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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용어는 먼나라 말](2)'한국판 뉴딜이 뭐야?' 뜻 안통하는 불친절한 정부 정책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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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용어는 먼나라 말](2)'한국판 뉴딜이 뭐야?' 뜻 안통하는 불친절한 정부 정책 용어

2020.08.21 18:00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와 함께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 우리 생활에 쏟아져 들어왔다. 유례가 없는 대규모 감염병 사태를 설명할 새로운 개념이 대거 사용되면서 익숙치 않은 용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에게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용어 사용에서 한번 쯤 고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 난해한 과학과 의학 용어가 순화되지 않고 사용하는 사례는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정부의 주요 과학기술 정책과 산업 정책, 보건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뜻을 알 것 같기도하고 모를 것 같은 용어들이 제목과 주요 내용을 장식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달 14일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 대책으로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만 해도 다양한 국적 불명 용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사업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안전망 강화’ 3대 정책을 기본으로, 데이터 댐과 그린 스마트 스쿨, 스마트 그린 산단, 그린 리모델링,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구축 등 10대 대표과제가 있다. 정부는 이들 과제에 2025년까지 160조 원을 쏟아붓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막대한 예산 투자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들은 정부가 쏟아낸 정책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동아사이언스는 지난달 29일 설문조사업체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판 뉴딜 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사용하는 10개 용어 중 정확히 뜻을 이해하고 있는지 조사했다. 

 

조사 결과 '그린 에너지(태양열·풍력·바이오매스·조력 등 대체에너지)'라는 용어를 빼고 나머지 9개 용어의 뜻을 이해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0% 미만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인 10명 중 7명이 한국판 뉴딜 관련 용어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린 에너지의 경우도 뜻을 이해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51.7%로 절반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23.9%는 10개 용어 중 1개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20대부터 50대까지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남성과 여성 각각 500명, 또 20대부터 세대별로 250명씩 설문에 응했다. 직업별로는 직장인이 621명, 무직 및 기타가 155명, 전업주부가 126명, 대학생 및 대학원생이 98명이다.

 

○ 국민 5명 중 1명 "한국판 뉴딜 관련 용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해"

 

설문조사 참가자들은 한국판 뉴딜 관련 용어들을 낯설게 느끼고 있었다. 대부분의 용어에 대해 듣거나 본 적이 있다고 답반 비율이 40% 아래에 머물렀다. 동아사이언스DB
설문조사 참여자들은 한국판 뉴딜 관련 용어들을 낯설게 느끼고 있었다. 대부분의 용어에 대해 듣거나 본 적이 있다고 답반 비율이 40% 아래에 머물렀다. 동아사이언스

이번 설문 조사로 활용된 한국판 뉴딜 관련 용어는 전문가 자문을 거쳐 언론에 배포된 3대 정책 아래 10개 대표 과제에서 추출했다. 데이터 댐(공공이나 민간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해 유용하게 쓰일 정보로 재구성한 집합), 지능형 스마트 그리드(기존 전력망에 정보기술을 더해 효율을 높이는 기술), 스마트 팩토리(제품 생산 과정이 정보기술과 연결돼 자동화된 공장) 등을 비롯해 그린 에너지, 디지털 트윈(현실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을 가상세계에 그대로 구현한 것), 미래 모빌리티,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클러스터, 디지털 뉴딜, DNA(디지털∙네트워크∙인공지능) 등이다. 

 

설문 조사에 참여자들은 한국판 뉴딜과 관련한 용어 대부분을 낯설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10개 용어 중 보거나 들어본 용어를 선택해달라는 물음에 그린에너지란 용어를 들어봤다는 응답만 58%로 절반을 넘겼을 뿐 나머지는 40%를 넘지 못했다. 디지털 트윈은 6.8%, 데이터댐은 14.8%만 뉴스에서 봤거나 들어봤다고 응답했다. 단 하나도 보거나 들어보지 못했다는 응답도 22.6%로 나타났다.

