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인간 행동의 진화] 진정한 사랑?...마음 속에서 스스로 생겨나는 것

통합검색

[인간 행동의 진화] 진정한 사랑?...마음 속에서 스스로 생겨나는 것

2020.09.27 06:01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랑처럼 다양한 쓰임이 있는 개념도 없다. 애국심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애향심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애교심은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시시한(?) 사랑 말고 좀 더 직접적인 ‘좁은 의미의’ 사랑을 이야기해보자. 바로 연애(戀愛)다. 그리울 연, 사랑 애.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그 혹은 그녀’가 일단 있어야 한다. ‘언젠가 만날 그이’에 대한 사랑도 있지 않느냐고? 시인이 되려는 독자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사랑은 없다. 사랑은 그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그이’에 대한 야속함은 ‘그이’의 문제다. ‘사랑을 나누는 그이’에 대한 기쁨도 역시 ‘그이’의 문제라는 것이다. ‘너’ 때문에 사랑을 했으니, 일이 잘 되어가는 것도 ‘너’ 때문이요, 일이 안 되어가도 ‘너’ 때문이다. ‘왜 가만히 잘 살던 내 앞에 나타나서 나를 웃게 하고 또 울게 하느냐’는 하소연은 다 ‘대상’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아무리 대상이 있어도 무조건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은 아니다. 대상이 사랑의 원인이라면 왜 어떤 때는 사랑에 빠지고 어떤 때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가. 곰곰이 헤아려보면 내 마음 속에 사랑이 있는 것 같다. 사랑할 준비가 된 내 앞에 마침 ‘그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사랑 때문에 웃고 우는 나’의 문제는 다 내 문제라는 것이다.


인류가 술을 발명한 이후 수많은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며 고민하고 토론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 사랑은 과연 너 때문인가? 나 때문인가?

 

반사적 행동 혹은 자발적 행동

 

동물이란 일반적으로 운동 능력과 감각 능력을 갖춘 생물을 말한다. 물론 이런 정의를 사정없이 깨버리는 ‘움직이는 식물’이나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동물’도 있지만, 대강 말하면 그렇다. 동물은 외부 자극에 따라 비교적 빠르게 움직이는 생물이다. 


자극에 대한 움직임을 흔히 ‘반사’라고 한다. 반사는 같은 자극에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행동 양상을 말하는데 주로 수동적 반응을 일컫는다. 동물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반사를 억제하기 어렵다. 코에 깃털이 들어가면 재채기를 하고, 큰 소리가 들리면 귀가 쫑긋거린다. 아마 원시적인 동물은 이러한 반사 행동만 있었을 것이다. 같은 종에 속하는 동물은 같은 자극에 같은 반사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원시 시대의 싱크로나이즈드 군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런 반사 행동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행동인지도 모른다. 요샛말로 ‘진정성’ 있는 행동이다. 속일 수도, 꾸밀 수도 없는 행동이니 그 자체로 진실이다. ‘그이를 처음 볼 때, 콩콩 뛴 내 가슴’이야말로 스스로 숨길 수 없는 반사적 행동이요, 진실한 반응이다.


그런데 모든 행동이 이런 반사 반응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콘래드 로렌츠는 ‘행동이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경험적으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당연한 이야기다. 종종 과학자는 누구나 알고 있는 자연 현상을 새삼스레 다시 밝혀내는 실로 ‘뻔뻔한’ 일을 벌인다. 심지어 정부에서 연구비까지 타서 쓴다. 


외부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행동을 우리는 흔히 ‘자발적’ 행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자발적 행동이야말로 솔직한 행동인 것은 아닐까. 자극이야 꾸밀 수도 있고, 만들 수도 있다. 2차원 모니터에서 보는 미남미녀의 영상에도 ‘반사적’으로 동공이 커지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위적인 자극’이 없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겨나는 자발적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정수는 아닐까.


