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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리포트] 바이러스는 어떻게 탄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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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리포트] 바이러스는 어떻게 탄생했나

2020.07.04 12:00
과학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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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생명체가 최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떻게 변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흔히 화석이라는 증거를 활용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크기가 너무 작은 데다가 DNA 또는 RNA 같은 유전물질을 단백질 껍질로 감싸고 있는 구조이다 보니, 뼈나 잎맥 같은 단단한 부위가 있어야만 만들어지는 화석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최근 분자생물학과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과거를 일부 추적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켰을 확률이 높은 만큼 현존하는 바이러스로 과거의 퍼즐을 정확히 끼워 맞추는 건 여전히 쉽지 않지만 말이다.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해 가장 먼저 제기된 가설은 생물의 최소 단위인 세포에서 바이러스가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는 바이러스의 생활사를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와 떨어져 있을 땐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포와 만나면 비로소 생명체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바이러스는 세포 속으로 침투해 유전물질을 내뱉고 세포가 이를 복제하도록 하며, 복제된 유전물질을 잘 포장한 뒤 세포 밖으로 탈출한다. 


이처럼 세포가 있어야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는 특성상 세포 없이 바이러스가 지구에 먼저 등장했을 리 없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런 관점에서 제기된 가설 중 하나는 ‘세포퇴화설’이다. 세포퇴화설은 평범한 세포가 증식과 같은 생명 현상을 다른 세포에 의지하게 되면서 이전에 필수적이었던 유전자를 점점 잃어 현재의 바이러스가 됐다는 가설이다. 


이는 온몸에 수포를 발생시키는 천연두바이러스나 대상포진을 일으킬 수 있는 헤르페스바이러스 등 다수의 바이러스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들 바이러스는 세포처럼 유전물질로 DNA 이중가닥을 갖고 있으면서도, 유전체 크기는 아주 작은 단세포 생물의 절반도 안된다. 


다만, 세포퇴화설은 전체 바이러스 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RNA 바이러스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세포는 유전정보를 DNA 형태만으로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한 가설이 ‘세포탈출설’이다. 세포탈출설은 세포의 유전물질 일부가 세포를 벗어난 뒤 특정 효소와 단백질을 얻으면서 바이러스가 됐다고 설명한다. 소아마비의 원인이 되는 폴리오바이러스, 모기와 포유동물을 오가며 생활하는 신드비스바이러스 등의 RNA 구조가 세포에 있는 전령RNA(mRNA)와 매우 닮아있다는 점이 세포탈출설을 뒷받침한다. 이들 바이러스는 복제 관련 효소의 유전자도 세포의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세포탈출설은 거대 바이러스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2014년 원핵생물인 대장균과 크기가 비슷한 피토바이러스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발견되는 등 최근 거대 바이러스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바이러스들은 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다. 거대 바이러스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는 세포퇴화설이 오히려 더 적합하다.


바이러스가 애초에 세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포와 함께, 또는 세포보다 먼저 지구상에 출현했다는 가설도 있다. 바로 ‘독립기원설’이다.


현재 분류 체계상 생물은 크게 진핵생물, 진정세균, 고세균 등 세 갈래로 나뉜다. 바이러스는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세 부류의 생물은 태초에 원시 생명체에서 각각 분화됐다고 여겨지는데, 독립기원설 지지자들은 바이러스 역시 원시 생명체에서 분화된 ‘제4의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근거는 레트로바이러스다. 레트로바이러스는 RNA로 된 유전정보 를 DNA로 옮기는 역전사효소를 갖고 있다. 이 효소는 현존하는 생물에서 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생물은 유전정보를 DNA에서 RNA로 옮기고, 이를 이용해 단백질을 만들기 때문이다. 즉 바이러스는 세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별개의 존재라는 것이다. 


종종 역전사효소를 가진 식물이 있지만, 이 역시 레트로바이러스와 유사한 레트로트랜스포존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최근에는 모든 생명체의 뿌리인 원시 생명체의 유전정보가 RNA였다는 가설이 힘을 받으면서 독립기원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또 다른 근거로 2015년에는 구스타보 캐타노 아놀레스 미국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 작물학과 교수팀이 바이러스 3460종과 생물 1620종의 단백질이 접혀 있는 패턴을 분석해 바이러스가 원시 생명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각 생물 종의 단백질은 접혀 있는 구조가 조금씩 다른데, 연구팀은 잘 변하는 염기서열 대신 쉽게 변하지 않는 단백질의 접힘 구조를 이용해 바이러스의 유래를 추적했다. 


연구 결과, 442개의 단백질 접힘 구조는 바이러스와 세포에서 공통으로 발견됐지만, 66개는 바이러스만 가진 구조였다. 이는 바이러스가 세포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세포가 같은 원시 생명체에서 갈라졌음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독립기원설을 주장하는 측은 바이러스의 조상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독립된 삶을 포기하고 다른 세포에 기생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유전자들을 버려 지금과 같은 작은 크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최근 발견된 거대 바이러스가 바이러스 조상의 모습과 가깝다고 본다.


하지만 2017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거대 바이러스가 고대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최근에 등장한 신종 바이러스라는 연구 결과가 실리며 이를 반박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하수처리장에서 발견된 거대 바이러스인 클로스노이바이러스는 오랜 세월 숙주 생물의 유전물질을 뺏어 점점 커진 것으로 밝혀졌다. 


숙주세포의 DNA의 정보를 RNA로 옮기고, 다시 RNA를 단백질로 번역해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적 체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그간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등장에 대해 다양한 가설을 제시해왔지만, 바이러스의 기원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바꿔 말하면 수십억 년 동안 수없이 진화해온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는 게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바이러스의 기원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등장한 가설이 모두 합쳐진 형태이거나, 아직 생각하지 못한 가설이 새롭게 등장할 수도 있다. 바이러스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기원이 각각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작지만 복잡다단한 미스터리한 존재, 바이러스여.

 

▼이어지는 기사를 보려면? 

과학동아 7월 [바이러스 특집호] 

Chapter 2. 정체

바이러스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바이러스는 생물일까 무생물일까

바이러스는 얼마나 다양할까

좋은 바이러스도 있을까

바이러스는 생물학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바이러스가 우주에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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