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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예찬

2014.02.18 18:00
[강석기의 과학카페 165] 골격근은 분비조직?

매번 올림픽이 시작할 때마다 필자는 ‘시간도 안 맞는데 나중에 뉴스로 보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번번이 TV 앞에서 생중계를 보게 된다. 지난주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를 아쉬운 마음으로 본 뒤, 다음날 이상화 선수가 출전하는 여자 500m가 시작할 때 또 TV 앞에 앉았다.


경기는 2명 한 조로 9조까지 1부를 마친 뒤 빙상을 정리하고 2부 아홉 조 경기가 이어진다. 실력자들은 2부 뒤쪽에 나온다는 해설자의 설명대로 이상화 선수는 맨 뒤 조다.


그래서 느긋한 마음으로 1부 경기를 보고 있는데 장홍이라는 중국 선수의 질주가 예사롭지 않다. 과연 기록을 보니 이전 선수들보다 한참을 앞선다. ‘그러면 뒤 선수들은 얼마나 대단한 거야?’ 이런 생각으로 경기를 보는데, 웬걸 장홍 선수의 기록이 난공불락이다. 해설자도 좀 놀라는 눈치다. 결국 이상화 선수가 폭발적인 파워로 0.16초를 앞서 들어왔고 2차 레이스도 1위를 지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홍은 합계 4위로 아깝게 메달을 놓쳤다.


이틀 뒤 여자 1000m. 시간이 되자 TV 앞에 앉은 필자는 이번에도 무심히 경기를 지켜봤다. 실력자가 나오는 2부 중후반은 아직 멀었으니까. 그런데 1부 6조인가에서 장홍 선수가 또 나왔다. ‘체형상 500m보다 1000m가 더 맞는 거 같은데 왜 또 1부지….’ 이상화 선수가 탄탄한 꿀벅지를 자랑하는 스프린터형 체형이라면, 장홍 선수는 키가 커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근육질이 덜해 보이는 좀 늘씬한 타입이다.


그런데 웬걸. 200m(반 바퀴) 기록은 이전까지 1위와 별 차이가 없었는데 600m(한 바퀴 반)에서는 1초가 넘게 당겼다. 게다가 지친 기색이 없고 오히려 가속도가 붙은 모양새다. 고글도 안 써 맹수처럼 활활 타는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며 두 팔을 휘저으며 다이내믹하게 질주하는 장홍. 결국 결승점에서는 이전 기록을 3초 이상 당겨 1분 14초 02. 해설자도 놀랐는지 “빙질로 봐서는 14초대 후반이나 15초대 초반이면 메달권이라고 예상했는데요…”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그 뒤 선수들은 역시 맥을 못 춘다.


드디어 2부 마지막조 이상화 선수가 등장한다. 이때까지도 장홍의 기록은 2위 선수를 0.6초 이상 앞서 있다. 폭발적인 스타트로 200m 기록은 이상화 선수가 0.3초 정도 빠르다. 진행자와 해설자가 흥분한다. 그런데 600m 지점에 가까워지면서 장홍 선수의 기록(레인을 따라 이동하는 파란색 선으로 표시된다)과 점점 차이가 줄어들더니 결국 역전돼 0.02초 뒤진다. ‘600m에서 최소한 1초는 앞서야 승부가 될 텐데…’ 이 지점에서 이미 필자는 이상화 선수가 1초 이상 뒤질 걸 예감한다. 결과는 1분 15초 94로 장홍과는 1초 92 차이다. 장홍 금메달. 이번엔 이상화 선수가 메달권에서 벗어났다.


스피드스케이팅을 보고난 뒤 문득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장홍 선수의 동물적인 질주가 충격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뒷짐을 지고 하루 한 시간 정도 앞산을 산책하는 걸 빼면, 나머지 시간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뒤적이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게 전부인 필자의 연약한 팔다리가 문득 초라하게 느껴진다.


●지방 잡는 건 근육


근육은 인체 최대 분비기관이라는 인식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가운데 근육을 중심으로 여러 신체 기관과의, 분비물질을 통한 상호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방조직, 간, 혈관, 췌장, 뼈다. - 네이처리뷰 내분비학 제공
근육은 인체 최대 분비기관이라는 인식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가운데 근육을 중심으로 여러 신체 기관과의, 분비물질을 통한 상호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방조직, 간, 혈관, 췌장, 뼈다. - 네이처리뷰 내분비학 제공

사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필자가 훗날 근육질 여성을 보고 매혹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시라는 일본어(원래는 소데나시)로 흔히 부르는 민소매 옷이 어울리고 다리를 이중으로 꼬며(무릎을 깊이 교차한 뒤 발목을 한 번 더 교차하는) 앉은 모습이 자연스러운 날씬하고 정적인, 한마디로 우아한 자태를 높이 평가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여성을 보면 ‘근육이 좀 붙어야할 텐데…’라는 걱정이 앞선다.


