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사이언스N사피엔스] 하비의 혈액순환론

통합검색

[사이언스N사피엔스] 하비의 혈액순환론

2020.04.30 14:00
′이탈리아 베네토주 파도바에 위치한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의 강의실 ′Aula Magna′. 위키피디아 제공
'이탈리아 베네토주 파도바에 위치한 파도바대학의 강의실 'Aula Magna'. 위키피디아 제공

《파브리카》를 쓴 베살리우스보다 3년 늦게 파리대학에 입학한 미카엘 세르베투스는 에스파냐 출신이었다. 베살리우스와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의사이자 신학자였다. 1553년 《그리스도교의 회복》이라는 책을 썼다. 여기서 세르베투스는 혈액의 폐순환을 주장한다. 이슬람의 이븐 알 나피스보다 약 300년 뒤의 일이다. 세르베투스는 알 나피스와 마찬가지로 심장 격벽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갈레노스의 주장이 틀렸음을 알아냈다. 그는 폐동맥 등의 해부학적 구조를 연구한 끝에 혈액의 폐순환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한편 세르베투스는 이 책에서 신학자로서 삼위일체설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삼위일체를 ‘머리 셋 달린 개’라고 했다 하니, 교회에서는 엄청난 신성모독을 여겼을 법도 하다. 이미 20년 전인 1531년에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론의 오류》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었다. 세르베투스는 구교와 신교 모두에게서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결국 로마 가톨릭과 제네바 시의회에서 화형을 결정했다. 세르베투스는 프랑스를 탈출해 도망 다녔으나 제네바에서 칼뱅의 무리에게 붙잡혔다. 화형은 죄인을 가장 괴롭게 죽이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칼뱅은 ‘인도적으로’ 교수형을 권고했다고 하는데 결국 1553년 제네바의 어느 광장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세르베투스를 태운 불길은 2시간 동안 타올랐다고 한다. 그가 불타 죽은 지 350년이 지난 1903년 제네바 근교에는 옛날의 화형을 속죄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앞서 소개한 조르다노 브루노가 태양중심설로 로마에서 화형당한 것이 1600년이니까 세르베투스는 그보다 반세기 빨리 화를 당한 셈이다. 


세르베투스의 친구였던 베살리우스는 파도바 대학에서 해부학 교수로 재직하다 대학을 떠났지만 그의 제자들은 남았다. 그중에 한 명이 파브리치우스(1537~1619)였다. 파브리치우스는 베살리우스로부터 박사학위를 받고 이후 50년 동안 파도바 대학에서 해부학·외과학 교수로 재직했다. 파브리치우스는 주로 근육의 움직임을 연구했는데, 파도바 대학에 해부학 전용 실습강의실을 상설로 개설(1594)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실습강의실은 원형극장식이다. 제일 아래층에 실습용 침상이 놓여 있고 이를 둘러싸는 원형의 관람석이 층층이 배치돼 있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원형 관람석이 더 넓어져서 전체적으로 깔때기 모양이라 어느 층에서라도 1층의 실습과정을 잘 볼 수 있다. 

 

원형극장식인 파도바대 해부학 전용 실습실. 위키피디아 제공
원형극장식인 파도바대 해부학 전용 실습실. 위키피디아 제공

지금도 파도바에 가면 이 원형 실습강의실을 구경할 수 있다. 파도바는 아주 작은 도시라 도시 내 어느 곳이든 걸어서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그 한가운데에 보 팔라초(Palazzo Bo)가 있다. 팔라초는 우리말로 궁 또는 저택이라는 뜻이다. 보 팔라초는 파도바 대학이 있던 곳으로 지금도 총장실과 법대가 쓰고 있다. 지금은 가이드투어를 신청하면 45분 정도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나도 몇 년 전 가이드투어를 한 적이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갈릴레오 등 파도바 대학을 거쳐 간 유명인들이 강의했던 대형 강의실인 'Aula Magna'가 있고, 다시 밖으로 나와 건물의 내부 계단으로 들어가면 해부학 실습강의실이 나온다. 사진과 그림으로만 보다가 직접 실물을 보니 그 작은 크기에 무척 놀랐다. 침상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 정도의 크기였고 그 둘레로 열 명 정도가 둘러설까 싶을 정도로 좁았다. 천장도 무척 낮았다. 위층 원형극장식 자리에서 보면 1층의 침상만 보일 정도의 좁은 타원형 창이 위쪽으로 뚫려 있는 구조였다. 이 좁은 공간에 대략 200명 정도의 학생이 빼곡히 들어찰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세계 최초’의 타이틀은 뭐가 됐든 그 자체의 아우라가 있는 법이다. 침상이 놓여있는 바닥 층은 대체로 어두침침했다.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오래 전에 이곳을 다녀간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비슷한 느낌을 《이탈리아 기행》에 남겼다


