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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소설 두 세계를 가로지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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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소설 두 세계를 가로지르는 일

2020.12.05 06:00
소설가 김초엽이 말하는 나의 삶
김초엽 SF 작가. 동아시아 제공
김초엽 SF 작가. 동아시아 제공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생화학 연구실에 있다가 소설가가 된 나에게 많은 사람들은 질문한다. “과학을 하다가 어떻게 소설을 쓸 생각을 하셨어요?” 이런 질문을 들으면 마치 과학의 세계와 소설의 세계가 분리돼 있는 것 같다.


정작 대학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요즘 나를 만나면 말한다. “난 네가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그중에는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네가 왜 대학원에 가?”하고 되묻던 친구도 있었다. 이런 반응들을 보면, 나는 분명 오랜 시간 두 세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살아왔던 모양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혼란스러웠지만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두 세계가 사실은 분리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긴 과정이기도 했다.

 

주기율표가 안내한 화학의 세계


열다섯 살 무렵까지 내가 과학을 전공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계획은 없었던, 게임과 음악에 빠져 살고 공부는 뒷전인 평범한 아이였다. 


그런 내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느 날 화학 시간에 주기율표를 배운 이후였다. 원소와 원자, 분자의 개념을 배우고 원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해 물질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갑자기 세계가 곧 ‘물질’이라는 감각이 확 다가왔다. 동일한 부품으로 조립된 분자들이 그렇게 무한한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전까지 나에게 세계는 추상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물질적이라기보다는 관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화학의 기본 원칙들을 접한 이후로 세계에는 어떤 규칙들이 있고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촉발된 호기심을 증폭시킨 건 2007년 중학교 3학년 도서관의 자그마한 과학책 서가였다. 도서관에 꽂힌 청소년 대상의 쉬운 과학책들을 먼저 읽었다. 그 다음에는 ‘코스모스(칼 세이건 저)’ ‘엘러건트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 저)’ ‘풀하우스(스티븐 제이 굴드 저)’ 같은 당시 유명했던 책들과 과학자들의 자서전, 전기도 모두 찾아 읽었다. 과학잡지인 과학동아를 구독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2009년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장학재단의 소개로 과학동아를 만드는 동아사이언스 사무실을 견학한 일이 있다. 마감으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사무실을 소개하고 질문을 들어준 기자들이 있었다. 과학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는 현장을 보면서 과학의 길이 꼭 과학자가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는 주로 물질과 재료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화학과 외에 소재공학과에도 원서를 썼는데, 결과적으로는 1학년이 끝나고 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포스텍(POSTECH) 무학과로 진학했다.

 

과학과 글쓰기 사이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전부터 과학을 좋아하는 것과 연구에 적성이 있는 것은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포스텍에 가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학교가 정말로 연구에 뜻이 있는 학생들만 입학시킨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학교에 가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입학할 때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연구직을 생각한다던 선후배, 동기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섰다. 나도 내 길을 연구만으로 제한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서 학부 때 다양한 경험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지편집위원회에 들어가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도 하고 학내 이슈에 대한 글도 썼지만, 과학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이공계 대학생들이 읽는 글이다보니 과학 지식을 알리는 종류의 글은 아니었다. 나는 주로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 과학커뮤니케이션, 과학적 방법론처럼 과학과 관련이 있지만 전공 공부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것들을 따로 공부해서 기사보다는 좀 더 긴 글로 완성해 실었다. 그렇게 몇 년을 싣다 보니 다른 학교 신문사에서도 과학칼럼을 써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큰 돈은 아니지만 글로 원고료를 받기 시작한 계기였다. 때로는 잡지나 웹진에 글을 투고해서 용돈을 벌었다.


