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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발견부터 정복까지 드라마틱한 C형 간염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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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발견부터 정복까지 드라마틱한 C형 간염 극복기

2020.10.06 11:11
과학자가 쉽게 푼 노벨생리의학상

하비 올터, C형 간염 질병 존재 최초 발견

마이클 호턴, C형 간염 바이러스 유전자 최초 발견

찰스 라이스, C형 간염 바이러스의 간염 유발 최초 입증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가 2020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왼쪽부터) 하비 올터(85) 미국 국립보건원(NIH) 부소장과 마이클 호턴 캐나다 앨버타대학교 교수, 찰스 라이스(68) 미국 록펠러대학교 교수. 노벨위원회 제공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가 2020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왼쪽부터) 하비 올터(85) 미국 국립보건원(NIH) 부소장과 마이클 호턴 캐나다 앨버타대학교 교수, 찰스 라이스(68) 미국 록펠러대학교 교수. 노벨위원회 제공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C형 간염 바이러스(HCV) 연구를 개척한 의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인류의 건강에 큰 위협이 됐던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하비 올터(85) 미국 국립보건원(NIH) 부소장, 마이클 호턴(70) 캐나다 앨버타대 교수, 찰스 라이스(68) 미국 록펠러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덕분에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제는 치료제까지 개발돼 쉽게 C형 간염 바이러스에서 완치될 수 있게 됐다. 이들의 C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 스토리는 어떻게 의과학이 발전하고, 또 어떻게 보건의료 문제가 해결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미스터리 간염’의 정체를 밝히다

 

 

수혈에 의해 전파되는 간염, 즉 수혈 매개 간염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1940년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1965년 미국 과학자 바루크 블럼버그 박사에 의해 B형 간염 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수혈 매개 간염의 상당수가 바로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공로로 블럼버그 박사는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73년에는 오염된 음식이나 대변으로 전파되는 A형 간염 바이러스도 발견됐다. 그런데 이후에도 종종 수혈 매개 간염이 발생하곤 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수혈의학과에 근무하던 올터 박사는 이따금 발생하던 수혈 매개 간염에 주목해 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non-A, non-B 간염’이라고 불렀다. A형도 아니고 B형도 아닌 미지의 바이러스가 수혈 매개 간염을 유발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새로운 간염 바이러스를 찾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이 시작됐다. 

 

하지만 미지의 바이러스는 쉽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올터 박사는 일단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을 정확히 구분해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NIH의 수혈 매개 간염 환자들에게서 혈액 샘플을 수집해 냉동 보관했다. 미지의 간염 바이러스를 찾는 과학자들에게는 혈액 샘플이 시험지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이 바이러스를 찾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올터 박사가 보관해 놓은 혈액 샘플 중 어떤 것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것인지 맞춰야 한다는 과제가 생긴 셈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호턴 박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카이론(Chiron)이라는 회사에서 non-A, non-B 바이러스를 찾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바이러스를 찾는다고 하면 바이러스학자들은 시험관에서 배양한 세포에서 바이러스를 증식한 뒤 분리하는 방법을 기본으로 삼았다. 

 

하지만 호턴 박사팀은 당시 최첨단 기법이었던 분자생물학 기법을 적용해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탐색했고, 결국 1988년 non-A, non-B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이 내용은 1989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이 바이러스는 C형 간염 바이러스로 명명됐고, 인류가 바이러스를 실험실에서 증식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유전자를 먼저 발견한 최초의 바이러스가 됐다. 

 

그리고 이제 라이스 박사가 등장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에 있던 라이스 박사는 정교한 분자생물학 기법으로 제조한 C형 간염 바이러스의 RNA 유전자를 침팬지 2마리의 간에 주사해 간염을 일으켰고, 이로써 C형 간염 바이러스가 non-A, non-B 간염을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동물실험으로 처음 입증했다. 

 

논문
1989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마이클 호턴 박사의 논문. 제목에 non-A, non-B 바이러스를 발견했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이언스 제공 

●2000년대는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의 황금기

 

C형 간염 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도 쉽게 가려낼 수 있게 됐고, 이후 의료현장에서 수혈 매개 간염은 거의 사라지게 됐다. 그런데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해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상당히 많은 환자에서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만성 간염으로 발전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만성 간염은 수십 년간 지속되다가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돼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도 했다.