1595년부터 1872년까지 겨울에는 이곳에서 해부학 실습이 진행되었다. 여름에는 시체가 빨리 부패해 해부실습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체를 완전히 해부하는 데에 족히 2주는 걸렸다고 한다. 


가이드 투어 동안 내부촬영은 허용되지 않았으나 일부 투어를 함께 했던 관광객은 스마트폰으로 몰래몰래 곳곳을 촬영했다.


파브리치우스는 의학에서 판막의 구조와 위치를 완벽하게 묘사해 실험적으로 판막을 증명한 최초의 의사였다. 1603년에는 《정맥의 판막에 대하여》를 저술하기도 했다. 판막은 혈류의 방향을 한쪽으로 고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파브리치우스는 이를 발견하도고 혈액순환론에는 회의적이었다. 


혈액순환론을 완성한 것은 파브리치우스의 제자였던 윌리엄 하비였다. 하비는 영국 켄트 주 출생으로 16세에 케임브리지에 입학했다. 1597년에는 영국을 떠나 당시 유럽 최고 명문이던 파도바 대학에 들어가 1602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파브리치우스였다. 이 시기는 갈릴레오가 파도바에 머물던 시기(1592~1610)였다. 하비는 직접 갈릴레오의 강의를 들었다(청강)고 한다. 학위를 받은 뒤에는 영국으로 돌아가 병원을 개업했다.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의 주치의까지 했으니까 의사로서의 실력이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심장 연구를 계속했던 하비는 1628년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해부학적 연구)》를 출간했다. 여기서 하비는 혈액순환론을 주창한다. 혈액순환론은 그때까지 여전히 지배적이었던 갈레노스 이론과 배치되는 주장이었다. 갈레노스에 따르면 혈액은 간에서 만들어지고 정맥을 따라 신체 말단에 가서 소멸한다. 

 

윌리엄 하비 (1578-1657)
윌리엄 하비 (1578-1657)

하비는 갈레노스의 이론에 의문을 느꼈다. 먼저 그의 스승이 발견한 판막의 방향을 살펴보면 혈액은 분명히 말단에서 심장 쪽으로 흘러야 한다. 판막은 정맥에서 혈액의 역류를 막고 있다.  판막의 방향은 갈레노스의 주장과 정반대방향이다. 둘째, 혈액이 계속 소모되기만 한다면 인체는 엄청난 양의 혈액을 계속 만들어내야만 한다. 하비는 나름 정량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성인 심장의 좌심실에 있는 혈액의 양은 약 56g이고 맥박은 분당 약 72회 뛴다. 그렇다면 한 시간에 좌심실에서 나가는 혈액의 양은 (56g)x(분당 72회)x(60분)=약 242kg 정도 된다. 


성인 남자의 몸무게를 약 80kg이라고 하면 자기 몸무게의 세 배에 달하는 혈액이 매 시간 소비되는 셈이다. 사람의 간이 그렇게 많은 혈액을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건 아무리 의사나 과학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리고 인간의 간이 아무리 ‘슈퍼울트라하이퍼’ 장기라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이다. (정량분석의 힘은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 


하비는 심장과 연결된 혈관들과 동맥, 정맥의 차이점 등을 분석했다. 또한 심장의 좌심실과 우심실 각각에 아래쪽으로 판막이 있어 위쪽에서 들어온 피가 아래로만 흐르며 그 반대로는 흐르지 않음을 알아냈다. 이렇게 나누어진 판막의 위쪽은 심방, 판막의 아래쪽은 심실이라 부른다. 하비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대정맥은 우심방에 연결돼 있다. 정맥의 판막은 심장을 향한다. 반면 대동맥은 좌심실에 연결돼 있다. 대동맥은 대정맥에 비해 훨씬 두껍고 탄력적이다. 그렇다면 피는 대정맥을 통해 우심방으로 들어가고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나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 알 나피스나 세르베투스가 발견한 폐순환을 연결해 보자. 폐동맥은 우심실에 연결돼 있고 폐정맥은 좌심방에 연결돼 있다. 즉, 우심실의 피가 허파로 나가고 여차저차해서 허파의 피가 다시 좌심방을 통해 심장으로 돌아온다.