필자가 이처럼 미적 기준이 바뀐 건 지난 수년 사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근육이 건강에 정말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서였을까.


돌이켜보면 어느 날 우연히 들은 한 스포츠생리학자의 강의가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태권도 5단(6단?)에 합기도, 검도 합쳐 공인 11단이라는 이 분은 흥미로운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왜 여성들이 컴퓨터 관련 질환이 더 많은가에 대한 설명이었다. 즉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자세가 더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어깨나 팔에 근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제교정이 아니라 근육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근육이 강화되면 이런 병은 저절로 낫는다고.


그리고 꼭 헬스클럽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틈틈이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2, 3층 높이 계단(지하철 같은 곳)은 걸어 다니는 습관만 들여도 충분히 근력운동이 된다고 조언했다. 사실 당시 필자도 어깨와 목이 안 좋았기 때문에 바로 실천을 해봤는데 정말 어느 순간 이런 통증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근육의 중요성에 대한 두 번째 통찰은 학술지 ‘네이처리뷰 내분비학’ 2012년 8월호에 실린 한 논문에서 왔다. ‘근육과 운동, 비만: 분비기관으로서의 골격근(Muscles, exercise and obesity: skeletal muscle as a secretory organ)’이라는 제목이다.


참고로 근육은 뼈와 연결돼 몸의 움직임을 일으키는 골격근과 위나 혈관 같은 내장이나 관을 둘러싸고 있는 평활근, 심장을 뛰게 만드는 심근으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근육이라고 말하는 건 골격근을 뜻한다. 골격근은 보통 체형의 젊은 남성의 경우 몸무게의 40%를, 여성은 35%를 차지하는 인체 최대 기관이다.


분비기관이란 신호물질을 밖으로 내보내는 기관이다. 호르몬을 내보내는 기관을 연구하는 학문분야를 내분비학이라고 부른다. 췌장에서 분비하는 인슐린, 송과샘에서 분비하는 멜라토닌, 부신피질에서 분비하는 코르티솔 등이 귀에 익숙한 호르몬들이다. 1980년대 중반 또 다른 내분비기관이 발견됐다. 바로 지방조직이다. 즉 지방조직은 단순히 지방을 저장할 뿐 아니라 렙틴 같은 식욕조절호르몬을 분비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 물질들을 아디포카인(adipokines)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2003년, 분비기관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는 논문이 실렸다. 바로 골격근이다. 많은 생리학자들은 우리가 운동할 때, 즉 골격근이 수축할 때 모종의 물질이 나오는 것 같다는 심증을 갖고 있었고 이를 ‘운동인자(exercise factor)’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 실체는 묘연했다. 그런데 마침내 인터류킨6(IL-6)라는 사이토카인(신호단백질)이 근육세포에서 분비돼 혈액을 타고 이동한다는 게 확인되면서 ‘마이오카인(myokines)’, 즉 근육에서 분비되는 사이토카인이라는 새로운 물질군이 등장했다. 현재는 다양한 물질이 마이오카인 또는 마이오카인 후보로 올라와 있다.


지금까지 가장 연구가 많이 된 IL-6의 작용을 잠깐 살펴보자. 운동을 하면 혈장내 IL-6 수치가 최대 100배까지 높아지기도 한다. IL-6는 췌장에 영향을 미쳐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고 지방조직에 힘을 미쳐 지방분해를 촉진시킨다. 간에도 손을 뻗쳐 포도당 합성을 부추긴다. 또 근육 자체에도 영향을 줘 근육내 지방분해를 촉진하고 근육생성을 유도한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마이오카인으로는 이리신(irisin)이 있다. 2012년 1월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돼 실체가 드러난 이리신은 운동을 할 때 근육세포에서 만들어지는 FNDC5라는 단백질이 잘린 조각으로, 혈관을 타고 지방조직으로 이동해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으로 바꿔 열생성을 유도한다. 즉 지방을 태운다는 말이다.


