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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으로]'푸틴 정적' 독살 시도에 사용된 건 노비초크, 어떻게 알아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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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으로]'푸틴 정적' 독살 시도에 사용된 건 노비초크, 어떻게 알아냈을까

2020.09.09 21:29
혈액에서 노비초크 결합 효소 확인
최근 신경작용제에 의한 독살 시도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러시아 야권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AFP/연합뉴스 제공

 

냉전시대, 소련, 화학무기, 독살. 


스파이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소재가 현실로 나타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불리는 야권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최근 ‘독살 미스터리’다. 

 

그는 8월 20일 러시아 국내선 항공기에서 음료를 마신 뒤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이틀 뒤 독일 시민단체의 지원으로 베를린으로 옮겨져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9월 2일 독일 정부는 혼수상태에 빠진 나발니에게 냉전시대 소련이 사용했던 화학무기인 노비초크(Novichok)가 쓰였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며 독살 시도에 사용된 화학무기를 특정했다. 독일은 그 화학무기가 노비초크라는 사실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 2년 만에 다시 등장한 노비초크

 

노비초크가 세간에 거론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인 2018년에는 영국 정부가 노비초크를 언급했다. 

 

영국에 기밀을 넘긴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하다 풀려난 세르게이 스크리팔 전 러시아 대령과 그의 딸이 영국 남부의 소도시 솔즈베리에서 신경작용제 공격을 받고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 일이 있었다. 

 

당시 메이 총리는 의회에 출석해 신경작용제가 노비초크로 밝혀졌다고 공개했다. 노비초크와 같은 화학무기를 이용한 독살 시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유럽에서는 처음 저질러진 일이었고, 그만큼 국제사회의 충격은 컸다.  

 

러시아어로 새로운 인물 또는 신참자(newcomer)를 뜻하는 노비초크는 1970, 80년대 러시아에서 군사용으로 개발된 신경작용제다. 노비초크를 개발한 사람은 러시아 화학자인 빌 미르자야노프다.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지금은 없어진 옛 소련의 유기화학기술연구소(GosNIIOKhT)에서 화학자로 일했고, 이후 화학무기를 생산하는 군 실험실 책임자에까지 올랐다. 


노비초크의 존재는 개발자인 미르자야노프에 의해 1990년대 러시아 언론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2008년 ‘정부 기밀(State Secrets: An Insider’s Chronicle of the Russian Chemical Weapons Program)’이라는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여기에 노비초크의 화학 구조를 처음 공개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노비초크는 일명 ‘독일 가스(German gas)’로 불리는 G계열 타분(GA), 사린(GB), 소만(GD) 등의 신경작용제와 비슷하다. 살충제와 비슷한 성분을 가진 신경작용제는 인체의 중추·자율신경계통을 교란해 짧은 시간 내 사망에 이르게 한다.

 

미르자야노프는 9월 3일 BBC와 인터뷰에서 “노비초크를 개발하는 극비 프로젝트의 코드네임은 ‘폴리안트(Foliant)’였다”며 “노비초크는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인(very stable) 화합물”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노비초크의 화학적 특성은 고체나 액체 상태로 존재하며, 이제껏 인류가 제조한 물질 중에서 가장 맹독성이 강하다는 정도다. 안드레아 셀라 런던칼리지대 유기화학 교수는 “노비초크는 증발하지 않으며, 물에도 분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원화 화학무기(Binary Chemical Weapons)로 개발돼 독성이 거의 없는 두 성분을 목표물에 도달하기 직전에 합성해 맹독성인 노비초크로 바꿀 수 있어 감시망을 피하기 용이하다. 

 

노비초크의 여러 화합물 중 하나인 ′노비초크 A234′의 화학 구조. 키피디아 제공
노비초크의 여러 화합물 중 하나인 '노비초크 A234'의 화학 구조. 위키피디아 제공

○ 신경전달물질 분해해 사망하게 만드는 원리

 

미르자야노프에 따르면 노비초크는 체내에 4개월가량 잔류한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8일 나발니의 독살 시도에 사용된 화학무기를 노비초크로 특정하는 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 가지 방법을 공개했다. 


노비초크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인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AChE)에 결합한다. 뉴런(신경세포)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는 아세틸콜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며 정보를 주고받는데, 노비초크가 AChE에 결합해 아세틸콜린을 분해해버리면 신경세포와 근육 사이의 소통이 차단되고 결과적으로 호흡이 마비된다. 

 

팔머 테일러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교수는 “적혈구 막에는 AChE가 붙어 있는 만큼 질량분석법을 이용해 (나발니의) 혈액에서 노비초크와 AChE의 접합체를 찾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혈액에 가장 풍부한 단백질인 혈청 알부민으로 노비초크를 확인할 수도 있다. 스테파노 코스탄지 아메리카대 교수는 “노비초크가 혈청 알부민과도 결합하는 만큼 혈청 알부민이 노비초크를 확인하는 유용한 마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부틸콜린에스테라제(BChE)라는 효소로도 노비초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옥사나 로크리지 네브라스카대 메디컬센터 교수는 “BChE를 이용한 방법은 100% 확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노비초크와 같은 화학무기는 국제기구인 유엔의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이번 나발니 사안 역시 OPCW에 회부해 국제 조사에 나설 뜻을 밝혔다. 


나발니는 혼수상태에 빠진 지 18일 만인 이달 7일 의식을 회복해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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