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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너무 무리했으니까 살고 싶으면 좀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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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너무 무리했으니까 살고 싶으면 좀 쉬렴"

2020.07.25 09: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요즘 들어 유난히 더 미루는 습관이 심해졌다면, 한 가지 좋은 소식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일을 더 심하게 미루는 경향을 보인다는 보고가 있었다. 

 

불확실성은 존재론적인 불편함을 불러온다. 예컨대 밤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바람에 휘날린 나뭇가지 소리인지 누군가 침입해오고 있는 소리인지 알지 못하면 아직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았어도 엄청난 공포를 맛보게 된다. 상황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만큼 안전에 위협이 될만한 다양한 나쁜 가능성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상상은 현실보다 더 자유분방하고 극단적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연쇄 살인마가 집안에 잠입한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등 가능성이 낮은 최악의 상황까지 인식하게 만든다. 그 결과 우리는 털이 쭈뼜 서는 3D체험을 하며 머리 속 호러물을 강제 시청하게 되고 상황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고통받게 된다. 


공포영화를 볼 때에도 막상 귀신이 튀어나고 난 이후보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이전의 상태가 더 심장쫄깃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또는 건강에 이상을 느끼고 나서 정말 큰 이상이 있으면 어떡하냐며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고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정확한 검사 결과를 알기 전까지의 불확실성을 견디는 괴로움 또한 결코 작지 않아서 결과가 나쁘다고 해도 빨리 아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한편 이렇게 우리가 불확실성을 잘 견디지 못하고 상황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끊임없이 괴로움을 겪는 데에는, 삶의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주인의 생존 확률을 높이려고 애쓰는 우리의 뇌에 큰 책임이 있다. 인간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해진 행동을 하는 여타 동물들과 달리, 앞날을 미리 예상하고 예상한 내용에 따라 미래를 대비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환경을 변화시키는 동물이다. ‘장래 희망’ 같이 장기적인 목표를 꿈꾸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애초에 미래가 어느 정도 내 손으로 통제할 수 있는 무엇이어야 성립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미래를 통제하려는 욕망이 큰만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서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큰 괴로움을 겪게 된다. 볼확실성은 인류에게 있어 존재론적 위협인 셈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고 있고 이게 언제 끝날지, 또는 언제 다시 터질지, 치료법은 나올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이 지쳐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서적으로 지칠 뿐 아니라 인지능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지속적으로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상황과 관련된 단서들을 수집한다. 따라서 지금처럼 단서가 적어서 예상이 한 두 가지로 좁혀지지 않는 경우에는 뇌에 과부하게 걸리게 된다. 


예를 들어 갑자기 큰 지출이 생겨서 당분간의 계획이 조금 틀어지는 것만으로도 지능지수가 잠시 떨어지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조금의 예측 미스에도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복잡한 계산에 들어가야하고 그 결과 과부하 걸린 컴퓨터마냥 뇌가 버벅거리게 되는 것이다. 잠깐 찾아온 불확실성에도 데미지가 심한데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 그만큼 마음 시스템은 극심한 피로와 번아웃을 겪게 될 수 밖에 없다. 


요즘 들어 유난히 의욕이 없고 쉬고 일어나도 밑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고 아무 것도 안 해도 피곤하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라면 그것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기에 보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렇게 번아웃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지표 중 하나가 의욕이 없고 미루는 행동이 증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과제와 일들이 많은 정신력과 에너지를 소모하며 따라서 멀쩡한 상태일 때에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제 때 끝내기 어렵다. 예컨대 멀쩡한 컴퓨터로 돌려도 워낙 무거워서 겨우겨우 돌아가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을 악성 코드가 잔뜩 깔려있고 브라우저가 동시에 20개 정도 열려있는 컴퓨터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요 중간에 마비되지 않고 돌아가기나 하면 다행이다. 지친 마음으로 뭔가를 해내려고 하는 상황이 이와 같다. 


과부하가 걸린 마음은 평소에 잘 꺼내 쓰던 자기통제력이나 의지력도 가동시키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논리적 사고력이나 판단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미 도가 넘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능에 이상이 온 상태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살기 위해서라도 일을 더 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부하에 과부하를 더하고 또 과부하를 끼얹으면 이번에는 정말로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번아웃 상태에서 가급적 일을 피하고 영원히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대로 작동하던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이기도 하다. 즉 귀찮음과 게으름, 미루기는 “너 너무 무리했으니까 살고 싶으면 좀 쉬렴”이라고 하는 소중한 생존 장치다. 

 

이미 하루하루 버티느라 고생중인 나의 마음에 너는 왜 이렇게 게으르냐고 채찍질하며 상처주지 말도록 하자. 반대로 내 마음이 그간 너무 부지런하게 일해서 잠시 쉬고 싶어하는 것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당분간은 최대한 게으르게, 최대 절전모드로 지내보자. 
 

※필자소개

박진영《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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