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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시대가 변하면 명당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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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시대가 변하면 명당도 바뀐다

2020.11.01 06:00
시대가 변하면 명당도 바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시대가 변하면 명당도 바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강원도 삼척에는 조선 태조의 5대조 양무 장군 묘인 준경묘가 있다. 천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5대 조부라면 고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다. 까마득한 조상이다. 


서기 1231년 이양무가 죽자, 아들이 명당자리를 찾아 나섰단다. 그런데 어떤 도승이 길을 지나며 ‘저곳에 묘를 쓰면 5대 후에 임금이 나겠다’라고 중얼거렸는데, 이 소문을 아들이 전해 들었다. 도대체 혼잣말이 어떻게 소문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효심이 깊은 아들은 고승을 찾아갔다. 5대조 후손의 성공을 바라며 고승과의 ‘협상’ 끝에 명당자리를 얻어 장사지냈다는 것이다. 


천하명당에 묻힌 덕으로, 161년이 지나 서기 1392년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다. 역시 왕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161년 전부터 준비한 셈이니 말이다. 


물론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준경묘의 위치를 정확히 확정, 정비한 것은 조선의 26대 임금 고종이다. 1899년이 되어 나라가 거의 망할 때가 되어서야 묫자리 위치를 겨우 찾아냈다는 것이다. 아니, 후손을 왕으로 만들어 준 조상님의 묘가 아닌가? 그런데 668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풀을 깎고 비석을 세웠다니, 참 무심한 후손이다. 

 

풍수지리

 

풍수란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이다. 추운 바람을 막고, 마실 물이 풍부하면 당연히 좋은 땅이다. 좋은 땅은, 강남 3구가 아니라,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다. 살기가 좋아야 명당이다. 


그런데 음양오행설이 끼어들고, 도참사상이 섞이면서 좀 이상해졌다. 묫자리를 잘못 쓰면 후손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미신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덕분에 조선 팔도의 경치 좋은 곳마다 온통 무덤 천지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죽은 자를 산에 장사지내면 그 유해가 땅의 기운을 받고, 그 여음이 자손에게 전해져서 마치 나무뿌리가 땅의 기운을 받아 꽃과 열매가 번성하는 것과 같다는 것인데... 그러나 아들이라면 혹 그 기를 받을 수 있겠지만 후손까지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묫자리를 잘 써서 후손이 잘된 케이스보다는, 후손이 잘 되어서 조상을 '좋은' 곳으로 이장한 케이스가 훨씬 많을 것이다. 


충적세 인류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충적세(沖積世, alluvium)라고 한다. 하천의 퇴적물이 층층이 충적된 때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홀로세(Holocene)라고 하는데, 홀로(Holo)는 그리스어에서 전체(Whole)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주로 완신세(完新世)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흔히 전신세(全新世)라고도 하는데, 모두 '홀로'를 나름대로 옮긴 말이다. 또다른 말로는 현세(現世)라고도 하는데, 19세기에 쓰던 'recent epoch'를 옮긴 말이다. 


근데 한국의 책에는 홀로세, 완신세, 전신세, 현세, 충적세가 모두 등장한다. 한심한 일이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인데, 같은 시대를 다섯 가지 용어로 각각 부른다. 정작 서양에서는 'recent epoch'나 'alluvium'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옛날 책에나 그렇게 쓰여 있을 뿐이다. 그냥 홀로세다. 


참고로 충적세 이전 시기를 흔히 홍적세(洪積世, diluvium)라고 하는데, 노아의 홍수가 있었던 시기라는 뜻이다. 홍적세도 갱신세(更新世), 최신세(最新世)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영어로는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다. 그리스어로 '플라이스토'는 최신(newest)라는 뜻이다. 하지만 최신세라고 하면, 마치 가장 최근의 시기로 착각하기 쉽다. 홍적세도 이상하다. 노아의 홍수라니. 그리고 갱신세는 '다시 갱(更)'을 쓴 말이다. 신생대 제3기가 끝나고, 제4기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은 엄청나게 헷갈린다. 뭐, 그래서 나는 학부생에게 그냥 홀로세, 플라이스토세로 통일해서 가르친다. 영어에 능통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덜 헷갈리게 해주려는 궁여지책이다.


아무튼, 충적세는 땅이 퇴적된 시기다.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면서 주로 충적 대지를 중심으로 정주 농업을 시작했다.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에 의하면, 평야 지대로 흘러드는 급류나 주기적인 범람 하천에 의해서 생기는 땅에서 정주 농경이 시작되었다. 계곡 하구에 부채꼴 모양의 비옥한 땅이 형성된다. 경작에 아주 유리하다. 명당은 흔히 배산임수의 지형, 즉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사실 비옥한 충적 대지의 지형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충석세의 명당은 지금도 명당일까

 

고든 차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신석기 시대 기간산업은 곡물 경작과 동물 사육이 병행되는 혼합 농경이었다. 신석기 혁명에서 동물 사육의 중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한편 기후 변화에 의한 건조화가 동물 사육의 길을 열어주었다” 


우리 조상은 농사만 지은 것이 아니라, 가축도 키웠다. 이러한 혼합농경은 신석기의 특징이다. 처음에는 일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기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아마 신석기 초기 인류의 식탁에는 빵과 고기가 모두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가축은 필연적으로 질병을 일으킨다.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1451종의 병원체 중 약 61%가 인수공통감염균이다. 상당수는 가축에서 유래한다. 비옥한 충적 대지에 사람이 모이면서 감염 가능성도 커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명당은 집단 발병 지역으로 전락했다.


