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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리포트] ‘핵’ 빠르게 던지는 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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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리포트] ‘핵’ 빠르게 던지는 가속기

2020.06.27 15:00
일러스트 최연지/어린이과학동아DB
일러스트 최연지/어린이과학동아DB

우리는 아주 빠른 속도를 묘사할 때 빛처럼 빠르다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야구 투수가 약 시속 160km를 넘는 공을 던지면 빛처럼 빠른 공이라는 뜻으로 ‘광속구’라고 비유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물체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저와 같은 핵물리학자들입니다. 

 

‘핵’ 작은 핵을 ‘핵’ 빠르게 던지는 비결

 

빛은 얼마나 빠를까요? 빛은 진공이나 공기 중에서 1초에 30만km를 이동해 지구를 일곱 바퀴 하고도 반 바퀴나 더 돌아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는 빛의 99.999999%에 달하는 속도로 수소 원자의 핵인 양성자를 던져서 서로 충돌시킵니다. 말 그대로 ‘빛처럼 빠르게’ 입자를 가속시키는 겁니다. 


이처럼 빠른 속도를 어떻게 만들어내는 걸까요? 야구공은 큰 힘으로 세게 던질수록 크게 가속되어 속도가 빨라집니다. 이때 공의 질량이 작을수록 가속되는 정도는 커 속도가 더 빨라집니다. 이처럼 어떤 물체의 가속도가 외부에서 받는 힘에는 비례하고 물체의 질량에는 반비례하는 현상을 ‘뉴턴의 운동 제2법칙’이라고 합니다. 가속기도 이를 이용해 핵에게 큰 힘을 줘서 가속시킵니다.

 

그런데 핵은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던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입자는 어떻게 가속할까요? 답은 ‘전기력’에 있습니다. 전하*를 띠는 물체는 서로 밀거나 당기는 ‘전기력’을 받습니다. 가속기에서 사용하는 수소 원자는 음전하를 띠는 ‘전자’와 핵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중 수소핵은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 하나입니다.  즉, 수소핵은 양전하를 띠므로 전기력을 가해 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수소핵을 빛만큼이나 빠르도록 만들려면 대체 얼마나 큰 전기력이 필요한 걸까요? LHC에서 수소핵의 운동에너지는 최대 6.5조 전자볼트(eV)까지  증가합니다. 우리가 평소 쓰는 1.5V짜리 건전지 약 4.5조 개만큼이나 큰 전기력을 줘야 만들 수 있는 운동에너지량입니다. 

 

세상을 이루는 근본적인 물질은 무엇일까?

 

CERN 컨트롤 센터. 연구자들이 가속기 실험이 잘 이뤄지는지 24시간 내내 점검하는 곳이다. Torkild Retvedt/위키피디아 제공
CERN 컨트롤 센터. 연구자들이 가속기 실험이 잘 이뤄지는지 24시간 내내 점검하는 곳이다. Torkild Retvedt/위키피디아 제공

가속기 안에서 수소핵이 빛만큼 빠르게 움직이다 서로 ‘꽝’ 부딪치는 등 역동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저와 같은 핵물리학자는 컴퓨터가 가득한 연구실에서 24시간 내내 모니터를 보는 등 바삐 움직입니다. 보통 10명 내외로 이뤄진 팀들이 8시간씩 교대하며 실험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원하는 데이터가 정상적으로 모이는지 등을 항상 확인합니다. 이런 일을 미국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의 상대성중이온가속기(RHIC)에서는 약 1000명의 과학자들이, LHC에서는 약 만 명의 과학자들이 전세계에서 찾아와 돌아가며 합니다. 


이처럼 고된 일을 통해 핵물리학자가 얻으려는 것은 뭘까요? 바로 ‘세상을 이루는 근본적인 물질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의 답을 찾으려는 겁니다. 묻기는 쉽지만 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입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소, 산소 같은 원소를 발견하고 주기율표를 완성하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는 마침내 원소들의 내부 구조를 밝히기 위한 가속기 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가속기 실험을 통해 과학자들은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쿼크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전엔 볼 수 없던 새로운 입자도 알게 됐습니다. 가속기에서 양성자를 충돌시키면 양성자가 깨져 쿼크로 분리될 뿐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입자가 만들어지기도 하거든요. 에너지가 질량으로, 질량이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에너지-질량 등가 원리’에 따라, 빛의 속도로 움직이던 양성자의 에너지 일부가 질량으로 바뀌며 새로운 입자가 됩니다. 이를 통해 양성자를 이루던 쿼크만이 아니라 이와는 다른 종류의 새로운 쿼크와 힉스 등을 발견해왔습니다. 지금도 핵 충돌 실험에서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두 모래알을 충돌시키려면?

 

가속기 RHIC의 모습. 두 진공관에서 입자 다발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가속기 RHIC의 모습. 두 진공관에서 입자 다발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세계 곳곳에 있는 다양한 가속기 중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것은 LHC와 RHIC입니다. 특히 LHC의 길이는 어마어마해 둘레가 서울 가로 길이보다 고작 3km 짧은 27km에 달합니다. 스위스와 프랑스에 걸쳐 땅속 175m 깊은 곳에 있습니다. RHIC도 짧지는 않아 둘레가 약 3.8km에 달합니다.


이들은 모두 동그란 고리로 이뤄진 원형 가속기입니다. 내부에는 공기를 없앤 진공관이 두 개 있어, 각각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입자가 움직입니다. 두 진공관에서 반대로 움직이던 입자들은 가속기의 특정한 지점 몇 곳에서 만나 충돌합니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이 작은 모래 두 알을 양손에 들고 서로 마주 보는 방향으로 던져 충돌시키려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매우 성공시키기 어려운 실험일 겁니다. 모래알을 충돌시키기도 쉽지 않은데, 양성자처럼 보이지도 않는 입자를 충돌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결은 양으로 승부하는 것입니다. 양손에 모래를 한 움큼씩 쥐고 양쪽으로 던지면 그중 일부는 서로 부딪칠 테니까요. 가속기에서도 여러 입자를 모은 입자 다발을 쏩니다. LHC에서는 약 천억 개의 양성자로 이뤄진 입자 다발을 약 2500번 차례로 던지면 27km의 긴 고리를 다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1초마다 최대 4천만 번씩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 결과 여러 입자들이 나오면, 충돌 지점 주변에 있는 ‘검출기’가 입자의 에너지 등을 측정합니다. 검출기는 매우 작은 입자들의 특징을 어떻게 잡아낼까요? 다음 번 글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 지하실험시설 '그랑사소국립연구소'(LNGS). IBS 제공

 

※필자소개.

임상훈(부산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고에너지 핵물리학을 연구한다. 미국의 상대론적 중이온 가속기(RHIC)와 유럽의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에서 각각 피닉스(PHENIX) 실험과 앨리스(ALICE) 실험에 참여한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12호(6월 15일 발행) [헥헥! 핵물리학자] 과장은 없다! 이게 바로 광속...‘핵’ 빠르게 던지는 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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