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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환자 정보 털어 논문 쓴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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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환자 정보 털어 논문 쓴 의사들

2020.11.24 18:00
고재원 데일리뉴스팀 기자
고재원 데일리뉴스팀 기자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비교적 소상히 의사에게 아픈 곳과 증상을 설명한다. 곧이어 의사의 진찰이 시작되고 모든 결과는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다. 환자 집 주소와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같은 개인정보는 이미 의사를 만나기 전 병원에 모두 제출한다. 병원은 환자의 건강 정보와 개인 정보를 모두 보유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민감한 정보들이 유출될 우려는 없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외친 의사들이 병원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대변되는 의료 윤리 안에는 환자 의료정보를 함부로 다루지 않고 누설하지 않을 책임도 포함된다. 

 

최근 일부 의사 연구자들이 환자 의료정보를 본인 동의를 받지않고 무단으로 사용해 논문을 썼다가 학술지 측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무더기로 철회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3개월 사이 이 같은 사실이 밝혀져 철회된 논문만 12편에 이른다. 문제가 된 연구자들은 서울대와 이화여대 등 유명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의로 일하는 의사들이다. 이들은 잘린 손이나 손가락을 붙이는 접합 수술을 주로 한다. 철회된 논문들도 손과 관련한 질병과 코르티코 스테로이드 주사 사이의 영향을 분석한 내용을 포함해 주로 손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철회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됐을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들 대학병원 의사들은 연구에 활용하는 의료데이터를 제공자 동의를 받아 사용하게 되어 있도록 하는 절차를 무시하고 동의없이 데이터를 갖다 썼다. 또 규정을 어기고 연구 기간과 연구주제 승인, 연구계획과 승인서, 연구주제 숫자, 공동연구자에 관한 내용을 절차를 밟지 않고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논문 발표라는 명분으로 연구 윤리 준수에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무시된 것이다. 

 

이들 연구자들이 국제 학계에 보여준 태도는 정말 안하무인이다. 연구 윤리 위반에 대한 반성도 없다. 논문 철회를 주도한 학술지들은 한국인 연구자들에게 데이터 사용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 연구자들은 논문 7편이 먼저 철회되고 5편이 추가로 철회된 뒤에도 아무런 해명도 학술지 측에 전달하지 않은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철회된 논문의 교신저자는 여전히 논문을 철회한 학술지 중 하나인 수부외과학 저널(아시아태평양판)의 편집장까지 맡고 있다. 

 

이들 서울대와 이화여대 의대 연구자들의 무책임한 모습은 국제적으로도 이미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학술지 뼈 및 관절 저널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파레스 하다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대 의대 교수는 지난 10월 31일 발행된 뼈 및 관절 저널에 실린 사설에서 "우리 학계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소속기관의  대응은 더 안일해보인다. 문제가 된 논문들의 교신저자가 소속된 서울대와 이화여대 병원은 사안에 대해 잘 모른다고 밝혔다.  또 ‘교신저자는 검수하는 입장이고 논문 1저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책임을 떠넘긴다. 의사 연구자들이 소속된 대학들도 사안을 모르고, 알아볼 창구도 없다는 입장이다. 국제학술지에서 한 편도 아니고 10편이 넘는 논문을 무더기로 철회했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제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작성하는 식당과 카페 등의 출입명부가 유출돼 논란을 빚은 일이 있다. 시민들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에 큰 우려를 표했다. 환자의 의료정보를 활용해 연구를 하는 의사 연구자들과 소속기관의책임 의식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병원에서의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해야할 것 같다. 휴대전화 번호 뿐 아니라 상세한 내 신체와 건강 정보가 포함된 개인정보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마구털리는 시대가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들의 윤리의식의 결여는 결국 언젠가 사회적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규제로 돌아와 연구자들이 연구데이터를 활용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탈적 행위가 연구 공동체 잠재 위기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무더기로 철회된 12편의 논문이 그냥 시간 때우기용이 아니었다면 소속기관과 연구공동체의 확실한 답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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