 

국어문화원연합회와 동아사이언스가 추진하는 '쉬운 의과학용어 찾아쓰기'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한국형 뉴딜을 발표한 대통령 담화를 보면 '퍼스트 무버'나 '패스트 팔로어' 같은 용어는 추격형, 선도형으로 바꾸는 등 예전보다 신경 쓴 부분이 많이 보였다"면서도 "세부 10대 과제는 전부 영어로 돼있어 아쉬운 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판 뉴딜 정책을 담은 보도에서 관련 용어를 보거나 들었다고 응답한 경우에도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보거나 들어본 뉴딜 관련 용어 중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비율은 평균 54.2%로 나타났다. 절반 가량은 용어를 들어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셈이다. 그린 에너지가 69%, 데이터댐이 58.1%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뉴노멀은 45.9%, 디지털 뉴딜은 43.9%에 머물러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판 뉴딜 관련 용어를 알기 쉬운 용어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응답은 압도적이었다. 동아사이언스DB
한국판 뉴딜 관련 용어를 알기 쉬운 용어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응답은 압도적으로 많았다. 동아사이언스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경우에도 용어 이해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판 뉴딜 관련 용어들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고 응답한 참여자에게 난이도를 물어본 결과 44.5%가 조금 어렵다고 답했다. 매우 어렵다고 답한 응답도 11.2%에 이른다. 의미를 이해하고 있어도 절반이 넘는 55.7%가 용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답한 것이다. 용어를 이해하기 쉽다는 답변은 조금 쉽다가 9.2%, 매우 쉽다가 2.5%로 모두 11.7%에 불과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한국판 뉴딜 관련 용어를 좀더 알기 쉬운 용어로 바꿔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관련 용어를 기사나 뉴스에 쓸 때 더 쉬운 말로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그렇다는 응답은 46.1%, 매우 그렇다는 응답은 39.3%로 나타났다. 쉬운 말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이가 85.4%에 이른다.

 

○ 어려운 말만 늘어나며 대중과 멀어지는 과학기술

 

보거나 들어본 기초과학 용어를 선택해 달라는 질문에 알고리즘과 모바일 헬스케어, 웨어러블 등을 제외하고는 30% 이하에 머물렀다. 동아사이언스DB
 IBS가 발표한 최근 두 달치 보도자료에 사용된 용어 10개 가운데 한번쯤 보거나 들어본 기초과학 용어를 선택해 달라는 질문에 알고리즘과 모바일 헬스케어, 웨어러블 등을 제외하고는 30% 이하에 머물렀다. 동아사이언스

과학기술 분야 역시 최근 들어 점점 더 그 의미가 강조되고 있지만 우리말과 우리글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영역이다. 특히 인류의 새로운 지식 지평을 넓히는 기초과학 분야는 사실상 우리말 순화의 사각 지대로 불리고 있다. 과학자들과 우리말 전문가들은 새로운 지식과 개념을 설명할 용어가 없다면 대중의 관심과 이해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연구와 투자에 대한 공감대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결국 넓게 봤을 때 한국 기초과학의 약화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는 기초과학 분야 용어에 대한 대중 인식과 이해도를 묻는 조사도 함께 진행됐다. 국내 대표 기초과학 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최근 두 달간 발표한 보도자료 17건에 사용된 용어들이 활용됐다.  IBS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를 목표로 매년 수천억 원의 예산을 받는다. 올해 IBS 예산은 5268억 원이다. IBS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사용된 용어들은 대부분 언론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다. 

 

용어 10개는 외래어나 외국어 중심으로 선정됐으며 자문위원들 사이에서 당장 대체가 힘들다고 평가되거나 보도자료에 내에 관련 설명이 있는 경우 제외했다.  용어들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없거나 외래어나 외국어로 갈음한 용어 10가지를 자문위원들의 조언 하에 선정했다. 스핀 자유도와 밴드갭, 돌연변이 시그니처, 게놈 시퀀싱, 전기 수력학 프린팅 기법, 실핀 모양의 '헤어핀' 구조물, 모바일 헬스케어, 트랜지스터 구조, 웨어러블 기기 플랫폼, 알고리즘이 설문조사에 사용될 용어로 꼽혔다.
 

