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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혼자라고 느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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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혼자라고 느낄 때

2020.08.01 12:00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돌아 오면 항상 안방 옷장부터 열어서 옷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별거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옷장이 텅텅 비어있으면 엄마나 아빠가 길게는 한두달에서 반년 씩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언제 없어질까 혼자 버림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상당히 심했던 것 같다. 


가족 누구도 찾아오지 않은 학예회에서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었던 경험을 하고 나서는 분리 불안이 더 심해졌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평소보다 집에 늦게 올 때면 혹시 어디 가버린 게 아닌지 덜컥 겁이 나서 베란다에 나가 아파트로 들어오는 차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지켜본지 여러 시간이 되면 지금으로부터 다섯번 째로 들어오는 차는 엄마 차이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부탁했다. 한 번은 너만 없었으면 이런 지옥같은 생활을 하지 않았어도 됐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확실히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부모님이 떠나지 않게 정말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사람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또 사랑 받는 것에 있어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소위 안정 애착이라고 하는)이 있는 반면, 어렸을 때의 나처럼 버림받거나 거부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관계에 있어 늘 걱정과 불안이 크고 지나치게 애쓰며 긴장하는, 그러다가 결국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거나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불안 애착)이 있다. 또는 아예 쉽게 마음을 주지 않고 친밀한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회피 애착)도 있다. 나의 경우 불안과 회피 애착을 동시에 보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언제서부턴가 인간관계에 있어 불안함이 많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함께 있어도 굳이 상대를 기쁘게 만드려고 애쓰며 거짓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되는, 혼자 있을 때의 내 모습과 가장 비슷한 나의 모습으로 편안하게 존재해도 얼마든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가치’가 있어야 상대방으로부터 그에 맞는 호감과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음 또한 깨닫게 되었다. 


사랑은 원래 과분한 것이어서 지금의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받는 사랑은 내가 뭘 하든 갚을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로 향한 도움의 손길과 사랑들은 항상 나의 그릇이나 가치보다 훨씬 컸고, 따라서 내가 받은 사랑들은 거의 다 조건 없는 사랑임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나를 향한 크고 작은 친절이나 도움, 격려—과자 한 봉지라도 좋은 게 생기면 항상 반씩 나눠주던 친구, 힘들었을 때 세 시간이나 불평 없이 나의 넋두리를 들어준 선생님, 꼬박꼬박 먼저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 항상 옆에서 무한한 사랑을 뿜어주는 배우자, 나를 신뢰하고 격려해주는 직장 동료 등—은 거의 항상 상대방이 나에게 줄 필요가 전혀 없는, 나에게 주지 않아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는 친절들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는 내 이야기일 뿐이지만 실제로 안정 애착인 사람들에게는 있지만 불안정 애착인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미컬린서(Mikulincer) 등의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일련의 사진을 보여준다. 첫째로 ① 몸이 아프거나 일이 잘 해결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 다음  힘들어하는 사람 옆에 누군가 다가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③ 힘들어하던 사람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에게 이 사진을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상해서 이야기를 지어보라고 했다. 여러분은 어떤 스토리가 떠오르는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스토리를 분석한 결과 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힘들어하던 사람이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 사람을 도와줄 사람이 나타났으며 그 결과 모두가 행복해졌다는 해피엔딩을 많이 떠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불안정 애착인 사람들이 떠올린 스토리에는 도움을 구했지만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스스로 해결했다든가 누군가 도와주러 나타났지만 그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든가, 아니면 아예 도움을 구하는 과정이 빠져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양상은 ‘꿈’에서도 나타나서 한 달 동안 매일 꾼 꿈을 기록해보라고 한 결과 안정애착인 사람들은 꿈 속에서 힘든 일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한 편이었지만 불안정 애착인 사람들은 도움을 받지 못했고 끝내 괴로워하다가 깬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나타난 안정 애착인 사람과 불안정 애착인 사람 사이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내가 겪었던 것 처럼) 과분한 친절과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있는지 여부다.정말 힘들어서 모든 걸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 멍하니 서있던 내 옆에 슬쩍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준 친구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작은 관심이지만 덕분에 일단은 계속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을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친절들을 받을 때에도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때론 아주 작은 따듯함만으로도 삶과 사람에 대해 희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차이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 주어진 따스함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인 타인들에게 나를 사랑할 의무 같은 것은 없으며 내가 그렇듯 다들 자기 살기에도 바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랑과 관심을 아주 많이 받는 것보다 사랑과 관심을 0만큼 받는 것이 어쩌면 더 당연한 일이다. 나를 향한 작은 관심과 도움은 결코 작지 않고 어쩌면 존재하는 것이 기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게 별다른 이유 없이 주어진 많은 따듯함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면 ‘나는 사람들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하기에는 찔릴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나는 분명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 모든 게 다 싫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감이 들 때일수록 눈을 크게 뜨고 내가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쳤을 따듯함들을 찾아보자. 어차피 모든 따듯함은 내가 갚을 수 없는 크나큰 선물이므로 되려 편한 마음으로 부담없이, 그치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변에 요청해 보는 것도 좋겠다. 작은 따스함도 속속들이 발견해서 추워지기 쉬운 우리의 삶이 조금이나마 따듯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관련자료

Shaver, P. R., Mikulincer, M., Sahdra, B. K., & Gross, J. T. (2016). Attachment security as a foundation for kindness towards self and others. In K. W. Brown & M. R. Leary (Eds.), The Oxford handbook of hypo-egoic phenomena (p. p223-242).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Mikulincer, M., Shaver, P. R., Sapir-Lavid, Y., & Avihou-Kanza, N. (2009). What’s inside the minds of securely and insecurely attached people? The secure-base script and its associations with attachment-style dimens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7, 615-633.

 

※필자소개

박진영《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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