 

이런 이유로 C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제 연구는 초창기부터 진행됐다. 처음에는 인터페론이라는 단백질을 항바이러스제로 사용했지만, 완치율이 10% 정도로 낮았다. 2000년대에는 단백질의 반감기를 늘린 페그인터페론이라는 것도 사용했지만, 1년간 치료를 해도 환자의 완치율은 50% 수준으로 한계가 분명했다.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딱 맞는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인터페론이라는 단백질만을 항바이러스제로 썼을까. 사실 C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의 가장 큰 난관은 시험관에서 배양한 간세포에서 C형 간염 바이러스를 감염시키고 증식시킬 수 없다는 점이었다. 바이러스를 배양하지 못하니 약 개발도 더디게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후 몇몇 바이러스학자들의 노력으로 해결됐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에 있던 랄프 바르텐슐라거 박사팀은 시험관에서 배양한 간세포에서 C형 간염 바이러스의 RNA 유전자를 증식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 시스템은 바로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항바이러스제 개발의 초석이 됐다(뒤에 나오지만, 그는 이 공로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라이스 박사와 함께 2016년 래스커상을 받았다). 

 

이후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의 와키타 타카시 박사팀(그는 현재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 소장이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프랜시스 키사리 박사팀, 그리고 워싱턴대에서 뉴욕 록펠러대로 자리를 옮긴 라이스 박사팀도 2000년대 중반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증식에 성공했다.  

 

이런 노력이 이뤄지던 2000년대는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의 황금기였다.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연구하다가 알게 된 많은 바이러스학적, 면역학적 지식은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치료에만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연구 덕분에 RNA 바이러스의 증식 메커니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높아졌고, 세포의 면역 시스템이 RNA 바이러스를 어떻게 인지하는지도 분자 수준에서 알게 됐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대한 인간 면역세포의 작동 메커니즘도 상세히 알게 됐다. 이때 발견된 많은 지식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원인 바이러스인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연구에도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래스커상
'노벨상의 전초전'으로도 불리는 '래스커상' 2016년 수상자에는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찰스 라이스 교수와 랄프 바르텐슐라거 박사(맨 왼쪽) 등 3명이 이름을 올렸다. 바르텐슐라거 박사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C형 간염 바이러스의 RNA 유전자를 증식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어 항바이러스제 개발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래스커재단 홈페이지 캡처

●아직 백신은 개발 안 돼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2010년대에는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항할 좋은 항바이러스제들이 속속 개발됐다. 이제는 2개월 동안 약을 먹으면 거의 모든 환자가 완치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더는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위협적인 바이러스가 아니게 된 것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발견부터 정복까지의 역사에 있어서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올터 박사는 C형 간염(non-A, non-B 간염)이라는 질병의 존재를 처음 발견했고, 호턴 박사는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했으며(정확히 말하면 그 유전자를 발견했다), 라이스 박사는 C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염을 일으킬 수 있음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3명 모두 ‘노벨상의 전초전’이라고도 불리는 래스커상 수상자다. 올터 박사와 호턴 박사는 2000년 래스커상을 공동 수상했고, 라이스 박사는 바르텐슐라거 박사와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한 마이클 소피아 박사와 2016년 래스커상을 공동 수상했다. 개인적으로는 바르텐슐라거 박사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불발이 조금 아쉽다. 그는 인류가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정복하는 데 있어서 이번 3명의 수상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C형 간염 바이러스 분야에서 남은 문제는 무엇일까? 좋은 치료제가 개발됐으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감염자들이 감염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국가건강검진에 C형 간염 바이러스 검사 항목을 넣자는 제안이 최근 한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아직 예방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좋은 치료제에 더해 백신까지 있다면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더 쉽게 퇴치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는 못한 것이다. 다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가까운 미래에 C형 간염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해 볼 수 있다.    

 

필자는 2002년 NIH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학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첫 연구 프로젝트가 라이스 박사팀이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침팬지 2마리(이번 노벨상을 수상하게 한 바로 그 침팬지 2마리다)를 대상으로 면역 치료법을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NIH의 간염바이러스 연구팀들이 2개월마다 함께 모여 토의하던 미팅 당시 올터 박사 앞에서 긴장하며 데이터를 발표했던 기억이 있다. 또 전 세계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자들이 1년마다 함께 모이는 ‘HCV 미팅’을 통해 호턴 박사와도 친분을 쌓게 됐다. 개인적인 소회이지만, 필자를 의과학자로 키우고 길러준 C형 간염 바이러스 학계 전체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의 영예를 안게 된 것 같아 필자도 덩달아 기쁘다.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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