보도자료에 사용된 과학 용어 가운데 보거나 들어본 용어를 선택해 달라는 질문에 알고리즘과 모바일 헬스케어, 웨어러블 등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7개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은 30% 이하에 머물렀다. 이 가운데 특히 스핀 자유도는 5.8%, 밴드갭은 7% 등  용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10%가 안되는 용어도 많았다. 10개 용어를 모두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한 비율도 8.8%로 나타났다. 반면 IT분야 기술에 해당하고 상대적으로 포털 뉴스 노출 비율이 높은 용어인 알고리즘은 82.4%, 모바일 헬스케어는 62.2%로 높게 나타났다. 

 

10개 용어에 대한 이해도를 평가한 결과에서도 5개 용어는 이해하고 있다는 비율이 채 10%도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 5개 용어도 1개 용어를 제외하고 이해도가 50% 미만으로 나타났다. 들어는 봤어도 의미를 정확히 아는 용어가 하나도 없다고 답한 비율은 17.8%로 나타났다.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용어는 어렵다고 봤다. 이해한 용어에 대해 얼마나 어려운 용어냐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매우 어렵다고 답한 사람은 11.1%, 조금 어렵다고 답한 사람은 36.4%였다. 보통이라고 답한 사람은 42.4%였다. 코로나19 용어나 한국판 뉴딜 용어에 비해 어렵다고 생각한 인식이 적었다. 하지만 들어봤지만 의미는 모른다고 답한 이들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83%로 나타났다.

 

일반인들은 한국판 뉴딜처럼 과학기술 용어도 좀더 쉽게 풀어쓰거나 쉬운 말로 대체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과학 관련 용어들이 좀 더 쉬운 말로 대체돼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 동의하는 의견이 85.1%로 나타났다. 기사나 뉴스에서 용어를 좀 더 쉬운 말로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44.3%가 매우 그렇다, 40.8%가 그렇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 의견은 4.9%에 머물렀다. 용어를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대체해야 한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은 매우 높았다.

 

과학기술 용어를 좀더 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코로나19 용어 대체를 원하는 답변(62.6%)보다도 높고 한국형 뉴딜 용어를 대체했으면 좋겠다는 응답인 85.4%과 비슷한 수준이다.

 

 

기초과학 관련 용어가 좀 더 이해가 쉬운 말로 대체돼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85.1%가 그렇다고 답했다. 동아사이언스DB
기초과학 관련 용어가 좀 더 쉬운 말로 대체돼야 하는지 물어본 결과 85.1%가 그렇다고 답했다. 동아사이언스

○ "관료들 한번 쯤 생각하고 용어 발표해야" "과학용어 대체 쉽지 않아 어려움 어느 정도 수용해야"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한글학회 회장)는 "예전에는 전문용어로 갇혀 있던 용어가 최근 들어 일반인들이 쓰는 세계로 나오고 있다"며 "정책가들이 이런 용어가 나올 때 자신들이 쓰는 말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번만이라도 생각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언어 사용 습관은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대표는 "일부 공무원들은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쓰니까 정부 부처가 어쩔 수 없이 쓴다는 핑계를 대지만 사실 상당수 용어가 산업계에서 쓰는 말을 그대로 받아 쓰거나 공무원들이 유학을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쓰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써야 정책의 지지도 또한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대표는 "앞으로 우리 사회와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제시하려면 좀더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해주는 것이 힘을 모으는 데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일부 학자들은 과학 용어가 특성상 이해도가 높은 용어로 변환이 힘들다고 주장한다. 대체불가하거나 변환 작업이 힘든 용어들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6~7월 IBS 보도자료에 등장한 '인테그린', '텔로미어', 'X-선자유전자레이저'와 같은 용어들이 등장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용어들을 제대로 설명할 만한 대체용어를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마냥 쉬운 용어로 표현할 수만 없다는 점을 어느 정도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과학적 개념을 표현할 용어를 누구나 듣자마자 쉽게 알 수 있게 만드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과학기술의 개념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그걸 쉽게 만든다는게 실현가능한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체가 가능해보이는 용어들을 순화해 기초과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학계 내부에서도 용어를 다듬는 데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권 명예교수는 "기초과학 용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이를 먼저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학회 내에서 용어를 어떻게 다루고 통합할지를 논의하면서 다른 분야에서도 용어를 받아들일 때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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