근육의 중요성에 대한 필자의 마지막 통찰은 <네이처> 2012년 12월 6월자에 실린, 노화를 주제로 한 부록의 끝에 실린 스폰서 회사 네슬레 연구진의 논문(sponsor feature)에서 얻었다. 보통 이런 글은 광고성 같아서 잘 안 읽는데, ‘일생에 거친 영양: 건강한 노화를 위한 혁신(Nutrition throughout life: innovation for healthy ageing)’이라는 제목에 혹해 읽어봤다.


연구자들은 결국 노화란 신체적 기능과 운동성의 퇴화가 핵심이라고 지적하면서 근골격계에 주목한다. 뼈에 대한 얘기는 건너뛰고 근육 얘기만 하면 결국 노화란 근육의 양과 힘, 기능이 소실되는 ‘근감소증(sarcopenia)’의 진행정도라는 말이다. 즉 나이가 듦에 따라 근육량이 줄어드는 속도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느냐가 노화를 늦추는 관건이라는 것. 그러면서 영양 처방을 해주는데 바로 ‘유청단백질(whey protein)’이다. 유청단백질은 우유단백질에서 카제인을 뺀 나머지다.


‘이게 뭐야?’ 흥분한 필자는 유청단백질을 검색해봤고 이미 보디빌더들이 닭가슴살과 함께 지겹도록 먹고 있는(분유처럼 타먹는) 식품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저자들에 따르면 유청단백질이 특히 노인들에게는 근육생성을 돕는(어차피 근육도 단백질이므로) 최고의 성분이라고 한다. 필자는 얼른 유청단백질 한 통을 주문했고 그 뒤로도 몇 통은 먹었다.


●정적인 다이어트는 노화를 가속시켜


‘꿩 잡는 건 매’라고 사실 지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근육이다. 즉 넘치는 지방을 없애려면 지방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지방조직이 분비하는 아디포카인과 근육이 분비하는 마이오카인이 서로 견제하며 음양의 균형을 맞춘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그런데 지방과 근육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지방조직은 몸에 들어오는 칼로리가 나가는 칼로리보다 많으면 우리 몸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늘어나는 반면, 근육은 절대로 알아서 커지지는 않는다는 것. 근육량을 늘리려면 근육을 자꾸 움직여야, 즉 운동을 해야 한다. 게다가 어렵게 만든 근육도 안 쓰면 얼마 못 가 다시 짜부라진다. 왜 우리 몸은 이렇게 멍청하게 설계된 걸까.


그 대답은 근육이 바로 엄청난 소모기관이기 때문이다. 근육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다.


몸에 근육량이 많으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칼로리를 섭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 몸은 필요한 양 이상의 근육은 존재하지 않도록 진화해왔다. 바로 마이오스타틴(myostatin)과 폴리스타틴(follistatin)을 비롯한 여러 인자가 관여하는 복잡한 피드백 메커니즘으로 근육량을 조절하고 있다. 따라서 몸을 안 쓰면 근육이 필요없다고 판단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자칫 정적인 생활 패턴에 빠지기 쉬운, 머리를 써서 먹고 사는 많은 현대인들은 늘 근육량 부족이라는 위험에 노출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근육량이 부족하면 소모되는 칼로리가 적고(기초대사량이 적다는 말), 따라서 많이 먹지 않아도 지방이 쌓이게 된다. 지방을 없애려고 식사량을 줄이다보면 기운이 없어 소파에 늘어져 있고 결국 근육량이 더 줄어 기초대사량은 더 떨어지고. 이런 악순환을 통해 소위 말하는 ‘마른 비만’이 나타나는 것이다. 근육이 보이는 게 싫어 ‘안 먹는’ 다이어트를 택한 젊은 여성들이 골다공증 같은 퇴행성 질환을 보이는 것도 결국 근육량 감소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즉 다이어트를 통해 몸을 급속히 노화시키는 셈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근육을 키우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근육량은 투자한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에 우람한 근육을 유지하려면 하루에 몇 시간씩 운동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근육이 늘어나는 건 일종의 염증반응이기 때문에(벅찬 운동으로 근육세포가 손상을 입으면 이를 복구하기 위해 주변의 위성세포가 몰려와 근육세포에 융합하면서 근섬유가 굵어진다) 지나치면 여러 스트레스 반응을 부르기도 한다.


사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근육이 지나치게 발달한 상태로, 건강면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지만 기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근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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