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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8개월...적신호 켜진 '신뢰사회', 쌓인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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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8개월...적신호 켜진 '신뢰사회', 쌓인 '피로'

2020.09.09 19:00
서울대 보건대 조사 결과..."지나친 위축 탈피해 유연한 방역 전환을"
서울시와 용산구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수칙 합동 점검에 나선 가운데 8월 26일 오후 서울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이 떨어져 앉아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서울시와 용산구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수칙 합동 점검에 나선 가운데 8월 26일 오후 서울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이 떨어져 앉아 있다. 연합뉴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코로나19)이 전세계적인 유행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국민의 삶의 만족도와 가치, 정신건강 등을 종합적으로 진단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5월까지만 해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지만, 재확산이 일어난 8월에는 대다수가 “위기”는 인식으로 급격히 전환된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크게 줄었고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에 대한 신뢰도도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태 초기 및 8월 초만 해도 사람들은 불안이나 슬픔을 주로 느꼈지만, 서울 광화문 집회 등으로 재확산이 일어난 8월 말에는 분노와 공포를 느낀다는 응답이 크게 증가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기획 연구단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 연구의 1차 조사 분석 결과를 9일 공개했다. 연구팀은 성별과 연령을 고려한 전국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총 세 차례 동일한 문항을 조사해,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한국인의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정신적 건강을 추적하기 위해 이뤄졌다. 이번 결과는 8월 25~28일 4일간 이뤄진 설문조사의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연구에는 노인보건 분야 김홍수 교수와 위기관리 분야 전문가 유명순 교수, 보건경제 분야 전문가 이태진 교수, 역학 전문가 조성일 교수가 참여했다.


●”모르는 사람 못 믿겠다” 79%...무너진 사회 안전과 신뢰도


먼저 사회의 안전과 자신의 안전에 가장 큰 위협이 무엇이냐는 질문 두 가지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1순위를 차지했다. 암(2위)와 음주운전(3위), 고령화 및 치매 등보다 위협으로 느낀다는 뜻이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위협을 받는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사회안전’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고, 뒤이어 ‘경제성장’과 ‘건강과 웰빙’이 꼽혔다. 자신의 건강보다는 사회와 경제의 건실함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어 ‘상호신뢰’(4위), ‘정부신뢰’(5위)를 꼽는 사람도 많아,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적 신뢰성이 약화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코로나19가 한국 사회의 신뢰성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다른 설문 응답에서도 드러났다.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다음 사람들을 얼마나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다름아닌 ‘내가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이었다. 응답자의 무려 79%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아래 그래프).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중이 두 번째로 높은 대상은 언론(66.5%)으로, 이번 팬데믹 사태로 가장 신뢰를 많이 잃은 집단은 언론으로 나타났다. 신뢰하지 않는 세 번째 대상은 지자체였지만, 37%만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해 1,2위와 격차가 컸다.


반면 코로나19 방역기관(10.2%)과 치료기관(10.4%), 방역당국(11.9%)에 대한 불신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각 기관이나 주체의 위기 대응을 평가한 다른 항목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전보다 잘한다’는 응답 비율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기관은 치료 및 방역기관(56.2%)과 방역당국, 지자체였고,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기관은 언론(15.7%)이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각 주체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조사한 결과다. 놀랍게도 모르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크게 낮아졌다. 언론이 두 번째로 낮은 신뢰도를 기록했다. 아래는 각 주체가 이전과 비교해 얼마나 잘 대응하는지를 물은 설문 조사 결과다. 신뢰도와 거의 비슷한 순위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 제공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각 주체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조사한 결과다. 놀랍게도 모르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크게 낮아졌다. 언론이 두 번째로 낮은 신뢰도를 기록했다. 아래는 각 주체가 이전과 비교해 얼마나 잘 대응하는지를 물은 설문 조사 결과다. 신뢰도와 거의 비슷한 순위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 제공

●증폭된 위기감과 불확실성, 공포 


코로나19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위기감과 불확실성, 공포감은 커지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낙관성은 점차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의 일원인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별도로 수행 중인 ‘코로나19 국민인식조사’의 5월 위기 인식 설문 조사 결과 답안과 이번 조사의 응답 결과를 비교, 분석한 결과 5월만 해도 “코로나19 사태가 한국사회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60% 정도로 높았지만, 8월 말이 되면 순위가 크게 역전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응답은 16.3%로 줄고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응답이 84%로 높아졌다(아래 그래프).

 

이는 사태의 불확실성이 커져서로 보인다. “사태 전개가 활실하다”는 응답이 5월에는 52%였지만, 8월에는 10분의 1인 5%로 줄고, 대신 “불확실하다”는 응답이 80%로 높아졌다. 같은 8월 내에서도 8월 초에는 “사태를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이 35%로 낮았는데, 8월 말에는 55.9%로 높아졌다. 내가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는 5월 이후 8월 초까지 한 번도 10%를 넘지 않았지만, 8월 말 갑자기 28%로 급증해 이 같은 불안감을 대변했다.

