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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촌평]총장의 '사필귀정' 발언과 침묵하는 과기정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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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촌평]총장의 '사필귀정' 발언과 침묵하는 과기정통부 장관

2020.10.26 15:58
2020 국감 단상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고발 사건이었습니다. 사필귀정의 결말이 났습니다.”

 

지난 20일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김영식 의원(국민의힘)이 “과학계의 표적감사 관련 신성철 KAIST 총장께서 지난 1년 10개월간 고충이 있었을 것”이라며 “문미옥 전 차관이 감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처음부터 무리한 감사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마침 신 총장이 국감에 나왔으니 한마디 해달라”고 요청하자 신성철 KAIST 총장이 “개인 신상이라 곤란하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뗀 뒤 한 말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길로 가게 돼있다는 말이다. 올바르지 못한 일이 바른 방향으로 해결됐다는 의미도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올바르지 못한’ 이른바 ‘표적 감사’가 ‘올바르게’ 결론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도 읽힌다. 무리한 감사와 고발 조치를 취한 과기정통부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도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장차관도 함께 참석한 국감 현장에서 과기정통부 소관기관인 KAIST 총장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고는 쉽게 믿어지지 않는 다소 생경한 장면이 연출됐다. 

 

신 총장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재임 시절 해외 연구기관에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연구비와 특정 제자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혐의로 2018년 11월 과기정통부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당시 손승현 과기정통부 감사관을 주축으로 한 강도 높은 감사 결과에 따른 고발 조치였다. 고발 사건을 배당받은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은 1년 10개월 가까이 흐른 지난 7월 말 증거불충분에 의한 혐의없음으로 신 총장과 관련 연구자 3명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신 총장에 대한 감사·고발은 국제적으로도 이슈가 됐다. 최고 권위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신성철 총장 사태에 대해 ‘정치적 탄압’이라는 거친 표현을 아끼지 않으며 이례적으로 대서특필했다. 당시 네이처는 “한국의 많은 과학자들은 이번 의혹이 이전 정부가 고용한 신 총장을 끌어내리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계약 당사자였던 연구기관인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은 DGIST와의 계약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담은 서한을 한국 정부에 보내기도 했다. 해외 연구기관과의 국제 공동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최근 흐름에서 신 총장 사태는 국제 문제로 비화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세계 과학 커뮤니티의 한국에 대한 신뢰도에 물음표가 생겼다. 과학계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과학계 인사에 대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문제는 과기정통부의 감사·고발에 대한 검찰의 결론이 났음에도 정작 고발 당사자인 과기정통부가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취임한 뒤 가진 첫 간담회에서 “신성철 총장 고발 건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적절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장관 재임 당시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서였을까. 최기영 장관은 지난 7월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온 뒤 3개월 가까이 흘렀지만 재수사 요청은 물론 이렇다 할 해명도, 사과도, 적절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감사·고발 당시 과기정통부 감사관이었던 손승현 전 감사관이 지난 10월 8일 인사에서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으로 발령났을 뿐이다. 

 

‘매듭을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결자해지’를 기대했던 과학계에는 실망감이 역력하다. 오히려 한 과학계 유력 인사는 “신 총장 건에 대해 장차관은 물론 과기정통부에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가 정말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과기정통부가 소관기관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명확한 매듭을 짓지 못하며 이번 국감에서 회자된 일은 또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임철호 원장의 ‘폭행’ 의혹과 관련된 것이다. 

 

지난 5월 조선일보는 “지난해 5월과 12월 임철호 항우연 원장이 보직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폭언과 술잔을 던지고 한 연구원의 팔을 깨물었다”고 보도했다. 현장에 있었던 한 연구원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지 국민권익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항우연의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에 이첩했다. 과기정통부 감사관실은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관장에서 주의 경고 조치하는 선에서 일단락했다. 

 

이 사건은 이번 국감에서 또다시 불거졌다. 박대출 과방위 의원(국민의힘)은 ”본인은 사과하고 끝난 일이라고 했지만, 해당 연구원은 사과받은 적이 없다고 했고 자신에게 수건을 던진 연구원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하고 본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사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7년 말에도 정부 출연연구기관에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한 출연연 부원장이 회식 자리에서 간부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 보직 해임 조치가 이뤄졌다. 그러나 과기정통부는 지난 6월 항우연 원장 건에 대해 “과기정통부가 출연연 기관장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인사 조치는 해임과 주의밖에 없어 여러 상황을 고려해 주의 경고 조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대출 의원은 23일 열린 과기정통부 종합감사에서 “과기정통부가 임철호 원장 폭행 건과 관련해 11월 2일부터 ‘폭력 행사 여부’, ‘피해자 상대 회유 정황’, ‘피해자 최초 진술 신빙성 여부’, ‘과기정통부 직원 직무유기’ 등과 관련해 특별 감사를 진행하겠다고 자료를 제출했다”고 하자 최기영 장관은 “예”라며 짧게 답했다. 바로 다음주에 임철호 원장 건에 대한 과기정통부의 감사가 다시 이뤄진다는 것이다. 

 

과방위 국감을 끝까지 지켜본 국민들의 시선은 이제 항우연 원장 폭행과 관련된 과기정통부의 감사를 향하고 있다. ‘사필귀정’과 ‘결자해지’ 사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과기정통부가 이번 감사를 통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감사 결과와는 별개로 신성철 KAIST 총장의 말처럼 항우연 원장 건도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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