헷갈린다. 진정한 사랑은 너에게 있는가. 나에게 있는가.

 

노래하는 귀뚜라미

 

귀뚜라미는 짝을 유혹하는 노래를 부른다. 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는 주로 여름과 가을에 들리는데, 8월부터 10월이 전성기다. 초가을 저녁,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 왠지 마음이 아늑해진다. 낭만적인 정취가 떠오른다. 유튜브를 검색하면 귀뚜라미 소리를 녹음한 10시간짜리 영상이 있다. 집중도 잘 되고, 잠도 잘 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애완용으로 귀뚜라미를 키우는 사람도 있다. 집에서 편하게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려는 것인데, 그냥 동네 야산에만 가도 쉽게 들을 수 있으니 그러지 말자. 아니면 유튜브를 켜던지. 


귀뚜라미의 노래는 연가다. 수컷 귀뚜라미가 암컷을 유혹하려고 부르는 것인데 목청에서 내는 소리는 아니다. 날개를 서로 문질러서 내는 소리다. 1초에 무려 30번을 문지른다. 열창이다. 


그런데 이런 소리를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원시적인 곤충에 불과하니, 암컷을 보면 반사적으로 소리를 내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암컷이 없어도 소리를 낸다. 연구에 의하면 귀뚜라미 소리를 관장하는 기관은 무려 ‘뇌’다. 좀 어이없다. 다시 말하지만, 과학자는 이미 우리 할머니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새삼스레 증명하길 좋아한다. 아무튼, 과학적 연구에 의하면 귀뚜라미 소리는 귀뚜라미의 ‘뇌’가 명령한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너

 

‘너에게 전화를 하려다 수화기를 놓았네. 잠시 잊고 있었나 봐. 이미 그곳에는 넌 있지 않은걸.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1991년 신해철의 히트곡 ‘내 마음 깊은 곳에 너’의 가사다. 가수는 알고 있었다. 사랑은 내 마음에 있다는 진실을. 


우리는 흔히 대상을 보고 반사적 감정을 느낀다. 한눈에 반해버린 그녀, 운명처럼 나타난 백마 탄 그. 그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암컷 귀뚜라미를 그리며 밤새워 노래하는 수컷 귀뚜라미를 보자. 귀뚜라미의 사랑은 바로 뇌 안에 있다. 수억 년의 진화사를 통해 빚어진 뇌. 그 뇌가 만들어낸, ‘내 마음 깊은 곳에 너’다. 


그이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면서 실연당한 수많은 청춘남녀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탄한다. 슬픈 심정을 대변하는 유행가를 고래고래 부를 것이다. 아마 외계인이 본다면, 사랑을 찾는 귀뚜라미의 노래와 실연당한 청춘의 하소연을 잘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술에 취해 부르는 노래가 귀뚜라미 노래처럼 아름다운 가을날의 정취를 느끼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잠이 잘 오는 노래는 아니다.


사랑은 우리 뇌, 우리 마음에 있다. 날 버린 그이를 놓아두자. 그이는 떠나도 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니까. 내 마음, 내 뇌는 또다시 가을날 귀뚜라미처럼 사랑의 노래를 부를 것이며 분명 새로운 그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너’와 ‘네 마음 깊은 곳에 나’가 만나 ‘자발적인 행동’으로서의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다. 떠나버린 그이는 머지않아 이름조차 가물거리게 될 것이다. 반사행동으로서의 사랑은 정말 ‘반사적’으로 짧고, 자발적 행동으로서의 사랑은 ‘원하는 만큼’ 오래오래 가는 법이다. 


귀뚜라미에게 가을밤은 아주 길고 우리의 청춘도 그렇다.     

 

※참고자료

Wohlers, D. W., & Huber, F. (1982). Processing of sound signals by six types of neurons in the prothoracic ganglion of the cricket, Gryllus campestris L. Journal of Comparative Physiology, 146(2), 161-173.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관련 태그 뉴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3 + 9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