 

코로나19가 한국에 위기인지 또는 기회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최근 ′위기′라고 답한 비율이 월등히 높아졌다. 서울대 제공
코로나19가 한국에 위기인지 또는 기회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최근 '위기'라고 답한 비율이 월등히 높아졌다. 서울대 제공

●”코로나 이전과 같은 임금 받는다” 42% 불과 …여성, 젊은층, 자영엽자 생활 특히 위축


이 같은 불안은 부정적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5월과 8월의 부정적 감정은 정체가 달랐다. 8월 초만 해도 불안(62%)이 월등히 지배적인 감정이었다. 분노(11.5%)나 슬픔(6.5%)이 뒤를 이었지만 크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8월 말에는 불안이 48%로 낮아지고 분노(25.3%)와 공포(15.2)가 2배 이상 높아졌다. 충격도 1.5배 이상 높아졌다. 반면 슬픔은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일상은 크게 위축되고 있으며 주로 여성과 20~30대 젊은층, 그리고 학생과 자영업자, 주부, 프리랜서에게 특히 가혹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조사 대상의 41.8%만이 이전과 동일한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4%는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었고 20.7%는 임금이 줄었다고 답했다. 나머지(25%)는 ‘해당없음’으로 학생 등이 포함된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40~50대가 50%로 다수를 차지했고, 성별로는 여성이 51.6%로 미세하게 높았다. 소득 변화도 비슷해서 이전과 비슷하다는 응답은 47.4%에 불과했고, 약간 줄었다가 31.6%, 매우 줄었다가 18.2%로 나타났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는 여러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이나 생활에서 자유가 제한됐다는 응답에 55%, 신체활동이 감소했다는 응답이 51%로 가장 높은 가운데, 정서적 고갈감(39%),  우울감(38%) 등도 높은 비율로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는 상반기 내내 10% 미만만이 응답했다. 하지만 8월 말 갑자기 비율이 27.9%까지 치솟았다. 높아진 불안감을 대변한다. 서울대 제공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는 상반기 내내 10% 미만만이 응답했다. 하지만 8월 말 갑자기 비율이 27.9%까지 치솟았다. 높아진 불안감을 대변한다. 서울대 제공

스트레스 측정에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고 쌓이는 느낌이다” “정신적으로 지친다” “화가난다” “의욕이 떨어진다” “긴장을 풀기 어렵다” 등 주로 오랫동안 이어진 팬데믹과 방역조치에 대한 피로감을 반영한 답이 많았다(아래 그래프). 서울대는 “유 교수가 경기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과 실시한 별도 조사 결과에서는 ‘타인에게 비난 받거나 심판 받는 느낌을 받는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20~30대, 여성, 저소득층에서 특히 많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인권보다 방역 우선…’혐오 발언’도 도처에


국민들은 방역과 인권 중에서는 방역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방역과 인권 보호가 대립할 경우 인권 보호를 후순위로 미뤄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1월부터 8월까지 일관되게 ‘그렇다(방역이 우선이다)’라는 응답이 74~78%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무리한 방역대책이 결과적으로 사회 불안을 증폭시킨다’는 문항에 대해서는 ‘아니다’라는 응답이 56%로 더 높았다.

 

코로나19 관련한 혐오 발언을 들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39%가 ‘그렇다’고 답했다. 혐오 발언의 대상은 신천지와 기독교, 자가격리 수칙 위반자, 사회적 거리두기 미실천자, 정치인, 기타 종교, 정부 및 대통령, 중국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이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응답한 코로나19 관련 경험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관련성이 높다. 자유의 제한과 정서적 고갈, 지침 등이 높게 나타났다. 서울대 제공
응답자들이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응답한 코로나19 관련 경험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관련성이 높다. 자유의 제한과 정서적 고갈, 지침 등이 높게 나타났다. 서울대 제공

연구팀의 유명순 교수는 “코로나 사태가 7개월을 훌쩍 넘기며 이전이라면 당연했을 관계의 형성이 가로막히거나, 관계로부터 분리가 되면서 정서적으로 지치고 우울한 경험 역시 계속되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면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가 있는 만큼 실질적인 심리방역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코로나 시대에 과도한 낙관은 방심과 무책임을 낳지만, 반대로 지나친 위축과 긴장 역시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새로운 목표 실현의 기회, 참여를 높일 방안, 단절과 괴리 대신 연대를 경험할 수 있는 코로나와의 공존 전략을 개발하는 등 유연한 시민사회 방역을 위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기영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은 "조사를 지속해 건강과 환경 연구를 통해 위기 극복을 위한 학술적 근거를 확보하고 사회적으로 소통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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