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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왕이 될 상은 따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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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왕이 될 상은 따로 있을까

2020.11.08 06:00
영화 ′관상′의 주요장면 캡쳐. 주피터필름
영화 '관상'의 주요장면 캡쳐. 주피터필름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 《관상》의 한 대사다. 얼굴을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정확하게 맞춘다는 관상가의 이야기다. 사실 계유정난은 성공하기 어려운 ‘역모’였다. 영화에서 수양대군은 과감하게 단종을 보위하는 김종서의 세력을 몰아낸다. 그리고 조선의 7대 임금 자리를 얻는다. 그게 이미 다 얼굴에 씌어있다는 것이다. 정말? 얼굴 생김새를 보고 운명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일까? 


관상학 

 

관상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있는 점술이다. 이마가 훤하면 관직에 오를 것이며, 용처럼 생긴 눈은 왕이 될 눈이다. 눈에 흰자가 많이 보이면 사기꾼이며, 눈에 점이 많으면 도화살이 있다. 눈 밑에 점이 있으면 곡을 하며 살 팔자다… 뭐 이런 식이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미래를 만들어갈 수많은 상호작용 중에 ‘외모’도 한몫하겠지만, 분명 아주 작은 요인이다. 지금 당장 세계 여러 나라의 최고 권력자 사진을 검색해보자. 외모는 뭐 그저 그렇다. 장동건처럼 생긴 대통령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다. 얼굴을 통해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래 예언은 그렇다 치고 과거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얼굴 살이 복스럽고 턱살이 두툼하다면, 아마 배를 곯으며 살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저기 칼자국이 나 있다면 아마 평범한 직장인은 아닐 것이다. 양쪽 코에 눌린 자국이 선명하다면, 분명 시력이 나쁠 것이다. 안경 자국이니까.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Every man over forty is responsible for his face).”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다. 한 사내를 내각에 등용하라는 조언을 거절하며 ‘생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했단다. 얼굴은 스스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하자, 마흔이 넘었으면 얼굴도 자기 책임이라는 것이다. 마흔이 넘은 나로서는, 당시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절대 링컨에게 표를 던지지 않겠다.


우리는 얼굴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하지만 성장과 발달의 단계를 거치면서 얼굴은 조금씩 변한다. 삶의 굴곡이다.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 제법 생김새가 다르다. 유전자는 똑같다. 그러나 개인의 삶이 얼굴에 새겨지면서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맨날 인상을 북북 쓰고 다니면 양미간에 세로주름이 생길 테지만, 늘 활짝 웃고 다니면 입꼬리에 주름이 생길 것이다. 

 

표정과 성격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링컨의 말은 성형외과 상담실장이 환영할 만한 말이다. 하지만 그외는 좀 부당하다. 외모 때문에 출세 기회를 잃은 남자의 얼굴은 분명 더 일그러졌을 것이다. 블라인드 면접을 해야 했다. 얼굴이 그 사람의 과거를 반영하고, 따라서 미래의 가능성도 알 수 있다는 주장은 너무 환원주의적이다. 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얼굴 생김새는 유전의 영향이 훨씬 크다. 특히 어린 시절의 얼굴은 더욱 그렇다. 타고난 얼굴이 이쁘면 사랑과 관심을 얻기 쉽다.

 

어디서나 사랑받는 구김살 없는 삶은 아무래도 더 행복한 표정으로, 그리고 밝은 얼굴로 이어질 것이다. 처음부터 못난 얼굴이라면? 그래도 불굴의 의지를 다지고 노력해야 하는가? 못생긴 것도 억울한데, 너무 가혹하다. 

 

얼굴 생김새가 성격을 반영한다는 주장은 제법 오래되었다. 관상을 보면서 ‘과거’의 삶이나, ‘미래’의 가능성을 점치기도 하지만, ‘현재’의 성격에 관해 추정하기도 한다. 서양의 관상학이 주로 다루는 영역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돼지처럼 생긴 사람은 미련하고, 사자처럼 생긴 사람은 자존심이 세고, 당나귀처럼 생긴 사람은 답답하다고 했다. 얼굴은 성격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성격은 잘 바뀌지 않으므로, 성격을 알 수 있다면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식이다.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표정이 횡문화적인 보편성 및 계통학적 일관성을 보인다고 했다. 긴 진화사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심지어 동물까지)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표정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같은 표정을 많이 지으면, 상응하는 얼굴 주름이 생긴다. 이마의 석삼자 주름이나 양미간의 일자 주름, 입가의 팔자주름은 어떤 표정을 지을 때 생길까? 그리고 그런 표정은 어떤 감정과 관련될까? 이렇게 생각하니 링컨의 주장이 일견 합당한 것 같기도 하다.

 

얼굴과 성격

 

세월에 따라 표정이 얼굴에 새겨진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수긍하자. 물론 그것도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겠지만. 그런데 좀 더 과격한 주장도 있다. 아예 처음부터 얼굴 생김새가 성격과 이어진다는 것이다. 