이 결과를 요약하면 심방은 심장 바깥에서 피를 심장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고 심실은 심장의 피를 심장 밖으로 내보내는 곳이다. 심방의 피는 판막을 통해 심실로 흘러들어간다. 반대로는 흐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우리 몸의 혈액은 대정맥, 우심방, 우심실, 폐동맥, 폐, 폐정맥, 좌심방, 좌심실, 대동맥으로 ‘순환’한다. 지금은 혈액순환론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하비가 엄청난 공격과 비난에 시달렸다. 혈액순환론이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하비는 아주 간단한 ‘결찰사 실험’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결찰이란 신체나 장기 일부를 묶어 내용물이 통하지 않게 하는 행위를 말하고 결찰사를 그때 사용하는 실이다. 건강검진에서 피를 뽑을 때 혈관이 잘 드러나 보이게 팔뚝을 묶는 고무줄도 일종의 결찰사이다. 하비는 팔뚝에 실을 묶어 혈관이 잘 드러나게 한 뒤, 정맥을 따라 판막을 전후로 피가 어떻게 흐르는지를 살펴보았다. 즉, 팔뚝 위쪽에서 판막을 거쳐 손목방향으로 정맥을 훑어 내리면 판막 아래쪽으로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 반대로 손목 쪽에서 판막을 거쳐 팔뚝 위로 피를 훑어가면 피가 잘 흐른다. 이는 신체 말단의 피가 판막을 통해 심장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하비는 다른 동물의 심장과 혈관도 조사해 혈액이 순환하는 증거를 수집했다. 

 

윌리엄 하비가 행한 결찰사 실험. 위키피디아 제공
윌리엄 하비가 행한 결찰사 실험. 위키피디아 제공

 


그러나 하비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첫째, 하비는 동맥과 정맥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몰랐다. 다만 아주 작은 무언가를 통해 이어져 있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동맥과 정맥이 신체 말단에서 모세혈관으로 이어져 있음은 하비의 책이 나온 지 30여 년 뒤 이탈리아의 말피기가 알아냈다. 말피기가 모세혈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현미경이라는 막강한 무기 덕분이었다. 


둘째, 하비는 허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하비보다 대략 반세기 뒤에 활동했던 리처드 로워(1631~1692)는 1669년 《심장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검붉은 색의 정맥혈이 허파를 통과하면서 선홍색의 피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허파에서 어떤 물질이 호흡과정에서 허파를 통해 혈액으로 전달되었다는 뜻이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로워도 알지 못했다. 앞서 봤듯이 라부아지에는 호흡과 산소의 유사성을 주장했고 19세기 중후반에 가서야 허파에서 혈액 속으로 기체의 교환이 이루어지며 혈액은 관련된 기체의 운반체임을 알게 되었다.

 
하비의 이런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요소이다.) 하비의 혈액순환론은 과학혁명기 의학 분야의 매우 중요한 성과이며 근대적인 의학의 토대를 정립하는 데에 큰 공헌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비의 《해부학적 연구》가 출판된 1628년은 뉴턴의 탄생(1642)은 물론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게 된 《대화》를 쓰기(1632)도 전이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이라는 광학기구로 하늘을 관측한 첫 세대의 과학자였듯이 하비 바로 다음 세대의 과학자들은 현미경이라는 광학기구로 생명체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마침 1628년 그해에 ‘현미경 해부학’의 창시자가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마르첼로 말피기였다. 

 

※참고자료 

-쑨이린, 《생물학의 역사》(송은진 옮김), 더숲.
-Alison Abbott , Hidden treasures: Padua's anatomy theatre, Nature 454, 699 (2008);
https://www.nature.com/articles/454699a#citeas.
-권복규, 황상익, 지제근, 호흡 개념의 역사적 변천 과정, 의사학 제6권 제2호 : 241-250, 1997.
-John B. West, A Century of Pulmonary Gas Exchange, Am J Respir Crit Care Med Vol 169. pp 897–902, 2004.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3 + 8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