동물학자 조지프 키세커와 데이비드 스켈리는 회색청개구리가 산란할 장소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연구했다. 회색청개구리는 미국산 달팽이가 사는 웅덩이에 같이 산다. 이 달팽이는 감염성 흡충의 중간 숙주다. 개구리로서는 반갑지 않은 일이다. 


연구 결과 개구리의 약 3분의 2는 달팽이가 없는 웅덩이에 산란했다. 개구리의 명당은 ‘깨끗한 청정지역’이었다. 기생충에 감염된 달팽이가 서식하는 웅덩이에 산란한 개구리는 전체의 0.4%에 지나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의 명당

 

묫자리로 적당한 땅은 죽은 사람을 위한 땅이 아니라 사실 산 사람을 위한 땅이다. 배산임수의 양지바른 땅은 농사를 짓기도 좋고, 집을 짓기도 좋고, 가축을 기르기도 좋은 곳이다. 전 인구의 90%가 농사짓고, 가축치던 충적세에는 분명 이런 곳이 좋은 땅이었을 것이다. 입증할 방법은 없지만, 아마도 풍수지리는 ‘더 좋은 정착지’를 찾으려는 초기 인류의 지혜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명당도 바뀐다.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사냥과 채집에 적당한 곳을 찾아다니며 잦은 이동 생활을 했다. 분명 명당의 기준이 지금과는 꽤 달랐을 것이다. 사냥감과 채집감을 찾아 광대한 벌판을 누비면서 살았다. 유목민도, 수렵채집인과는 좀 다른 이유로, 상당히 돌아다닌다. 농경은 삶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일뿐이다. 


그런데 이런 삶은 흥미롭게도 현대인의 삶과 비슷하다. 그래서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라고 부르는 것일까? 좁은 회사를 벗어나 광막한 영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다니는 디지털 노마드의 정서는 새롭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사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가 품고 있다가, 고작 수천 년 동안 애써 자제하고 있었던 인류의 오랜 심성이다. 


일부 주장에 의하면 이성계의 조상은 유목민이었다. 뭐, 정확히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혹시 그런 이유로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 이양무의 무덤을 찾기 어려웠던 것일까? 한마을에서 대대로 살았다면, 조상의 무덤 위치를 모를리 없다. 농업을 기반으로 창업한 조선이다. 뒤늦게 조상의 무덤을 찾으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얼토당토않은 전설까지 덧붙여서 적당한 위치에 조상의 묘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농경 사회의 풍수지리를 따라 서식지, 즉 살 곳을 찾아 집을 사고 직장을 구한다. 아직도 봉건주의 농경사회에 사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든 성 안에 집을 얻으려고 한다. 정 어려워도 성에 가깝게 붙어살려 한다. 덕분에 서울의 집값은 하늘 높이 오르기만 한다. 하지만 이제 성 안 궁전에 왕이 더는 살지 않는다. 왕조시대의 잔해만이 2000원의 입장료와 초라한 지금의 모습을 맞바꾸고 있을뿐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끝없는 도시화가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집단 발병은 죄다 대도시의 다운타운에서 일어났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다. 덕분에 맨하탄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교외 지역은 오히려 주택난이다. 개구리도 감염성 달팽이가 우글거리는 웅덩이를 피하는데, 사람이라고 다를 리 없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곳, 온갖 감염균이 들끓는 곳에서 아기를 낳아 키우고 싶은 사람은 없다. 


미래 시대의 새로운 왕조는 누가 열까? 설마 봉건 시대가 다시 오지는 않겠지만, 분명 뉴노멀의 시대는 새로운 승자를 낳을 것이다. 아마도 유목민의 라이프스타일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너른 곳에서는 마스크도 필요없고, 기침예절도 필요없다. 농업 인구가 전체의 1%에 불과한 세상이다. 미래 인류는 농경 사회의 조상보다는 수렵채집 사회의 '더 오랜' 조상과 더 비슷하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대의 명당은 분명 배산임수의 양지바른 곳은 아닐 것이다. 물론 강남 3구도 아닐 것이다. 내가 강남에 살지 못해 하는 말이 아니다. 

 

※참고자료

Kiesecker, J. M., & Skelly, D. K. (2000). Choice of oviposition site by gray treefrogs: the role of potential parasitic infection. Ecology, 81(10), 2939-2943.
이익. (신편 국역) 성호사설. 경기도: 한국학술정보, 2007.
Childe, V. Gordon. (고든 차일드의)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 서울: 주류성, 2013.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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