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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코로나 이후의 교양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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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코로나 이후의 교양 교육

2020.06.24 15:00
애플은 초기 아이패드를 콘텐츠 소비 기기로 간주했다.
스티브 잡스. 위키미디어 제공

대학의 교양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다. 대학마다 교양교육 전담조직이 만들어지고, 교양교육의 발전을 위한 교양교육학회·기초교양교육원·교양교육협의회도 생겼다. 교양 교육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초에도 열풍이 있었다. 교양 교육만 전담하는 ‘교양학부’를 운영하는 대학도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던 당시의 교양 교육은 ‘학부제’가 도입되면서 시들해져 버렸다. 코로나 이후의 교양 교육은 스스로의 확실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교양 교육도 진화해야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시대이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계급이 완전히 사라졌고, 사회적으로도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일반화됐다. 사회의 구성이 다양화·다원화되었고, 서로 다른 종교와 이념이 공존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세계관이 완전히 달라졌다. 생명에 대한 이해도 달라졌고, 자연에 대한 해석은 상상을 못할 정도로 변해버렸다. 과거의 세계관이었던 ‘음양오행설’이나 ‘4원소설’은 설 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실제로 서양의 고대 사상을 지배하던 4원소설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서양의 철학이나 의학에서 4원소설이나 4체질설의 흔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동양의 자연에 대한 고전적 이해를 반영한 음양오행설이 여전히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음양오행설은 수메르의 천문 관측에서 시작된 상상이었을 뿐이다. 118종의 원소가 존재하는 것이 밝혀졌고, 쿼크와 보손으로 구성된 표준모형이 실험으로 확인된 세상을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 과거의 낡은 세계관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계관이 변화하면서 고전(classics)이나 정전(canon)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과 주석도 설득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고전과 정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그래왔듯이 세계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새로운 해석과 주석이 필요할 뿐이다. 결국 교양 교육도 시대적 변화에 따라 진화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중세 교양 교육(artes liberalis)의 핵심이었던 ‘3학4과’를 고집할 수도 없고, 계몽시대의 ‘인문주의’만 강조할 수도 없다. 


심지어 교양 인문학(liberal arts)의 의미도 달라져야만 한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처음 개발한 스티브 잡스가 강조했던 교양 인문학은 문학·역사·철학으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인문학이 아니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7년의 언론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가 밝힌 21세기 교양 인문학의 핵심은 사용자를 디지털 기기와 연결시켜주는 ‘GUI’(Graphic-User Interface·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이었다. 휴대폰 화면에 깔려있는 ‘아이콘’을 통해서 현실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바로 스티브 잡스가 강조했던 교양 인문학이라는 뜻이다.


과학 정신과 기술의 수용성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그렇다고 교양 교육에서 현대 과학의 초급 과정인 일반물리학·일반화학·일반생물학을 가르칠 수는 없다. 그런 교과목은 이공계 학생들을 위한 전공 교육의 기초 과목일 뿐이다. 물론 과학 상식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에게 과학자 양성 교육을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교양 교육을 위한 ‘과학’의 핵심은 따로 있다. 현대 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과학 정신’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과학 교양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통제된 실험을 통해 확인된 ‘과학적 사실’을 겸허하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 시작이다. 모든 주장을 비판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확인하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정부·기업·언론의 권위에 압도되어 팩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비민주적인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용성도 중요하다. 세상에는 ‘좋은 기술’이 따로 있고, ‘나쁜 기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오용하거나 남용하면 심각한 피해와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하고 더러운 기술이라도 충분히 노력하면 안전하고 깨끗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현대의 기술이다. 자칫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는 자동차가 도로를 정비하고, 도로교통법을 강화하면 훌륭한 문명의 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그런 예이다.


 자연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도 현대 교양인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자질이다. 인간의 기술에 의해 자연이 황폐화되었다는 주장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77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아니었다면 자연 생태계는 오래 전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야산에 서식하는 멧돼지가 50만 마리가 넘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42만 명의 화전민을 도시에 정착시키고, 장작 대신 연탄을 연료로 사용한 덕분에 울창해진 숲이 멧돼지의 천국으로 변해버린 덕분이다.


애써 이룩한 인류 문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추도록 해주는 것이 대학 교양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 인류가 그동안 과학과 기술을 동원해서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시켰다는 주장은 교양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이룩한 놀라운 성과를 부정하는 패배주의적 인식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양 교육이 전공 교육과 대립하는 상황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교양 교육이 이미 극단적으로 사분오열된 대학을 분열시키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교양 교육이 대학의 극단적인 칸막이 문화를 완화시켜주는 촉매의 역할을 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미 일상화된 삶의 질을 포기해버리고, 과거의 화전민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자연인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정부에게 빼앗긴 판옵티콘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코로나 이후의 교양 교육의 목표도 크게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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