 없었다. 노래에서 말소리 정보는 주로 좌뇌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정보가 사라질 때 좌뇌 활동도 약해진다는 말이다. 

 

한편 주파수 분해능이 떨어져 멜로디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되는 과정에서는 우뇌 A4의 활동성이 낮아진 반면 좌뇌 A4는 별 차이가 없었다. 멜로디 정보는 주로 우뇌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정보가 사라질 때 우뇌 활동도 약해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좌뇌와 우뇌는 왜 역할을 분담하게 된 걸까.

 

시간 분해능과 주파수 분해능을 점차 떨어뜨리는 실험을 통해 청각피질의 A4 영역에서 정보 처리의 편측성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좌뇌 A4 영역(왼쪽 노랑~빨강 부분)은 노래의 문장 처리에 특화돼 있고 우뇌 A4 영역(오른쪽 노랑~빨강 부분)은 멜로디 처리에 특화돼 있다. 사이언스 제공
시간 분해능과 주파수 분해능을 점차 떨어뜨리는 실험을 통해 청각피질의 A4 영역에서 정보 처리의 편측성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좌뇌 A4 영역(왼쪽 노랑~빨강 부분)은 노래의 문장 처리에 특화돼 있고 우뇌 A4 영역(오른쪽 노랑~빨강 부분)은 멜로디 처리에 특화돼 있다. 사이언스 제공

음향의 불확정성 원리

 

독일의 언어학자 마틴 주스는 1948년 발표한 논문에서 ‘음향의 불확정성 원리(acoustic uncertainty principle)’라는 용어를 도입해 이를 설명했다.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서 따온 신조어다.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 원리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원리다.

 

주스는 청각피질 역시 소리의 시간에 따른 변화와 주파수 패턴을 동시에 정확히 분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좌뇌와 우뇌의 청각피질 기능이 같다면 시간 분해능과 주파수 분해능이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중복 대신 각각 한 가지에 뛰어나게 만들어 정보를 처리한 뒤 이를 종합하는 방식이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났다. 

 

좌뇌는 시간에 따른 소리 정보 처리를 정확하게 해내고 우뇌는 주파수 패턴을 파악하는데 뛰어나게 진화했다. 대신 반대 과제에 대한 정보 처리 능력은 오히려 떨어졌다. 특히 언어를 구사하게 된 인간은 이런 편측성이 더 치우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쪽 뇌가 손상될 때 언어 또는 음악 능력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꽤 그럴듯한 이론이다.

 

노래의 감동은 우뇌도 큰 몫

 

노래에서 단어는 좌뇌가 멜로디는 우뇌가 주로 처리한다고 해서 가사의 비중이 큰 트롯이 ‘좌뇌의 노래’인 건 아니다. 좌뇌는 말소리의 음운 정보를 처리하는데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말소리에 담긴 화자의 감정과 의도를 유추할 수 있는 음정과 음색, 강세는 주로 우뇌에서 파악한다. 필자가 들은 트롯 가운데 가사의 비중이 가장 크다고 생각되는 나훈아의 ‘홍시’라는 노래를 보자.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 갈무리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만일 ARS자동응답기처럼 무심한 말투로 이 가사를 들려준다면 다소 감상적일 뿐 시적 완성도는 떨어져 보여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가사가 곡을 타고 흐르면 나훈아 고유의 음색과 창법으로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나면서 서서히 감정을 고조시키고 노래를 듣는 사람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린다. 유튜브의 댓글을 보면 ‘역시 나훈아’ 같은 반응은 없고 ‘돌아가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점점 희미하고 멀어지는 엄마 얼굴이 그리워 눈물이 난다’ 같은 얘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게 바로 노래, 특히 트롯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필자소개

강석기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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