SF를 처음 시도해 본 건 교내 공모전 때문이었다. 과학 콘텐츠 공모전에 SF부문이 있었고, 대상 상금이 50만 원이었다. 이때 처음 써 본 SF는 사랑이 사라진 미래 사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아쉽게도 대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소설을 쓰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매년 교내 공모전이 열릴 때마다 어떤 소설을 써 보면 좋을지 고민했고, 한번은 교내 공모전 제한 분량보다 훨씬 더 긴 글이 나왔다. 아무래도 분량 제한에 맞지 않을 것 같아 고민하고 있었을 때 아는 교수님이 SF를 투고할 수 있는 웹진이 있다고 알려줬다. 투고 심사는 몇 달이 걸렸는데, 처음으로 내 소설이 정식 지면에 실리는 경험은 무척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학부 졸업학기에 소설 작법서들을 읽으며 소설을 쓰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2016년 포스텍 화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하면서 호기심이 섞인 불안함을 느꼈다. 과학을 좀 더 가까이에서, 현장에서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는 내가 연구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걱정이 내 마음 속에서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진학하는 학교에서 일부러 석사과정으로 들어간 이유도 그래서였다. 감염병을 진단하는 바이오센서 연구를 하게 됐는데, 바이오센서 디자인 자체보다는 질병에 감염된 신체의 변화 등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지식들이 재미있었다. 


계속 실패하다가 어느날 바이오마커 검출에 성공했을 때의 즐거움도 느꼈고, 논문을 차곡차곡 읽어나가며 그 분야의 지도를 그려 보는 일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연구를 할 만한 끈기가 있는지 거듭 묻게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과학은 빠른 시일 내에 결과가 나오는 분야가 아니고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다음 스텝을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나는 무슨 일이든 빨리 질려서 다음으로 넘어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2017년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할 무렵,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준비했던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에서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 차기작 의뢰와 칼럼 연재 제안도 들어왔다. 이게 직업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딱 일 년만, 글을 쓰며 살아 보자고 생각했다. 실험하듯 내린 결정이었다.

 

작가가 된 이후의 삶

 

 

2018년에는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길게 잡지 않고 일 년만 작가로서 살아남기를 시도해 보고 실패하면 다른 일을 하러 가자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한 달 용돈으로 쓸 만큼도 수입이 없어서 공모전 상금으로 받은 돈을 썼다. 일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늘어났다. 몇 건의 에세이나 과학소설(SF)과 과학지식을 연결해 소개하는 칼럼, 그리고 과학책 서평 연재를 의뢰받은 것이다. 


또 단편을 써달라는 의뢰와 소규모 강연 제안도 조금씩 들어왔다. 최선을 다해서 한 건을 무사히 마무리하면 그 글을 읽은 다른 곳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일이 없는 시기에는 공부를 했다. SF는 과학과 느슨하게 관련이 있지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분야이기도 했다. SF의 고전, 명작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쌓아놓고 읽으며 공부했다. 구글에서 SF 관련 자료들을 한 달 내내 찾아보기도 했다. 그 시기의 공부들은 지금도 나에게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소설가로 살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위해 내가 잠정적으로 설정했던 기한이었던 일 년이 지났을 쯤에는 “다음달 마감만 끝내고…”라고 입말을 내뱉는 상태가 돼 있었고, 또 반 년이 지나자 그 다음 마감일들이 내년까지 쌓여 있었다. 지금도 “일단 여기까지만…” 하면서 작가 생활을 하루하루 연장하고 있는 상태다. 언제까지 글만 쓰고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되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 해 보자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과학을 좋아하지만 딱 한 분야만 깊이 파고들 자신이 없는 나에게 SF작가는 무척 좋은 직업이다. 여러 분야의 과학책과 기사들을 마음껏 읽으면서 소설을 구상하고, 과학자들이 쓴 논문과 보고서에서 약간의 세부내용을 가져온다. 현실보다 과장된 상상적 과학과 영웅 같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쓴다. 과학의 현실에서 살짝 벗어난 과학의 환상을 유지하는 것이 소설가인 나에게는 중요한 임무다. 


가끔 내 소설을 읽고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거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졌다는 학생 독자들을 만나면 ‘어, 사실 진짜 과학은 그렇지 않은데요’ 하며 속으로 걱정을 한다. 하지만 그 독자들도 갈팡질팡하며 언젠가는 자신만의 길을 찾을 것이다. 일단 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건, 실험이든 글쓰기든 마찬가지이니까. 

 

※관련기사

과학동아 12월호, [나는 과학동아 키즈] 과학과 소설, 두 세계를 가로지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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