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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촌평] 비전문가 득세하고 전문가는 침묵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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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촌평] 비전문가 득세하고 전문가는 침묵하는 세상

2020.09.29 07:07
 

얼마전 과학기술 분야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일하는 지인이 대뜸 물었다. 4차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 교사나 의사 같은 전문 직군이 정말 조만간 사라지냐는 질문이었다. 뜬금없음에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반문했다. 직장에서 제공하는 연수 프로그램에서 초청 강사가 4차산업혁명 관련 강연에서 한 얘기인데 너무 단정적으로 설명해 의구심이 생겨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지인에 따르면 자신을 미래학자로 소개한 강사는 ‘자칭’ 4차산업혁명 전문가라고 했다. 강사가 누구냐고 했더니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강사는 자신이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했으며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전문직군이 사라질 것이라고 시종일관 강조했다고 한다. 

 

지인에게 아는 한도에서 이야기했다. 미래학자로 소개한 해당 강사는 우선 인공지능 전문가도, 4차 산업혁명 전문가도 아니라고 했다. 인공지능 관련 자료들을 취합하고 공부했을 수는 있겠지만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응용하는 연구자도, 인공지능 관련 정책 전문가도 아니라고 사실 확인을 해줬다. 

 

그동안 인공지능 관련 이슈를 좇으며 취재해 온 경험과 취재원에게 들었던 사실을 토대로 얕은 지식을 동원한 설명도 곁들였다. 인공지능이 주목받기 시작한 초창기에 많은 직군들이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최근 취재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적어도 거론된 직군들이 갑자기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보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전언을 소개했다. 

 

예를 들어 의료 AI 같은 경우 의료 영상을 판독하는 데 인공지능이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숙련된 의사라고 해도 많은 영상을 판독하다 보면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는데 인공지능은 인간 의사가 자칫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보조하고 있다. 일부 질환의 경우 사람보다 진단 정확도가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환자를 대면으로 문진하고 환자의 대사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며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 처방을 내리고 환자와의 유대 관계를 형성하며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의사를 당장 수년 내에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얘기를 조용히 듣던 지인이 또 물었다. 그 강사는 왜 자신을 전문가라고 소개하고 딱 잘라 그런 설명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순간 해줄 말이 없었다. 과학기술 분야를 취재하다 보면 관련 이슈가 생길 때마다 각종 포럼과 정책 토론 등이 유행을 따라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학문적 뿌리가 없는 비전문가가 마치 전문가인 양 떠드는 사례를 워낙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비전문가가 한 이야기가 정설인 것처럼 회자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지인의 얘기를 듣고 나니 비전문가는 과학기술 관련 분야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특히 이런 현상이 일어난 데는 비전문가들의 활동이 활발한 만큼 전문가들의 침묵이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과학기술 이슈가 사회적으로 제기될 때면 전문가들은 민감한 주제라는 이유로, 또는 명확하게 이야기할 것이 없다는 이유로 입을 닫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 만난 한 연구자는 또다른 현실을 토로했다. 최근 정부가 집중하고 예산을 증액하고 있는 분야 연구과제에 해당 분야에서 별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연구자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자는 십수년간 정부 출연연구기관에서 해당 분야 연구를 해온 만큼 전문가 네트워크를 알고 있었다. 

 

그는 “정부의 예산이 몰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비전문가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쩔 때에는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남아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라고 날을 세웠다. 비전문가가 득세하면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효율적 집행은 요원해진다. 전문가를 가장한 비전문가의 한마디로 과학기술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 이뤄지는 것도 그간 우리 사회에서 흔히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는 비전문가를 걸러내는 사회 시스템과 소신껏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과학기술 전문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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