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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과학기술을 소중하게 여기는 국회가 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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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과학기술을 소중하게 여기는 국회가 되고 싶다면

2020.05.27 08:00
국회의사당 전경. 동아사이언스DB
국회의사당 전경. 동아사이언스DB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의 먹구름 속에서 21대 국회가 출범한다. 꽁꽁 얼어붙은 국정을 되살리는 일이 만만치 않다. 경제는 멈춰서버렸고, 국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자랑하는 ‘K방역’의 효과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명목으로 우리 국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국가가 146개국이나 된다. 세계의 문이 다시 열리고, 국제 분업체계가 ‘코로나 이전’(BC)의 수준으로 재가동 될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코로나 이후’(AC)의 새로운 세계 질서에 적응하기 위한 지혜와 힘도 필요하다.

 

국회에서도 밀려나버린 과학기술

 

21대 국회는 유별나다. 여야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렸고, 억지로 도입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다당제의 취지도 크게 퇴색됐다. 뒷문으로 어설프게 등장한 위성정당의 폐해가 심각하다. 공천 명부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벌써 당선인 3명을 제명해버렸다. 투표용지에는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던 무명의 정당들이 원내에 입성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질 모양이다. 사실 위성정당 자체의 운명도 불확실하다.

 

21대 국회의 가장 유별난 특징은 과학기술의 실질적인 퇴출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구개발 경험을 가진 당선인은 공학을 전공한 야당의 비례대표 조명희 의원뿐이다. 심지어 탈원전을 반대한다던 야당이 원자력 전문가를 당선권 바깥으로 밀어내버리기도 했다. 여당의 위성정당들은 전문가의 국정 참여라는 비례대표의 가장 중요한 취지를 무시해버렸다. 이제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에서도 과학기술이 설자리가 크게 좁아졌다. 

 

긴급 사용 승인된 신종코로나 진단시약 키트. 연합뉴스 제공
긴급 사용 승인된 신종코로나 진단시약 키트. 연합뉴스 제공

물론 과학자 출신의 국회의원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사실 과학자 출신 국회의원들의 입법 성과가 대단했던 것도 아니다. 정반대로 과학자가 국회를 통해 입법가나 정치인으로 성공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부끄러운 막말이나 쏟아내는 돌격대원으로 임기를 마친 부끄러운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의 입장에서 21대 국회의 구성은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다. 과학기술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문송이’ 중심의 국회가 과학기술을 충분히 활용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칫하면 코로나 이후 시대의 경제도 살리지 못하고, 국민 안전도 지켜주지 못하고, 국가의 안보도 흔들리게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실제로 과학기술의 성과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K방역의 성공은 바이오산업계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진단키트’ 덕분이라는 사실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191개국이 우리 국민의 입국을 제한할 정도의 부끄러운 ‘감염대국’을 한 순간에 세계 최고의 ‘방역 선진국’으로 탈바꿈시켜 준 것이 바로 진단키트였다. 우리 바이오산업계가 2주 만에 세계 최초로 개발해낸 걸작이다.

 

그동안 과학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의 결과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감사해도 모자랄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장관들의 입에서는 진단키트의 가치에 대한 공개적인 발언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외교부 장관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식약처의 긴급사용승인을 K방역의 성공 열쇠라고 밝혔다. 어처구니없는 사실 왜곡이다. 

 

지난 석 달 동안 103개국에 2억 3000만 달러의 진단키트를 수출하는 놀라운 경제적 성과도 무시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 이를 위해 내놓은 ‘한국형 뉴딜’에서도 바이오산업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메르스 때의 얄팍한 지원을 핑계로 기술료를 징수하려는 관료가 있었다고 한다. 21대 국회의 모습도 지금의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낡은 적폐를 과감하게 청산해야

 

21대 국회 (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1대 국회 (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1대 국회를 과학기술 시대에 걸맞도록 개혁해야 한다.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과학기술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과학기술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의 고유 영역이라는 인식은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과 무관한 국정은 존재할 수가 없다. 코로나19의 과학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국회는 코로나 이후(AC)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 국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모든 당선인을 대상으로 코로나19의 과학기술에 대한 확실하고 수준 높은 교육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회의 역할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과학자의 연구개발 활동을 ‘감시’는 국회가 할 일이 아니다. 과학자의 자율과 행정부·감사원에게 맡겨둘 일이다. 국회가 말안장에 높이 올라앉아서 과학자를 길들이는 ‘양치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와 관료들에게 길들여진 과학자에게서는 진정한 창의적 과학과 기술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국정감사를 앞두고 선정적인 폭로로 언론의 주목을 끌려는 시도는 반드시 버려야 할 고약한 적폐다. 국회가 과학기술계를 멍들게 만드는 ‘투서’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국회의원이 은밀하게 흘린 정보를 받아쓴 보도를 핑계로 다시 이슈를 증폭시키는 폐악적인 ‘정언유착’이 의정활동의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척결해야 할 적폐다. 오히려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폭로에 대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그런 적폐가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유전자 편집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었던 기초과학연구원(IBS)의 김진수 단장이 법정에 서게 만든 것이 대표적인 정언유착의 사례였다. 연구자의 창업과 관련된 지적재산권 문제를 아직도 분명하게 정리되지 못한 것은 온전하게 국회의 책임이다.

 

과학기술 시대의 국회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행정부의 부처 사이에 견고하게 쌓여있는 고질적인 칸막이를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도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바이러스연구소’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기초’와 ‘응용’을 구분해야 한다는 낡아빠진 관료주의적 발상이 원인이다. 미국의 질병예방통제센터(CDC)·국립보건원(NIH)·식품의약품안전청(FDA)·연방재난관리청(FEMA)·의무감(Surgeon General)과 같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돌아가는 상생적·협력적 관리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국회의원의 개인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언론에서 회자되는 얄팍한 유행어에 대한 관심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입만 벌리면 쏟아내던 융합·통섭·창조·혁신·그린·녹색·초연결·초지능·미래가 모두 국정을 어지럽게 만들었던 유행어들이다. 과학과 기술은 유행어에 의해 발전하지 않는다. 

 

지난 20여 년 동안 과학기술계를 짓눌러왔던 ‘혁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진정한 혁신은 정치인이나 정책전문가들이 강조하듯이 남의 제도를 어설프게 흉내 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로부터 진정으로 존중받는 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기술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과 의지를 키워야 한다. 

 

화려한 유행어를 앞세운 친목·연구단체는 절대 만들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 보조금을 받아내고, 연구에 바쁜 과학자들을 괴롭히는 것 이상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동안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오로지 자신의 의정활동 성과를 위해 개최하는 속빈 공청회도 전문가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민폐다. 

 

특히 ‘문과 출신이라서 과학기술은 잘 모른다’는 자랑은 국회의원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것이다. 21대 국회를 진정으로 과학과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과학자를 존중하는 국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코로나 이후의 생존을 기대할 수 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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