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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예배당에 모신 슈퍼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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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05일 18:00 프린트하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면 슈퍼컴퓨터를 모시는 예배당이 있다. 카탈루냐 공대에 딸린, ‘토레 기로나(Torre Girona)’라는 작은 예배당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이 지방을 다스리던 ‘기로나 가문의 탑’이라고 할까. 19세기에 세워져 스페인 내전 때 파괴됐다가 복구되어 예배나 교육 같은 성스러운 용도로 사용하던 공간이다.

 

[광화문에서] 예배당에 모신 슈퍼컴퓨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호화로운 슈퍼컴퓨터센터로 꼽히는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터센터(BSC). 슈퍼컴퓨터가 예배당의 분위기와 어울려 장엄한 광경을 연출한다.-허두영 편집인 제공

예배당이 슈퍼컴퓨터를 ‘모시게’ 된 건 2005년부터다. 정부의 대형 연구과제를 수행하던 카탈루냐 공대는 슈퍼컴퓨터센터를 설립하자는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예배당을 비우고 당시 가장 앞선 첨단기술의 산물을 ‘우상’처럼 ‘섬기기’ 시작했다. 슈퍼컴퓨터센터를 짓고 운영하는 비용의 측면에서 가장 경제적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판단에서 비롯되어 예배당은 결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호화로운 슈퍼컴퓨터를 ‘모시게’ 됐다.


이 물신(物神)의 이름은 ‘마레노스트룸(MareNostrum)’. ‘우리의 바다(Our Sea)’라는 뜻으로, 지중해를 가리키는 라틴어다. 유럽의 주요 강들이 흘러드는 지중해처럼 ‘모든 데이터가 모이는 바다’라는 의미이며,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의 과학자들이 공동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고안한 명칭이기도 하다.


슈퍼컴퓨터는 우주의 탄생을 쫓거나 생명의 기원을 밝히는 ‘거룩한’ 연구에 몰입하다가, 최근 산업이나 대중을 위한 ‘세속적인’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슈퍼컴퓨터를 통해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운영에 드는 예산을 민간에서 조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 ‘세속적인’ 연구에 가장 먼저 눈길을 돌린 것이 역설적이게도 ‘예배당의 슈퍼컴퓨터’다.

 

◆ ‘대중을 위한 슈퍼컴퓨터(Supercomputer for All)’를 표방한 PRACE의 홍보물 - PRACE 제공
‘대중을 위한 슈퍼컴퓨터(Supercomputer for All)’를 표방한 PRACE의 홍보물 - PRACE 제공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PRACE(Partnership for Advanced Computing in Europe)는 슈퍼컴퓨터를 통해 EU 25개 회원국의 공동연구를 총괄하는 기관이다. 사무국의 스테판 르크나 이사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해서 항공기 풍동실험 비용을 20% 절감하고(AIRBUS), 원유 시추 비용을 8천만 달러 줄였으며(ENI), 헬리콥터 엔진설계 기간을 6개월 단축한(CERFACS) 사례를 설명했다. 또 전염병 확산모델을 연구하고 공공정책의 영향을 조사하는 국가 차원의 과제도 소개했다. 그는 슈퍼컴퓨터는 일부 과학자가 연구소에 숨겨놓은 신줏단지가 아니라, 마레노스트룸처럼 대중이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대중을 위한 슈퍼컴퓨터(Supercomputer for All)’다.


독일 헬름홀츠 재단의 율리히 슈퍼컴퓨터센터도 PRACE에 소속되어 있다. 센터의 노르베르트 아티그 팀장은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의 규모가 국가의 R&D 경쟁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센터는 아헨 공대 같은 주변 대학과 연계하여 슈퍼컴퓨터 인력을 양성하는 학위 과정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직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라고나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슈퍼컴퓨터를 통해 기초과학은 물론 산업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박영서 원장이 직접 중소기업을 방문하며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기술지원을 독려하고 있다. 또 2011년 ‘국가 고성능컴퓨터 활용과 육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슈퍼컴퓨터의 대중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에게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는 아직 ‘날씨도 제대로 못 맞히는 값비싼 애물단지’처럼 보일 뿐이다. 슈퍼컴퓨터가 눈에 띄지 않고 연구소에 꼭꼭 숨어 있기 때문에 이런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세속적인’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기초과학 분야의 ‘거룩한’ 연구에서 시작했지만, 슈퍼컴퓨터도 이제 국가의 경제를 이끌고 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속세’의 소명(召命)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첨단 과학을 ‘신봉하는’ 많은 성직자(과학자)들이 슈퍼컴퓨터센터를 성지처럼 방문하고 슈퍼컴퓨터가 제시하는 해법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중도 과학자의 ‘성지순례’를 지켜보며 과학의 신비와 기술의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슈퍼컴퓨터를 들여와 과학의 복음을 전파하는 ‘토레 기로나’ 예배당의 혜안에 찬사를 보낸다.


브뤼셀∙율리히=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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