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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백해무익한 과학기술 문명 비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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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백해무익한 과학기술 문명 비하론

2020.04.15 15:00
1월 26일 중국 허베이성 우한에 있는 옵틱스 밸리 광장 인근을 촬영한 항공사진.신화/연합뉴스 제공
1월 26일 중국 허베이성 우한에 있는 옵틱스 밸리 광장 인근을 촬영한 항공사진.신화/연합뉴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의 짙은 먹구름이 전 세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지구촌을 긴밀하게 연결시켜줄 것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화려한 꿈은 멀어지고, 각자도생하는 성곽국가의 질곡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다. 1만 명이 넘는 감염자와 200명이 넘는 사망자를 외면하고 난데없는 ‘방역 강국’의 속빈 허상에 넋을 빼앗기고 있는 우리의 현실도 당혹스럽다. 그런 와중에 현대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백해무익한 문명 비하론이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생태계의 혼란과 반격을 무시하고 겉만 번드레한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무너져버린 경제를 회생시키는 길도 과학기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자연과 역사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

 

산업혁명 이후 250년 동안 우리가 애써 쌓아올린 현대 문명의 초라한 몰골이 드러났다는 일부 인문사회학자들의 인식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자연과 인류 역사에 대한 극도로 왜곡된 인식이 문제다. 자연이 우리에게 포근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라는 인식은 우리가 애써 가꿔놓은 국립공원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환상이다. 역사책에 남아있는 화려한 기록도 인류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자연은 우리에게 매우 거칠고, 위험한 곳이다. 사자·호랑이와 같은 맹수와 화산·지진·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만 두려운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같은 미물들까지 호시탐탐 우리의 생존을 넘본다. 자연은 본래부터 그런 곳이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자연 생태계에서 균형과 조화는 지나치게 순진한 희망일 뿐이다.


그런 자연에서 어렵사리 생존해야 했던 인류의 역사가 찬란하고,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다. 인류 문명 이전 수렵채취 시대의 삶은 자연과 완전하게 동화된 ‘자연인’의 삶이었지만, 우리가 동경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야생의 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수렵채취인에게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챙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겨웠다. 


농경목축 시대의 역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 찬란했던 과거의 ‘문명’은 오로지 소수의 지배계급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인류의 70%는 극심한 굶주림과 질병뿐만 아니라 야만적 수준의 사회적·인종적·종교적 차별을 견뎌내야만 했다. 세상에 태어나는 신생아의 70%는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했고, 평균수명은 40세를 넘지 못했다. 조선 시대의 명문세도가도 자식을 ‘반타작’하는 것이 소박한 꿈이었다.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고작 0.04% 수준이었고, 지구상의 인구는 5억을 넘지 못했다. 그마저도 14세기 흑사병은 당시 인구의 절반을 앗아갔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로 이룩한 찬란한 인류 문명은 절대 함부로 비하할 수 없는 것이다. 산업화 기술은 더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삶의 여유가 생기면서 누구나 인권·자유·평등의 가치를 당당히 요구하게 된 것도 놀라운 발전이다. 폭압·차별·권위적인 봉건·식민 시대도 사라졌다. 끊임없는 기술혁신은 맬서스와 같은 사회학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라운 기적을 실현시켜주었다. 20세기의 녹색혁명으로 77억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식량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들과의 싸움을 외면했던 것도 아니다. 건강을 위협하는 세균의 공격을 막아주는 항생제도 개발했고, 효과적인 백신의 개발로 천연두와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성과도 거두었다. 결핵·말라리아·콜레라·장티푸스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일랜드 대기근을 초래했던 감자잎마름병도 해결했다. 무엇보다도 ‘하늘이 저주’라고 믿었던 역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와 감염경로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극복한 질병은 무려 40가지가 넘는다. 과학기술이 아니었더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모든 질병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이룩한 성과의 빛이 바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극복해야 할 문명의 그늘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가 이룩한 과학기술 문명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그림자와 그늘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에게 꿈과 희망이 아니라 공포와 좌절을 안겨주고 있는 리더십이 실종된 오늘날 소위 선진국의 실망스러운 정치 현실도 현대 문명의 그늘이다. 무지·무관심·편견으로 인류 문명의 밝은 면을 왜곡하는 문명 비하론도 우리가 하루 빨리 지워나가야 할 그늘이다.


현대 문명의 그늘은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77억명의 인류가 지구상에서 함께 번성하는 일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고 버거운 일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쉽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의 꿈을 함께 달성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뜻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을 찾으려면 우리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의 효력은 기대할 수 없다. 우선 현대의 삶은 우리가 원한다는 이유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로지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발전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뚝딱 해결해주는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문제는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고, 그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에게 자연이 반격을 하고 있다는 인식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착각이다. 바이러스가 인간을 괴롭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오지를 개척해서 화려한 도시를 이룩했듯이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우리가 바이러스의 출현을 함부로 반길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도심에 출몰해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멧돼지를 싫어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가 믿을 것은 과학기술뿐이다. 자연의 정체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과학 지식의 증진과 거칠고 위험한 자연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기술의 개발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다. 현재의 기술이 위험하고 더럽다고 폐기해야 한다는 어설픈 주장은 섣부른 것이다. 오히려 위험하고 더러운 기술을 안전하게 깨끗하게 관리하는 능력과 그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안전하고 깨끗한 기술은 비현실적인 환상일 뿐이다.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서도 우리가 믿고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뿐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착각이다. 우리의 면역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신속 진단 키트와 다양한 대증요법을 총동원해서 몰아내야 한다. 우리 힘과 노력으로 해내야 한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필요하다. 감염에 의한 피해를 줄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지켜주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노력도 중요하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패배주의적인 문명 비하론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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