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괴테는 어떻게 꽃이 잎의 변형기관이라는 사실을 알았나

통합검색

괴테는 어떻게 꽃이 잎의 변형기관이라는 사실을 알았나

2014.04.21 18:00

  위대한 시인이기보다는 뛰어난 과학자로 불리기를 바랐던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61세 때인 1810년 자신의 최대 역작인 ‘색채론’을 펴내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광학’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이 책에서 색채는 단색 광선의 결합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뉴턴 광학은 폐기해야한다며 색채 현상은 밝음과 어둠의 양극적 대립 현상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괴테는 “내 문학작품은 다른 사람들도 쓸 수 있는 것이지만 색채론만큼은 독창적인 불멸의 업적”이라고 자신했지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물론 오늘날 관점으로도 괴테의 이론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

 

‘식물 형태론’ 속편을 위해 괴테가 의뢰한 엽화된 장미꽃 수채화. 괴테는 ‘식물 형태론’에서 이 형태를 자세히 묘사했다.
‘식물 형태론’ 속편을 위해 괴테가 의뢰한 엽화된 장미꽃 수채화. 괴테는 ‘식물 형태론’에서 이 형태를 자세히 묘사했다.

  하지만 괴테가 41세 때인 1790년 발표한 ‘식물 변태론’은 얘기가 다르다. 이 책에서 괴테는 “줄기에서 잎으로 확장해 매우 다양한 하나의 형태를 갖게 된 바로 이 기관이 꽃받침에서 수축했다가 꽃잎에서 다시 확장한다. 마지막으로 열매로 확장하기 위해 생식기관(수술과 암술)에서 다시 수축한다”고 쓰고 있다. 즉 꽃을 이루는 기관은 잎이 변해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인데, 색채론과 마찬가지로 그의 생전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색채론과는 달리 식물 변태론은 20세기 후반 꽃구조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근본적으로’ 옳은 이론임이 밝혀졌다. 즉 꽃구조 형성 유전자가 고장날 경우 잎처럼 생긴 구조가 꽃받침, 꽃잎, 수술, 암술을 대신한 것이다. 그렇다면 괴테는 어떻게 ‘꽃은 잎이 변형된 기관’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까?

 

●이상하게 생긴 장미꽃 주목

 

  어느 날 괴테는 정원을 산책하다 우연히 이상하게 생긴 장미꽃을 발견한다. 꽃의 중심에 수술과 암술이 있는 대신 줄기가 올라오고 거기에 빨간색 작은 꽃잎과 녹색 작은 잎이 여러 장 붙어있었다. 이 기형 꽃을 면밀히 관찰하던 괴테는 꽃이 결국은 잎의 변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즉 괴테가 본 기형 장미꽃은 잎의 변형이 불완전해 꽃받침과 꽃잎은 만들어졌으나 수술과 암술은 형성되지 못한 상태라는 것.

 

엽화가 심하게 일어난 장미꽃 봉오리의 단면. 엽화의 정도는 꽃구조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경우에서 완전히 소멸된 수준까지 다양하다. - 위키피디아 제공
엽화가 심하게 일어난 장미꽃 봉오리의 단면. 엽화의 정도는 꽃구조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경우에서 완전히 소멸된 수준까지 다양하다. - 위키피디아 제공

  괴테 이후에도 몇몇 식물학자들이 이런 현상을 관찰했고, 특히 영국의 식물학자 맥스웰 마스터스는 1869년 펴낸 책 ‘식물 기형학(Vegetable Teratology)’에서 이런 현상에 ‘엽화(葉化, phyllody)’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뒤 엽화가 일어나는 원인이 하나 둘 밝혀졌는데, 가장 큰 원인은 파이토플라스마(phytoplasma)라고 불리는, 식물에 감염하는 기생 박테리아로 밝혀졌다.

 

  파이토플라스마는 식물과 식물을 먹는 벌레를 이중으로 숙주로 삼아 살아간다. 즉 감염된 식물이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해 계속 잎을 만들게 하고 여기에 꼬인 매미충 같은 벌레에 옮겨 타 다른 식물로 이동한다. 벌레가 식물의 수액을 빨아먹을 때 침에 들어있던 파이토플라스마가 옮는 것. 결국 식물은 생식기관인 꽃을 피워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박테리아 운반체인 벌레의 먹이가 되는 잎만 계속 만들다가 씨앗도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박테리아 단백질이 식물 단백질 파괴 유도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 4월호에는 파이토플라스마가 식물이 꽃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분자차원에서 규명한 연구가 실렸다. 영국 존인네스센터의 연구자들은 모델식물인 애기장대를 대상으로 즉 파이토플라스마의 SAP54라는 단백질이 식물의 꽃구조 형성에 관여하는 단백질에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결합이 일어난 뒤 식물 단백질이 파괴됐다.

 

파이토플라스마 박테리아의 또 다른 숙주인 매미충(Aster leafhopper). 실험 결과 매미충은 정상 꽃이 핀 식물보다 엽화된 꽃이 핀 식물을 선호했다.
파이토플라스마 박테리아의 또 다른 숙주인 매미충(Aster leafhopper). 실험 결과 매미충은 정상 꽃이 핀 식물보다 엽화된 꽃이 핀 식물을 선호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연구자들은 추가 연구를 통해 SAP54가 식물의 RAD23이라는 단백질에도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RAD23은 단백질 파괴 공장인 유비퀴틴 프로테아좀 시스템(UPS)으로 처리할 단백질을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즉 SAP54가 한 손에는 꽃구조 형성 단백질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RAD23을 잡은 채 UPS로 가 꽃구조 형성 단백질이 파괴되도록 만든 것이다. 원래 UPS는 세포 내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거나 변형돼 해로울 수 있는 단백질을 파괴하는 곳인데, SAP54의 농간으로 한창 일해야 할 멀쩡한 단백질을 부수게 된 것.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매미충 같은 매개체 벌레들이 정상적인 꽃이 핀 식물보다 엽화된 꽃이 핀 식물을 더 선호한다는 것. 식물을 방문한 매미충이 알을 낳은 비율도 정상 식물이 20% 수준인 반면 엽화된 꽃이 핀 식물은 80%에 달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선호도의 차이를 꽃구조의 차이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식물 변태론으로 이끈 계기가 된 기형 꽃을 피우는 장미가 기생 박테리아의 농간으로 만들어진 좀비 식물이라는 사실을 괴테가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2 + 6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