찰스 다윈의 외사촌이었던 프랜시스 골턴은 심지어 범죄형 얼굴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소위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가진 얼굴을 찾아낼 수 있다면, 범죄율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골턴은 소위 범죄형 얼굴을 모아 합성해보았다. 범죄자 얼굴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당신의 얼굴은 범죄형이니, 아직 죄를 짓지 않았지만 일단 종신형’. 범죄 예방의 신기원이다. 아주 어린 시절에 범죄 꿈나무를 미리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범죄자의 얼굴은 아주 ‘평범’했다. 흔히 ‘범죄형’으로 취급되는 얼굴형이 있지만(영화에서 주로 악당으로 등장한다),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몇 가지 흥미로운 주장이 있다. 다면발현 현상에 의해서 특정 성격과 특정 외모가 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면, 얼굴은 특정한 행동 양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운 증후군이나 윌리엄스 증후군에서 보이는 독특한 외모를 행동 양상과 결부해서 생각하려는 시도다. 다운 증후군 환자는 종종 고집스러운 완고한 성격을 보이고,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는 아주 사교적인 파티형 성격을 보인다. 물론 안면 모습도 독특하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적당히 제멋대로 꿰어 얼굴과 성격을 연결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돌연변이 표현형에 관한 이해를 통해 일반적인 유전자의 정상적 기능을 추론하기는 어렵다. 다요인 형질은 어떤 유전자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자칫하면 큰 사회적 파장을 낳는다.


과거에는 다운 증후군 환자의 특징적인 얼굴형을 몽골형 얼굴이라고 했다. 아예 다운 증후군의 옛 이름이 ‘몽골증(Mongolism)’이다. 다운 증후군을 처음 발견한 존 다운은 인류학자 요한 블루멘바흐가 ‘몽골 인종(Mongolian race)’이라고 명명한 인종의 얼굴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널리 쓰였다. 인종차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영화 '제8요일'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주인공에 관한 영화다. 영화에서 주인공 조르주는 자신이 몽골족이 되어 말을 타고 다니는 상상을 한다. 서구 사회의 다운 증후군에 관한 오랜 편견을 반영한다. 서양인에게 다운 증후군 환자의 외모는 몽골인의 외모였고, 다운 증후군 환자는 일반적으로 지능이 낮았다. 그러니 낮은 지능,  아시아인의 외모, 유전적 장애를 서로 제멋대로 연결한 것이다. 


심지어 영국의 의사였던 프랜시스 크룩생크는 《우리 안의 몽골인》이라는 책에서 정말 기상천외한 주장을 했다. 과거 몽골인의 강간으로 순수했던 백인 집단에 몽고인의 혈통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잠복했던 불완전한 형질이 발현되면 ‘몽골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훈족이나 아바르족이 유럽에 침공하여 생긴 일이라면서, 한편으로는 동유럽의 아시케나지 유대인이 초원 지역 하자르족과 교배한 까닭이라고도 했다. 


1961년 유전학자들이 란셋이 올린 촉구 서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편견은 계속되었다. 1965년 몽골 인민 공화국의 요청에 따라 세계보건기구가 몽골증이라는 용어를 버리면서, 다운 증후군이라는 중립적인 용어가 확립되었다. 

 

관상 연구의 미래

 

링컨의 말처럼 얼굴과 성격은 서로 관련된다는 속설이 많다. 우리는 매일매일 상대의 얼굴을 평가하고,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점친다’. 물론 얼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와 거래할지 사귈지 심지어 결혼할지 결정할 때도 외모는 중요하게 작용한다.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 관상가다. 


특히 새로운 고객을 자주 만나는 직업군에서 ‘얼굴’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시도가 많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얼굴로 일단 좀 ‘거르고’ 보려는 것이다. 회사의 채용담당자도 그렇고, 자동차 세일즈맨도 그렇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편견을 강화할 뿐이다.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사실 관상으로 남을 평가하겠다는 사람치고, 스스로 인물 좋은 사람이 없다. 훤하게 잘생긴 사람치고 관상보러 다니는 사람이 있던가? 링컨도 잘생긴 얼굴이 아니다. 불품없는 외모 때문에 '고릴라'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고, 정치적 반대파에게 못생겼다며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근데 왜 본인은...?). 얼굴로 사람을 평가하다가는, 좋은 인재도 놓치고, 잠재적 고객도 잃고, 천생연분도 놓칠 것이다. 


관상학 연구는 큰 진전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다. 얼굴 생김새와 성격의 관련성을 열심히 연구할 필요가 없다. 성격을 직접 알 수 있는 다른 좋은 방법이 훨씬 많은데 말이다. 빈약한 근거에 바탕을 둔 섣부른 판단은 큰 실수를 낳는다. 아무리 링컨이라고 해도 일단 면접은 봤어야 한다. 편견과 선입관으로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잘생긴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외모를 두고 '이렇네, 저렇네' 평가하지 않는 법이다.


계유정난을 성공시킨 일등 공신은 한명회다. 역사적 평가는 그리 좋지 않지만, 아무튼 분명 크게 출세한 인물이다. 영의정을 두 번이나 했다. 하지만 죽어서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시체가 되어서 또 목이 잘렸다. 지금까지도 모략꾼의 대명사로 불린다. 과연 그의 외모는 어땠을까? 야사에 따르면 아주 볼품없었단다. 얼굴은 손으로 잡아 늘인 듯 길쭉하고, 주먹코, 사팔뜨기였단다. 분명 영의정이 될 상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비석에 쓰인 글에 의하면, 얼굴이 잘나고 키가 컸으며 기개가 우뚝했다고 전한다. 분명 부관참시를 당할 상이 아니다. 


관상은 참 믿을 것이 아니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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